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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화 (209/270)

209화

[……큭?!]

나트리엘의 뿔에 튕겨 나간 히드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남궁을 바라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너는 자존심도 없느냐! 기껏 이 순간을 위해 내가 무대를 만들었는데……!]

“무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왜 네 놀음에 맞춰줘야 하지?”

히드라의 외침에 남궁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껏 많은 문을 막았다는 소리에 기대를 했었는데……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건가.]

그의 반응에 히드라는 이를 바득 갈며 그를 노려봤다.

“강자와 싸우고 싶다면 나 같은 인간 따위가 아니라 위상에게나 덤벼. 상대가 인간이니 승산이 있어 보여 무대니 뭐니 하는 헛소리로 포장하지 말고.”

[뭐?]

“나는 약하디약한 인간이라 너 같은 괴물을 잡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든.”

[그 수단과 방법이 원시성령이라면 썩 믿음직스러운 방법은 아니로군.]

“그거야 해봐야 알지.”

슥- 슥-

당장에라도 돌진할 듯, 나트리엘이 거대한 뿔이 달린 머리를 들이밀며 발굽을 밀었다.

[전생에 너는 화신들과 붙어봤는가?]

“물론이다. 너희들 중 몇 명은 혼자서 죽였지.”

[그럼 나는?]

“…….”

남궁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히드라는 대충 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괜찮겠어? 회귀를 할 정도라면 전생의 너는 분명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10개도 안 되는 문이 열린 정도일 뿐. 그런 수준으로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너 역시 그때보다 약하긴 매한가지 같은데.”

[크클…… 과연?]

부우우우웅---!!!!

그 순간 벼락같이 히드라의 창이 남궁을 향해 날아들었다.

“……컥!!!”

남궁은 본능적으로 검으로 창을 받아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낸 그는 손목이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여전히 욕 나올 정도로 괴물 같은 힘이로군…….”

그는 바닥에 떨어진 히드라의 창을 발로 차면서 저릿저릿한 손목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나야 원래 괴물인걸? 그런데 이걸 막아? 하하…… 너도 못지않은 괴물이로군.]

“닥쳐.”

[싸가지는 없지만 마음에 들어. 좀 더 놀아보자구.]

남궁은 히드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은 일곱 마리의 화신들 중 가장 인간에 가까운, 아니, 위상에 가까운 생명체였다.

위상을 닮았다는 것은 가장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크크크크……!!]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히드라를 보며 남궁은 자세를 잡았다.

‘다른 화신들과 달리 놈은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인간을 사냥했다.’

마치 카니발을 시작한 위상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놈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너는 요르를 죽이고 싶지?]

“……뭐?”

[그렇다면 내가 아주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힘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화신이니까.]

팟-

퍼어어억--!!

“컥!!”

히드라의 주먹이 남궁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 순간 놈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기류가 그를 덮쳤다.

‘……뜨겁다.’

온몸이 타들어갈 거 같은 고통에 남궁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쿨럭!!”

[인간의 몸은 턱없이 약하구나. 갈비뼈가 으스러졌을 거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테니 몸을 가누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겠지.]

“후우…….”

바닥에 쓰러진 남궁을 내려다보며 히드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포피스의 내단이 아깝군. 이 정도 실력으론 내단이 온전히 스며들어도 별 차이 없겠어.]

푸욱-

하지만 그때였다.

히드라의 가슴을 뚫고 낫이 튀어나왔다.

[흠?]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낫이 히드라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사자(死者)들이여. 뱀의 피를 빨아들여라.]

키에에에엑---!!

그 순간,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낫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구름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놈을 감싸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검은 구름들이 히드라의 살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신이라…… 오랜만이로군. 카니발에서도 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자신의 살점이 뜯겨 나감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반갑게 말했다.

[불쌍한 것…… 복수에 눈이 멀어 영원히 고통받는 길을 택했구나.]

퉁-

오히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낫을 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며 중얼거렸다.

파스슥…….

놀랍게도 히드라의 손가락이 닿자 아카샤의 낫이 그대로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

사신의 능력은 카니발의 규율에서 벗어나 있는 인외(人外)의 힘이다.

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상과 같은 힘을 낼 수 있으며, 대리자 일족이 아니면서 대리자 일족과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존재.

그러한 힘의 상징이 바로 사신의 낫이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미숙하군. 단순히 오래전에 죽었다고 해서 사신의 힘이 강한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

아카샤는 대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낫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거다. 엘프의 왕이여. 이 정도론 위상에게 생채기도 낼 수 없을걸.]

[…….]

치이이이익……!!

놈이 팔을 젓자 엉켜붙어 있던 구름들이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흩어졌다.

푸욱-!!!

동시에 아카샤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자 바닥에 떨어졌던 창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며 아카샤의 몸을 꿰뚫었다.

[크, 크윽…….]

가슴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아카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히드라는 날아온 창으로 가볍게 그의 목을 베었다.

허무하게 떨어지는 머리와 함께 부서진 낫이 바닥에 부딪혔다.

