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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204/270)

204화

‘사령술에 반응한다?’

남궁은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액체 속에 미세한 반짝거리는 가루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영혼의 눈이 Lv 10이 발동됩니다.

▶ 격상의 영혼을 조우하였습니다.

▶ 현재 보유하고 있는 영혼의 눈의 등급이 부족하여 온전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화아아악……!!

경고와 함께 남궁의 시야가 역전 되었다.

‘이건…….’

남궁은 어째서 삼독문에서 반응이 없던 액체가 지금 활성화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영혼의 눈으로 그를 불러낸게 아니다. 그가 원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볼 수 있는 것뿐.’

그야말로 격상(格上).

눈물 속에 스며들어 있는 영혼은 분명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존재였다.

“받아들이게.”

그리고 영혼을 느낀 쿠후란 역시 영혼이 남궁을 부르고 있으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직감했다.

▶ 주위 우호적인 영혼들이 당신에게 동조합니다.

“…….”

남궁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역전된 시야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 삐뚤어진 세계였다.

그리고 비틀린 그곳의 중심에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고생 많았다. 나의 후손이여.]

헐벗은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는 누구지?”

남궁의 물음에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인간이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라 오히려 질문한 남궁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요르가 말하길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태초의 인간의 눈물이라 했다. 그럼 네가 태초의 인간이라는 말인가?”

[맞아. 나는 란과 우를 가장 먼저 만난 인간이다. 아마도 위상보다 내가 더 그들에 대해서 잘 알걸?]

아이는 남궁의 손목에 감겨 있는 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의 사슬이로군. 그 녀석이 네게 이걸 준 건가? 하여간 재밌는 녀석이라니까. 감당도 하지 못할 인간에게 이런 걸 주다니.]

아이의 말에 남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뭘 감당할 수 없다는 거지?”

[너도 알 텐데? 이 사슬 말이야. 위상의 힘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잖아. 안 그래?]

틀리지 않았다.

사슬의 힘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카를로스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팔각전쟁의 승리를 통한 위상의 힘이라…… 나쁘지 않은 계획이니까. 그런데 카를로스, 그 녀석은 여전하군.]

“지금 내 기억을 읽기라도 하는 건가? 어떻게 알았지?”

[하하, 내가 한낱 인간의 기억을 들여다봐? 나는 그런 수고스러운 짓을 할 필요도, 할 생각도 없어.]

“그럼?”

[읽는 게 아니야. 그냥 아는 거다. 자식의 생각을 부모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는 너희들의 기억과 생각을 느낄 수 있지.]

아이는 남궁을 바라봤다.

[네가 시간을 역행했다는 것도.]

“……그래, 태초의 인간이라고 하더니 범상치 않은 것은 맞군.”

[죽은 계시자를 길들여서 화신의 시험에 도전할 생각인 모양인데. 제법 재밌는 생각이긴 하지만 글쎄…… 네가 생각하는 과거 전쟁 영웅들이 얼마나 그들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이는 말했다.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세운 것은 맞지만 결국은 인간들끼리의 전쟁. 신을 상대하는 싸움은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영웅들에게 그들이 배울 것은 싸움의 기술이 아닌 싸우고자 하는 의지다.”

[불굴(不屈). 그래, 좋지. 꺾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한 번 꺾이게 되고 나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기도 하지. 그런데 그들의 의지는 이미 한 번 네게 꺾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불평 불만을 하려고 너는 나와 동조를 이룬 건가?”

남궁은 신랄한 말들에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하, 나는 너를 괴롭히려고 부른 게 아니야. 오히려 너를 도와주고 싶어서지. 나 역시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인간들이 더 이상 신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야.]

아이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아담…… 엠블라…… 인간의 역사에 남겨져 있는 인류의 기원들. 나는 그런 자들이 아니다. 그건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역사에 남아 있는 최초의 인간들이니까.]

우우우웅…….

“……!!”

놀랍게도 그 순간 아이의 손목에 푸른 사슬이 나타났다. 남궁의 손목에 감겨 있는 사슬과 비슷했지만 묘하게 달랐다.

[이건 란(亂)의 사슬이다.]

“네가 왜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

[하하. 지금 그 말은 나보고 웃으라고 하는 소리지? 오히려 그건 내가 물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슬은 본디 1쌍이었는걸.]

촤르르륵……!

남궁의 사슬이 빨려 들어가듯 아이의 사슬과 엉겨 붙었다.

“…….”

사슬의 힘에 의해 남궁의 허리가 굽혀졌고 무릎을 꿇자 아이와 눈높이가 맞아졌다.

[나는 이름이 없다. 사실 최초의 인간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내가 가장 처음인데 어찌 뒤에 있는 자들이 나를 알겠는가.]

남궁은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름 없이 나를 부르는 것도 불편한 일이겠지. 굳이 나를 명명하자면…… 그래, 란과 우는 이따금 나를 이리 불렀다.]

아이의 입이 움직였다.

[루(淚)라고 말이다.]

촤르르륵……!!

엉겨 붙어 있던 사슬이 풀어지자 남궁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너는 태초의 위상과 무슨 관계지?”

[딱히……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태초에 두 위상이 탄생했고 세계가 구축되었으니 그 사이에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그저 순리일 뿐. 그로 인해 내가 태어난 것이다.]

