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자, 잠깐……! 파라곤을 길들이겠다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레오릭은 남궁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차피 사자(死者)인 건 매한가지. 사령술로 제압할 수 있다면 계약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위상의 소환수를 빼앗을 생각을 하다니…… 너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다.]
“일단 해보는 거지.”
우우우우웅…….
파라곤의 얼굴을 움켜잡은 남궁의 손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륵!!!]
파라곤은 검은 연기가 자신을 구속하자 거칠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파즉……! 파즈즈즉……!!
마치 족쇄를 끊는 것처럼 전신을 에워싼 연기를 파라곤은 있는 힘껏 뜯어내기 시작했다.
쿠그그극……!!
갈기갈기 찢겨 나간 연기를 털어 내며 파라곤은 보란 듯이 남궁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 영혼 군림이 실패했습니다.
▶ 목표의 적대심이 증가합니다.
“쉽지 않군.”
남궁은 파라곤과 거리를 벌리며 입맛을 다셨다.
“정말 놈을 길들일 거야?”
알렉이 그에게 다가왔다.
“너도 들었잖아. 파라곤은 우(无)의 소환수다. 태초의 위상을 따르던 영혼 병사라니…… 사령술사로서 탐나지 않을 수가 없지.”
“알겠다.”
남궁의 대답에 알렉은 담담히 말하고는 그대로 파라곤을 향해 달려 들었다.
“미카엘! 날 녀석의 뒤로 넘겨줘!!”
퍼엉―!!
그의 외침에 미카엘이 황급히 순간 이동 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펑! 퍼어엉―!
알렉의 어깨를 잡으며 미카엘이 한 번 더 공간을 도약했다.
“록산느! 녀석의 시선을 돌려!”
쿠그그그그―――!
바위의 정령들이 지면을 뚫고 튀어나와 파라곤의 양쪽 다리를 움켜잡은 채 딱딱하게 굳어졌다.
[……!!]
양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파라곤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버둥거렸다.
콰앙―!!!!
그의 등 뒤로 이동한 알렉이 있는 힘껏 검으로 파라곤을 내리쳤다.
갑옷이 떨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제렌! 성서를!!”
본능적으로 성서를 펼친 제렌이 다급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알렉의 검날에 은은한 우윳빛의 오러가 서렸다.
“흐아압!!”
다시 한 번 그가 검을 젓자 할버드를 쥐고 있던 파라곤의 양팔이 크게 흔들렸다.
슉―! 슈슉―!!
박효주의 단검이 파라곤의 손등을 노렸고, 단검들이 손등에 박히자 파라곤은 할버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후웁―!!”
그 틈을 명훈이 놓치지 않았다.
그가 파라곤의 갑옷 틈새에 검을 밀어 넣고서 그대로 직각으로 방향을 꺾었다.
“부서져라……!!”
콰아앙――!!
후아석으로 된 검이 폭발을 일으키자 파라곤의 갑옷 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 크륵…….]
파라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알렉이 등 뒤에서 성력의 힘이 빛나는 검날을 파라곤의 쇄골에 박아 넣었다.
카그그그극…… ·!!
작두를 내려치듯 검에 매달려 있는 힘껏 아래로 잡아당기자, 파라곤의 갑옷이 조금씩 벌어졌다.
“크하!!!”
알렉이 파라곤의 등을 발로 박차며 검을 가로로 그었고, 도려내듯 그의 팔이 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쿵―!!
갑옷을 두른 팔이 잘려 나가고,
“좋았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쾌재를 질렀다.
“자고로 야수를 길들일 땐 힘을 빼야 하는 법이지. 남궁, 마무리해라.”
알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궁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파라곤의 갑옷을 가르다니…… 아무리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이 있을 만하군.]
레오릭은 알렉의 무위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비록 우(无)가 봉인되어 있어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지만 파라곤의 강함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이곳이 우(无)의 힘이 남아 있긴 하지만 직접 위상에게 힘을 받을 때와는 다를 테니까.”
[조금 겸손해진 건가.]
“원래도 그렇습니다.”
알렉은 레오릭의 놀림에 쓴웃음을 지었다.
▶ 영혼 지대 Lv 10(최대)가 발동 됩니다.
그 순간, 남궁의 발아래에서 퍼져 나간 검은 영역이 파라곤에 도달했다.
“상처 입은 야수는 확실히 머리를 조아리지만, 단순히 그것으론 부족하다. 진정 야수를 길들일 때 필요한 건 스스로 패배를 납득시키는 것이지.”
“너 설마…….”
“내 영역은 사자들을 회복시킬 수 있다. 물론 네가 내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이대로 끝내는 건 너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파라곤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내게 조금 마음을 열어라. 그렇다면 너를 회복시켜 주겠다. 나는 널 억지로 길들이고 싶지 않아. 네가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나와 다시 붙자.”
[크르륵……?]
파라곤은 남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냐고 묻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거 파라곤 핑계를 대곤 있지만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알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고집…… 하여간 죽어도 도움받기 싫어 한다니까.”
“그래도 고집을 피우는 건 형님만은 아닌 모양인데.”
“음?”
명훈의 말에 알렉이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군.”
그의 눈엔 남궁이 내민 손을 잡는 파라곤의 모습이 보였다.
화아아악…… ·!!
