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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56화 (256/270)

256화

[한 가지만 묻자. 너는 진심으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벌인 것이냐.]

란의 영혼이 담긴 상자를 열기 전 우(无)는 남궁에게 물었다.

[분명 나는 란과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한다. 하나 그것이 꼭 모든 차원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너희를 살려줄 수 있어.]

“나는 너랑 거래하러 온 아니다.”

[멍청한 것…… 너는 결국 마지막 단추를 제대로 잘 못 잠그는구나.]

탈칵―

우(无)는 상자를 열었다.

솨아아아아아……!!

그러자 새하얀 연기가 회랑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 냄새. 클클…… 진짜로구나. 란(亂).]

[코도 없는 놈이 냄새는 무슨. 결국 네 녀석이 먼저 봉인에서 풀려났구나. 남궁, 네놈은 그렇게 꼬드겨도 넘어오지 않더니…… 우(无)와 먼저 손을 잡은 거냐.]

“누가 되었든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너희들 하나로 합쳐질 거잖아.”

남궁의 말에 란은 차갑게 웃었다.

[빌어먹을…… 정말 끝났군.]

[이제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 모두 죽을 테니까. 이런 상황에 나머지 머저리들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3명의 위상들은 란(亂)의 모습을 보자 절망스러운 듯 탄식을 하며 중얼거렸다.

[태초의 위상이 하나가 되면 지금껏 존재하던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다.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겪어보지 않았는데 내가 알 리 없지. 그런데 변할지, 그대로일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 생각되는데?”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 그건 절대로 거짓이 아냐.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도 우(无)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위상들을 도와 녀석을 가둔 것이지.]

그는 위상들을 바라봤다.

[배은망덕한 것들이 도와준 은혜도 모른 채 나를 가둔 것이 문제지만.]

[죄, 죄송합니다……!!]

[부디 과거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위상들은 란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듯 소리쳤다.

[이미 늦었어. 네 녀석들도 내가 이번에는 너희를 돕지 않을 걸 알기에 영혼함을 훔쳐온 것 아니더냐?]

[그, 그건……!!]

[이번에 나는 우(无)와 하나가 될 것이다. 태초로 돌아가 모든 것을 새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너희들은…….]

란의 차가운 눈빛에 그들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봉인을 풀기 위해 참아야 했던 시간이 참으로 길었는데…… 의외로 하나가 풀리니 나머지는 순식간에 해결되는군.]

우(无)는 란(亂)에게 걸어갔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란(亂).]

그가 손을 뻗었다.

[좋지.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뭐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누가 선자가 되는 거지?]

내민 우의 손가락이 미약하게 떨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 게 뭐가 중요하지?]

[중요하다마다. 이건 두 개의 의지가 섞여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그건 두 개의 의지가 모두 존재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

란은 그를 차갑게 바라봤다.

[너와 나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네놈도 우리가 하나가 되었을 때 새로운 격의 탄생을 바라고 이런 짓을 꾸민 건 아니잖아?]

취이이익―

그가 입을 벌리자 마치 독사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둘 중 누가 살아남느냐의 문제지.]

[과연…… 그래서? 누가 누굴 먹어 치울 것인지 서로 의논해서 결정하자는 뭐 그런 평화로운 얘기는 아닐 테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평화롭지 않게 결정하자는 말이지. 하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체의 핵일 뿐 의지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

콰아아아앙―――!!

[……!!!]

모두의 예상을 깨고 란(亂)이 우(无)를 공격했다.

[……큭!]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네 의지는 내가 이어줄 테니까. 어차피 날 배신했던 저 녀석들을 살려둘 생각은 나도 없으니.]

[웃기지 마……!!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그곳에서 나왔는데 네놈에게 먹힐 것 같으냐!!]

우(无)는 자신을 덮치는 새하얀 연기를 뿌리치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애초에 우리는 하나였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분열되어 살았어. 이제는 하나였을 때보다 각자의 의지가 더 강해졌으니 더 이상 우리는 하나일 수 없는 것이지.]

[그럼 내가 널 먹어치워 주마!!!]

미이라 같은 형상의 우(无)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잡아 뜯었다.

그러자 붕대 속에서 얼굴 대신 공허와 같은 시커먼 연기 속에 붉은 눈동자와 거대한 입만이 드러났다.

와그그극……!!

