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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44화 (244/270)

244화

순간 회랑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저 녀석과 뭘 해? 요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육방 다리의 연결자가 거친 목소리로 요르를 향해 소리쳤다.

[내 설명을 뭐로 들은 거지? 이건 절대로 화를 낼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거라고, 클립트.]

[기회? 애초에 네 녀석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잖아!!]

그의 질책에 요르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내가? 누구도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 예상한 자가 있나? 웨이나, 미래를 보는 당신조차도 몰랐을걸?]

[…….]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요르에 안갯속의 길잡이는 대답 대신 침묵하듯 눈을 감았다.

[요르, 그럼 당신 말은 그에게 위상의 자리를 주자는 것인가?]

[그래. 인간들이 대리자 일족이 되었다. 모두 알다시피 대리자 일족은 우(无)가 만들었지. 그 말은 그가 봉인에서 풀려났다는 의미기도 해.]

우(无)의 이름이 거론되자 위상들의 소란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더더욱 녀석에게 위상의 자리를 주면 안 되지. 우리가 그에게 느끼는 분노야 그렇다 쳐도…….]

미풍의 어머니가 남궁을 바라봤다.

[당신이 원하는 건 신이 되는 것이 아니잖아? 딸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돌아온 것 아냐?]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간이 대리자 일족이 되었으니 이번 마물들만 끝낸다면 카니발은 어쩔 수 없이 종결되겠지. 그럼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그것으로…… 만족할 순 없나?]

[빌어먹을……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마치 인간에게 봐달라고 구걸하는 것 같군.]

육방 다리의 연결자는 미풍의 어머니의 말에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뭐, 난 찬성이야. 솔직히 저 인간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카니발을 시작하는 게 마음 편하지.]

화롯불을 다루는 자 역시 미풍의 어머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에게 호되게 당했던 둘이었기에 그들의 분노는 위상들 중 최고였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분노가 사라지고 오히려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글쎄. 내가 위상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팔각 전쟁의 합당한 보상을 받는 일이다. 우(无)가 인간을 대리자 일족으로 명했고, 나는 그 일족의 대표가 되었으니까.”

남궁의 대답의 위상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보상을 받기 위해 왔다.”

[건방진 새끼…… 끝끝내 우리들과 싸우겠다는 말이로군? 좋아. 마음대로 해봐라. 네놈이 위상의 자리에 오르면 가장 먼저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니까!!]

육방 다리의 연결자는 남궁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꼭…… 그리하길 원하십니까.]

안갯속의 길잡이가 남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당신의 눈에 미래가 보였나 보군. 그렇다면 더더욱 위상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하셨지 않습니까. 욕심을 조금 버리면 평범하지만 훨씬 더 행복한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이제 와서 평범해질 수 있을까?”

[…….]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팔각 전쟁의 보상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정당 한 것.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저 역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할 수밖에요.]

회랑을 떠나기 전 그녀는 요르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녀의 말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요르는 손을 저었다.

[자, 어찌 되었든 간에 위상전의 대상은 결정이 되었군. 나는 지금부터 새로운 위상의 탄생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하지.]

퉁― 퉁― 퉁―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치 불을 끈 것처럼 위상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요르, 역시 내 예상대로 흑룡의 배 속에 문을 집어넣은 이유가 인간을 위한 것이었군.]

사라진 다른 위상들과 달리, 해와 달의 관망자만이 회랑에 남아 요르에게 말했다.

[대리자 일족의 보따리 속 물건은 문이 열린 횟수만큼 등급이 올라가지. 흑룡에 배 속에 밀어 넣은 문들 덕분에 그들은 대리자 일족이 되자마자 엄청난 등급의 무구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어.]

[넌 안 가냐.]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순식간에 역전되었어. 쏟아지는 마물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헤드를 모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버렸지. 인간들을 순식간에 강해졌고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마물들 덕분에 계속해서 강해지겠지.]

[말이 많은 녀석이야.]

[서로 말을 맞추었다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으니…… 흑룡의 몸 안에 문을 넣은 건 그도 모르게 네가 한 짓인 거지. 말로는 그럴싸하게 인간들을 전멸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요르는 해와 달의 관망자, 두르가가 귀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파며 되물었다.

[아직도 포기를 하지 못했구나. 요르.]

[……뭐?]

[인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 말이다.]

순간 요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인간을 탄생시킨 신이여. 아직도 선악의 과일을 먹인 것을 후회하는 거냐. 그건 네가 아냐. 그저 이어져 내려오는 과거의 기억 중 하나에 불과하다.]

두르가는 남궁을 바라봤다.

[위상의 자리는 변하지 않지만 위상의 존재는 계속해서 변해 왔다. 우리는 불멸이 아니라 정신을 계승해 온 존재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라면 어서 사라져라. 너도 위상전에 참가할 것 아냐?]

