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내가 강해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너도 어지간한 변태로군.”
[생각의 관점에 따라 이상한 것도 아니지. 나는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를 기다렸으니까.]
“그렇게 원한다면…….”
남궁의 말이 끝나자 히드라는 뒤로 물러섰다.
마치 그에게 새로이 익힌 능력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여유를 부리는 그의 행동이 남궁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보다는 일단 자신의 능력에 집중했다.
‘전생에도 도달하지 못한 힘이야.’
분명 흥분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상급의 힘이라 할지라도 다루기 어렵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영혼의 빛 Lv(없음)》
죽은 자의 영혼을 이해하는 눈을 통달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능력.
▶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영혼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살아 있는 자의 영혼? 그게 무슨 소용이 있지?’
남궁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머지 능력들을 살폈다.
《영혼 갈취 Lv(없음)》
영혼을 흡수할 수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능력.
▶ 우호적인 영혼을 흡수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모든 영혼을 강제적으로 빼앗아 흡수할 수 있다.
▶ 강제적으로 갈취한 영혼은 예외적으로 흡수하지 않고 저장할 수 있다.
▶ 영혼 저장 0/3
《영혼 군림 Lv(없음)》
많은 영혼들을 사역한 자만이 도달 할 수 있는 사령술의 영역.
▶ 영혼 저장에 저장되어 있는 영혼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된다.
▶ 영혼 군림으로 소환된 영혼은 군림화가 해제되면 그 즉시 소멸 된다.
‘영혼 사역은 우호적인 영혼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었는데 그걸 영혼 저장과 영혼 군림으로 해결 할 수 있게 된다는 거로군.’
비록 3명뿐이지만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영혼을 강제적으로 부릴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사실 앞으로 있을 카니발의 문들 중, 강력한 마물은 많아도 우호적인 강자는 보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표정을 보니 마음에 드는가 보군. 하지만 잊지 마라. 지금 네가 가진 힘은 시험을 통과한 뒤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맞아. 그래서 오히려 네게 감사해야겠군.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이 힘을 쓸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과연……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한데?]
히드라는 자신의 창을 고쳐 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 영혼의 빛을 사용하였습니다.
▶ 잠시 동안 상대방의 영혼의 위치를 볼 수 있습니다.
남궁의 눈동자가 빛났다. 놀랍게도 히드라가 들고 있는 창의 끝에 반짝이는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창이 설마 본체였던 건가?’
남궁은 생각지 못한 광경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쩐지…… 사신과 악귀의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군. 그래, 자신만만할 만해.”
[클클, 나를 꿰뚫어본 건가? 좋아, 좋아. 점점 더 재밌어지는군.]
히드라는 그의 말에 즐거운 듯 입맛을 다시며 창을 들어 올렸다.
“…….”
남궁이 뒤를 바라봤다.
그의 모습에 히드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를 앞에 두고 딴청을 부리는 건가? 아니면 설마 내 영혼을 보고 겁이라도 먹었나?]
콰아아앙---!!!
히드라가 창을 뒤로 당기며 탄환처럼 튀어나와 남궁을 향해 날아들었다.
‘빌어먹을…….’
남궁은 히드라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창끝에서 느껴지는 영혼.
화신답게 그 영혼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요르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움직여라. 보는 것으론 이길 수 없다고.]
육안으로는 좇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에 남궁이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히드라의 창은 이미 그의 어깨에 박힌 뒤였다.
“크아아아악!!”
남궁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시시하군. 벌써 너는 한 번 죽은 거다.]
스극-!!!
쓰러진 남궁의 위에 선 히드라는 들고 있던 창을 그었다.
차가운 창날이 그의 목을 할퀴듯 스쳐가자, 붉은 핏물이 몇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왜 피하는 거야? 내 창 안에 내 영혼이 있다는 걸 봤잖아? 이걸 부숴야 나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콰앙-!!
쓰러져 있던 남궁이 발로 히드라를 밀치며 일어섰다.
[흐음.]
뒤로 물러난 히드라는 가볍게 옷을 털고서 창을 휘둘렀다.
창끝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수십 갈래로 흩어지며 남궁의 사각을 노렸다.
캉! 캉!! 카강……!!
인간형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히드라의 창을 경험할수록 놈은 지금까지의 마물들과 뭔가 다름이 느껴졌다.
‘그 차이를 찾아야 한다.’
남궁은 아슬아슬하게 히드라의 창을 피하며 생각했다. 그 다름을 찾아야 녀석을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 약점 포착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상대방이 당신보다 상위의 존재입니다.
빠득-
마지막 줄의 경고에 남궁은 입술을 깨물며 검을 휘둘렀다.
캉-! 카강-!!
검의 악귀들마저 히드라의 위용에 겁을 먹은 것인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클클, 대단하신 그 검도 그저 튼튼한 몽둥이로 전락해 버렸구나.]
“……닥쳐!!”
남궁은 히드라의 창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치 그를 놀리듯 히드라는 그의 검을 여유롭게 피하며 공격했다.
[허리.]
퍼억-!!
[다리.]
우드득-!!!
[이런, 가슴이 비었잖아.]
콰직……!!
히드라의 창이 닿을 때마다 남궁의 몸이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창끝이 마지막으로 남궁의 가슴을 찌르자 남궁은 숨이 막히는 고통과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건가? 사령술의 힘을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였군.]
“……끝났군.”
