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문의 보스……? 설마 내 아버지가 인류의 적이라도 된다는 소린가?”
[물론,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블랙 루트를 열 수 있다는 건 이미 마물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니까.]
콰아아앙---!!
그 순간 남궁의 검이 히드라를 노렸다.
“헛소리하지 마.”
[아비가 괴물이라 말해서 화가 난 건가? 그렇게 친한 사이로 보이진 않던데.]
“닥쳐.”
[화를 내는 건 좋지만 상대를 봐가면서 해라. 네가 말했을 텐데. 벌써 잊었나? 지금 네 실력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꽈드드득…….
히드라는 움켜잡은 남궁의 검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깔았다.
[내가 지금껏 너와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네가 가진 사령술이 과연 창의 봉인을 풀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화악-!!!
그가 검을 잡아당기자 남궁의 자세가 무너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야. 이제는 네가 증명할 차례다. 만약 네가 창의 봉인을 풀 정도의 힘이 없다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겠지.]
“……큭!!”
남궁은 있는 힘껏 검을 뽑았다.
[이 창 안에 봉인되어 있는 건 최초로 신을 죽인 자의 영혼이다.]
“신을 죽인 자……?”
[그래. 너는 삼독문에서 태초의 인간의 눈물을 가지고 왔었지?]
“맞다.”
[아마 그를 만났을 거다. 요르가 인간을 만든 신이라는 것도 들었을 테고. 거기에 대한 전승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전설과 신화를 통해 이어져 왔고.]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는 그에 대해서 뭐라 얘기했지?]
“그를 믿지 말라고 했다.”
히드라는 그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자고로 뱀은 믿음의 존재는 아니니까. 인간을 만든 건 그가 맞지만 그 방법은 결코 선한 것이 아니니 말야.]
“요르의 화신인 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화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힘을 이용하되 그를 믿지 마라. 언젠가 결국 너는 그와 싸워야 할 테니까.]
히드라는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남궁에게 건넸다.
[나는 그럴 너를 돕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우우웅…….
그가 들고 있던 창날이 가볍게 떨렸다.
[너는 위상을 죽이고 싶겠지. 하지만 카니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카니발을 통해 지금껏 무수한 역사가 이뤄졌으니까.]
“내가 알기로 태초의 위상 중 하나인 우(无)는 카니발을 없애고 모든 위상들을 소멸시키려고 했다던데?”
[물론, 그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카니발은 역사를 만들지마 수많은 희생을 발판으로 삼으니까.]
“그럼 너는 어느 쪽이지?”
[후회하는 쪽.]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그저 요르의 화신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말은 요르의 마음을 가장 뚜렷하게 가진 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
“네 말은…… 지금 네 행동들이 요르의 뜻과 같다는 말인가?”
[맞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고. 나는 요르의 의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꼭두각시는 아니니까.]
“어려운 말이로군.”
쿠웅-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네게 이걸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신살자(神殺者)의 영혼?”
[너도 잘 알고 있는 자의 영혼이다.]
“……누구지?”
[물어보지만 표정은 이미 눈치챈 듯 보이는군. 군주 레오릭의 영혼이다.]
움찔-
히드라의 말에 남궁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레오릭의 영혼을 어째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질문이 잘못된 것 같군. 군주 레오릭의 영혼이 원래 어디에 있었던 건지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지?”
[전생에 너는 그를 영혼 병사로 만들었지.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 영혼을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이상하단 생각은 해본 적 없나?]
남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너를 찾아왔으니까. 그저 얻어 걸린 행운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떻게? 계시자도 아니고 계약자도 아니었던 전생의 네가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설마…… 전생의 그 모든 게 너희들이 관여했기 때문이란 뜻인가?”
[전생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겠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계획을 실행했으니…… 열에 아홉은 그것이 맞겠지. 레오릭과 너와의 만남은 행운이 아니라 만들어진 우연이다.]
“위상들은 레오릭의 영혼이 이곳에 있었는지도 몰랐을 텐데?”
[다른 위상들은, 이겠지.]
“요르가…… 레오릭의 영혼을 숨겨주고 있었다는 말인가?”
[보는 바와 같이.]
남궁은 찬란하게 빛나는 영혼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레오릭의 영혼인 건가.’
[네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다. 전생의 기억대로 그를 영혼 병사로 만드는 것. 하지만 한 가지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온전한 영혼으로 그를 소환하는 것이다.]
“온전한 영혼?”
[그는 현존하는 카니발의 영웅들 중 최강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생에 그를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지? 최강이라고 칭할 만큼인가?]
“그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네가 사역한 미궁의 괴물과 비슷한 수준이겠지.]
히드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생의 레오릭은 확실히 대단한 무위를 가진 병사였지만 그 당시 카니발의 진행 상황을 고려하면, 영웅급 영혼인 아스도 충분히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네 역량의 부족 때문이다.]
“내 역량……?”
[그 당시에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익힌 사령술이라고 해봐야 초급에 불과했을걸? 안 그러냐.]
“…….”
