198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작은 물약이었다.
“…….”
남궁은 특별할 것 없는 약병 속에 들어 있는 투명한 액체를 바라봤다.
‘……이게 뭐지?’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약병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무구보다도 특별함을 가질 수 있었다.
‘카니발에서 생성된 물건들은 모두 정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약병엔 그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설명창이 비어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물건처럼 아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 밖에서 찾았다면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이 곳은 위상의 보고 안.
즉, 카니발의 중심에 있는 곳에 현실의 물건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설명이 없으니 이게 뭔지 알 방법이 없잖아.’
남궁은 병에 든 액체를 살폈다.
확실히 호기심이 일었지만 창고 가득한 에픽 아이템들보다 과연 이 알 수 없는 액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래, 원하는 혜택은 골랐느냐.]
남궁이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요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글쎄. 아직 고민 중인데…… 왜 이런 게 여기에 있는 건지 알고 싶군.”
타이밍 좋게 나타난 요르의 등장에 남궁은 그가 자신이 이걸 찾길 바라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아…… 이게 여기에 있었나?]
요르는 남궁이 들고 있는 유리병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흐음, 이유에 대해서는 얘기해 주기 어려울 것 같군. 아무리 계시자라 한들 모든 것을 공유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 이게 뭔지는 알 수 있나?”
[별거 아니다.]
요르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남궁에게 말했다.
[눈물이다.]
“……눈물? 누구의?”
[그것까지는 곤란하겠지.]
“그럼 이건 대답해 줄 수 있겠지. 설명을 볼 수 없다는 건 카니발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맞나?”
[그래. 적어도 그건 이번 카니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던전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블랙 루트를 거쳐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보스를 죽인다 한 들 보상 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물들과 보스를 현실의 존재로 돌려놓는 블랙 루트라도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차원이 다르다 하더라도 분명 카니발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체 안에서 보상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 안에 있는 보상품은 넘버링을 가지는 엄연한 카니발의 물건이었다.
‘카니발은 다른 차원에서도 열린다. 그 말은 차원이 다르다고 넘버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남궁은 유리병 안을 바라봤다.
즉, 차원과 상관없이 넘버링은 오직 카니발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었다.
“설마…… 이 세계의 물건이란 건가?”
요르는 그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궁금하면 그걸 혜택으로 선택하든지.]
그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순 없다. 물론, 선택한다고 해서 모든 걸 알려줄 수도 없지만, 최소한의 궁금증은 해결할 수 있겠지.]
“흐음…….”
남궁은 그의 말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눈물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액체는 그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게 일곱 뱀의 화신과 싸울 때 필요한 물건인가?’
아니었다.
호기심은 일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사실상 지금 중요한 것은 화신의 시험이었다.
‘전생에서도 일곱 뱀의 화신을 경험해 봤지만 7마리 중 인류가 사냥에 성공한 건 3마리뿐. 그리고 이후 나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내가 사냥한 것이 3마리.’
인류 연합이 온 힘을 다해 사냥한 것과 동수의 화신을 잡았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엄청났다는 의미였지만, 남궁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
결국 그놈을 사냥하지 못했다는 것.
“이곳에 독성을 방어할 수 있는 무구도 있나?”
[그럼. 당연하지. 저기 마지막 끝을 보거라. 월광개(月光蓋)라고 한다.]
남궁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얇은 끈으로 되어 있는 머리띠였다.
그가 그것을 이마에 씌우자 투명하게 변하면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흠…….”
[착용하자마자 느껴질 거다. 그걸 쓰게 되면 만독불침에 가까운 내성을 지니게 해주지.]
요르는 남궁이 어째서 이걸 찾는지 안다는 듯 말했다.
[만독의 왕이자 나의 힘을 가장 많이 수여받은 마지막 화신, 히드라조차 월광개의 내성을 뚫기는 힘들 거다.]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리씩 사냥을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록 사냥에 실패했던 히드라도 지금의 능력으로는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었다.
[욕심이다. 어차피 아직 시험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소환하는 화신의 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요르가 말했다.
[맛있는 음식도 한꺼번에 먹으면 맛을 음미하기 전에 체하게 마련이다. 하나씩 하나씩 하거라.]
하지만 고민보다 그의 생각은 훨씬 더 확고했다.
“그러기엔 늦어. 나는 다음 단계의 힘을 얻고 싶다. 카니발의 힘은 결국 시체 위에 쌓아올리는 성과다. 카니발이 주어지는 단계를 거쳐 힘을 얻게 된다면, 그건 그만큼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니까.”
[너는 회귀자를 떠나서도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겠지만…… 뭐,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지.]
남궁은 그의 말에 【월광개】를 착용하고 있던 이마를 가볍게 쓸었다.
