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닥쳐라……!!! 감히 네놈이 내 용핵을 탐낸다고?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비겐은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반항을 가볍게 무시하듯 남궁은 검은 비늘 사이를 뚫고 그의 역린을 노렸다.
[큭!!]
비겐은 황급히 검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흠.”
남궁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렵나? 엘더라는 칭호를 가지기엔 아직 생각이 너무 많군. 비겐, 너는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일 뿐이다.”
[웃기지 마……!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네놈 때문에 기회를 포기할 것 같으냐!]
화르륵……!!!
비겐의 주위에 마치 도깨비불처럼 새하얀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화이트 드래곤만이 쓸 수 있는 무화(武火)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수 있는 불꽃이지.]
“모든 것을 태운다라…… 꽤 탐나는 힘인데.”
[그래 봐야 도망칠 궁리만 하는 녀석이 쓴다면 그저 조잡한 불꽃일 뿐이지.]
남궁은 윌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말은 옛말이지. 이 뭣 같은 세상에 빛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화르륵-!!!
무아경(無我經) - 1서(書)
새하얀 무화가 그를 덮치는 순간 그의 검이 깨끗하게 불꽃을 갈랐다.
치이익……!!
조각난 불꽃이 바닥에 떨어지자 새하얀 연기와 함께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며 주위를 집어삼켰다.
[어, 어떻게……?]
비겐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윌무스의 힘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생길 수 없어! 고작 인간 따위가…….]
“안타깝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위상들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인간뿐이지.”
[클클, 꽁지 말고 비룡계 안에 처박혀 있어서 몰랐나 보군. 모든 위상의 축복이 참가자들에게 내려졌다.]
[모…… 모든 위상?]
[8명의 위상의 축복을 한 번에 받는다면 한낱 평범한 인간조차 위대한 전사와 맞먹을 수 있지. 그런데 그 축복을 저 괴물이 받았다면?]
윌무스는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 듯 껄껄거리며 웃었다.
[빌어먹을……!!]
비겐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콰직-!
거대한 그의 발이 비룡족들을 밟았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꼐 발에 밟힌 비룡족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 피해!!”
다가 오는 비겐에 무란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피하지 마라.”
“……뭐?”
그때였다.
도망치려는 무란의 앞을 남궁이 가로막았다.
“네가 진정 비룡족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 자라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똑바로 봐야 할 거다.”
“그게 무슨…….”
“지금 보았듯이 저놈은 팔각 전쟁을 이용해서 엘더 드래곤들을 모두 죽이고 혼자 새로운 삶을 살려 했다. 저놈들은 더 이상 너희들의 편이 아니다.”
[크아아아아아---!!!]
남궁은 허리에 차고 있는 벨트를 움켜 잡았다.
치직……! 치지직……!
그 순간, 그의 벨트에 채워져 있던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 우레왕의 번개가 모두 충전 되었습니다.
▶ 7개의 번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가 벨트의 주머니에서 검을 뽑듯 손을 뻗자 그의 손을 따라 새하얀 전격이 줄지어 튀어나왔다.
크즈즈즈즉---!!
주머니에서 뽑힌 투창처럼 생긴 번개들이 공작의 날개처럼 부채꼴 모양으로 등 뒤로 돋아났다.
슈캉-!!
그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등 뒤에 떠 있던 번개들이 비겐을 향해 날아갔다.
퍼억-!! 콰강-! 콰드드득---!!
7개의 번개들이 투창처럼 정확히 비겐의 머리에 꽂혔고 요란한 폭음과 함께 그의 머리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 올랐다.
[크학……!!]
아찔한 충격에 비겐이 비틀거렸고, 우레왕의 번개가 내리꽂힌 자리에 비늘이 너덜너덜 바닥에 떨어졌다.
[뭣들 하느냐!! 놈을 죽여!!]
비겐은 외쳤지만 비룡족들은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쿠오오오오---!!
그 모습을 본 비겐이 입술을 씰룩이며 고개를 들어 포효를 내질렀다.
[키엑!!]
[크르르륵……!!]
그러자 상공에 있던 드레이크들이 일제히 남궁이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흠.”
남궁은 소나기처럼 내려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비룡들마저 너희가 아닌 엘더 드래곤의 명령을 따르고 있군.”
“……뭐?”
▶ 영혼 지대 Lv 10(최대)가 발동됩니다.
▶ 영혼 강화 Lv 10(최대)가 발동됩니다.
▶ 영혼 지대 안에 있는 모든 영혼 병사들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 지속 시간 15분.
남궁이 손을 튕기자 그의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나타났다.
스아아악……!!
날아드는 드레이크들을 향해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키에에엑……!!!]
병사들과 드레이크들이 서로 뒤엉켰고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이 세계에서 너희들의 위치는 무엇이지? 비룡족의 힘은 비룡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그 비룡들이 누구를 따르고 있느냔 말이다.”
그의 손가락이 비겐을 가리켰고 무란은 그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힘을 사용하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 자신의 힘이라 할 수 있을까.”
“…….”
