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전쟁 영웅이라…… 역시 영웅 하면 충무공 아니겠습니까? 사령술이 무구 안에 담긴 영혼을 사역 할 수 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고블린 성체를 벗어나 협회로 돌아온 남궁은 주사인을 비롯한 사람들과 화신의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맞아. 그 물론 그 안에 영혼이 남아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과 영혼의 능력은 조금 달라.”
“개인적인 능력이라…… 형님께서 사역한 미궁의 기사처럼 신화 속 영웅이라도 반신의 힘을 가진 자들이면 어떨까요?”
“데미갓이라면…… 역시 헤라클레스? 요르단에 헤라클래스 신전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혹시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남궁의 이야기에 모두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들이 좋아 했던 영웅들을 언급하며 설레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만약 그 영혼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들이 과연 화신과의 전투에서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그들과 달리 진수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세상을 구했던 영웅…… 확실히 신은 아니더라도 신화적인 인물들이긴 하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의 평가와 개개인의 능력은 다르다. 그 기준은 역시 카니발이겠죠.”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두가 진수혁에게 집중했다.
“저라면 영혼을 찾기 위해 유물과 유적을 뒤지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카니발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사실 영웅은 아니지만 더 강한 자들이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더 강한 자들? 그게 누구지?”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 말입니다. 위상에게 선택받을 정도라면 적어도 그들의 자질만큼은 대단한 것 아닐까요.”
“…….”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에 남궁조차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둘은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에이, 그건 좀 아니죠. 영웅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악인이잖아요. 그런 자들이 과연 형님을 도울까요? 영혼 사역을 하려면 우호적인 영혼이어야 하는데.”
“교육을 시켜야지.”
주사인의 말에 진수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가장 의로운 자들에게 말입니다.”
“설마……?”
“네. 전쟁 영웅들을 그들의 교관으로 두는 것은 어떻습니까.”
“허허…… 재밌는 이야기로군.”
만덕수는 주사인의 제안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성 교육이라도 시키라는 말인가? 당신답지 않는 생각이군.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 영혼도 마찬가지야.”
“만신전 욕심에 테러를 저지른 자들에게 이제 와서 정의를 바라는 건 우스운 일이죠.”
“그럼?”
“욕심이 많은 자들은 생에도 집착하는 법입니다. 이대로 관 속에 묻히는 것보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삶을 지켜보는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진수혁이 남궁에게 말했다.
“그들이 배워야 할 건 정의로움이 아닙니다. 싸우는 방법입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힘이니까요.”
“…….”
남궁은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야. 그럼, 지금부터 전력이 될 만한 역사 속 영웅들의 유물들과 함께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의 유골함을 가지고 오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당장 학자들을 소집하여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회의가 일단락되자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단 한 사람, 주사인만 남아 있었다.
“왜? 할 말이라도 있나?”
“네가 내 후임이라며 소개 해준 아이 말이야. 찬호에 대해 좀 할 말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
“좀 특이해.”
“특이한 걸로 치면 너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런 의미가 아냐.”
남궁은 평상시와 달리 진지한 주사인의 모습에 집중했다.
“걔에 대해서 좀 알아? 어째서 내 후임으로 쓸 만한 녀석이라고 했던 거야?”
“왜? 별로야?”
“아니. 별로는 아닌데…….”
주사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히려 너무 뛰어나서 문제지.”
“……?”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어. NEST를 건설하면서 필요했던 모든 시스템을 익혔거든.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도 있는데.”
“그럼 좋은 것 아냐?”
“좋긴 한데…… 너무 뛰어나니 인간미가 없다는 게 문제지. 꼭 프로그램을 대하는 것 같아.”
“배부른 소리를 하는군.”
“나중에 네가 한 번 만나봐.”
남궁은 주사인의 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폭마(火爆魔).’
전생 때 정찬호의 이명.
단순히 불을 잘 다루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 아니었다.
그의 불꽃에 수많은 마물이 불에 타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불꽃에 사람들도 많이 희생되었으니까.
‘정찬호가 화폭마로 활동했던 건 불기린을 사냥하고 나온 청화(靑火)를 획득한 시점부터다.’
뒤늦게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마물을 사냥한 것만 놓고 본다면 그는 계시자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은 마물을 사냥했다.
‘녀석의 실력이야 말할 것 없는 일이긴 한데…… 사인이 녀석이 저리 말하는 걸 봐서는 뭔가 문제가 있긴 한가 보군’
“그래. 내가 한 번 만나보도록 하지.”
“고맙다.”
“별일도 아닌데.”
“그럼 이제 뭘 할 거야? 소민이 보러 가나?”