[너도 알다시피 삼독문은 등급이 있다. 등급은 내가 임의로 나눈 것이며 문마다 보관되어 있는 물건도 다르지.]
고민하던 그는 요르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물건이 가지는 등급을 떠나 같은 창고 안에 있는 물건이라면 적어도 내 눈엔 비슷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야. 무엇을 선택하든 말이지.]
“…….”
남궁은 그의 말에 결심이 선 듯 보였다.
* * *
[호기심이 머리를 이겼군.]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말야. 일부러 뿌려놓은 떡밥 같아 보이긴 하지만…… 물라고 깔아놓은 거라면 가끔은 속아줘야지.”
[클클, 그렇게까지 널 위해 뭘 하진 않는다. 그건 정말로 은의 문에 보관돼야 할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걸 고를 수밖에. 네가 레전더리 무구인 레오릭의 투구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니 말이야.”
남궁은 작은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들어 보였다.
화신의 시험의 위험마저 감수하고 선택한 보상이었다.
사실 남궁 역시 자신의 결정이 올바른 것인지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위상은 신이다. 신이 가진 무구 중에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어.’
유리병을 선택한 이유는 감이었다.
지금까지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냉철하게 움직였던 그였기에 이러한 선택은 도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는 이 알 수 없는 유리병에 마음이 갔다.
대박을 노리려는 기회가 아니었다.
본능적인 이끌림.
그건 사실 그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뭐…… 네가 그것을 쉽게 놓치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슨 뜻이지?”
요르는 손가락을 들어 남궁이 들고 있는 유리병을 가리켰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그냥 눈물이거든.]
“……눈물?”
남궁은 생각지 못한 그의 대답에 잠시 머뭇거렸다.
“이걸 어디에 쓰는 거지?”
[글쎄? 딱히 카니발에서 쓸데는 없을걸.]
“…….”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을 보며 요르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크큭, 왜? 일발역전의 기회라도 기대한 거냐. 너도 이해는 하고 있었잖느냐. 정보가 없다는 건 이 세계의 물건이라는 것.]
그는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가진 무기들도 마물에게 생채기 하나 내기 어려운데 고작 그 작은 유리병에 든 액체로 뭘 할 수 있겠느냐.]
“시끄럽고. 그럼 내가 이 눈물에 끌리게 된 이유를 말해봐.”
살짝 짜증 섞인 그의 반응에 요르는 괜히 놀리는 듯 피식 웃었다.
[인간의 눈물.]
하지만 이내 곧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궁에게 말했다.
[태초의 인간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그의 말에 남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을 바라봤다.
[그러니 네가 끌릴 수밖에. 핏줄의 유대는 강하니까. 선조에 대한 이끌림은 당연한 일이지.]
“태초의 인간……? 어째서 네가 이걸 가지고 있는 거지? 너희는 카니발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타났잖아.”
[물론, 나는 그렇지. 하지만 위상의 자리는 그 전부터 있었다.]
화르르륵……!!
[일전에도 얘기했었지만 너희가 신이라 부르고 악마라 칭했던 존재들 말이다. 그들 모두 과거의 위상들이며 카니발이 없더라도 세상을 관장했던 존재들이지.]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각종 유적지와 보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과거 위상들의 기억은 현재의 위상들에게 이어진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당연히 내게 이어진 것이지.]
“흐음…….”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의 인간이라…….”
[너희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것이다. 네가 그것에 끌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
“그럼. 이것에 대해서 아는 자가 있을까?”
[적어도 카니발 내에서는 없을 거다. 오히려 네가 사는 현실의 세상에 있는 이능력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지.]
“그렇군.”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 선택이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의 시험은 어떻게 치를 생각이냐. 용아라고 했던가? 레비아탄의 피를 가진 아이를 네가 데리고 있다지만 내 헌신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요르는 유리병을 품 안에 넣는 남궁에게 말했다.
[네가 가진 영혼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근래에 얻은 원시성령은 조금 쓸 만할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평범한 병사들은 화신의 밥이 될 뿐이다.]
“그래, 네 말대로 월광개를 얻었다면 시험에 유리했을 거다. 하지만 이걸 사리 분별 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건 아냐.”
[뭔가 계획이 있는 건가?]
“그래, 네 눈엔 현충원에서부터 나와 함께해 준 영혼 병사들이 약해 보이겠지. 하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강해.”
[마음으로 될 일이 아니잖느냐.]
“아니.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나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의지 말이야. 위상이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그 의지를 가진 자들 역시 과거부터 존재했거든.”
남궁의 말에 요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나는 사령술로 그들의 의지에 힘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설마…….]
남궁은 말했다.
“역사 속 전쟁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