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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화 (208/270)

208화

[껍데기는 계시자들이지만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은 다른 자들이야.]

요르는 재밌다는 듯 남궁이 부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누구지? 우로보로스의 비늘을 베어 버릴 정도라면 평범한 낫은 아닐 텐데…… 크로노스의 낫인가?]

그는 진웨이가 들고 있는 거대한 낫을 살폈다.

[아니, 스퀴테는 신화 속 무구다. 카니발의 규율에 의거한다면 그건 사용할 수 없는 것일 테지. 더욱이 크로노스가 아닌 이상 그걸 쓸 수는 없으니…… 저 껍데기 안에 들어있는 영혼이 그자일 리 없어.]

요르는 진웨이의 낫을 유심히 살폈다.

[……그렇군. 그림 리퍼의 것이로군.]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리퍼(Grim Reaper).

소위 인간들의 역사에서 사신(死神)이라 불리는 이름.

하지만 그것은 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특정한 존재가 아닌, 자리의 명칭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지. 그리고 녀석은 영혼샘에서 사신과 계약을 맺었다.’

요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호수 아래에 잠들어 있던 엘프들은 이제 사신이 되었고, 그들의 왕인 아카샤 타누비엘이 사신의 왕이 되었어.’

그림 리퍼의 자리에 올랐다는 말이었다.

[잔머리를 굴렸군.]

요르는 진웨이의 몸 안에 아카샤의 영혼이 스며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밌군. 진웨이의 몸 안에는 다른 영혼이 들어 있지만 에이라 미쉘은 달라.]

그녀의 몸엔 다른 존재의 영혼이 아닌 그녀의 것이 온전히 들어 있었다.

[하여간 처세가 좋은 인간이라니까.]

그는 몸을 의자에 좀 더 기대며 팔짱을 꼈다.

[하지만 원래의 무기인 지팡이가 아닌 검을 쓰는 걸 봐선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모양이겠지. 과연…… 저 둘을 가지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요르는 중얼거렸다.

* * *

[크에에에엑---!!!]

사신의 낫이 우로보로스의 비늘을 뚫고 녀석의 목에 꽂히자 놈은 물고 있던 꼬리를 뱉어내며 거대한 입을 벌렸다.

▶ 우로보로스가 궤를 펼칩니다.

▶ 반경에 강한 독성 지대가 형성됩니다.

녀석의 비늘이 하나하나 펼쳐지며 그 안에 수백, 수천 개의 작은 구멍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

뒤로 물러서는 남궁과 달리 진웨이와 에이라 미쉘은 독 안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었다.

[시체 안에 들어 있는 두 사람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게 여기까지 들리는군. 차라리 죽어서 다행인 건가? 살아 있었다면 더 끔찍한 고통이었을지도 모르지.]

무명은 미친 듯이 우로보로스의 사지를 찔러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척가(拓家)의 검이라고 했던가. 검 자체는 특이한 점이 없어 보이는 걸 봐서 영혼의 힘이 강한 모양이로구나.]

에이라 미쉘이 쥐고 있는 두 개의 검 중 하나를 바라보며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클, 한때라도 성녀(聖女)라 불리던 자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라니…… 우습지만 묘하게 잘 어울리는군.]

푸욱-!!!

투박한 장검과 함께 에이라 미쉘이 들고 있는 또 하나의 검이 우로보로스의 정수리에 박혔다.

화아아악…… ·!!

그러자 검날에 보랏빛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녀석의 전신을 휘감았다.

[케에에엑---!!]

우로보로스는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아름답군. 한편으로는 아쉬운걸. 지내온 세계가 달라 저런 강자들을 볼 수 없었다니 말이지.]

“글쎄, 저 꼴을 보고도?”

[크륵…….]

에이라 미쉘이 박힌 검을 있는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우드득-

우로보로스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팔뼈가 부러졌다.

쿵…….

보랏빛 오러가 담긴 검은 한눈에 봐도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

시체가 아니었다면 부러진 팔의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게 먼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너덜거리는 팔로 검을 들어 천천히 걸어왔다.

[으음…….]

무명은 비틀거리면서 규염객의 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너부러지는 그녀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쉽다면 내가 상대해 줄 수도 있는데. 어떤가. 나 역시 그대와 살아온 세계가 달라서 검을 겪어보지 못했는데.]

반쯤 갈린 우로보로스의 머리를 낫으로 잘라낸 진웨이, 아니, 아카샤가 무명에게 말했다.

[아니, 사신과 싸우는 건 사절이야. 사신의 냄새를 맡으면 잠자리가 구리거든.]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축복이겠군.]

아카샤는 낫을 거두며 말했다.

[저 여자는 더 이상 무리다. 애초에 맞지 않는 무기를 들고 싸운 거니까. 좀 더 가벼운 것은 없었나?]

“나는 화신을 사냥하러 온 거지 죽은 사람의 편의를 봐주려고 온 게 아니니까. 지금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필요했을 뿐.”

독 안개에 너덜너덜해진 그녀를 보며 남궁은 담담히 말했다.

스르릉-

그러고는 에이라 미쉘이 남긴 두 자루의 검을 전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두 마리인가. 생각보다 순조로운걸. 화신의 시험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말이야.]

“글쎄…… 남은 두 마리 중 내가 사냥해 본 건 한 마리뿐이니까.”

