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35화 (235/270)

235화

“그 둘이 하나라니……? 완전히 상반된 두 신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우문(愚問)이로군.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둘이 있기 때문에 탄생과 소멸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고. 그 행위가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니까.]

“만약 그 둘이 하나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요르는 남궁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도 모른다. 우리 위상들은 그들이 하나였던 시절을 겪어본 적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들도 모를 수도 있다. 하나였던 시절이 존재 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네 말이 사실이라면 란(亂)과 우(无)가 바라는 것이 단순히 봉인의 해제가 아닌 융합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서로를 원할지 나도 상상이 가지 않아. 한쪽은 카니발을 유지하고자 하고 다른 한쪽은 카니발을 소멸시키려고 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야말로 자신의 속성 그대로군. 한쪽은 지키려고 하고 나머지 한쪽은 파괴하려 한다니.]

무명(無名)은 요르의 말에 낮게 중얼거렸다.

[카니발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자는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라는 말이로군. 어째서 이 지독한 짓거리가 수없이 반복되어 왔는지 알겠어.]

레오릭은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축제가 반복되어 왔다는 것은 아직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서로의 몸을 차지하는 것. 카니발을 유지하려는 란과 종결시키려 하는 우는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몸이 필요한 것일 테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말이로군요.]

[그래. 맞다.]

라테아가 레오릭의 말에 대답했다.

[조심해야겠네요. 표면적으로는 우(无)가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카니발을 없애는 것이 목적의 끝인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진정 란(亂)을 먹어 치우고 난 뒤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레오릭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거의 그의 계시자였지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자 우(无) 역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소민의 변화를 잘 주시해야 할 것 같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물론이야. 수아가 있으니 섣불리 술수를 부리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가장 위대한 위상이니까.”

[그나저나 우리는 카니발을 소멸 시키니 위상을 없애니 하는 소리를 잘도 그의 앞에서 하는구나.]

레오릭이 요르를 힐끔 바라봤다.

[상관없다. 다른 위상들을 죽이든 살리든 난 관심 없으니까. 어차피 이번 카니발의 우승자는 내 계시자가 될 것이고 나는 떠나면 그만이야.]

[진심인가? 정말 그래서 남궁의 행동을 방관한다는 건가.]

[방관이라기보다는…… 재미지.]

요르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웃고는 말했다.

[나는 그를 응원하고 있다. 태초의 위상이든 뭐든 제대로 엿을 먹여주면 좋지. 이왕이면 깡그리 소멸시켜 주면 더 좋고.]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여튼 명심해라. 어찌 되었든 너는 지금 우(无)의 힘을 빌리는 입장이고 그와 엮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고맙군.”

[흥, 쉽게 죽지 말란 뜻이다. 카니발은 여전히 유효하고 이왕이면 위상들을 처리하기 전에 내게 승리를 안겨다 주면 더 좋고.]

솨아아악……!!!

그의 모습이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위상이 사라지고 나자 멍한 표정으로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남궁을 바라봤다.

“두 위상이 하나로 합쳐진다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겠군요.”

“소민 양이 우(无)의 계시자가 되면 그를 거역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거래 조건도 걱정이네요. 일단 그 반지를 주지 않을 순 없으니까요. 그 말은 놈이 자신의 봉인을 풀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최명훈과 박효주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승부를 띄울 땐 언제나 도박을 해야 하는 법이야. 녀석이 술수를 쓰기 전에 인류를 대리자 일족으로 세워 내가 위상의 자리에 오르면 된다.”

“으흠…….”

“그럼 이제 저희는 뭘 해야 할까요?”

박효주의 물음에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을 막아야지.”

* * *

“흑룡의 위치 포착!! 소환된 곳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사이판입니다!!”

“대피 상황은?”

“현재 대도시 위주로 대피소가 만들어진 상태라…… 섬에는 없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집에 숨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론 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모니터가 전환되고 사이판의 해변가인 마이크로 비치에 소환된 거대한 흑룡이 먹잇감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일단 대피는 완료된 모양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해변가이니 브레스의 위험은 적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주사인의 대답에 모니터를 지켜보던 협회의 요원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흑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해변을 휩쓸었다.

“저게…….”

모니터를 보던 협회원들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꺼지지 않는 불길이라니…….”

“아니, 오히려 파도에 불길이 점점 더 번지고 있습니다!!”

“브레스 안에 일종의 기름과 같은 성분이 확인되었습니다. 게다가 물과 만나 오히려 성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속도면…….”

“5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의 바다가 흑룡의 불꽃으로 뒤덮일 겁니다!”

“하여튼…… 이 새끼들, 쉽게 쉽게 가지는 않겠다는 거군. 덴 하울, 마법사 부대는 준비되었습니까?”