[너무 걱정할 필욘 없다. 사신은 죽지 않으니까. 그저 그의 영혼이 담긴 그릇을 파 한 것뿐이니.]

“과연…… 대단하군.”

흩어지는 아카샤의 영혼 뒤로 남궁이 【계명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가가가강--!!!

남궁의 검과 히드라의 창이 맞물리자 경쾌한 소리가 주위를 채웠다.

▶ 검의 악귀들이 냄새를 맡습니다.

▶ 검의 악귀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신 다음엔 악귀라…… 이봐, 너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 거냐. 이런 것들 틈에서 말이야.]

검은 연기가 사라지자 자신에게 들러붙는 악귀들을 보며 놈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잠? 세상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지금 잠을 잘 수 있냐고?”

하지만 오히려 남궁은 그 웃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이를 꽉 깨물며 되물었다.

카앙-!!

악귀들이 히드라의 발목을 움켜잡자 남궁은 검으로 히드라의 머리를 노렸다.

투웅-!!

그 순간, 놀랍게도 놈은 오히려 남궁의 검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 밀었다.

단단한 벽을 두들기는 것처럼 묵직한 느낌과 동시에 그의 검이 튕겨 나갔다.

[회복이 빠른걸.]

양다리를 붙잡고 있는 악귀들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떨어져 나갔고, 놈은 성큼성큼 걸어 남궁에게 다가섰다.

“흐아아압!!!”

무아경(無我經) - 3서(書)

공중에서 방향을 틀며 남궁이 히드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툭-

그의 손바닥이 놈의 가슴에 닿자,

콰아아앙---!

날카로운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

하지만 요란한 소리와 달리 놈은 한 발자국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지만 내력이 한참 부족하구나. 그러게 내가 흡수한 내단을 갈무리하라고 했을 텐데? 쓸데없는 자신감만 차서는…… 일단 혈맥 안에 내단부터 흡수시켜라.]

히드라는 남궁의 팔을 꺾어 자신의 앞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양어깨를 잡아 꼿꼿하게 등을 펴고는 자신의 마력을 그의 혈맥 안에 쑤셔 넣었다.

“무슨 짓이지……?”

[말했잖아. 나는 강자와 싸우는 것이 좋다고. 너는 위상과 싸우라고 했지만, 화신인 우리가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강자가 나타나길 고대했단 말이다.]

남궁은 자신의 혈맥 안으로 히드라의 마력이 빠르게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마력으로 인해 아포피스의 내단도 서서히 녹아내려 그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저리 치워……!!!”

남궁은 거칠게 히드라의 손을 뿌리쳤다.

부러진 갈비뼈가 찌르는 통증보다 마물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를 더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기는 남아 있는 것 같고. 내단도 적당히 녹은 것 같으니…… 한번 볼까?]

빠득-

히드라의 말처럼 혈맥 안에 흐르는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 힘을 보고도 오히려 기대하는 히드라의 모습에 남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지? 나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분명 히드라의 마력이 없었다면 아포피스의 내단을 이렇게 단시간에 흡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단순히 강자와 싸우고 싶어서?’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엔 녀석의 행동은 뭔가 수상쩍었다.

[일곱 뱀의 주인을 따르는 우리 화신들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 그중 아포피스는 우리들 중 가장 짙은 혼령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 내단을 먹게 되면 잠시 동안이지만 사령술의 등급이 올라가지.]

순간, 히드라의 말에 남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 내단이 당신의 사령술을 상승시킵니다.

▶ 사령술(상급) → (최상급)

▶ 사령술의 등급에 따라 현재 능력이 해금됩니다.

▶ 영혼의 눈 → 영혼의 빛

▶ 영혼 흡수 → 영혼 갈취

▶ 영혼 사역 → 영혼 군림

물밀듯이 들려오는 알림들에 남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 사령술의 등급을 내단의 효과로 올릴 시, 제한 시간이 지나면 승급된 사령술뿐만 아니라 내단의 효과도 사라집니다.

▶ 지속 시간 : 5분.

그 순간 남궁의 시야가 완전히 새로이 변했다.

그의 눈동자는 뱀의 것처럼 노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콰아아아아--!!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남궁이 히드라를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아아!!!!”

불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남궁은 포효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캉-! 캉-! 카앙--!!!

남궁의 검이 처음으로 히드라를 몰아 세웠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놈에게 그는 틈을 주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턱-

그러나 몰아세우는 것도 잠시, 놈은 남궁의 검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내가 내단을 먹인 이유가 이런 허접한 칼질이나 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키긱…… 키기긱…….

검이 고통스러운 듯 부르르 떨렸다.

‘일부러…… 맞아준 건가?’

남궁은 천천히 검을 내리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새로이 익힌 능력은 뒀다 뭐 하고 이런 검을 쓰는 거지? 일곱 뱀의 계시자라면 계시자다운 힘을 써라.]

히드라는 말했다.

[나는 그것이 보고 싶다.]

남궁은 놈의 의중이 도무지 이해 가지 않았다.

놈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뱀의 눈동자 속에 꼭꼭 숨겨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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