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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39화 (239/270)

239화

[종언 마법이라…… 반칙이로군. 어차피 카니발의 결과는 나왔다 이건가?]

요르는 원탁에 앉아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더 이상 로브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는 다름 아닌 사계절의 방랑자, 레아였다.

[절대 마법이라 불리는 종언 마법은 카니발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마법이지. 내가 알기로 그 마법은 계시자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3번째 보구가 열렸을 때나 가능한 걸로 아는데?]

[어차피 지금 모든 계시자들이 이제 2번째 보구를 받았으니 그 다음을 받는다 해도 상관없잖아?]

[상관이 없긴.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3번째 보구는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단 말야. 균형이 맞지 않아.]

[균형? 흑룡의 배 속에 지옥문을 심어 놓은 게 누구지?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균형을 논하는 게 우습지 않나?]

레아는 위상들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두르가는 이번 만신전의 혜택을 받아서 다음 카니발을 노릴 테니 이런 짓을 벌일 리는 없고…… 요르, 당신 역시 우승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니 잔재주를 부릴 필요도 없지.]

해와 달의 관망자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위상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인데…… 흑룡의 배 안에 있는 지옥문이 모두 열리게 되면 3번째 보구가 우스울 정도가 될걸?]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격양되었다.

[다들 잘 생각해. 우리는 카니발을 관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지 인간을 일방적으로 멸망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냐.]

[…….]

[…….]

[우리가 남궁에게 휘둘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되지. 안 그래?]

그녀는 주위를 훑었다.

[흑룡의 몸 안에 문을 심어놓은 게 누구지?]

[나다.]

그때였다.

들려오는 대답에 위상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정작 대답을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당신이…… 어째서?]

대답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일곱 뱀의 주인, 요르였기 때문이다.

[흑룡의 배 안에 있는 문이 모두 열리면 아무리 남궁이라도 살아남는 게 불가능하단 걸 알 텐데? 계시자가 죽으면 당신의 우승도 물거품이 되는 것을…….]

그녀는 요르에게 물었다.

[이번 카니발의 우승이 확실시되어 있는 당신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위상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카니발의 우승을 코앞에 두고 오히려 자신의 계시자를 죽이려 한다?

[이제야 그가 비로소 위상다운 행동을 하는 거지. 레아, 우리는 인간 위에 있어야 할 존재다. 그런데 네 말대로 인간에게 휘둘리고 있다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육방 다리의 연결자가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주위에 떠다니는 여섯 개의 손들이 빠르게 흔들리며 그의 분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그럼. 자네 말이 맞아. 클립트.]

요르는 육방 다리의 연결자를 향해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뛰어난 계시자지. 게다가 재밌기도 해. 녀석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알아? 바로 우리 위상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다.]

[……뭐?]

[그리하여 다시는 카니발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더군.]

[이런 빌어먹을 놈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요르! 너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네 계시자에게 힘을 빌려준 것이더냐!]

요르는 위상들의 비난에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어깨를 으쓱하며 비웃었다.

[뭐가 문제지? 녀석은 누구보다 강해지길 열망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고 지금처럼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않았더냐.]

그는 위상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계시자들 중 누구 하나 내 계시자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카니발의 우승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놈의 궁극적인 목표가 위상의 말살이라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잖아. 흑룡의 배 속에 심어 놓은 문은 무슨 수를 써도 결국 열리게 될 것이다.]

[글쎄.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무슨 뜻이지?]

해와 달의 관망자, 두르가는 요르를 지그시 바라봤다.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네 계시자가 지금 우(无)를 만났고 그의 딸인 남소민이 우(无)의 계시자가 될 것이라는 걸 말이야.]

순간 그의 말에 요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는 그곳에 그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위상의 힘을 빌려주어 그를 보호했지.]

[요란 떨지 마. 우(无)의 괴팍함은 나 못지않다. 녀석을 만난다고 해서 쉽게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오히려 녀석에게 화를 입을 수도 있지.]

[고작 그의 괴팍함에 기대어서 당신이 남궁을 그에게 보냈다? 글쎄…… 썩 믿음이 가는 말은 아닌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남소민이 우(无)의 계시자가 되었고 남궁의 계획대로 인류가 대리자 일족이 된다면…… 카니발 자체가 무산될 수 있어.]

[카니발이 문제가 아니야. 우(无)가 깨어난다? 그건 란(亂)도 풀려 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위상들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둘이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들 위상들조차도 말이야.]

[그것만큼은 절대로 막아야 해!]

[걱정 마라. 흑룡의 배 속에 카니발의 모든 문을 쑤셔 넣어뒀다. 제 아무리 남궁이라 한들 서른 개가 넘는 문에서 쏟아지는 보스를 사냥한다? 어불성설이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 저기 저 멍청한 레아를 봐라. 아무것도 모르고 인간을 도우려 퀘스트를 내려 보냈지 않으냐!]