주사인은 부하들의 보고에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준비됐네.

“그럼 패스파인더(Pathfiner)들이 합류하는 즉시 사이판으로 가주시죠.”

-그러지.

패스파인더는 만신전의 성전으로 뽑힌 해와 달의 관망자의 성도들이었다.

그들은 알렉 트라만에 비할 순 없지만 파티원의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동 마법진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겠네.

“팀장님, 비월에서 연락입니다.”

“바꿔.”

-가츠마타입니다.

“미안하지만 협회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거든? 이번 사냥감은 우리 쪽에 양보하는 게 어때?”

-에리카 님께서 명하셨습니다. 덴 하울의 마법사 부대로는 역부족일거라고 말입니다.

“성전의 패스파인더들도 함께할 거다. 계산상으로는 충분해.”

-원하신다면 기다려 드릴 수는 있지만 에리카 님의 미래시는 틀리지 않을 겁니다.

주사인은 가츠마타의 연락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미래시보다 나는 내 계산을 믿는다.”

-그럼 저것도 계산에 있으신 겁니까?

“……뭐?”

주사인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봤다.

[크르르르르…….]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흑룡의 으르렁거림보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마물의 앞에 단신으로 서 있는 한 남자였다.

“흠. 이거 때문에 나를 남겨둔 거군?”

퉁―

양팔에 장착된 권갑을 서로 부딪치자, 그의 팔을 타고 각기 다른 5가지 속성의 용들이 2마리씩 나타났다.

무려 10마리의 용들이 그의 주변을 휘감으며 흑룡을 향해 날카롭게 입을 벌렸다.

클락 노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다 위를 태우던 불꽃이 사라졌어.’

주사인은 그의 등장이 남궁이 마련해 놓은 대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오지랖은…….”

“보고드립니다. 현재 각 국가의 능력자 길드와 연합들도 사이판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규모는?”

“500명이 넘는 대규모 연합이 셋, 그리고 100명 이하의 중소 클랜들이 대략 열다섯 정도로 확인 되었습니다.”

“불나방 같은 녀석들.”

위상들의 혜택이 시작되고 나타난 첫 보스 몬스터.

사실 위협보다는 오히려 성장한 힘을 확인하고 싶어 싸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덴 하울에게 전해. 이동 마법이 끝나도 싸우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그리고 나도 직접 사이판으로 가겠다.”

“네?”

“남궁 녀석이 클락 노먼을 미리 그곳에 배치해 뒀다. 이유가 뭐겠어?”

주사인의 물음에 부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함부로 덤비지 말란 뜻이겠지. 힘을 과시하려다 오히려 당할 수 있으니 거리를 두라는 경고야.”

비월과 같이 오히려 대형 클랜들은 설득하기 편하지만, 애매한 크기의 집단들은 협회에서 경고를 하더라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더욱이 지금처럼 위상들의 혜택이 집중된 상황은 더 심각했다.

“니나가와 에리카의 말도 있고…… 욕심을 부릴 필욘 없지.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문을 닫는 거니까.”

주사인이 모니터실의 문을 열자 그곳엔 호준과 경인, 그리고 성우가 있었다.

“이번에 새로이 완성한 고속함을 쓰도록 해. 한달음에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사용법이야 설명 안 해도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세 사람 뒤에 있던 진수혁이 주사인에게 손인사를 하고는 마스터키를 넘기며 말했다.

“얘네들도 데려가라고요?”

키를 받아 든 주사인은 세 사람을 보며 썩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도 참…… 저는 사냥하러 가는 게 아니고 상황을 살피러 가는 겁니다.”

“알지. 그래도 얘기나 들어봐.”

가벼이 움직일 진수혁이 아니란 걸 알기에 주사인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호준을 바라봤다.

“안 봐도 뻔하죠. 네 녀석이 부추 긴 거지? 보스 한 번 잡았다고 또 욕심을 부리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보스 사냥은 또 하라고 해도 안 할 거거든요?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데.”

“그럼?”

“경인이가 소환된 흑룡을 보더니 가야겠다고 저한테 부탁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나서는 애가 아니라는 거.”

“경인이가?”

호준의 말대로 경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주사인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왜 가야겠다고 한 거야? 뭔가 이상한 거라도 찾은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가봐야 알 것 같긴 한데…… 저 흑룡, 평범한 보스가 아닌 것 같아요.”

“무슨 뜻이지?”

“저 안에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거든요.”

“다른 거라니……?”

화르륵…….

그때였다.

처음 란(亂)에게 화살을 쏘았을 때처럼, 경인의 눈동자 안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본질을 꿰뚫는 눈.

린화(燐火)였다.

“흑룡의 몸 안에…….”

경인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른 문이 들어 있어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