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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230/270)

230화

“이게 뭐죠?”

모두가 남궁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유리병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물러나 있어.”

▶ 영혼의 빛이 발동됩니다.

그 순간 남궁의 눈동자 색깔이 바뀌었고, 그는 처음과 달리 유리병 안에 반짝이는 가루들을 볼 수 있었다.

▶ 격상의 영혼을 조우하였습니다.

영혼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때와 달리 영혼의 빛으로 승격되자 유리병에서 선명한 루(淚)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오…….”

“정령? 아니, 요정……? 아닌데…….”

작은 유리병 안에서 나타난 아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드루이드인 록산느조차도 그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네가 나를 다시 불러낼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새 이렇게 성장을 하다니. 기특하구나. 그래, 무슨 일이지?]

사람들은 남궁을 오히려 손아래사람처럼 대하는 소년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여기가 어딘지는 너도 잘  알거다.”

남궁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루(淚)에게 물었다.

[이 냄새…… 란(亂)이로군.]

“그래. 여긴 란의 보고가 있는 도시다.”

[그가 네게 이곳을 알려준 건가?]

“위상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보구가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그게 왜 필요하지?]

남궁은 루(淚)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우(无)의 요새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상의 힘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린 위상의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란의 보구가 필요하다.”

남궁은 무너진 폐허의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곳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허락된 사람만이 가능한 모양이야. 우리들 중에 그것이 가능한 자는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우리가 아닌데 란(亂)에게 선택을 받은 자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당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

루(淚)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폐허의 잔해 위로 손을 얹었다.

그러자 우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잔해 아래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오해는 하지 마라. 나는 란(亂)의 계시자는 아니니까. 내가 알기로 그는 계시자를 둔 적이 없어.]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보고의 문을 열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들과 꽤 많은 것이 얽혀 있으니까. 그런데 너는 아무래도 일전에 내가 했던 경고를 잊은 모양이지?]

“…….”

[이 안에 들어 있는 보구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안다. 빌어먹을 란(亂), 그 작자가 네게 위상의 힘을 쓸 수 있는 방법이랍시고 알려준 것이겠지.]

남궁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네 위상은 뭐라고 하던? 분명 경고를 했을 텐데.]

“말이 많군. 문을 열어준 것은 고맙지만 좀 조용히 사라지면 안 될까?”

[흥…… 오히려 여기 있는 네 동료들이 알아야 할 일이다. 너희들도 명심해라. 아무리 저 인간이 너희들의 리더라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짓을 하려고 한다면 막아야 한다는 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오히려 그 반대가 될까 걱정이지.]

남궁은 루(淚)의 마지막 중얼거림에 살짝 입술을 깨물며 열린 보고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잊지 마라. 불사(不死)는 영원한 고통과도 같다.]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 *

“아빠, 조금 전에 그 사람은 뭐야? 요정들이 말하기는 분명 사람이라고 하는데……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어.”

“인간이었던 자니까. 그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

“설마…… 그가 아담이라도 된다는 거야?”

“신화는 제각각이지만 사실 커다란 원류는 같지. 그는 아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존재했던 자야.”

“헐…….”

소민은 남궁의 대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말은 뭐야? 불사(不死)라니…… 아빠가 아무리 대단해도 신은 아닌데 말이야.”

“괜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마도 위상의 힘을 빌리는 것에 대한 경고겠지. 지금 우리가 얻으러 가는 란의 보구를 이용하면 잠시 동안 위상의 힘을 쓸 수 있게 되니까.”

“흐음…….”

그럴싸한 대답이었지만 소민은 썩 와닿지 않은 듯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도착했다.”

그녀의 고민도 잠시, 눈앞에 나타난 제단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저게 천외(天外)의 망토인가.”

망토가 놓여 있는 제단과 그 주위로 채워져 있는 물은 신비로운 광경이긴 했지만, 태초의 위상의 보고치고는 내부는 무척이나 단출했다.

[딱히 결계가 쳐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함정이나 마물의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군.]

[문을 열 수 있는 자격 자체가 확실하니 그 이후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조심하도록 해. 보고의 문을 연 것은 우리가 아니니까. 망토를 가져가는 것에도 제한이 있을 수 있어.]

영체들이 남궁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망토를 집는 순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크흠…….]

자신들의 걱정이 무안한 듯 그들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남궁은 보고 내부에 함정이 없듯, 망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제한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애초에 이걸 쓰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니까.’

촤르륵―!!!

그가 망토를 두르자 바람결에 망토의 끝이 가볍게 흔들리며 그의 양어깨를 감쌌다.

남궁의 목에 걸려 있던 펜던트가 떨리자 망토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우…….”

점점 차오르는 힘에 남궁은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모두 물러나.”

전신의 혈관들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콰아아아앙―――!!!

