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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225/270)

225화

[여기가 검묘…… 말로만 들었었는데 직접 와보니 무령이 어째서 꼭꼭 숨겼는지 이해가 되는군요.]

연화의 안내로 검묘 안에 들어 온 카를로스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럴 수밖에. 야차는 평생을 바쳐 술법을 익힌 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이곳은 그 정점에 선 역대 수장들의 영기가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니까.]

무명은 자랑스러운 듯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검묘엔 세상 모든 무기를 녹일 수 있는 영핵인 억겁불이 있기에 세상 모든 무구장들이 탐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쿠그그그그…….

연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묘의 정상에 있던 공방의 문이 열렸다.

화르륵……!!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여전히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은 열기가 머물러 있었다.

[엄청나군…….]

카를로스는 관을 따라 흐르는 쇳물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악마족의 수장인 그가 고작 공방 속 열기에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느낀 건 흐르고 있는 쇳물 속에 응축되어 있는 영기였다.

치익……!!

손가락을 쇳물에 집어넣자 순식간에 그의 손가락이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다.

다시 자라나긴 했지만 새살이 돋아난 손가락엔 시커먼 그을음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세상 모든 무기를 녹일 수 있다는 것도 허풍은 아니겠군.]

카를로스는 손가락 마디에 남아 있는 그을음을 핥아 먹으며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무기 안에 영혼을 추출하는 동안 여러분들께서는 이곳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여길 지켜? 무엇으로부터?]

연화의 말에 카를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런 그를 향해 연화는 묘한 미소를 짓고는 공방 안에 있는 거대한 망치를 들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카앙―――!!!

망치가 창을 때리자 맑은 소리가 공방 안에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에에엑――!!!]

[크륵……! 크르르르륵……!!]

[저, 저게 뭐야?]

계단을 타고 밀려오는 검은 무리에 카를로스는 당황한 듯 소리쳤다.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영기가 충만한 곳입니다. 영기가 충만하다는 건 영기를 먹어치우는 자들에게 항상 위협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죠.]

당황하는 그와 달리 연화는 익숙한 듯 말했다.

[특히 억겁불이 열리는 순간은 영기가 가장 충만할 때이니 배고픈 온갖 영귀들이 달려들 겁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을 저들로부터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별 짓을 다 하는군!!]

말을 그렇게 했지만 카를로스의 모습은 이미 악마로 변해 있었다.

[넌 여기 있어라. 레오릭의 영혼을 불러내면 악마술로 그의 영혼에 살점을 붙여줘야 하니.]

그때였다.

무명을 비롯한 야차들이 그를 막아서며 앞으로 나섰다.

[옳은 말씀입니다. 야차계에서 일어난 일은 야차들이 수습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콰앙―――!!

기다렸다는 듯 무명과 무휘, 그리고 규류가 밀려오는 영귀의 파고 속으로 뛰어들었다.

쾅―!! 콰아앙―――!!!

폭음과 함께 영귀의 영혼들이 풍선 터지듯 사방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럼.]

영귀들에 휩싸여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연화는 일말의 걱정도 없는 듯 창을 들고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 참…… 내가 나설 자리는 없는 모양이군.]

[차라리 잘된 것 아닌가? 당신의 힘은 더 중요한 곳에 써야 하니까.]

[뭐, 나야 좋은 일이지만 레오릭의 마지막 유물이 제때 도착할지 그게 의문이지.]

[…….]

화아아아악―――!!

그 순간 공방의 굴뚝에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뭐,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겠군.]

영롱한 푸른 불꽃을 바라보며 카를로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생에 나는 계시자도 아니었으며 그저 최휘수의 실험으로 사령술을 주입받은 실험체에 불과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사령술이라고 해봐야 고작 하급에 불과했지. 그런 내가 최상급 영혼인 레오릭과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 말이 될까?”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역량의 차이가 크다면 잘못했다가는 반대로 술사가 영혼 병사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서 그 상식을 비틀었던 걸까.”

남궁의 말에 두 사람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물끄러미 공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 상식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삼독문을 통해 최상급 사령술을 얻고 난 뒤 스킬에 적용되던 레벨이 모두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레벨은 능력의 척도다. 하지만 그 자체가 없어졌다는 건?”

[단순히 능력의 강함만이 사령술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

라테아는 남궁의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중요한 건 결국 계약을 맺을 상호 간의 유대다. 그 유대는 깊은 인연일수록 짙어지지.”

남궁은 품 안에서 레오릭의 단검을 꺼냈다.

“라테아. 너는 유물을 얻을 따마다 점차 레오릭의 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했어. 그리하여 이 단검이 유품을 쫓는 나침반과 같다 했지.”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이 단검에서 레오릭을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어. 너와 나의 차이가 뭘까?”

[흐음…….]

“그건 너와 달리 내가 그의 유물과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단검의 존재를 아는 너와 달리 전생에서도 나는 이 단검을 사용한 적이 없으니까.”