영혼 지대의 힘이 파라곤을 감싸자 잘려 나간 팔이 다시 만들어졌다.
“나는 우(无)의 힘이 필요하다. 너를 그 열쇠로 쓸 생각이고. 내 힘을 네가 증명해 주는 거다.”
[크르륵…….]
파라곤은 할버드를 남궁에게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날 인정하게 만드마.”
콰아아아앙――!!
그 순간, 둘이 격돌했다.
* * *
▶ 영혼 군림을 사용하였습니다.
▶ 요새 파수꾼, 파라곤이 당신을 따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요새 안쪽 공간에서 엉망이 된 모습으로 걸어 나온 남궁이 흙먼지는 닦아내며 숨을 토해냈다.
“끝났습니까.”
명훈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 녀석 진짜 대단한데요. 한 번 싸울 때마다 사지가 박살 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28번이나 덤볐습니다.”
남궁의 전투를 지켜본 미카엘이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28번이나 싸운 저 인간이 더 괴물 아냐?”
알렉은 뭔가 개운한 표정을 짓는 남궁을 가리키며 말했다.
[파라곤을 길들일 줄이야…… 우(无)를 만나게 되면 과연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군.]
“꼭 길들였다고 볼 순 없어. 계약을 맺고 나니 파라곤의 생각이 내게 흘러들어 왔다.”
[어떤?]
“그는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모양이더군. 정확히는 이곳이 싫은 게 아니라 우(无)에게 가고 싶어 나를 이용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미 너와 계약을 맺었다. 아무리 우(无)라도 그 계약을 파기 시키긴 어려울 터. 더 이상 그의 소환수가 될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거겠지.”
남궁은 파라곤의 상념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우(无)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달리 보게 되었다.
‘변곡의 중심인 만큼 예측할 수 없는 괴상한 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따르는 자가 있다는 건 그에 걸맞는 위신이 있다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태초의 신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을 너무 가볍게 평가하고 있었는가 싶은 마음도 들어 남궁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형님을 기다리는 동안 저희끼리 주변을 조사하기는 했는데 딱히 보이는 건 없네요.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있긴 할 텐데 말이죠.”
“블랙 루트로도 보이지 않더군. 쉽지 않겠어.”
남궁은 그들의 말에 뭔가를 품에서 꺼냈다.
“그거라면 여깄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반지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이게…… 우(无)의 보물이라고요?”
“도대체 어디서 찾으신 겁니까?”
“파라곤의 갑옷 안에 있더라. 계약을 맺자 녀석이 갑옷 안에 있던 반지를 꺼내 내게 줬다.”
한참 동안 요새 안을 뒤졌던 사람들은 남궁의 말에 맥 빠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강제로 계약을 맺었다면 정말 중요한 걸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녀석의 장단에 맞춰준 게 이런 결과가 될 줄이야.”
“운이 좋았어.”
남궁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반지를 살폈다.
넘버링 없음.
이름 : 우(无)의 변곡반지
등급 : 없음.
▶ 반경 500m 안의 모든 존재들의 속성을 반전시킨다.
▶ 반전된 속성은 착용자의 속성에 대하여 약화된 속성을 가진다.
“흐음…… 생각보다는 별거 없는데?”
다들 기대를 해서일까.
단조로운 아이템의 설명에 조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잘 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남궁이 다시 한번 알렉에게 되물었다.
“……음?”
“이건 태초급 무기가 아닌 건가?”
남기철의 대답에 남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애초에 천외(天外)의 망토처럼 태초급의 무구인 오리진은 아예 설명 자체가 없어. 현실 세계의 물건처럼 말이야. 설명이 나온다는 건 카니발의 규율 아래 있다는 뜻이니까.”
남궁은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말했다.
“아마도 남은 오리진은 우(无)가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
“에이…… 뭐야, 그럼 헛걸음을 한 거야?”
“그렇진 않을 거다. 이 반지를 파라곤의 갑옷 안에 넣어둔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까.”
남궁은 굳이 우(无)가 자신의 보구를 카니발의 규율 안에 규격화시켜서까지 요새 안에 남기려 했는지 그 의도를 생각했다.
그 실마리는 분명 아이템의 효능에 있을 것이었다.
‘일단 대상이 모든 존재라는 건 어쩌면 위상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 말은 우(无) 자신에게도 반지의 효과가 통하게 된다는 것일 텐데.’
속성을 반전시킨다는 것은 본래의 힘이 아닌 반대의 힘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의미기도 했다.
우(无)의 힘의 반대.
그것은 란(亂)의 힘이었다.
‘어째서 녀석이 그 힘을 원하는 걸까.’
남궁은 그의 계획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아직 마지막 조각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신이다.
지금의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가장 오래된 태초의 신 말이다.
‘조심해야 한다.’
레오릭과 함께 카니발을 무너뜨리고 위상들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정말 인간을 위해서인지는 알지 못한다.
남궁은 꼭꼭 숨겨놓은 그 마지막 의도야말로 우(无)가 노리는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철컥―
파라곤이 할버드를 들고 그의 옆에 섰다.
콰아아앙――!!!
그가 무기를 내려치자 지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의 타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구멍 안에는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이 냄새.’
쾌쾌하고 진득한 이 향기는 란의 동굴에서 맡아본 것이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남궁은 구멍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쉽게 이용당하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