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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46화 (246/270)

246화

탕― 탕― 탕―

문을 통과하자 들려오는 쇳소리에 남궁은 천천히 눈을 떴다.

“허…….”

탑의 2층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기가 정말 같은 탑인가?”

고블린 성채와 연결되어 있는 탑의 1층인 용암 지대는 사실 환경만 놓고 본다면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말해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이 아니었다.

그곳을 도시화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낙원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적당한 온도와 가볍게 부는 바람.

1층의 탁한 공기와는 전혀 다른 기분 좋은 내음이 느껴졌다.

“카를로스, 좋은 곳에서 살고 있었군?”

[여긴 저희 악마가 사는 곳이 아닙니다. 하필 제일 최악의 장소로 왔군요.]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과 달리 2층의 문을 들어서자 카를로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기 철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언덕 위로 올라온 그는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블린 성채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군. 왕국의 수도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드워프들의 왕국입니다.”

남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카를로스가 먼저 대답했다.

“그럼 저기가 올트모른인 건가?”

일전에 라테아가 했었던 이야기를 기억해 낸 남궁이 드워프들의 왕국 이름을 말했다.

[아뇨. 아시다시피 엘프와 함께 드워프들 역시 위상에 반기를 든 자들이잖습니까. 그들의 왕국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이곳은 살아남은 드워프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터전입니다.]

탑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죄명은 모두가 똑같이 신에게 반기를 든 것.

남궁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상에게 패배한 자들이잖아?”

[그렇죠.]

“그런데 넌 왜 갇힌 거지? 사실 요란 일족의 대리자 일족이었던 너희는 그들을 배신하고 위상의 편에 섰었잖아.”

[그게…….]

카를로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드워프들의 도시를 바라봤다.

[드워프들이 악마족을 미워하는 이유기도 하죠. 뭐, 저에겐 최악의 장소긴 하지만 남궁 님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란(亂)이 힘을 쓴 것일지도요.]

“어째서?”

[왕관의 힘을 갈무리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곳을 찾고 계셨지 않습니까. 저곳이야말로 위상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요새거든요.]

그는 따라 오라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화아아악……!!

[드워프의 용광로는 신도 부수지 못한다.]

도시의 성곽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마치 그의 말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 * *

부우우웅―――!!

[어이쿠야.]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두터운 해머가 벽을 부수며 박히자 카를로스는 먼지를 털어내며 혀를 찼다.

[거참, 집어 던질 게 없어서 가문의 보구를 던지나?]

“닥쳐라!! 네놈이 어디라고 감히 이곳에 온 것이냐. 썩 꺼지지 못할 까!!”

남궁은 소리치는 드워프를 바라봤다.

기껏해야 그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키였지만 조금 전 드워프가 던진 해머는 그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네 녀석은 또 뭐냐? 이곳은 인간이 살지 않는 곳인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덥수룩한 수염이 자란 드워프는 남궁을 노려보며 말했다.

“다른 드워프는 없는가?”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드워프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남궁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걸 네놈이 알아서 뭐 하게? 더러운 인간 냄새가 도시에 배기 전에 썩 꺼져!!”

[크릉…….]

그때였다.

남궁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나트리엘의 모습에 드워프의 눈이 커졌다.

“저, 저건…….”

“보다시피 원시성령이다.”

“말도 안 돼…… 원시 성령을 길들였다고? 그것도 영혼 병사로써?! 엘프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엘프는 모두 죽었다. 그건 자네도 알 텐데, 쏜. 참고로 이 도시에 남아 있는 드워프는 저자뿐입니다.]

“살아남은 드워프들이 이곳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드워프들은 우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한 번 부서지면 무너져 버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패배에 대한 자괴감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지요.]

카를로스는 남궁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닥쳐. 빌어먹을 네놈들이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꼴이 되진 않았어. 엘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네놈은 내가 꼭 쳐 죽이려 했지! 잘도 도망치더니…… 제 발로 죽으러 왔구나.”

쏜이라 불린 드워프는 씩씩거리며 던진 해머를 다시 주우러 달려갔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달리는 모습은 전투와는 썩 맞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이로군. 쏜.]

그때였다.

벽에 박힌 해머를 잡은 드워프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들리는 음산한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

쏜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어째서 이곳에 사신이 있는 거야!! 빌어먹을 악마 새끼! 이제 하다 하다 별 거지 같은 것들까지 데리고 오는 거냐!!”

카를로스는 그의 외침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리숙한 것은 여전하구나. 그랑의 아들이여. 내 목소리가 변하긴 했지만 자네라면 알 수 있을 텐데.]

“설마…… 아카샤 타누비엘? 당신입니까?”

[반갑구나. 여전히 작은 친구여.]

“말도 안 돼…… 엘프의 왕이 사신이 되었다니…… 아니지, 오히려 그러니 말이 되는 건가? 이렇게 되면 원시성령이 사령술로 계약을 맺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그는 남궁을 바라봤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의 주범이 말하지 않아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놈은 도대체 뭐지?”

