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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43화 (243/270)

243화

[무아경을 쓰기엔 너무 쓸데없이 거대한 검이로구나. 그야말로 악귀 그 자체를 보는 것 같다.]

무명은 남궁의 손에 들린 거대한 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검묘에 가서 조금 다듬는 게 좋겠군.]

“일단 가보겠지만 아마도 손을 볼 게 없다고 말할 것 같군.”

[그래?]

무명과 달리 검을 직접 잡고 있는 남궁은 검에서 흘러나오는 미친 듯한 광기가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문의 보스가 되었지만 악귀왕은 대리자 일족인 야차 일족과 오랜 세월을 싸워 오면서도 승부를 내지 못할 만큼 강한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내게 죽었다. 적어도 그 분노만큼은 높이 살 만하지.”

[흥, 쓸데없는 고집이겠지.]

“그래도 시원섭섭하지 않아? 오랫동안 찾았던 적이 이렇게 죽으니 말이야.”

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끊어내야 할 끈이라면 확실하게 끊어내는 것이 더 좋다. 카니발이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악귀가 존재하는 한 야차들의 전쟁은 계속되어야 할 테니까.]

무명이 남궁을 바라봤다.

[네게 고맙다.]

“새삼스럽게. 덕분에 나 역시 원하는 검을 완성시킬 수 있었으니까.”

“쿨럭…….”

남궁은 내려놓았던 덴 하울을 향해 걸어갔다.

“덴, 나는 너의 책임감을 믿기에 이 일을 맡겼던 건데…… 아무래도 그 무게가 과했던 모양이로군.”

“죄송합니다.”

“무엇이 죄송하지?”

“결계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결국 문의 보스들을 사방으로 풀고 말았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덴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잘못은 그게 아닌데.”

“…….”

그가 고개를 더 숙이자 오히려 남궁은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혼자 죽으려 했다는 것. 나는 당신이 명예욕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내 생각이 틀렸었나 봐.”

“그게 무슨…….”

“역사에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었나? 혼자 멋들어지게 죽으면 후대가 칭송해 줄 것이라 생각했어?”

“그, 그럴 리가요!”

“그럼 왜 쓸데없는 짓을 했지? 네가 나야?”

“……네?”

“나 정도 되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잘나서 혼자 결계를 치려고 했던 거야? 결국 너를 구하려다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들을 봐라.”

“……죄송합니다. 저는…….”

“희생은 죽는 것이 아니야. 남을 위해 더 열심히 싸우는 것이지. 그러니 당장 에리카를 데리고 결계 밖으로 나가 싸워.”

남궁은 허리에 찬 전대에서 야차 일족의 비술이 담긴 포션을 그의 입에 밀어 넣었다.

“웁……?!”

날뛰던 마력이 갈무리되자 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비싼 거다. 먹은 값은 해야 할 거야. 이걸 주는 이유는 내 생각보다 마법의 성취가 뛰어났기 때문이야.”

남궁은 그가 떨어뜨린 【레아의 서(書)】를 건네며 말했다.

“흑룡과 계약을 맺은 모양이던데. 이름값은 해야지. 밖의 마물들 절반은 처리하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덴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귀왕은 죽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결계밖엔 무수히 많은 마물들이 있다. 놈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함께 가신 분들은……?”

“아마 이미 밖에서 합류해서 싸우고 있을 거야. 소민이가 문을 열 수 있게 되었거든.”

“그 말은…… 소민 양도 전장에 있다는 말인가요?”

함께 있던 에리카가 남궁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괜찮을까요? 밖에는 30번대가 넘는 문의 보스들까지 있어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딸을 누구보다 아끼는 남궁을 알기에 에리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민이가 걱정되냐고?”

하지만 그녀의 말에 남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콰아아아아앙―――!!!!!

콰가강――!!

검붉은 벼락이 전장에 쏟아지자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알던 소민이가 맞아?”

“원래도 재능이 있는 걸 알았지만…….”

전장 한복판에 서 있던 경인과 성우는 전투를 멈추고 몰아치는 벼락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크르…… 크르르…….]

그리고 그건 마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신을 마주한 것처럼, 달려들 던 마물들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저건 선을 넘었잖아?”

콰아아아아앙―――!!!

성우의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지는 낙뢰가 수십 마리의 마물들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후아.”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온 소민이 숨을 토해내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빠들!!”

“어? 어어…….”

성우와 경인은 그녀를 보며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전장의 공기가 단 한 명으로 인해 순식간에 바뀌었다.

“너…… 괜찮아?”

“응? 왜?”

“아니…… 뭐…….”

성우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경인을 바라봤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아서 그래. 마법도 변한 것 같은데……?”

“응. 계시자가 되었거든.”

“……계시자?”

소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두 사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얘기하면 길어. 지금은 마물들부터 정리할 때야. 룬 아머 덕분에 문의 보스들 대부분이 이곳에 발이 묶여 있긴 하지만, 빠져나간 놈들도 있고 녀석들이 소환되어 있는 동안 세계 각지에 마물들이 불어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의 뒤로 나타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는 박효주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명훈 씨와 함께 움직이도록 해. 지금부터 그가 지휘를 맡을 거야.”