“아…… 아니. 소민인 아마 당분간 혼자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남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그는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 * *
“……왜 왔어?”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닌데 왜 쫄고 그래? 잘못한 거라도 있나 봐?”
“……쪼, 쫄긴 누가 쫄아? 아니거든?”
“괜찮아. 오늘 만나러 온 사람은 네가 아니니까. 드루이드인 상태에서 넌 딱히 흥밋거리도 아니고.”
남궁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쿠후란의 막사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함께 있던 록산느는 경계했지만, 조금 전 한마디로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자네, 장난이 짓궂군. 그녀에게 굳이 상처를 줄 것까지는 없잖은가.”
“능력이 있으면서도 강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문제니까.”
“힘이 있다고 꼭 싸워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지. 그래, 그보다 나를 찾아 온 이유는 뭔가.”
남궁은 록산느를 슬쩍 보고는 쿠후란에게 삼독문에서 얻은 유리병을 꺼내었다.
“…….”
그것을 본 순간 쿠후란은 입을 다물었다.
마치 성스러운 유물을 다루는 것처럼 유리병을 잡은 손이 떨렸다.
“이걸…… 어디서?”
“위상의 보고에 있어서 가지고 왔다. 솔직히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가더군.”
“그럴 수밖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것에 끌릴 수밖에 없은 걸세. 이건…….”
“태초의 인간의 눈물이니까?”
“허허. 알고 있었나?”
쿠후란은 남궁의 대답에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건 고르고 난 뒤에 들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알려주지 않더군. 사실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당장에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데 말이지.”
“이걸로 뭔가를 하려고 하다니…… 정말 자네다운 발상이로군. 이건 이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법일세.”
“의미만 있어봐야 뭐 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내게는 빗물보다 못한 것인데.”
남궁은 투정을 부리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걸 알면서도 자네는 이걸 골랐지. 안 그런가.”
“…….”
“자네는 태초의 인간이 누구라 생각하는가?”
“글쎄. 성서에 나오는 아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자네도 그것이 옳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걸세. 스스로도 성경에 나오는 이라는 조건을 달았으니까.”
“그야…….”
“북유럽에서는 물푸레나무를 깎아 인류를 만들었고,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의 눈으로 만든 하토르의 눈물에서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지.”
쿠후란은 남궁에게 되물었다.
“이뿐만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기원에 대한 전승은 여러 가지일세. 각기 다른 전승 속에서 과연 태초의 인간은 누구라 할 수 있지?”
남궁은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지 못해 말을 하지 못했다.
“이건 누구의 눈물일까.”
“당신은 알고 있다는 건가?”
쿠후란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옅게 웃었다.
“허허, 나도 모르지.”
“그게 무슨…….”
진지한 분위기와 달리 쿠후란의 대답은 농담 같을 정도로 가벼웠다.
“우리들 중 누구도 과거를 살지 않았는데 무엇이 정답인지 알겠는가. 전승이 여러 가지며 전설과 신화가 다양한 건 그 때문이지. 보지 못했으니까.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변하게 되기 때문이야.”
남궁은 유리병을 바라봤다.
“하지만 반대로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될 수도 있겠지.”
“모든 것……?”
“태초의 인간을 한 명으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잣대라는 말일세. 이건 아담의 눈물일 수도 있고, 엠블라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들 모두의 눈물일 수도 있겠지.”
“어려운 말이로군.”
“껄껄……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
“그런 어려운 건 당신들에게 맡기겠어.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거야.”
“할 수 있는 거라…… 글쎄? 그걸 내게 묻는 자네가 나는 오히려 의아하군.”
“……뭐?”
남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위상인 일곱 뱀의 주인이 그러던데. 이 눈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현실의 이능력자들을 찾아보라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서 지금 당신을 찾아온 거고.”
“그것도 틀린 건 아니지.”
애매모호한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남궁은 인상을 찡그렸다.
“헌데 나보다 더 뛰어난 이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잖은가.”
“그게 누구지?”
“바로 자네.”
쿠후란은 남궁을 바라봤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는가. 자네가 가진 사령술만큼 뛰어난 영혼술도 없는데 말이야.”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 영웅들의 영혼을 불러내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었다.
“눈물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카니발로 과거의 존재했던 것이라면 이 안에 그 영혼이 담겨 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눈물에 그 힘을 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군. 내가 바보처럼 여기까지 왔군.”
남궁은 그를 바라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 영혼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 영혼의 눈이 Lv 10이 발동됩니다.
그 순간, 작은 유리병 안에 있는 한 방울의 눈물이 마치 거대한 대양(大洋)이 되어 그를 덮쳤다.
남궁은 알 수 있었다.
거센 물보라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