“엘더 드래곤들이 사라지면 너희들도 힘을 잃게 되는 건가? 너는 그것을 그냥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생각인가.”
“나, 나는…….”
“윌무스를 테이밍했던 것이 정말로 비겐의 명령 때문만이었을까? 나는 무칸이 기회를 노렸던 거라 생각한다. 윌무스의 힘을 이용해서 오히려 드래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말이다.”
꽈악-
남궁은 무란의 손목을 붙잡았다.
“엘더 드래곤은 오늘 모두 죽는다. 너는 그들이 사라진 뒤 비룡계에 남아 있는 용들을 어찌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퍼억-!!
남궁이 자신을 노리며 달려드는 드레이크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투둑…….
드레이크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고 부서진 살점들이 무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겐 두 가지의 길이 있겠지. 날뛰는 비룡들의 먹잇감으로 생을 마감할 것일지, 아니면 진정 자신의 힘으로 놈들을 길들일 것인지.”
툭-
남궁은 무서진 드레이크의 머리를 발로 치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후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의 검을 들어 무란의 앞에 세웠다.
“네가 지금 죽여야 할 상대가 과연 누구일까.”
“…….”
무란은 남궁의 검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싸움의 결과를 어떻게 맺어야 다음 팔각 전쟁을 준비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라.”
푸욱-
남궁이 바닥에 검을 박아 넣고 허리에 찬 전대에서 거대한 도끼를 꺼냈다.
▶ 사냥감에 대한 경험이 충분해졌습니다.
▶ 약점 포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쿠웅-
그의 눈동자가 빛나는 순간, 양손에 움켜쥔 도끼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발라의 도끼가 먹잇감을 찾습니다.
▶ 영혼 병사들에 의해 처리된 마물의 수가 도끼에 적용됩니다.
▶ 도끼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크르르르…….
도끼의 날이 마치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영혼 병사들이 드레이크를 사냥 하면 할수록 도끼날의 색깔이 더욱더 짙어졌다.
▶ 검의 악귀들이 냄새를 맡습니다.
▶ 검의 악귀들이 먹잇감을 갈망합니다.
▶ 검의 악귀들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발라의 도끼】에 핏물이 짙어질수록 바닥에 꽂혀 있던 【계명검】의 악귀들이 요란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너희들 차례는 지금이 아냐.”
남궁은 무란을 슬쩍 바라보고는 도끼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파앗-!!
카그그그그극……!!!
그가 도끼의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서 달려가자 날이 바닥을 긁으며 굉음을 터뜨렸다.
[막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
비겐은 더 이상 남궁이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뭣들 하는 거냐!! 내가 죽으면 너희들도 끝이야!!! 드레이크들에게 잡아먹히고 싶으냐!]
마지막 발악인 듯 비겐은 비룡족들에게 소리치며 물러서려는 그들을 손을 움켜잡았다.
“크헉!!”
“이, 이것 놔!!”
그의 손에 잡힌 비룡족들이 고통스러운 듯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우드득……!
하지만 비겐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버둥거리던 그들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닥쳐라.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는 놈들이……!!]
퍼억-!!
비겐은 마치 공처럼 들고 있던 비룡족들을 남궁을 향해 집어 던졌다.
“봐라. 무란. 저게 너희가 따르던 드래곤의 진짜 모습이다. 저들에게서 과연 너는 비룡족의 미래가 보이는가?”
부우웅-!!
퍼억-!!!
남궁은 날아드는 시체를 뚫고 비겐의 다리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두두둑……!!
비겐의 비늘이 도끼에 사정없이 부서졌다.
도끼가 살점을 파고들었고 비겐의 거대한 몸이 그의 일격에 휘청거렸다.
“전쟁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법. 너희 비룡족 역시 이번 전쟁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비틀거리며 쓰러진 비겐의 배를 밟고 남궁이 천천히 그의 머리 위에 섰다.
“바로, 지금.”
[뭐…… 뭘 하려는 거지?]
자신의 목을 겨눈 남궁을 바라보며 비겐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란, 결정해라. 지금껏 누구도 행하지 않았던 위업을 이룰지, 평범한 결말을 맞이할지.”
드레이크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무란은 남궁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위업이라 한다면…….”
“하나뿐이잖아. 비룡족이 용을 사냥하는 것.”
꿀꺽-
그 순간 무란의 목젖이 떨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팔각 전쟁은 나로 인해 마무리될지언정, 적어도 이 싸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너다.”
[헛소리하지 마……!! 무란, 나는 마지막 남은 엘더 드래곤이다. 내가 없이 비룡들이 너희를 따를 것 같으냐!!]
“네가 있기에 비룡들이 무란을 따르지 않는 것이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종의 다름은 중요하지 않아. 누가 더 강한가가 중요하지.”
[비, 비켜!!!]
비겐은 도망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자신의 목을 짓누른 남궁의 도끼가 마치 천근처럼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놈을 사냥하고 모든 비룡 위에 군림해라.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한 왕이 되는 것이다.”
남궁은 고개를 돌렸다.
“검을 들어라.”
그 순간, 무란은 바닥에 박혀 있는 남궁의 검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