“흠,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지? 일단 일곱 뱀의 주인의 계시자이자 2번째 카니발을 경험하고 있는 자. 그리고 팔각전의 왕관을 가지고 있으며 야차 일족의 계약자임과 동시에 인간족의 수장…….”

“자, 잠깐!!”

남궁의 말에 쏜은 손을 저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지금 나랑 장난해?”

[진짜다.]

“웃기지 마!”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쏜.]

“…….”

카를로스의 말에 화를 내던 쏜은 아카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나참, 내 말은 믿지도 않네.]

[쓸데없는 말씨름을 할 시간 없다는 걸 잊지 마라. 카를로스.]

무시당한 카를로스는 혀를 찼지만 아카샤의 일침에 그 역시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악마족의 배신으로 인해 패배를 했었으니 둘에게 있어 카를로스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아캬사, 당신이 사신이 된 이유도 저자 때문인 겁니까. 그에게 힘을 빌려주기 위해서?”

[나뿐만이 아니다. 그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가.]

아캬샤의 말에 쏜은 남궁을 유심히 살폈다.

“설마…….”

[한때 함께 싸웠던 동지를 다시 보게 되니 기쁘군.]

“레오릭!!!”

쏜은 영혼 병사가 된 그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당신들을 모두 만날 수 있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드워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헌데…… 어찌 다들 이런 모습이 되었단 말인가.”

[슬퍼하지 말게. 겉모습이 뭐가 중요한가. 반역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지.]

레오릭은 남궁을 가리켰다.

[그를 도와주게. 내가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니까. 그는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라 그 전에도 나의 동료였네.]

둘의 말에 남궁을 바라보는 쏜의 눈빛이 달라졌다.

“도대체 자네는 뭐지? 위상에게 반기를 들었던 두 사람을 동료로 삼고 있다니…….”

“위상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들이 따르는 자라면 또 뭐가 있겠어?”

남궁은 그에게 말했다.

“나 역시 반역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겠지.”

꿀꺽―

쏜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나는 팔각전의 왕관을 쓰고자 한다. 위상의 자리에 오르고 놈들과의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미친 거 아냐? ·그걸 쓰는 순간 위상들이 널 죽이려고 난리를 칠 거다.”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아직 왕관을 쓰지 않은 것이지. 이곳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란(亂)의 도움을 받아서다.”

“란(亂)……? 태초의 위상 말이냐? 미치겠군. 개미를 잡으려고 뱀을 푼 격이로군. 팔위상을 죽이려고 그와 엮였단 말이냐?”

“내 목표가 위상이라고 했지 팔위상이라고는 안 했는데.”

“……뭐?”

남궁은 쏜을 향해 말했다.

“란이 있는 한 팔위상들은 내가 왕관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게 될 때까지 손대지 못할 거다.”

“그럼 뭐가 문제지? 내가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차르릉…….

그 순간 남궁은 자신의 손목에 감겨 있던 사슬을 풀어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알기로 드워프들은 무구를 다루는 데 가장 뛰어나다고 하던데.”

“정말 말이 안 나오는 놈이로군. 위상의 사슬까지 가지고 있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쏜은 본능적으로 사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사슬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선 위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나는 왕관의 힘을 갈무리한 뒤 그 힘으로 사슬을 강화시키고 싶다.”

“지금 내게 사슬을 맡기겠다는 뜻이냐?”

“맞아.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 우습게도 나는 아직도 이 사슬을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남궁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사슬을 살펴봐 주면 좋겠군. 그리하여 내게 사슬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겠나.”

“이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광물이야. 어떻게 해서 알아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물들 중에 이것과 공명을 하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군.”

쏜의 목소리가 조금 들떴다.

짝―.

당장에라도 지하실로 달려갈 것 같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리며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나도 미친놈이지. 이런 와중에 또 호기심에 눈이 멀어 실수를 저지를 뻔했어.”

그는 앞에 놓여 있던 사슬을 남궁에게 밀었다.

“가져가게. 나는 자넬 도울 생각 없으니.”

“어째서지?”

“나는 더 이상 광물을 다루지 않아. 호기심이 삶을 망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으니까.”

“도시에 들어올 때 들렸던 망치 소리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제대로 들었어. 그건 이 해머를 부수려는 소리였으니까. 이것만 해냈다면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지? 가문의 보구를 부수려고 하다니?”

“흥, 보아하니 빌어먹을 악마 놈에게 듣지 못했나 보군. 우리 드워프가 망가진 이유를 말이야.”

남궁은 그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카를로스를 바라봤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말씀드렸던 일 말입니다. 악마족이 이곳에 갇힌 이유이자 드워프들이 저희를 싫어하는 이유 말이지요.]

“흥,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하지! 말이 나온 김에 잘됐어.”

콰앙―!!

쏜이 해머를 들어 남궁의 앞을 내리쳤다.

“저 악마 놈을 내가 눈앞에서 죽여라. 그러면 내가 널 도와주지.”

“…….”

수다스러운 카를로스가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것을 본 순간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남궁은 알 수 있었다.

“일단 들어나 보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갈등의 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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