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콰아아앙---!!!
콰강--!!
남양주에 위치한 팔당댐 위로 요란한 폭음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샐러맨더의 화염이 온다!! 모두 산개하라!!”
명훈의 외침에 연합원들이 일제히 흩어졌고 댐의 뒤에 있는 호수 위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제길, 엄청난 열기야.”
“저거 정말로 뚫을 수 있는 겁니까?”
“형님께서 하라고 했으니 해야지! 내가 아니라 네게 맡기신 거잖아.”
“……젠장.”
강호준은 명훈의 말에 이를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에에에엑---!!!]
댐 위에 서 있는 샐러맨더가 포효를 지르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흔들었다.
치이익……!!
댐의 강물에 닿은 꼬리 위로 새하얀 증기가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앙---!!
녀석이 꼬리를 휘두르자 뜨겁게 달궈진 물이 파도처럼 솟아올라 댐 위에 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모두 피해!!!”
하지만 명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솟구친 물살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덮쳤다.
“으, 으악!!”
“으아아악---!!!
협회원들은 고개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강물을 미처 피하지 못해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웅크렸다.
스아아악……!!!
그 순간, 그들의 앞에 바람이 일더니 거대한 장벽이 파도를 막아섰다.
“서두르세요!!”
어마어마한 방벽의 위용에 놀랄 여유도 없이 사람들은 뒤에서 들려오는 박효주의 목소리에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너도 위험하다.]
“알아! 하지만 조금만 더……!!”
[무리를 하는군. 저를 소환하는 것 자체도 이미 네 육체에 부담인 것을…….]
“잔소리!! 일일이 따질 거면 차라리 소환에 응하지 말지 그랬어?”
그녀의 머리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날고 있었다.
[흠.]
녀석이 날갯짓을 하자 놀랍게도 그녀가 만든 바람의 방벽이 순식간에 열기를 머금은 파도를 밀어 냈다.
“후우…….”
[정령술사의 기본이 안 되어 있군. 자고로 술사는 정령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야. 그 말은 빌릴 수 있는 만큼의 힘만 써야 한다는 말이지.]
투덜거리던 새는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직접 나서면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쓰게 되는 것과 같아.]
톡-
“큭!!”
새가 날개로 박효주의 어깨를 가볍게 내리치자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은 결국 힘을 담는 그릇을 깨뜨리게 만들지.]
“잔소리는 그만하지? 당신이 날개를 흔들 때마다 격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클클, 그러하겠지. 바람의 상급 정령인 나 알바트로…….]
콰아아앙……!!!
순간 거대한 샐러맨더가 댐의 물을 뚫고 튀어나와 박효주가 있던 자리를 거대한 이빨로 물어뜯었다.
[저……! 저 빌어먹을 놈이……!!]
물에 젖은 알바트로스는 간신히 박효주의 옷에 달라붙어 바둥거리며 소리쳤다.
“하압!!!”
박효주는 시끄럽게 떠드는 정령새를 뜯어내 집어 던지고서는 단검을 허공에 뿌리며 뛰어올랐다.
탁-! 타탁-!!!
허공에 떠 있는 단검을 계단처럼 밟으며 그녀는 빠른 속도로 샐러맨더를 향해 달려갔다.
“각 현지의 상황은?”
“현재 뉴욕, 모스크바 등을 비롯하여 총 5군데에서 지옥문이 개방되었습니다. 연합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샐러맨더를 사냥한 전력이 부족합니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피해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들었지? 호준아. 네가 끝내야 한다.”
명훈은 보고를 받고서 옆에 서 있는 강호준에게 말했다.
“후우…….”
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야, 뭘 쫄고 있어!! 저기 효주 씨를 봐라. 바람의 정령은 샐러맨더와 상성이 최악인 거 몰라? 그런데도 놈과 싸우고 있잖아.”
주사인이 그의 등을 거칠게 후려쳤다.
“아니, 그건…….”
“혹시 힘드시면 제가 대신할까요.”
그의 옆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거대수를 사냥하고 있는 전장에서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어쩐지 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저도 불은 좀 다루는데.”
“……됐다. 형님께서 내게 맡긴 일이야. 이런 일을 꼬마에게 양보 못하지.”
주사인이 데리고 온 소년의 이름은 정찬호.
플레임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프로게이머이자 주사인의 후임으로 발탁된 아이였다.
‘녀석을 보자마자 소민이는 엄청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좀 껄끄럽단 말이지.’
무뚝뚝한 아이도 있는 법이지만 찬호의 첫인상은 그런 것과 좀 달랐다.
표정이 없었다.
마치 기계처럼 무표정한 모습을 찬호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프로게이머란 직업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호준은 묘한 이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군인들보다 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아는 중학생이라…….’
어린아이를 경계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호준은 본능적으로 그를 조심했다.
호준의 말에 찬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는 샐러맨더를 바라봤다.
문에서 소환된 녀석을 댐이 있는 남양주까지 유인하는 것은 그래도 성공했지만, 반대로 물 안에 있는 녀석을 공격하는 방법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
“꺄아아악---!!!”
박효주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강호주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겠습니다.”
파앗-!!
미카엘이 공간을 뛰어넘어 호준의 어깨를 잡아 샐러맨더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잡을 수 있겠죠?”
댐의 끝에 서 있던 경인이 샐러맨더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호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죽진 않을 거다. 711에서도 가장 튼튼한 인간이었으니까.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김창환의 대답에 경인은 피식 웃었다.
