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 드워프의 용광로 안에서는 어떠한 생존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드워프들은 죽으면 그 시체를 이 용광로 속에 집어넣는다. 용광로는 수백, 수천이 넘는 드워프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지하로 내려온 남궁은 용광로의 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녹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카를로스의 말로는 용광로를 사용한 지 오래라고 하던데?”
“그래, 재료가 없어서 새로운 무구를 만들지 못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용광로의 불꽃을 꺼뜨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 우리들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탑에 쫓겨났을 때에도 불씨를 지켰다.”
화르르륵……!!!
용광로 안에서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 같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저건 드워프의 혼 그 자체니까. 절대로 꺼뜨릴 수 없는 것이다.”
“흐음…….”
남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쏜이 어째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온도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갈아 넣어 만든 불꽃이었으니까.
화아악……!!
그가 사령술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영혼 병사들처럼 그의 전신에 검붉은 갑옷이 형성되었다.
치이이익―――!!!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자 갑옷은 당장에라도 녹아 버릴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후우…….”
남궁은 천천히 숨을 토해내며 그 안으로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진심으로 들어갈 생각인가.”
“여기까지 와서 꽁무니 뺄 생각은 없어.”
“좋다…… 그렇다면 나도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사슬을 살펴보지.”
“부탁하겠어.”
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버를 당겼다.
쿠웅―!!!
용광로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다시금 지하실에 어둠이 찾아왔을 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연 저 문을 열고 나오는 게 과연 인간일지 악마일지 두렵군…….”
카르릉―
그는 두려움과 함께 사슬을 움켜쥔 채 천천히 걸어갔다.
* * *
-속보입니다. 사이판에 소환된 마물들이 대부분 소탕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개체의 수는 한 자리수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각국 주요 도시에 출몰한 마물 떼의 90%가 소멸되었습니다. 각국의 군부대를 비롯한 많은 일반인들이 소탕에 참가하여 빠른 속도로 마물을 몰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대리자 일족 결정에 시민들이 어리둥절한 한 편, 급작스럽게 얻게 된 각종 무구와 능력으로 인해 몇몇 지역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각국의 정부는 야기되는 혼란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속보들은 전쟁의 승리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으나 이 위기를 통해 인류 더욱더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팔무성들이 모두 합심하여 싸웠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을 듯싶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번 전투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이 있었죠?
-네, 맞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사이판의 마물들 중 절반을 단신으로 소멸시켰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소민아!!”
콰가가가가강―――!!!!
검붉은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주위에 있던 마물들이 시커멓게 재가 되었다.
“후우…….”
수십 마리의 마물들을 몰살시킨 소민은 그제야 조금 지친 듯 낮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얼마 남았어요?”
“이제 넌 쉬어도 괜찮아.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겨.”
“그래, 충분히 무리했어.”
“후움…… 전 괜찮은데요?”
명훈과 호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억지로 끌고 자리에 앉혔다.
“두 분 말이 맞아. 괜찮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아직 제대로 힘을 다루는 것도 아니잖아.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
박효주마저 소민을 만류하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것 없어. 이제 남은 보스도 셋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젠 기뻐할 일만 남았어.”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박효주에게 소민은 싱긋 웃었다.
“더 이상 카니발의 문이 열리지 않겠죠?”
“그럴 거야. 우리가 대리자 일족이 된 이상 참가자가 없는 축제는 막을 내려야지.”
“다행이다…….”
박효주의 말에 소민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짊어진 게 너무 많구나.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맙다, 소민아.”
그녀는 소민을 꼭 끌어안았다. 자그마한 체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크아아아아악―!!!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소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 명곡의 바리안이 사망하였습니다.
▶ 흑룡의 배 속에서 소환된 모든 보스가 소멸되었습니다.
▶ 현재 차원에서 인간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인간족이 대리자 일족으로 선정된 지금 카니발의 참가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의 축제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 모든 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 축하합니다.
“……!!!”
섬을 가득 채우는 알림 소리에 소민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박효주를 바라봤다.
“어, 언니…….”
“마지막 보스를 잡았구나. 드디어 끝났어!!!”
“진짜죠? 진짜 끝난 거죠?”
“그래! 우리 살았어!!”
“으아아아앙……!!!”
소민은 박효주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박효주는 더욱더 꽉 안아 주었다.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바리안의 시체 위에서 명훈이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응!!”
소민은 박효주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진짜 카니발이 끝났다고 생각하나?]
그 순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 구…… 컥!!!”
“언니!!”
순식간에 박효주의 몸이 튕겨 나갔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소민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콰가가강…… ·!!
박효주의 몸이 지면에 튕기며 수백 미터를 미끄러져 굴러갔다.
너부러진 그녀의 등이 힘겹게 움찔거렸지만 정신을 잃은 듯 일어서지 못했다.
“언니!!!!”
소민의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봤다.
“흐아압!!!”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명훈이었다.
수미터를 한달음에 달린 그가 있는 힘껏 박효주를 밀친 존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자, 잠깐만요!!”
