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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38화 (238/270)

238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야 한다는 것이겠지.”

주사인의 말에 경인과 에리카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들끼리 괜찮을까요…….”

“만약 흑룡의 배를 가르지 않는다면? 이대로 지옥문이 열리지 않고 녀석의 배 속에 있을 가능성도 있을까?”

“흑룡의 배 안에 있는 문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문이 열릴 겁니다.”

“그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겠지. 덴 하울.”

“말씀하시죠.”

에리카의 악몽에 아직 버둥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덴은 주사인의 호명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미래시에 걸리지 않은 자가 또 있었군요?”

“미래시는 보았습니다. 다만 자력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뿐입니다.”

“대단하네요.”

“마법사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덴의 한마디엔 많은 자부심이 느껴졌다.

남궁이 이번 문의 사태를 자신에게 맡기고 갔음에도, 뒤늦게 합류해야 한 것에 대한 불만이 서려 있는 모양이었다.

“만물의 진리가 담긴 책이여.”

그가 낮게 중얼거리자 그의 손에 두꺼운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결계의 술법을 시작하겠습니다. 【레아의 서(書)】 4번째 페이지에 있는 압축 결계를 이용하면 흑룡의 배가 터져도 문이 열리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킬 수 있을 겁니다.”

주사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결계가 깨진다 한들 누구도 영역 안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남궁 님께서 오실 때까지 문을 막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미래시로 분명 보셨을 텐데요? 수십 개가 넘는 문이 동시에 열릴 거예요. 동시다발적으로 마물들이 쏟아질 텐데 그걸 어떻게…….”

“방해가 되니까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경한 그의 모습에 에리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 님께서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물을 막을 수 있는 건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입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마물을 죽이는 것이 아닌 시간을 버는 것. 전멸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함께 싸우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쎄요. 그 말은 제 귀엔 혼자서 미끼가 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맞습니다.”

우우우우웅…….

덴 하울의 마법서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레아의 서 4번째 페이지가 펼쳐집니다.

▶ 금옥(禁獄)이 시전됩니다.

▶ 술법사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극심한 마력의 소모가 따를 수 있습니다.

촤악―!!

그가 손가락으로 지면을 훑자 바닥에 그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선 밖으로 그 어떤 존재도 나오지 못할 겁니다.”

화르륵―――!!

지면에 그은 선을 따라 푸른 불꽃이 일더니, 마치 오로라처럼 일렁이는 불꽃이 흑룡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흑룡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음소거를 한 것처럼 놈의 비명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일렁이는 불꽃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덴 하울의 뒷모습만이 사람들의 눈에 남을 뿐이었다.

“자, 잠시만요!!!”

“혼자서는 무립니다!!”

“다들 정신 차려!! 덴 님께서…… 대규모 마법을 시전 중이다! 뭣들 하고 있어?!!”

미래시에서 깨어난 몇몇의 마법 부대의 마법사들이 덴 하울의 마법을 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마법사들의 뺨을 후려치며 마법 부대의 참모는 그들을 깨우려 애썼다.

“정신 차리라고!! 덴 님께서 위험하단 말이다!!”

참모는 마법사들의 멱살을 쥔 채 흔들면서 에리카를 바라봤다.

“이거 어떻게 할 수 없습니까?”

“미래시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회복 능력에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되는데…… 한시가 급한데…… 제길, 끝났다고 하잖느냐! 정신 좀 차리란 말이야!!”

“무슨 일인 거죠? 저 마법이 그렇게 위험한 건가요?”

“위험한 정도가 아닙니다. 원래 남궁 님께선 【레아의 서(書)】 3번째 페이지에 있는 마법을 익히시라 명하셨었습니다. 하지만 덴 님께서는 깊은 연구 끝에 4번째 페이지도 열 수 있게 되셨습니다.”

참모는 경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하지만 4번째 페이지에 있는 마법은 모두가 대규모 마법입니다. 아무리 계시자인 덴 님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법이죠. 그걸 지금 혼자서 시전하고 계시니…… 순식간에 마력이 고갈되실 겁니다.”

“덴 하울은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미래시를 보여주신 덕분이겠죠. 경계를 하라는 의미셨겠지만…… 덴 님께서는 달리 생각하셨을 겁니다.”

참모는 창백해진 얼굴로 구축되어 가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구할 수 있는 것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마법사의 재능이 발현된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대부분 연구원이나 학자들입니다. 저 역시 버지니아주에 있는 조지메이슨 대학에 있었습니다.”

참모는 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말을 이어갔다.

“마법은 환상이 아닙니다. 연금술과 더불어 시대가 흐르며 과학을 만들어낸 술법입니다. 그렇기에 마법사들 역시 환상을 좇는 자들이 아닙니다.”

“가장 이성적인 자들이란 뜻이군.”

“맞습니다.”

