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223/270)

223화

[너……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지금 그 검을 잡는 게 무슨 의미인지 멍청한 네놈도 알 텐데?]

비겐은 【계명검】을 들고서 어정쩡한 자세로 검을 겨누고 있는 무란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나, 나는…….”

[오랜 세월 비룡계를 이끌었던 엘더 드래곤의 말을 무시하고 너희를 침범한 침략자의 말을 따르겠다는 말이냐.]

무란은 비겐의 일갈에 떨리는 눈빛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머저리 같은 놈!!!]

“크아악!!”

콰직-!!

비겐이 손에 힘을 주자 손아귀에 잡혀 있던 비룡족 전사는 그대로 풍선 터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네놈들의 힘은 우리가 이끄는 비룡에서 나오는 것이다. 네놈이 내가 없이도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푸욱-

그때였다.

무란의 검이 비겐의 비늘을 뚫고 박혔다.

“으, 으아아……!!”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무란은 자신이 엘더 드래곤을 공격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인 듯 들고 있던 검을 던지며 뒤로 물러섰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감히 나를 공격해!!!]

크아아아아아아---!!

고막을 찢을 듯한 드래곤의 포효가 일었고, 일대에 있던 사람들은 귀를 부여잡으며 납작 엎드렸다.

“잘했다.”

하지만 모두가 공포에 떠는 그 순간에도 남궁은 아무렇지 않은 듯 꼿꼿이 서서는, 무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죽이고 못 죽이고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네가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스릉-

남궁은 떨어져 있던 검을 잡았다.

“그건 너를 옭아매던 족쇄를 자른 것과 같으니…….”

파앗-!!

그의 몸이 사라졌다.

“나머진 내가 마무리 짓겠다.”

무란은 마치 스치듯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콰아아아앙---!!!

남궁이 서 있던 자리엔 마치 불길이 남은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랐고, 어느새 그는 비겐의 발치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네놈……!!!!]

비겐은 기다렸다는 듯 브레스를 뿜어냈다.

아니, 뿜으려 했다.

하지만 남궁이 던진 도끼가 상처 난 다리에 다시 한 번 적중하자 그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퍼엉……!!

입에 머금고 있던 브레스의 불꽃이 입안에서 폭발하자 비겐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몇 번 더 찍으면 잘라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다리보단 역시 여기가 얇지.”

남궁은 쓰러진 비겐의 배를 밟고 튀어올라 그의 목에 검을 찍어 눌렀다.

[크아아아악!!]

목 아래에 돋아나 있던 역린이 검에 닿은 것인지 비겐은 고통스러운 듯 버둥거렸다.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것 같으냐……!!]

퍼억-!!

[……켁!!]

악을 쓰던 비겐의 머리가 바닥에 박혔다.

윌무스의 꼬리가 그의 안면을 그대로 찍어 눌렀기 때문이었다.

[뒈질 놈이 말이 많다.]

[크, 크흐으윽…….]

얼굴이 움푹 들어단 비겐의 입에서 부러진 이빨들이 튀어나왔다.

콰직-!

윌무스가 녀석의 목을 물어 들어 올리자, 마치 단두대에 매달린 것처럼 비겐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 이것 놔……!!]

당혹감 가득한 비겐이 윌무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이빨이 더욱더 깊게 비늘을 뚫고 박힐 뿐이었다.

저벅- 저벅-

남궁은 천천히 비겐에게 다가갔다.

“원망할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이건 그저 전쟁에 불과하니까. 너는 패배한 것이고 승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뿐이다.”

[닥쳐!!]

“시끄럽다면 도와주마. 저승에선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테니까.”

푸욱-

남궁의 검이 비겐의 역린을 찔렀다.

[크아아아아악!!!]

비겐의 비명 소리가 일대를 가득 채웠고, 엉켜 붙어 있던 비룡들과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주목했다.

“자, 잠깐!!”

비겐의 역린에 박힌 검을 비틀려는 순간 남궁의 뒤에 있던 무란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지?”

“제게 기회를 줄 수 없습니까.”

생각지 못한 말에 남궁은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개 같은 놈……!! 이제 와서 꼬리 말고 저놈의 편에 서는 거냐!! 그러니 네 아비와 네 형이 널 버리고 전쟁에 간 것이지!]

“상관없어.”

무란은 천천히 그의 앞에 섰다.

“아버지와 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미 그들은 없으니까.”

그의 말에 남궁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중요한 건 남겨진 사람들이다. 비룡족이 엘더 드래곤의 비호 아래 탄생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도구로 이용해도 되는 것은 아냐.”

파앗-!!

무란이 남궁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빼앗아 다시 한번 그에게 겨누었다.

“비겐, 당신이 집어 던진 비룡족들의 목숨은 도대체 무엇이지? 너부러진 돌맹이처럼 그렇게나 하찮은가?”