-저 인간 걱정보다 너부터 집중 하도록 해. 그래, 활은 조금 익숙해졌어?
“네, 어느 정도는요.”
-어쭈?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는데? 걱정할 필욘 없나 보군.
꽤나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목소리만 들어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짐작이 아니라 경인의 주위로 갈기갈기 뜯겨져 나간 도마뱀의 시체들이 그의 자신감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다 성우 덕분이죠.”
“쓸데없는 소리 하네. 이거 다 네가 잡은 거잖아. 군신화 없어도 다 쓸어버렸을걸?”
도마뱀들의 시체 위에 걸터앉아 있는 성우는 지친 듯 수통의 물을 들이켜며 말했다.
“나도 이번 문이 닫히면 던전에 다녀와야겠어. 야차 보따리에서 산 건틀렛은 얼마 가지도 않는 것 같거든.”
성우는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건틀렛을 보이며 경인에게 말했다.
“생각해 둔 곳은 있어?”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경인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성우는 그의 새로운 활이 부러운 듯 보였다.
“있지. 태국에 생성된 무아이 던전 알지? 거기에 권투사들이 쓸 만한 무기가 드랍된다던데.”
“같이 가줄까?”
“오…… 버스 태워주려고?”
“하는 거 봐서.”
“은근히 너 재수 없어졌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녀석들, 흰소리 하는 걸 보니 다 쉬었나 보구나? 저기 안쪽에 샐러맨더의 불씨가 떨어졌어. 지금쯤이면 도마뱀들이 태어났을 거다.”
전태호의 말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빠, 그래도 신기하지 않아요? 더 이상 마물들이 나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잖아요.”
“호준이 녀석은 두려워하는 것 같던데.”
“에이…… 그 형은 좀 다르죠. 샐러맨더를 사냥해야 하니까요.”
전태호는 아들의 말이 무슨 의민지 충분히 알았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문이 열리면 쏟아지는 마물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히려 소환 된 마물들을 앞다퉈 사냥하려 했다.
꺾이지 않는 전의(戰意).
가장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무리하지 말거라. 조금 강해졌다는 자만이 실패를 이끄는 법이다.”
“그럼요.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말도 안 되게 강한 분이 한 명 있잖아요. 그분이 있는데 어떻게 자만심을 가지겠어요.”
“비교 대상이 아냐. 그 아저씨는.”
두 사람의 말에 전태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까요? 아저씨 말이에요.”
“글쎄다. 워낙 속을 알 수 없으니…… 어디서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닐지.”
“언젠가는 저희들이 힘이 될 수 있겠죠?”
“그래야지.”
전태호는 아들의 변화가 싫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그때였다.
샐러맨더의 후방에 떨어진 불씨에서 태어난 도마뱀들을 상대하러 숲 안쪽을 달리던 그들의 귀에 굉음이 들려왔다.
“……!!!”
세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저게…… 뭐야?”
샐러맨더의 머리 위로 떨어진 거대한 드래곤이 물속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며 거대한 입을 벌렸다.
[크아아아아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포효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상위 마물이 사용하는 공포 효과, 피어(Fear)였다.
“7번째 문의 보스는 저 녀석 아니었나?”
“왜 마물이 또 소환된 거야?”
“이게 무슨…….”
굳어버린 몸으로 그들은 힘겹게 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마물의 소환에 놀란 것도 잠시, 그들은 드래곤을 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거…… 설마?”
눈이 좋은 경인이 가장 먼저 드래곤의 머리 위에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저거 봐, 힘이 되긴…… 우리가 별 짓을 다해도 저 아저씨 발끝에도 못 미친다니까. 저 괴물을 어떻게 도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성우의 입꼬리는 웃음으로 씰룩이고 있었다.
“……형님!!”
드래곤과 함께 나타난 남궁의 등장에 모두가 놀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나 강호준이었다.
“호준아. 아직도 끝내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냐.”
툭-
엘더 드래곤에서 내린 남궁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하, 하하……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잔뜩 긴장한 상태로 샐러맨더에게 도전 한 호준은 우습게도 남궁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놓였다.
“이게 다 뭡니까? 드래곤이라니…… 진짜 형님은…….”
“요란 일족에게 샐러맨더를 사냥하는 법을 배웠을 텐데?”
웃으며 그를 맞이하는 호준과 달리 남궁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네. 그러긴 했죠. 그런데 그들이 상대했던 것과 다른가 봅니다. 그들도 이렇게 거대한 크기는 처음이라고…….”
“확실히 탑에서 사냥하던 것과는 다르지.”
남궁은 호준의 옆에 시커멓게 팔이 그을린 박효주에게 포션을 던졌다.
“그래서?”
“……네?”
“크기가 달라도 샐러맨더는 샐러맨더일 뿐이다. 설마 겁을 먹은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잡으려고 지금 이렇게 녀석의 머리 위에 올라온 것 아니겠습니까.”
호준은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잡아야지. 내가 너한테 말하고 갔을 텐데.”
남궁은 그를 바라봤다.
“상처 치료했으면 우리는 빠져 주는 게 어때?”
“네?”
“녀석 혼자서 잡을 거니까.”
박효주는 남궁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지? 못 잡으면 나한테 죽는 거.”
호준은 더 이상 샐러맨더가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