[그리고 그 초급의 사령술로 레오릭과 같은 영혼을 사역하는 것이 사실 가당키나 하냐는 말이다.]
“네 말은 레오릭이 내 수준에 맞춰줬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틀린 말이 아니지. 그가 네게 힘을 빌려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고 그의 힘이 100이라면 전생의 너는 기껏해야 10도 쓰지 못했을걸.]
화가 났지만 남궁은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자신은 지금처럼 술법들을 최대치까지 익히지 못했었으니까.
[너 스스로의 역량이야 그 때가 더 강했겠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채워질 간극. 하지만 사령술은 다르다. 네가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냐. 화신의 시험이든 문을 통해서든 우리 일곱 뱀을 사냥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으니까.]
그는 남궁의 어꺠를 가볍게 두들겼다.
[우리들을 모두 상대하겠다는 것은 만용이지. 하지만 그 만용이 네가 해야 할 시간들을 분명 앞당긴 것은 맞다. 그 용기를 칭찬하지만 잊지마라.]
푸욱-
“……!!!”
[우리의 의지가 없었다면 너는 이곳에서 죽었을 테니까.]
히드라의 손이 남궁의 복부를 찔렀다.
아찔한 통증과 함께 그가 배를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자 히드라는 들고 있던 창을 반대로 고쳐 잡았다.
[지금의 고통을 기억해라. 그것으로 족하다. 시험은 끝났고 나머지는 네게 맡기마.]
“자, 잠깐…….”
남궁은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했다. 하지만 몸속에 퍼지는 히드라의 독에 그는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요르의 눈으로 너를 지켜보겠다.]
거꾸로 잡은 창날이 히드라의 목을 꿰뚫었다.
솨아아아악---!!
그 순간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그가 있던 풍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서 있던 제단은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덮쳤을 때, 남궁은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창그랑…….
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이 스산하게 들렸다.
* * *
“……!!!”
눈을 떴을 때 맡아진 알싸한 향기에 남궁은 이곳이 어딘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누워 있는 게 좋을 거다. 등 뒤까지 바람 구멍이 난 상태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내려다보는 것은 다름 아닌 요르였다.
[히드라의 공격에도 용케 살아 남았군. 솔직히 놀라운걸. 네가 내 화신들을 모두 죽일 줄이야.]
“무슨 헛소리야. 히드라를 죽인 건…….”
[하지만 내가 내린 퀘스트는 실패로군. 분명 일곱 뱀의 화신들을 수족으로 부리라고 했었을 텐데 말이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하는 요르의 태도에 남궁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용아의 몸에 레비아탄의 피가 흐르니…… 굳이 따지자면 한 마리를 사역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역시 제대로 된 건 아니지. 너는 내가 내린 퀘스트의 보상은 받을 수 없다.]
요르는 손가락으로 남궁을 가리켰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 창을 주마. 화신들이 모두 죽어서 그걸 쓸 자도 없으니 말이야.]
“…….”
남궁의 손에는 히드라의 창이 들려 있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른 위상들은 레오릭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은 여전히 이 창에 그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겠지.’
히드라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태도에 남궁은 그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해. 넌 하나뿐인 계시자를 잃어버릴 뻔했으니까.”
요르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남궁은 일단 자신도 그 연기에 합을 맞춰주겠다 생각했다.
[흥, 누가 그러니 무식하게 화신들을 모두 소환하랬더냐. 가져가기 싫으면 마음대로 해라. 네게 줄 건 그것뿐이니까.]
요르가 창에 손을 뻗자 남궁은 황급히 창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럴 거면서 고집은…… 사령술의 제한은 모두 풀어두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시험을 통과한 건 사실이니까. 기뻐해라. 다른 계시자들은 한없이 뒤에 얻을 힘을 너는 벌써 얻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남궁은 요르의 말에 쉽사리 기뻐할 수 없었다. 마지막 히드라의 죽음은 그가 이뤄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들이 만들어 놓은 안배에 도움을 받은 결과가 되었어.’
꽈악-
창피함일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참을 수 없는 감정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창에 힘을 주었다.
“요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호의는 여기까지만 받겠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대가는 언젠가 꼭 갚으마.”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네가 내게 갚을 것이 있긴 하더냐. 보상이나 가지고 가거라. 아직 카니발을 끝낸 것도 아니잖느냐.]
남궁은 깨달았다.
참을 수 없는 이 감정은 고작 창피함 따위가 아니었다.
“……이제 알겠군.”
자신의 나약함에서 오는 분노였다.
그것만이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진실이었다.
‘나는 시험에 실패했다.’
살아 남은 것도, 사령술을 얻은 것도, 히드라의 창을 가지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요르가 만들어놓은 안배에 불과했으니까.
“두 번은 실패하지 않아.”
그는 거칠게 삼독문을 나섰다.
시험의 마지막 그 고통을 잊지 말라는 히드라의 말을 이제 알 것 같았다.
복부를 찌르는 통증보다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나약함이 그를 더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좋은 눈이 되었군.]
요르는 떠난 그의 빈자리를 보며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