[하지만 인간을 대리자 일족으로 만든 것이 과연 인간을 위한 일일까? 대리자 일족은 영원히 카니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이 끝이 아니야. 카니발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그때마다 인간들은 축제에 불려가게 되겠지.]

두르가는 말했다.

[인간은 이제 영원히 카니발로 하여금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카니발의 참가자가 되는 것보다는 나아.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는 것보다 앞으로 있을 희생자들을 돕는 삶이 더 낫겠지.”

남궁이 그의 말을 반박했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위상의 자리에 오르면 카니발을 없애 버릴 테니까.”

두르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끄럽고, 누가 뭘 후회한다는 거야? 두르가, 만신전의 공로로 다음 카니발에 유리한 시작을 할 수 있다 생각해서 여유 만만인 모양인데…… 너 그러다 남궁에게 죽는다.]

[크, 크크크…… 내가? 나는 그와 위상전을 할 생각이 없다. 위상의 자리쯤 내어주는 것인 뭐가 문제이지? 어차피 위상의 자리는 여덟 개고 그중에 한 자리만 빼앗으면 그만인 것을.]

그는 의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말해 클립트가 어째 그에게 과할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게는 고마운 일이지. 화살을 쏠 과녁이 정해졌으니 말이야.]

[너는 자존심도 없냐? 이제 갓 위상이 된 인간에게 패배하는 건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될 일이라고. 그런 일은 막아야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만약에 클립트가 반박하지 않았더라면 너 스스로 위상전에 참가하려고 한 건 아닌가? 남궁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서 말이야.]

요르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하여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라. 나는 할 일이 많으니까.]

두르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위상전이라…… 도대체 얼마만이지? 우(无)와 란(亂)을 갈라놓던 그 시절 이후 처음이니 기대되는군.]

그는 남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고 있겠다. 왠지 위상전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두르가까지 모두 사라지고 나자 요르는 팔짱을 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이름하고 안 맞게 쓸데없이 감이 좋단 말이지. 저놈은.]

“역시 예상대로 흑룡의 몸 안에 문을 집어넣은 게 너였군. 많이도 집어넣었더군. 덕분에 악귀왕을 잡을 수 있긴 했지만.”

위상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은 팔짱을 낀 채로 요르에게 말했다.

[흥,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검을 어디서 구했나 싶더니 악귀를 잡은 것이었군.]

남궁의 등에 채워진 【만악검】을 가리키며 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너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위상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신살(神殺)을 하려는 네 의도를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지고 싶은 생각도 없거든.]

“그래도 고맙다. 덕분에 카니발을 빠르게 종결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

[말했잖아. 진심으로 널 잡기 위해서 그런 거였다고.]

끝까지 남궁의 말을 거절하는 요르를 보며 그 역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위상들의 말도 틀리진 않아. 카니발을 일으킨 위상들이 미울 수 있겠지만, 네 소원은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딸과 함께하는 미래를 가지는 것이잖느냐.]

“맞아. 처음에는 카니발을 일으킨 너희들을 저주했지. 하지만 너에 대해서 알고 많은 생각을 했다. 위상이 그저 인간을 게임의 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최초의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루의 영혼이 담긴 눈물을 가지고 있었던 요르를 보며, 남궁은 그가 진심으로 인간을 생각하고 있는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위상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

“아니, 카니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인간을 대리자 일족으로 만들었어. 이대로라면 정말 카니발이 계속될 때마다 우리는 대리자 일족으로서 참가해야 되겠지. 혹은 대리자 일족의 자격마저 박탈당한다면…….”

마족처럼 문의 보스가 되어 새로운 참가자들과 또다시 싸움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다.

“이번엔 살아남았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국 지옥 같은 카니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정녕 너는 위상과 싸우고자 한다는 뜻이로군.]

“물론이야. 위상이 아니고서야 위상을 죽일 수 없으니까.”

요르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엉킨 채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그것 역시 네가 결정한 길. 하고자 하는 것을 해보거라.]

우우우우웅…….

요르가 손을 뻗자 그의 손바닥 위로 뱀의 형상을 한 지팡이가 나타났다.

쿵―

그가 지팡이로 아래를 찍었다.

촤아아악……!!

그러자 검은 연기와 함께 남궁의 발아래 수백 개의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인간족의 대표인 남궁에게 팔각 전쟁의 보상을 내리노라. 우리 팔위상은 새로운 위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도다.]

마법진에서 솟구쳐 나온 검은 장막이 자신을 휘감자, 남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요르.”

그는 장막 속으로 스며들기 직전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无)도 위상이다. 그가 죽으면 대리자 일족의 굴레도 사라지게 되겠지.”

[……!!]

요르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가 위상이 되려는 이유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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