“내 기억을 보았으니 너도 알겠지. 란은 우의 탑에 갇혀 있고, 우는 란의 둥지에 봉인되어 있다. 어째서 태초의 위상이라는 자들이 모두 갇혀 있는 거지?”

[순리를 벗어났으니까. 우(无)는 위상들을 소멸시키고 카니발을 없애려 했으니까.]

“그렇다면 란은? 란은 위상들의 편에 선 자가 아닌가? 어째서 그도 탑에 갇혀 있는 거지?”

[란은 갇혀 있는 게 아니야. 보호 받고 있는 거지. 우(无)가 변곡의 존재라면 란(亂)은 순리의 존재이자 모든 위상들의 선조 같은 존재다. 그가 사라지면 위상들은 소멸한다. 그러니 지금의 위상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란을 보호하려 하는 거지.]

“일전에 탑에서 란이 내게 말했다. 내가 가진 사슬로 자신의 봉인을 풀 수 있다고. 그렇다면 네가 가진 사슬로 우의 봉인을 풀 수 있는 건가?”

[아마도. 물론, 너의 역량에 달렸지만 말이야.]

아이는 남궁이 하려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슬을 원하는구나.]

“있으면 좋겠지. 란과 우. 분명 그 둘은 지금의 위상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니까.”

[하지만 그들이 지금의 위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더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전생의 내 동료를 찾고 있는 것이지. 그는 비록 실패했지만 우(无)와 함께했던 자니까.”

[그렇군.]

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손목에 있던 사슬을 풀어 남궁에게 건넸다.

차르릉-

경쾌한 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고 가거라.]

“……이렇게 쉽게 줘도 되는 물건인가?”

[어차피 가져가도 쓰지 못할 테니까. 사용 조건이야 우(无)의 것과 똑같다. 위상의 힘이 필요하다.]

꽈악…….

남궁이 떨어진 사슬을 주우려는 순간 루는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위상의 힘을 쓴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뜻.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달할수록 너는 인간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

루는 그에게 말했다.

[나라면 사슬을 쓰지 않을 거다.]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쓰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데 안 쓰는 게 낫겠지.”

남궁은 서슴없이 사슬을 잡았다.

우우우웅…….

그러자 두 개의 사슬이 하나로 합쳐지며 묵색의 두터운 사슬이 그의 팔을 감쌌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만나서 반가웠다, 후대여. 아직도 이 빌어먹을 카니발이 존재한다는 것이 슬픈 일이지만…… 부디 살아남길 바란다.]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무슨?]

“태초의 인간이란 자가 후대를 위해 남긴 것이 고작 쓰지도 못할 사슬 하나? 너무 실망스러운데.”

루는 남궁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야. 나와 거래를 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나는 위상이 아니야. 그저 잠들어 있었던 존재에 불과하니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고? 그럼 왜 너는 눈물을 흘렸지?”

[뭐?]

“아무것도 없는 태초라면 슬퍼할 일도 없을 텐데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기에 너는 눈물을 흘렸는가. 후대가 겪게 될 미래라도 알게 된 건 아냐?”

남궁의 물음에 루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자신이 제대로 그의 맥락을 짚었다는 것을 남궁은 알 수 있었다.

[잘못 짚었어.]

“……뭐?”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루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후대를 사랑하는 마음 같은 건 없다. 애초에 태어나고 소멸하기까지 평생을 홀로 살아 왔는데.]

“그럼……?”

[그 눈물은 후회였다.]

“후회?”

[신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후회. 나도 차라리 신이고 싶다는 시기와 열망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루의 대답에 남궁은 뭐라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른가?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나이고 내 모습인데. 네가 내게 물어야 하는 건 그 눈물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어째서 일곱 뱀의 주인이 내 눈물을 가지고 있는가’여야 할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일곱 뱀의 주인. 그는 란과 우에게서 가장 먼저 태어난 위상이자 인간을 만든 신이거든.]

“요르가…… 인간을 만든 신이라고?”

[그는 때론 선악과를 먹인 뱀이자 해변가에 나뭇가지를 심은 존재이기도 하다. 너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았는가?]

“무엇을?”

[위상에게 반기를 들려는 너를 그가 왜 계시자로 뽑았을까 말이다. 정말로 단순한 호기심과 유흥을 위해?]

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오히려 너를 뽑은 이유는 속죄(贖罪)에 가까울지 모른다. 인간이란 존재를 만들어 끝없이 카니발 속에서 괴롭힌 죄책감.]

꽈악-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잡았다.

[그게 요르가 다른 위상과 다른 이유일 것이다. 위상의 기억은 전승되니 그 후회는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더욱 무겁게 그를 짓누르고 있겠지.]

“그렇다면 그가 나를 도와 위상에 반기를 들 수도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지. 아무리 후회 한다 한들 그 역시 결국은 위상이니까. 만약 그 속죄가 진실이었다면 오히려 우(无)가 레오릭과 함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했을 때 돕지 않았을까?]

루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뱀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니까. 그를 믿지 마라. 허나 네가 변곡을 움켜쥐고자 한다면…….]

그의 목소리가 남궁의 귀에 꽂혔다.

[뱀을 이용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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