[클클…… 헛소리하지 말고 죽일 테면 죽여봐라. 내가 죽는 순간 남아 있던 비룡들이 네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까.]

“…….”

무란은 그의 경고에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곧 결심한 듯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카앙……!!!

유리가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검을 잡고 있던 무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발아래 떨어진 뭔가를 확인한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겐의 역린이었다.

[크…… 크륵…….]

역린이 부서지자 비겐은 마치 천식 환자처럼 숨을 가쁘게 내뱉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비겐은 무란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궁의 도끼가 그의 목을 깔끔하게 쳐내자 드래곤의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뭐 해?”

“……네?”

“녀석들에게 네 승리를 보여줘야지. 놈의 역린을 보여줘라.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었는지. 위계를 확실하게 세워둬.”

무란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꽈악-

그 순간, 무란은 역린이 아닌 비겐의 잘린 머리에서 뿔과 혀를 잘라냈다.

“아버지께서 사냥감을 처리할 때 항상 내게 맡기셨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용의 머리를 가른 무란은 혀와 뿔을 들고서 소리쳤다.

“비룡들이여, 잘 보아라! 엘더 드래곤은 모두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뿐이다.”

[크르르르…….]

[크르륵…….]

야생의 용들이었지만 엘더 드래곤의 지배를 받았던 것만큼 어느 정도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뭐, 말을 못 알아들어도 본능이 경고하는 것일 테지.’

드레이크를 비롯한 각각의 비룡들은 무란을 경계하면서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이대로 소멸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를 따라라. 오직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래도 수장의 아들은 아들인 모양이로군.’

비겐의 뿔을 들고 서 있는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 무란 님…….”

비룡족의 일원들은 죽은 비겐의 시체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놀랍게도 남아 있던 비룡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정해졌군. 이제 비룡계의 진짜 주인은 너다.”

남궁의 말에 무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왜 확인을 시켜주듯 그 말을 한 것인지 알기에 편히 웃을 수 없었다.

“비룡족의 패배는 엘더 드래곤이 죽은 시점에서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비룡족은 패배를 받아들일 것이며, 두 마리 엘더 드래곤의 죽음으로 수장을 대신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을 어찌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또한 원하신다면 비룡족의 보고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무란은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열쇠를 꺼내어 남궁에게 건넸다.

“사냥감의 해체가 능숙한 것 같던데. 드래곤을 해체해 보는 건 어때?”

“……네?”

“대가는 저 안에 들어 있는 2개의 용핵 중 하나를 주겠다. 네가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야.”

“하, 하지만…….”

생각지 못한 남궁의 제안에 무란은 깜짝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용핵을 흡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비룡들을 제어하기 위해선 그 힘이 필요할 거다.”

“…….”

“수장으로서 도전해야 한다면…… 너는 할 것인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란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었다.

“좋아. 두 개의 용핵 중 원하는 것을 취하고 나머지 시체는 비늘과 뼈, 뿔과 눈알까지 모두 빠짐없이 발라 내게 바쳐라.”

남궁은 그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그것으로 비룡족의 패배를 받아들이겠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척-!!!

무란을 필두로 그곳에 있던 비룡족 전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재밌군. 전쟁을 하러 와서 오히려 군세를 얻다니. 너 같은 자는 처음이다.]

[그럼. 그 정도의 사내니 내가 그를 믿는 것이지.]

[나의 아버지와 함께했던 자다.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포기하는 게 좋아.]

윌무스의 말에 무명과 라테아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팔각 전쟁을 끝낸다 하더라도 위상에게 덤비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다른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들뜬 두 사람과 달리 마왕 나타스는 용핵을 살피는 남궁에게 말했다.

“고민은 천천히 해도 좋아. 일단 내가 할 것은 팔각 전쟁의 승자 보상을 획득하는 것일 테니까.”

[정녕 위상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거냐. 아무리 네가 대단해도 신의 영역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 있습니다.”

남궁은 무란이 건넨 용핵을 받아 들었다.

“라렌의 것이로군.”

그는 무란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잘 선택했다. 사냥꾼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죽인 사냥감을 먹어 치우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감사합니다.”

우우우우우웅…….

남궁의 손에 들린 용핵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윌무스. 걱정 마라. 그런 걸 걱정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는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하는 용핵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건 그저 해야 할 일에 불과하거든.”

[그럼?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무엇이지?]

“굳이 고른다면 8명의 위상들 중에 과연 살려둘 가치가 있는 자가 있는가에 대한 것일 테지.”

윌무스는 남궁의 말에 기가 막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로군.]

“그래.”

▶ 수정 드래곤의 용핵을 흡수하였습니다.

▶ 혈맥술 - 유(柔)의 단계가 상승합니다.

▶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혈맥 가득 차오르는 용의 기운을 음미하듯 남궁은 천천히 숨을 토해 냈다.

“원래 신은 오만하지.”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신이 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