그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돌풍이 일자, 물러났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충격을 피했다.

▶ 일곱 뱀의 힘이 망토 안에 머뭅니다.

▶ 혈단(血丹)이 확장됩니다.

남궁은 천천히 두 팔로 원을 그렸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강맹한 기운이 그의 팔을 통해 분산되었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유(柔)의 단계는 힘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힘엔 흐름이 있다. 위상의 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변화무쌍하다 하더라도 흐름을 읽을 수 있다면…….’

남궁은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힘을 천천히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잡힐 듯하면서도 쉽사리 잡히지 않으며 요동치는 힘은 과연 위상의 힘이라 할 만했다.

꽈악―

그가 주먹을 쥐자 손목에 고리가 나타났다.

5개의 고리가 그의 주위를 맴돌이 시작했고, 몸 안에 요동치던 힘이 진환을 통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드드득…….

흩어진 힘들을 다시 응축하려 하자 그의 양팔이 파르르 떨렸다.

위상의 힘이 그의 의지에 반발하는 것이었다.

▶ 천외(天外)의 망토가 발동됩니다.

▶ 망토의 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남궁이 두르고 있던 망토가 폭발할 것 같은 일곱 뱀의 힘을 감쌌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때였다.

당연히 망토의 힘으로 일곱 뱀의 힘을 제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남궁은 명령을 거부했다.

[……뭘 할 생각이지?]

[설마 위상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려고 하는 거냐? 욕심을 버려! 자칫 잘못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는다고!]

무명과 라테아가 남궁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쫄지 마. 란(亂)의 말대로라면 망토는 위상의 힘을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말은 곧 위상의 힘보다 상위의 힘이라는 뜻일 터.”

남궁은 부풀었다 줄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위상의 힘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목숨은 지킬 수 있어. 하지만 망토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이걸로 위상의 힘을 제어해서는 안 돼.”

[……어째서?]

“요르가 내게 말했다. 망토를 써서 위상의 힘을 쓰게 된들 위상의 힘이 깃드는 건 내 육체라고.”

루(淚)가 경고하는 것 또한 그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육체를 강화시키지 않고 망토에 힘에 의존한다면 위상의 힘에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위상의 힘을 제어 한다는 거야? 아무리 혈맥술이라 하더라도 제어할 수 있는 흐름은 한정되어 있어.]

무명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너 혼자서 변화무쌍한 위상의 힘을 모두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라고.]

“혼자가 아냐.”

화아아아악……!!

그 순간, 남궁의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었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영혼 병사들에게 혈맥술을 가르치겠다고 했던 것 말이야.”

[설마…….]

“육체의 제약이 없는 그들은 확실히 나보다 더 혈맥술에 적합한 자들이지.]

쿠웅―!!

아스가 거대한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남궁의 등 위로 손을 얹었다.

기다렸다는 듯 남궁이 자리를 잡고 앉자 주술사의 술법이 시전되었다.

남궁의 발아래 만들어진 원형의 술법진 주위로 영혼 병사들이 둘러섰다.

우우우웅…….

놀랍게도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빛의 기류는 정말로 혈맥술이었다.

[정말 저걸 영혼 병사들에게 가르치다니…….]

무명은 날뛰는 위상의 힘이 그들의 힘에 서서히 잡혀가는 것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후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남궁이 천천히 눈을 뜨자 그의 전신은 땀으로 흥건했다.

“아빠!!”

그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던 소민이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소민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딸의 걱정과 달리 남궁은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었다.

▶ 혈단((血丹)의 확장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 혈단(血丹)이 새로이 개화됩니다.

▶ 혈단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 선단(仙丹)의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응,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남궁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 선단(仙丹)의 영향으로 모든 혈맥이 확장되었습니다.

▶ 진환의 개수가 2배로 증가합니다.

▶ 혈맥술 - 진(眞)을 습득하였습니다.

촤르르륵……!!

그 순간, 남궁의 손목에서 튀어나온 둥근 고리들이 부채 모양으로 그의 등 뒤에 펼쳐졌다 사라졌다.

[혈맥술의 다음 단계라…… 놀랍군. 나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을 결국 네가 성취했구나.]

무명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났던 진환을 보며 뿌듯한 듯 말했다.

[란(亂)은 망토를 이용해서 너를 어떻게 해볼 요량이었겠지만 오히려 이 망토가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군.]

남궁은 천천히 자신의 몸에서 갈무리되어 가는 일곱 뱀의 힘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에게 놀아나는 것은 전생으로 족해.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놈들을 이용할 거다.”

화르르륵……!!!

남궁의 손바닥 위로 검은 불꽃이 일었고, 그가 팔을 젓자 그의 앞에 검은 차원문이 나타났다.

우(无)의 요새의 입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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