그 순간 미카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지직……!!!
공간을 가르며 뛰어온 그가 침입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명훈의 검을 튕겨냈다.
“뭐 하는 짓이지?”
“형님이야말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열받으시겠지만 상대를 가리셔야 합니다.”
“지금 저 새끼가 한 짓을 너도 봤을 텐데? 저 놈이 뭐라고 편을 드는 거야!!”
오싹―
처음이었다.
항상 서글서글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명훈의 분노는 계시자인 미카엘조차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편이 아닙니다. 형님, 저자가 누군지 모르시니까 그러시는 겁니다.”
“저놈이 누군데?”
“노, 놈이라뇨. 육방 다리의 연결자. 그는 제가 모시는 위상입니다.”
명훈은 생각지도 못한 미카엘의 말에 짐짓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위상? 위상이 어째서 여기에 온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카엘은 우두커니 서 있는 위상을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저도 처음 선택받았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라서요.”
얼굴을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위상이었다.
“비켜.”
명훈은 알겠다는 듯 그를 지나쳤다.
걱정스러운 듯 미카엘이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명훈의 눈빛을 본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위상은 분명 참가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너희들이 왜 참가자지? 네놈들은 이제 대리자 일족이 되지 않았느냐.]
솨아아악……!!
허공에 떠다니는 손들이 하나같이 명훈의 주위를 돌며 당장에라도 그를 공격할 듯 압박했다.
[대리자 일족이 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뿐이다. 알겠느냐?]
“위상도 참 할 일이 없나 보지? 이런 곳에 와서 시비나 걸고 말이야. 왜? 너희 생각대로 되지 않고 우리가 너무 빨리 축제를 끝내 버려서 열받나?”
명훈은 오히려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그에게 다가갔다.
턱 밑에서 위상을 노려보며 그가 말했다.
“쪽팔리는 줄 알아야지.”
[……이 새끼가.]
육방 다리의 연결자는 얼굴이 없는 위상이었지만 주위에 일렁이는 불꽃의 흔들림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분노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네놈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너희들에게 놀아날 생각 없다고!”
명훈의 목소리가 일대에 울렸다.
“죽을힘을 다해 형님께서 해답을 찾으셨고 우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우리의 뛰어남이 불만인 거냐?”
[불만? 위상을 인간의 잣대로 보지 마라. 나는 그저 네 녀석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자 이곳에 온 것뿐이다.]
“……뭐?”
▶ 위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 마지막 카니발의 특별한 막이 열렸습니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얼굴을 가린 불꽃들이 일렁이자 명훈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 카니발의 규율 말이다. 문이 열리면 정해진 마물의 수가 모두 소환되어야 한다. 그보다 일찍 닫히게 되면 소환되지 못한 마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된다.]
명훈은 고블린 로드를 사냥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광화문 광장에서 몰살시켰던 고블린 떼였다.
[때로는 그것이 너희들에게 헤드를 모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나…… 때로는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지.]
▶ 남은 모든 마물들이 소환됩니다.
▶ 와이번의 수 : 1, 3…… 500…….
▶ 트롤의 수 : 5, 80…… 1,200…….
▶ 만티코어의 수 : 100, 150, 300…….
“이, 이게 무슨…….”
순간 어둠이 내리깔렸다.
고개를 들자 그 어둠은 수십 개의 문에 남아 있던 마물들이 한꺼번에 소환되며 하늘이 가려졌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캬아아아악―――!!!
크르르르――!!
수만, 수십만…… 셀 수도 없이 많은 온갖 마물들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네놈의 애비가 모든 걸 망쳐 놨다. 감히 신을 죽이려 들어?]
육방 다리의 연결자는 소민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멈춰!!”
명훈이 황급히 소민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검을 들고 있는 위상의 팔 하나가 날아들어 그를 밀쳐냈다.
“……큭!!”
캉―!! 카강―!!!
또 하나의 팔이 더 날아들었고, 다시 하나의 팔이 더 가세하자 방어에 급급하던 명훈이 결국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저들의 죽음은 모두 네 아비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통은 너 역시 똑같이 감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소민을 향해 말했다.
[축제가 끝났다고? 누구 마음대로? 너희들은…….]
“그래, 벌써 끝나면 아쉽지. 네놈들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못 봤는데.”
그때였다.
소민의 어깨를 감싸고 뒤로 물린 투박한 손이 육방 다리의 연결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억―!!!
두터운 주먹이 위상의 얼굴을 정확히 노렸지만 위상은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하찮은 짓을 하는군. 하긴, 원래 너도 저 마물들과 똑같은 꼴이 되었어야 하는데 잘도 살아남았어.]
우드득―
그리고 뺨을 때린 주먹을 비틀자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비루한 목숨이지만 아들 덕분에 지켰으니 적어도 가치 있게 써야지.”
퍼억―!!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기철은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내 손녀 털끝 하나 건드리면 죽는다.”
순간, 소민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