주사인은 참모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누군가에게 요구하면 강요가 되지만 덴 님은 스스로 택하신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가 한 행동이 대단한 행위라는 건가? 저 답답한 인간이 진짜 짜증 나게 만드네.”

“……네?”

주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참모는 오히려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예상과 다른 주사인의 분노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잘도 우릴 바보로 만들었어.”

그는 신경질적으로 덴 하울이 만든 결계를 발로 차며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작은 컨트롤러를 꺼냈다.

“서버 접속해 줘.”

그가 컨트롤러를 바닥에 내려놓자 수십 개의 홀로그램들이 일제히 나타났다.

“해역에 있는 모든 함선들에게 알린다. 섬 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지금 즉시 대피하도록.”

-롸저.

“상공의 드론들은 덴 하울의 결계를 감시. 이상 징후가 생기는 즉시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주사인 님의 말이 맞네요. 꽤나 꼴사나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안 그런가요?”

에리카는 주사인이 어째서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할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비월의 술사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가츠마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졌다.

“경인아. 너는 나머지 애들을 깨워라.”

“알겠습니다.”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마법 부대의 참모가 조심스럽게 주사인에게 물었다.

“결계가 뚫리기 전에 먼저 우리가 결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

“……네?! 덴 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결계를 시전한 건지 모르시겠습니까?”

“알아. 아니까 짜증 나는 거지. 소수의 희생이 합리적인 거라고? 웃기지 마. 너희 마법사들은 여전히 환상을 좇는 족속들인 게 분명해.”

“그, 그게 무슨…….”

“진짜 이성적이라는 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이딴 짓을 벌이는 거겠지. 어디서 돼먹지 않은 영웅 놀이야?”

툭―

주사인은 신경질적으로 참모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많은 문에서 나오는 마물들을 모두 상대할 순 없습니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때였다.

상공에서 들려오는 헬기 소리에 참모는 고개를 들었다.

-허가 요청 바랍니다.

“투하 시작.”

수십 대의 헬기에 매달려 있는 컨테이너들이 주사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래로 낙하했다.

“당신은 저것들이나 사람들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정리해. 방법은 내가 찾을 거니까.”

“자, 잠깐……!!”

참모는 더 이상 주사인을 막지 못하고 황급히 떨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의 속도를 줄였다.

철컥―!

촤르르륵……!!

속도를 죽여 바닥에 떨어진 컨테이너들이 일제히 지면에 고정되며 그 안에서 기괴한 기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치직……! 치지지지직……!!!

기계 안에는 거대한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보석의 겉면엔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룬?”

참모는 그것이 글자를 새긴 게 아니라 룬을 뭉쳐 놓은 것이란 걸 깨달았다.

-룬 아머의 전력 충전 시작.

-아직 시험 단계니 조심히 사용하게나.

진수혁과 만덕수의 목소리에 주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직……! 치지지직……!!

기계 안에 박혀 있는 수백 개의 룬들이 빛나자, 덴 하울의 결계 주위를 날카로운 전격이 감싸기 시작했다.

* * *

“귀가 간지러운 걸 보니 사인 씨가 내 욕을 엄청나게 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결계 안에 있던 덴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결계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란 말이지.”

저벅― 저벅― 저벅―

[크르르…….]

흑룡은 그를 경계하듯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너도 버거운 모양이로구나. 경인이의 비전신궁이 대단한 활이긴 하지만, 그 공격 한 번으로 문의 보스가 이렇게 약해질 순 없겠지.”

덴은 힘겹게 숨을 토해내는 흑룡을 향해 말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문들이 몸 안을 압박하고 있는 게 틀림없겠지. 결국 시간이 흐르면 불어난 문들이 네 몸을 찢고 튀어나올 거다. 너의 미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가 알 거야.”

덴은 흑룡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어쩌면 너도 카니발의 희생양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겠구나.”

[크륵……!!]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문의 보스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정해진 숙명을 따르는 것이겠지.”

우우우웅…….

“죽음이라는 숙명 말이다.”

촤르륵―

덴은 【레아의 서(書)】를 펼쳤다.

“그야말로 소멸이지. 네 존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 영혼을 지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너의 드래곤 하트를 통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여는 것이다.”

마법서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한 장.

검붉은 룬어가 반짝였지만 마법서의 마지막 장의 모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널 기다리기도 했다. 이건 남 궁씨도 모르는 일일 거야. 그는 내가 3번째 페이지까지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지이이이잉……!!

그가 손바닥을 마지막 페이지에 가져가자 빛나는 룬어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4번째 페이지까지 끝내고 나니 이런 것이 주어지더군.”

그것은 붉은 인장이 찍힌 양피지였다.

▶ 전설급 퀘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법사는 누구보다 이성적인 존재다.”

촤악―!!

그가 양피지를 있는 힘껏 찢었다.

▶ 히든 퀘스트 『종언 마법』이 추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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