[그 정도면 무난하지. 적어도 한 마리는 확실하게 잡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냐.]

“그렇긴 하지. 다만 내가 전생에서 아포피스를 사냥하는 데 10개월이 걸렸다는 게 문제지만.”

[……10개월?]

“다른 화신들도 비슷하지만 아포피스는 가장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정확히는 불사신에 가깝지.”

[그런 놈을 어떻게 사냥하지?]

“놈의 비늘은 검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딱 한 곳 배 아랫쪽만은 다른 화신들보다 훨씬 약해. 노린다면 그곳을 노려야겠지.”

[배의 아랫쪽이라…… 까다로운 약점이로군.]

[10개월에 걸쳐 간신히 사냥에 성공했던 괴물을 고작 몇 분 만에 끝내야 하다니…….]

라테아는 남궁의 말에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드득-

남궁은 머리가 잘려 나간 우로보로스의 입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쯔즉…… 쩌저저적…….

그가 있는 힘껏 손을 돌려 우로보로스의 이빨을 빼냈다.

[그건 뭐에 쓰려고?]

라테아가 물었다.

“아포피스의 약점이 비늘 아래 뱃가죽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놈의 배를 가를 순 없어. 녀석의 피부를 녹인 다음에 배를 갈라야 해.”

[그 독이 효과가 있겠군.]

남궁은 조심스럽게 송곳니를 집에 넣고서 천천히 절벽의 계단을 올랐다.

“……어?”

그때였다.

계단을 끝까지 모두 올랐을 때 똬리를 틀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포피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놀랍게도 산의 정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은 아포피스의 시체였다.

우적…… 우적…….

지금까지의 화신들의 크기도 대단했지만,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길이의 뱀의 시체 안쪽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

그건 분명 살점을 뜯어먹는 소리였다.

“…….”

그 소리에 남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제외하고 아포피스의 제단에 있을 만한 존재는 한 명뿐이었으니까.

[너로구나.]

그 순간, 거대한 뱀의 시체 위로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화아아악---!!!

놀랍게도 아포피스의 시체를 먹고 있던 건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어린아이였다.

[보고 싶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해서 말이야. 고맙지? 내 덕분에 수고를 덜었으니.]

“……히드라.”

자신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표정과 달리 그를 본 남궁의 얼굴은 구겨졌다.

[뭐? 저 아이가 일곱 뱀의 화신이라고?]

뱀의 형상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이의 모습에, 무명과 라테아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수밖에. 녀석은 화신들 중에 가장 요르를 닮았으니까.”

남궁의 말에 싱긋 웃는 히드라는 아포피스의 시체에 손을 찔러 넣었다.

끄적…… 끄즈즈즉…….

비늘을 뚫고 들어간 아이의 팔이 뱀의 몸 안을 휘젓자 근육과 살점이 찢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선물이다.]

히드라는 아포피스의 내단을 꺼내 남궁에게 던졌다.

[보아하니 혈맥을 개통한 것 같으니 그걸 먹으면 도움이 될 거다. 뱀의 내단은 내력을 강화시키니까. 만약에 날 죽이게 되면 꼭 먹도록 해.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요르도 무시 못 할걸.]

그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콕콕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말했다.

[……정상은 아니군.]

무명은 히죽거리는 히드라의 모습을 보며 기분 나쁜 듯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짓을 했군. 차라리 저 녀석과 함께 싸웠다면 좀 더 승산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로군. 나는 너무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 되서 애를 쓴 건데.]

“…….”

와그작-

남궁은 아포피스의 내단을 씹었다.

내단에서 풍겨져 나오는 쌉쌀한 향기가 입안 가득해지자 그의 혈맥 안으로 뜨거운 기운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그렇다면 실망시키지 말아야겠군.”

스르릉-

남궁은 검을 뽑았다.

검날이 마치 히드라의 피를 원하는 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벌써? 내단을 완벽하게 흡수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텐데.]

“상관없어.”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싸우고 싶지 않…….]

그 순간 남궁이 들고 있던 【계명검】 히드라의 목을 가볍게 베며 뒤로 날아갔다.

[흠,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로군. 준비는 충분한 모양이야.]

녀석은 쇄골을 타고 흐르는 자신의 붉은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로 핥았다.

“닥치고 들어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히드라를 노려보는 남궁의 태도에 무명은 의아함을 느꼈다.

다른 화신들과 달리 유독 그가 놈에게 적의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글쎄요. 일곱 뱀의 화신들 중에 유일하게 저놈을 사냥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거 때문일까요?]

[남궁, 녀석과 뭔가 얽힌 일이 있는 모양인데, 부디 그것으로 인해 평점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어.”

무명은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갈무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일류답다. 전생에 너와 뭔가 얽힌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기쁜걸. 제대로 너와 붙어볼 수 있겠어.]

히드라는 한 발자국 물러서며 아포피스의 몸뚱이에 박아둔 자신의 창을 뽑아 들었다.

[나는 강자와 싸우는 것이 좋아. 기대되는 걸. 자, 어서 네 힘을 보여주거라.]

녀석은 진심으로 기쁜 듯 남궁을 향해 말했다.

“그래?”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나트리엘의 거대한 뿔이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작은 체구에 그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 그대로 처박혔다.

“난 일대일 할 생각 없는데.”

팟-!!

남궁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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