“명훈 형이요? 남궁 아저씨가 아니고요?”

“응. 그 사람은 할 일이 따로 있으니까.”

“저희는 지금껏 아저씨를 기다렸는데요? 저 많은 마물들을 아저씨 없이 무슨 수로…….”

“소민이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아직 나와?”

“아니, 그래도…….”

경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강해진 건 소민이만이 아냐.”

촤르륵―

박효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주위로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흐릿하게 보였던 바람의 정령들은 모습이 선명할 뿐 아니라 어쩐지 지금까지와는 달라 보였다.

“위상의 보고에서 얻은 물건이야.”

그녀는 흑요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보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 칼날 바람 정령들이 무기에 깃듭니다.

▶ 무기의 정확도와 예리함이 상승합니다.

흑요석이 잠시 반짝거리자 정령들을 감싸고 있는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그 정령들이 흩어지며 성우와 경인의 무구에 깃들었다.

카릉……! 카르르릉……!!

경인이 들고 있던 【비전신궁】의 시위가 마치 맹수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느껴보는 활의 포효에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끝이 아니야.”

▶ 인간족이 『대리자 일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인간족의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카니발의 규율에 따라 대리자 일족은 마물의 공격을 받지 않게 됩니다.

▶ 현재 적대적인 존재를 제외한 모든 마물의 공습에서 인간족이 배제됩니다.

“자, 잠시만요……? 인간족이 설마 인류를 말하는 건가요? 저희가 대리자 일족이 되었다고요?”

울려 퍼지는 알림에 경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맞아.”

▶ 인간족에게 대리자 일족의 혜택이 주어집니다.

▶ 인간족만이 열 수 있는 특수 상점 【복주머니】가 생성됩니다.

▶【복주머니】의 물건이 갱신됩니다. 물건의 등급은 현재 열린 문의 난이도에 따라 조정됩니다.

▶ 문의 난이도에 따라 낮은 등급에서 사용되는 물건의 가격이 하향 조정됩니다.

▶ 인간족이 직접 【복주머니】에서 물건을 구매 시 50%의 할인을 받습니다.

▶【복주머니】의 물건이 갱신됩니다. 물건의 등급은 현재 열린 문의 난이도에 따라 조정됩니다.

▶ 열린 문의 등급을 확인 중입니다.

10…… 15…… 20…… 31…….

주르륵 올라가는 숫자와 동시에, 상점의 물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 미쳤네…… 에픽 무구가 이 가격이라고?”

성우는 지금껏 상점에서 봤던 레어 등급의 무구보다도 더 싼 가격의 에픽 무구들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 가격이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도 레어 무구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30개가 넘는 문의 모스를 상대해야 하는 시점에서 레어 무구는 대단한 게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장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보스와 함께 소환된 엄청난 마물들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사실 도시와 시민을 지킬 전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리자 일족의 혜택으로 인해 수억이 넘는 방위 병력들의 무구가 일제히 강화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이 섬에 있는 보스들을 소탕하는 데 집중하면 돼.”

“이거…… 이제 좀 할 만해지겠는데요?”

성우는 이미 【복주머니】 속 무구들을 모두 확인한 모양인지 즐거운 듯 웃었다.

“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던전 공략 경험이 있는 자들이죠. 지금까지 모은 헤드의 양도 상당 할 테니 순식간에 전력이 오르겠네요.”

“게다가 알림이 사실이라면 인류가 대리자 일족이 되었으니 지금 소환된 마물들을 모두 몰아내면 더 이상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맞아.”

박효주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들 앞에 소환된 마물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많지만…… 저것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지지.”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지옥이……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이로군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이제 가장 희망적인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래. 마지막 전쟁이야.”

그들은 마물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인간들이 대리자 일족이 될 수 있는 거냐고!!]

[남궁을 죽이겠다고 문을 푼 거잖아!! 그런데…… 놈이 지금 악귀왕을 잡고 더 강해졌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떻게냐니. 답은 하나잖아. 우(无)가 인간과 손을 잡은 것이겠지. 빌어먹을…… 정말로 남궁의 딸이 그의 계시자가 되다니.]

회랑 안이 소란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요르. 남궁이 대리자 일족의 대표가 되어 팔각전쟁의 승자 권한을 행세한다면…… 놈은 위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알고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해 문의 보스들을 동시에 푼 거잖아.]

[그게 오히려 놈들의 상점에 더 많은 무구를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만들었잖아!!]

쏘아붙이는 위상들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요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거였다. 그리고 쫄지 마라. 설령 남궁이 위상의 반열에 오른다고 해서 뭐가 문제지? 오히려 우리에게 잘된 일일 수도 있어.]

[뭐……?]

[녀석은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하지. 그래서 위상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녀석이 지금까지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손을 쓰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요르가 혀로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러니 녀석이 위상의 자리에 오르면 오히려 우리가 직접 벌을 줄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단 말이지.]

그는 위상들을 향해 말했다.

[어때? 누가 먼저 나서겠어?]

끼이이익―

그 순간 회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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