[포기해 버리는 건가. 한심하군.]
“아니. 너 말고. 저기 남겨 놓은 놈들 말이야.”
[뭐?]
남궁이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 주위에 남아 있는 영혼들을 발견했습니다.
▶ 영혼 갈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의 시야가 확대되는 것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화신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 시체 안에는 아직 소멸되지 않은 칠흑처럼 검은 영혼들이 남아 있었다.
‘히드라의 것과는 또 다르다.’
검은 영혼과 달리 히드라의 것은 영롱한 무색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살의와 다르게 녀석의 영혼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다르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괴팍한 그의 행동이 영혼의 색과도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우로보로스의 영혼을 갈취하였습니다.
▶ 라미아의 영혼을 갈취하였습니다.
▶ 피톤의 영혼을 갈취하였습니다.
솨아아악---!!
그 순간, 언덕 아래에 있던 시체의 영혼들이 빨려들어 가듯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호오?]
그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드는 영혼들을 보며 히드라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강한 놈하고 싸우고 싶댔지? 그럼 너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워.”
▶ 영혼 군림을 사용하였습니다.
▶ 군림한 영혼들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캬아아아아악---!!!]
▶ 피톤의 영혼을 소환합니다.
[…… 흡?!]
바닥에서 소환된 거대한 뱀이 히드라를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자신을 삼키려 드는 피톤의 입에 창을 세로로 세워 끼워 넣은 히드라는 몸을 날려 그의 공격을 피했다.
푸욱-!
영혼이 담긴 창은 몸체가 없어도 상관없는 듯, 피톤의 머리를 뚫고 튀어나와 다시 주인에게 날아왔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창이로군요. 히드라.]
▶ 라미아의 영혼을 소환합니다.
히드라의 손에 닿기 직전 나타난 라미아가 검으로 그의 창을 튕겨 냈다.
서걱-
창을 쥐려던 히드라의 팔이 허무하게 허공을 그었고, 그 순간 남궁의 검이 그의 손목을 잘랐다.
툭-
히드라의 잘린 팔이 바닥에 떨어지고, 남궁은 몸을 돌리며 녀석의 목을 노렸다.
[이거, 덕분에 재밌는 경험을 하는군. 형제들과 싸움이라……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 순간, 히드라는 자신의 잘린 팔을 발로 튕겨 들고는 마치 공을 차듯 남궁의 얼굴에 날렸다.
퍼억-!!
미처 피하지 못한 남궁이 팔을 막느라 주춤한 사이, 히드라는 그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피톤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하하.]
녀석은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처럼 신이 난 얼굴로 피톤의 머리에 난 비늘을 움켜잡았다.
꽈아악…….
그리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양다리로 피톤의 머리를 꽉 조였다.
펑-!!
그 순간, 두 다리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듯 피톤의 영혼이 그대로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흐아아아아!!]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라미아의 검이 그를 노렸다.
[항상 붙어 다니던 네가 혼자 있으니 그 검도 쓸쓸해 보이는구나.]
부웅-!
히드라는 그녀의 검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쓸쓸한 게 아니라 허접한 건가?]
퍼억-!
뒤로 물러서던 히드라의 발끝이 라미아의 목에 꽂혔다.
[컥…….]
그가 다리에 힘을 주자 마치 칼날처럼 라미아의 목이 그대로 잘려 떨어졌다.
취이이이익……!!!
바닥에 내려오자 검은 연기가 녀석을 덮쳤다.
조금 전까지 여유 있던 모습과 달리, 자신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연기에 히드라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졌다.
[안타깝구나, 우로.]
히드라는 연기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뱀을 향해 말했다.
[영원히 2인자도 되지 못할 뱀아. 아무것도 죽이지 못할 나약한 힘이라면 영원히 자신의 꼬리나 물고 있어야지.]
[크르르르르…….]
[너는 언제나 나를 이기고 싶었지. 갖은 수를 써보려고 노력한 것도 알지만…… 기껏 생각한 게 독이라니. 한심하구나.]
그의 도발이 먹힌 걸까.
[캬아아악-!!]
꼬리를 뱉어내고서 우로보로스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빨로 녀석을 공격했다.
[그래, 자고로 뱀이라며 그리해야지. 연금의 정점에 서 있는 너라면 알겠지. 내 영혼을 죽이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말이야.]
히드라는 자신이 아닌 떨어진 창을 향해 달려드는 우로보로스를 보며 말했다.
“멈춰!!!”
그때였다.
남궁의 외침에 창을 삼키려던 우로보로스의 입이 멈춰 섰다.
“부수지 마라.”
창그랑…….
“웃긴 놈이군. 이제 알겠어. 뭐? 강자와 싸우는 걸 원해? 그딴 헛소리나 지껄이다니.”
그는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였군? 창을 부러뜨리는 것.”
남궁은 어째서 다른 화신의 영혼들과 그의 영혼 간에 이질감이 느껴지는지 알 수 있었다.
“화신의 영혼은 모두 칠흑처럼 검다. 그런데 이 창 속에 있는 영혼은 그렇지 않아. 왜? 네가 다른 화신들보다 순수하기 때문에?”
퉁…….
“아니. 이게 네 영혼이 아니기 때문이지.”
남궁이 창을 그의 앞에 던졌다.
“이제 솔직히 말하는 게 어때?”
그는 차갑게 말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이 누구의 것이기에 이딴 허접한 연기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