그는 단검을 라테아에게 건넸다.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레오릭의 영혼이 있는 히드라의 창을 발견했을 때조차도 단검은 내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 인연은 삼독문에서 투구를 얻었을 때 끝난 것일 테지. 그리고 네 유대는 그 단검에서 끝나는 것일 테고.”

[그럼…… 아버지의 마지막 유물은 어떻게 찾겠다는 거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현재 남아 있는 자들 중에 레오릭과 연이 가장 깊은 자는 누구일까.”

[아버지는 아직 봉인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야. 그 말은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대에 그와 연이 닿은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걸 텐데…… 당신과 나 이외에 그런 자가 있을까?]

“있지. 언제부턴가 수다스러운 녀석 하나가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어?”

[……뭐?]

남궁의 물음에 라테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설마…….]

[나를 따르던 666,666마리의 귀족들이 그놈 손에 모두 쓸려 나갔지. 악연도 인연이라면 나만큼 놈과 깊은 관계를 가진 자도 없을걸.]

그때였다.

쉬이이이익……!!

남궁의 앞에 돌풍이 일더니 나타스의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믿을 수가 없군. 아버지의 유물을 찾을 수 있는 자가…… 마왕이라고?]

[나도 내키는 일은 아니었거든?]

[그래서…… 정말로 유물을 찾은 건가?]

[아니.]

[……뭐?]

기대했던 것과 달리 냉랭한 나타스의 대답에 라테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놈과 아무리 연이 깊다 한들 녀석에 대해서 알게 뭐람? 내 일족을 죽인 원수일 뿐인데.]

[그럼…… 뭘 한 거야?]

[놈이 어떻게 내 일족을 죽일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봤던 것뿐이지. 하급 사령술로 소환된 영혼 병사가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쿵―

그때였다.

나타스는 두터운 갑옷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넘버링 8-2

이름 : 발록의 갑옷

등급 : 레전더리(최초)

▶ 악귀왕의 세 마수 중 하나인 발록의 가죽을 뜯어 만든 갑옷.

▶ 강력한 방어력을 가졌지만 생자가 아닌 이상 착용자는 저주에 걸린다.

▶ 모든 물리 공격의 피해를 무효화시킨다.

▶ 모든 마법 공격의 피해를 반감시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지.]

마왕은 남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뭔데? 악귀왕의 갑옷이 내 아버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아마도 전생에 네 애비가 입었던 모양이다. 살아 있는 자는 입을 수 없는 것이니 아마도 영혼 병사가 되었을 때겠지.]

[아버지께서 이걸 입고 계셨다고?]

[그의 유물이 꼭 살아 있을 때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라테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갑옷에 적혀 있는 넘버링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레오릭의 단검과 투구 모두 8번째 번호를 가진 무구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의 말은 믿지 못해도 넘버링은 믿는다는 건가? 신에게 반역을 꾀하던 요란 일족도 카니발의 광대가 다 되었군.]

카를로스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심하십시오!!]

그때였다.

규류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아래에서 밀려오는 영귀의 파도가 순간 넘실거리며 그들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남궁은 영기의 파도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무슨…….]

피어올랐던 시커먼 연기가 조금씩 걷히자 라테아는 자신도 모르게 없던 심장이 뛰는 듯했다.

[조심해라.]

낡고 굵은 목소리가 연기 뒤로 들렸다.

오금이 저릴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실로 왕의 품위를 갖춘 것이었다.

쿠웅―

아직 형체 없이 연기처럼 뿌연 뭔가가 갑옷 안에서 움직였다.

[그대는 중요한 자이니라.]

“보호받을 만큼 약하진 않지만…… 보호할 수 있을 힘을 가진 자는 환영이지.”

남궁은 흐릿한 영혼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카를로스, 그를 위해 육체를 만들 준비를 해라. 위대한 왕의 귀환이다.”

꿀꺽―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갑옷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확인 할 필요도 없었다.

군주 레오릭.

신에게 반역했던 인간의 왕.

악마족의 수장인 그가 한낱 인간에게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지만, 누구보다 레오릭의 강함을 알고 있는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만이군.]

카를로스는 레오릭을 향해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씰룩였다.

[사죄의 의미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내 모든 술법을 동원해서 네게 어울리는 육체를 만들어주마.]

스릉―

레오릭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아직 영체인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가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육체는 급한 게 아니다.]

콰직―!!

[키에에에엑……!!]

그가 손을 뻗어 영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퍼억……!!

영귀의 머리가 단박에 터져 버렸고, 놈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진 검은 연기가 레오릭의 영체를 뒤덮었다.

[검을 다오.]

투명했던 영체의 형태가 연기로 만들어졌다.

꽈악―

남궁이 들고 있던 【계명검】을 그에게 던지자 레오릭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순간 폭풍이 일듯 언덕 아래 가득했던 영귀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영귀 속에서 용을 쓰던 야차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위를 바라봤다.

[나는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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