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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214/270)

214화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괴물이 된다고?”

남기철은 남궁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네 녀석이 한 얘기 중에 가장 웃긴 얘기로군. 너는 네 아비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전생에 내가 카니발을 겪고 퀘스트를 통해 회귀한 것도 사실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나 이외에 카니발을 겪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니지.”

“술은 더 가져왔냐.”

남궁은 그에게 술병을 꺼내 건넸다.

“너는 몇 번째 문까지 경험해 봤느냐.”

남기철은 단숨에 술병을 비우고서 남궁에게 물었다.

“스물다섯 번째입니다.”

“회귀가 걸린 퀘스트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고작 스물다섯 번째에 성공하다니. 너도 대단하구나.”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필사적이었을 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였을 거다?”

“나는 너처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아. 네가 겪은 시간의 나는 내가 모르는 나지. 하지만 어느 정도 그곳의 내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말이다.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이니까.”

“무슨 뜻입니까?”

“뭐긴, 죽으려고 한다는 거지.”

꿀꺽- 꿀꺽-

남기철은 자신의 결심을 맨정신으로 아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듯 연신 술을 들이켰다.

“후우…….”

“서른 번째.”

“네?”

“내가 문의 보스로 지목된 건 서른 번째 문이다.”

남궁은 그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이야기였지만 직접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남궁은 뭐라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농담입니까?”

기껏 생각해 낸 대답이 이런 거라니…….

그는 스스로에게 한숨을 내쉬며 남기철의 반응을 살폈다.

“내게 고마워해야 할 거다. 적어도 내가 스스로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른번 째 문이 열릴 때까지 살아 있었을 테니까.”

“절 위해 일부러 죽으셨단 말입니까.”

“모르긴 몰라도? 클클…….”

쓴웃음을 짓는 남기철의 모습에 남궁은 바닥에 있는 술병을 들어 목을 축였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때로는 사명감으로 살인을 행했었고, 때로는 개인적인 감정이 들었던 적도 있었지. 그리고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 최고의 요원이었지 않습니까.”

“최악의 살인자지.”

“…….”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블랙 루트를 열 수 있게 된 이유를 알려줄까? 아니지. 내가 문의 보스로 선택된 이유라고 해야 하나?”

남궁은 그의 앞에 앉았다.

“일전에 내가 그리 말했을 거다. 드루이드, 연금, 점성…… 세상엔 수많은 이능력자들이 존재하지. 나는 그들의 능력을 배웠었다고.”

“그랬죠. 그 덕분에 블랙 루트를 열 수 있게 되었다고 했고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씁쓸한 남기철의 표정에서 어쩐지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 남궁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그들의 능력을 배우게 된 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거든. 그 당시 나는 나의 변화가 두려웠다.”

“변화?”

“귓속에서 울리는 알 수 없는 목소리들 말이야.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내가 문의 마물로 선택받았다는 증거였다.”

“그 말은……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겁니까?”

남기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믿지 않았지. 그럴 수밖에. 사실 나조차도 내게 일어난 일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처음엔 내가 미쳐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부르르르…….

그의 어깨가 떨렸다.

남궁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처음이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카니발이 열리고 세상이 미쳐 날뛰던 순간에도 의연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내 머리를 짓누르는 목소리. 그것은 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그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히려 나를 도와주려던 이능력자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기만 했을 뿐이지.”

“그래서 어찌하셨습니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문의 마물이 되었고,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왜 빨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엇을? 세상이 멸망할 사건이 벌어진다고? 누가 그 말을 믿겠나. 너도 그걸 알기에 정부에 알리기보다 최명훈을 만나러 먼저 간 거잖느냐.”

꽈악-

남궁은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저와 아버지는 다르잖습니까. 제가 들어오기 전부터 711을 이끄셨으니까요.”

“그 결과다. 가장 뛰어난 요원은 곧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자라는 뜻이었으니까. 내가 문의 마물로 뽑힌 이유도 그 때문이다.”

“……헛소리! 살인? 악인을 처단하는 것이 어찌 살인이란 말입니까!”

“빼앗아 간 목숨의 수로 악인이 결정짓는 거라면 나도 만만치 않지.”

“빼앗아 간 목숨? 그렇게 따지면 진짜 살인자들은 정부의 윗선들 아닙니까? 그들이 손가락 하나 까닥거리면 수십, 수백이 죽습니다.”

“위상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지. 명령을 내렸느냐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손을 얼마나 더렵혔느냐…… 라면?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도 결국 내 의지가 들어간 것은 맞으니까.”

“억지네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듯이 신의 생각이 우리와 달라도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지금도 죽을 생각입니까.”

“물론. 서른 번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그때까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까. 나 하나 죽으면 끝날 일이다. 기껏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줄 수 없어.”

남기철은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내가 죽음으로써 너 역시 회귀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더냐. 넌 내게 2번이나 빚을 지는 거다. 클클.”

“그때와 지금은 다르죠.”

탕그랑-

남궁은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았다.

“전생에서 회귀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마족의 퀘스트는 유일한 생존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이 제게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 죽음은 제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 내가 죽으면 문 하나를 아무런 희생 없이 막을 수 있는 건데.”

“그 전에 끝낼 거니까.”

“……뭐?”

남궁은 말했다.

“이 지랄 맞은 축제를 서른 번이나 될 정도로 오래할 생각 없습니다. 아버지의 문이 열리기 전에 카니발을 끝낼 겁니다.”

꿀꺽-

그의 말에 남기철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 죽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마물이 될 기회는 없을 테니까.”