육방 다리의 연결자는 오히려 이 모임을 소집한 사계절의 방랑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어떻게 카니발을 종결시킬 것인지나 생각해라.]

화르르륵……!!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홀 안은 침묵과 함께 남은 위상들도 하나둘 어둠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넌 왜 안 가지?]

[그냥. 궁금해서 보는 중이다.]

[클립트의 말 못 들었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어서 가라고 하잖아.]

해와 달의 관망자, 두르가는 요르의 말에 피식 웃었다.

[너는 남궁을 없애기 위해 흑룡 안에 남은 문을 모두 쑤셔 넣었다고 했지.]

[그럼. 녀석은 강하다. 그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해.]

두르가는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그렇게 토할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고.]

[원래대로라면 50년 동안 이어져야 할 카니발이지. 그런데 그 카니발이 고작 10년도 안 되어 벌써 마지막 문이 열리게 되었어.]

[그런데?]

[이런 적이 있었나? 역사상 유일한 반역자인 레오릭조차 카니발을 우승하고 난 뒤에 우(无)의 힘을 빌려 일을 저질렀다. 50개의 문을 모두 격파하며 힘을 기르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두르가는 말했다.

[그는 문의 보스를 사냥하면서 힘을 얻었지만 그만큼 잃은 대가도 컸다. 그것이 그가 반역에 실패한 이유고.]

[…….]

[그런데 지금 우린 어떻지? 다수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는 건, 다른 의미로 카니발이 빠르게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벅― 저벅― 저벅―

요르는 천천히 일어나 두르가에게로 걸어갔다.

[만에 하나 남궁이 정말 모든 문의 보스를 사냥한다면? 오히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을 얻게 되겠지. 이건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툭―

그는 두르가의 어깨를 가볍게 움켜잡았다.

[너는 남궁을 막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거라고 하지만, 내 눈엔 오히려 그를 강하게 만들려는 속셈으로 보이는 건…… 착각일까?]

[너답지 않게 생각이 너무 많군.]

요르는 움켜잡았던 두르가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홀을 떠나며 대답했다.

[그래, 네 착각이야.]

* * *

[키에에에에에―――!!!]

흑룡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의 육체가 생성되는 문을 견딜 수 없어 보였다.

쩌적…… 쩌저저적……!!!!

배를 찢고 튀어 나온 검은 연기가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후우…….”

덴 하울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하는 문을 바라보며 낮게 숨을 골랐다.

쿵…… 쿵…… 쿠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는 자신의 손등에 박힌 2개의 보석을 바라봤다.

그것은 반으로 쪼갠 흑룡의 드래곤 하트였다.

우우우우웅―

그가 마력을 끌어 올리자 손등에 박힌 검은 보석 위로 새하얀 룬 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언 마법(終焉魔法).

그것은 카니발의 모든 마법사들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위대한 마법이었다.

사계절의 방랑자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은총답게, 마법의 힘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 마력이 부족합니다.

▶ 마법의 위력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흑룡의 드래곤 하트를 몸에 이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덴 하울이 마법을 시전하려 하자 경고가 들렸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드래곤 하트 안에 들어 있는 마력은 처음 느껴볼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언 마법을 시전하기엔 부족했다.

꿀꺽― 꿀꺽―

그는 마력 포션을 입에 밀어 넣으며 계속해서 마법을 이끌어 갔다.

그의 발아래 5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각각의 속성을 머금은 마법진들이 하나로 합쳐지자 다시 검은색과 흰색의 마법진이 갈리었다.

지이이잉……!!

두 개의 마법진이 공명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있던 덴의 로브가 거세게 펄럭였다.

쿵―

드래곤 하트를 뽑아냈음에도 지독한 생명력으로 비명을 지르던 흑룡의 몸이 끝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덴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너희는 절대로 우리의 세계에 나올 수 없다.”

그 순간, 두 개의 마법진이 하나로 합쳐지며 검은 벼락과 흰 벼락이 동시에 상공에 뜬 눈동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쾅―!! 콰가가강―――!!!

“……덴 님의 마법인가?”

결계를 뚫으려 애쓰던 마법 부대의 마법사들은 갑자기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에 마법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수십 다발의 번개가 결계 위로 떨어졌다.

“저건 뭐지……?”

“덴 님께서 저런 마법을 쓸 수 있었나?”

마법사들은 처음 보는 마법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마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설마 이대로 덴 님께서 문을 막으시는 것이 아닐까?”

마법사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흑백의 낙뢰는 그칠 줄 모르고 소환된 문을 공격했다.

“제발…….”

“신이시여…….”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사들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쏟아지던 낙뢰가 끝나자 결계에 서서히 금이 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츠으으으으으…….

시커먼 연기가 깨진 결계의 틈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곳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는 누군가.

“……덴 님?”

선두에 서 있던 마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걱―

그 순간 마법사의 목이 떨어졌다.

“……!!”

[키에에에에에에에―――!!]

요란한 포효 소리가 결계 안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쏟아지는 마물의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마법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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