“자신 있느냐.”

“뭐, 해보지 않고야 모르는 일이죠. 신을 상대하는 일이 쉽겠습니까. 하지만 괴물 같은 당신이 도와주면 또 모르죠. 넋 놓고 괴물이 되는 걸 기다릴 바에야 인간으로서 저와 싸우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당신에게 더 어울리니까.”

“신을…… 죽인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남기철은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했다.

운명을 거역하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하는 것이 이런 세상을 만든 신에게 복수하는 일이라 여겼다.

남궁의 말을 듣기 전까지.

“하, 하하…… 정말로 할 생각이냐.”

“못 할 것도 없죠. 그러기 위해서 돌아 온 거니까. 빚은 제가 2번 지는 게 아닙니다. 전생에 진 빚을 이번에 털어내는 거지.”

남궁은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어야 소민이도 볼 것 아닙니까.”

* * *

“조심해! 혹한이 몰려온다!!!”

“전열 위치로!! 속성의를 입은 자들은 수치를 최대라 끌어 올려 나를 따라 온다!!”

솨아아아악---!!!

최명훈의 외침과 함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눈보라가 일대에 휘몰아쳤다.

“제길…… 뼈가 부스러질 것 같은 한기야. 드루이드의 술법으로 내리 눌러도 이 정도라니.”

“그래도 뚫어야 한다. 호준아, 준비해.”

“알겠습니다.”

강호준은 명훈의 명령에 자신의 뒤에 있는 부대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만덕수가 제작한 속성 보호 효과가 있는 보호 장비를 착용한 그들은 네스트 안에서도 두 사람이 특별히 선별한 정예들이었다.

“효주 씨, 참악 부대를 왼쪽으로 보내주십시오. 저기 보이시죠? 저희가 시선을 끄는 동안 효주 씨께서 가이나스의 보주를 부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박효주는 고글을 쓰며 정령력을 끌어 올렸다.

그녀의 주위로 바람이 일자 세차게 몰아치던 눈보라 속에서도 그녀의 주위는 평온했다.

“1조, 2조는 나와 함께 간다. 나머지는 록산느 씨를 도와 눈꽃 여왕이 소환하는 골렘들을 소탕한다.”

“알겠습니다.”

“넵!!”

그녀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참악 부대의 부대원들이 흩어졌다.

“성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요?”

“네. 던전 공략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쉽네요. 여왕이 계속해서 일대를 얼리고 있어요. 그로 인해 신체 능력을 감소시키는 디버프가 지속적으로 중첩되고 있어서 군주화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텐데.”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의지하기보다는 저희들끼리 해결해야 할 겁니다.”

박효주는 명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님께서 그렇게 일렀는데 제가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했네요.”

촤르륵---

그녀는 단검 꾸러미를 펼쳐 염동력으로 단검들을 띄웠다.

“갑니다.”

파앗-!!

박효주가 눈보라를 뚫고 달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뒤를 참악 부대원들이 뒤따랐다.

“어떻게 보십니까.”

“711부대의 전술이로군.”

“네. 아무래도 명훈이랑 호준이가 지휘를 맡고 있으니까요.”

불행 중 다행으로 8번째 문의 보스인 눈꽃 여왕은 남극에 소환되어 다른 보스들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

하지만 남극이라는 기후의 특성 때문에 여왕의 힘이 더욱 배가된 상황.

사냥의 난이도는 오히려 급증한 상태였다.

“정예들이 목표의 눈을 돌리고 약한 후열이 공격을 하면서 목표를 방심하게 만들 뒤, 그 속에 진짜 칼날을 숨겨둔다. 내가 있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남궁은 남기철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 당시가 최고였으니까요. 굳이 수정하지 않아도 작전 수행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도 알 텐데. 저 작전은 후열에 숨어 있는 칼날이 확실해야 한다는 거. 네가 711에 있었던 당시에 칼날의 몫은 아마도 네가 했겠지.”

“맞습니다.”

“저 박효주란 아이도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지만…… 여왕을 마무리 짓기엔 부족해. 만약 칼날이 실패하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되는지도 잘 알지?”

“칼날이 부러지겠죠.”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좋지만…… 잘못하면 박효주가 죽을 수도 있다. 그냥 이대로 보고 있을게냐.”

남극 기지 뒤편 언덕에 서 있는 두 사람은 협회원들의 전투를 보며 그들의 문제점을 살폈다.

“그럼 좀 도와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대신 과거 711 전설이 울었다는 걸 비밀로 해드리죠.”

“클클, 노인네를 놀려봤자 얻는 건 없다. 그리고 걱정 마라. 네가 기다리던 꼬마가 막 던전을 공략한 모양이니까.”

“블랙 루트의 능력에 그런 것도 있습니까?”

“물론, 그건 던전의 문을 여닫는 힘이니까. 던전의 변화도 느낄 수 있지.”

남기철은 여왕의 뒤를 노리는 박효주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은 이미 충분히 훈련을 받은 요원들이다. 내가 만든 구닥다리 전술을 조금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아. 군신화를 쓸 수 있는 꼬마가 온다면 여왕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다.”

“아쉽군요. 아버지께서 합류하면 711 녀석들이 좋아했을 텐데.”

“나 같은 늙은이가 뭐가 도움이 된다고. 더 확실하게 전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남기철은 박효주를 가리켰다.

“확신하지. 앞으로 남은 전투에 있어 승패는 계시자도 계약자도 아닌 그녀가 가르게 될 거다.”

카가가가강---!!!

박효주의 단검들이 눈꽃 속에서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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