우의 이빨이 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위상들의 싸움이라고 하기엔 그들의 싸움은 너무나도 동물적이고 원초적이었다.

[어리석은 우(无)여. 과거에도 내게 졌던 네가 지금 나를 이길 수 있을까. 그 반지를 끼고서?]

맹수처럼 달려든 우였지만 란은 어쩐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상들은 우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봤다.

[변곡의 반지…….]

[너는 나를 가지기 위해 스스로 속성을 버리고 나와 같아졌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말 우둔한 짓이지. 진짜를 가짜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꽈아악―

란(亂)은 우(无)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쿠극…… 쿠그그극…….

란의 손가락이 점차 우의 머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고통스러운 우의 비명을 들으며 란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고맙다. 알아서 변곡의 반지를 끼고 나를 구해줘서 말이야. 너라면 그럴 줄 알았거든.]

[설마…….]

[그래, 네 말대로 우리는 하나였으니까. 나는 누구보다 너를 잘 알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이 그저 기다리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거…… 놔!!!]

우(无)는 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자신의 힘이 란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변곡의 반지는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그걸 낀 순간 스스로 제물이 되어야 하는 족쇄이기도 하지.]

[크, 크윽…….]

[네가 원하던 것이지 않느냐.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 그러니 기뻐해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란이 우를 먹으려 하다니…… 그가 이토록 폭력적인 위상이었던가?]

[모르지. 그동안 갇혀 있던 세월이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일지도.]

[아니면…… 우리 때문일지도 모르지.]

위상들은 서서히 무너져 가는 우를 보며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우리에겐 뭐가 나은 거지? 우가 소멸하고 란이 남아 있는 게 그나마 나은 건가?]

[광폭해진 이유가 우리의 배신 때문이라면 오히려 우보다 란이 더 무서운 존재인 건 아닐까?]

[빌어먹을…… 애초에 저들이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답이었어.]

그들은 누가 살아남든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결코 좋은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모두를 경악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허튼짓하지 마라.”

[……켁. 케켁!]

란의 목에 사슬이 감겼다.

남궁은 마치 맹견을 다루는 사육사처럼 란의 목에 감긴 사슬을 잡아당겼다.

[큭……! 크윽!!]

그러자 우를 붙잡고 있던 란의 손의 힘이 풀리며 그가 남궁에게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위상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어려운 상황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허튼짓을 하는 건 안 되지. 멋대로 우를 소멸시키려고?”

[자, 잠깐……!!]

다급한 목소리의 란을 보며 위상들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태초의 위상이 저놈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고?]

꽈드드득……!

남궁은 사슬을 더욱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헉, 헉…….]

반쯤 얼굴이 녹아내린 우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다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의 얼굴을 가렸다.

[란(亂)……!!!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우는 당장에라도 달려들듯 소리쳤지만 남궁의 발아래 구르는 그를 보고는 말을 잊고 말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지?]

“뭐 하긴. 지금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거든. 마치 널 먹어치울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널 소멸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막은 거야.”

남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 날 뻔했지. 너희 둘 중에 하나라도 사라지면 온전한 위상이 될 수 없잖아. 안 그래? 고맙게 생각하라고.”

콰아아앙―!!

남궁은 잡아당겼던 사슬을 풀며 그대로 란의 머리를 검으로 후려쳤다.

“그러니까 잡소리하지 말고 빨리 처먹었으면 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좋았잖아.”

치이익……!!

검에 닿은 란의 얼굴이 불에 지진 것처럼 타들어 갔다.

[크아아아악!!!]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우를 풀어준 것인데…… 란, 역시 네가 저 머저리보단 눈치가 빠르군.”

[무, 무슨…….]

우(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뭐 해? 빨리 놈을 먹어치우라니까?”

오싹―

그 순간 그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야…… 어째서?]

오랜 세월을 기다린 숙원인데, 어째서인지 그는 이제 와서 그것을 이뤄서는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안 할 거야?”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란을 지나쳐 우를 향해 걸어갔다.

[……도망쳐!!]

란의 외침에 우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그때였다.

마치 감옥처럼 회랑 주위로 두터운 쇠기둥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그들을 가둔 기둥들이 새하얗게 얼어붙었고 그 주위로 수백, 수천의 작은 뱀들이 나타났다.

[저건…….]

회랑 밖에서 또 다른 위상들의 모습이 보였다.

[꼴이 좋구나. 갈란.]

4명의 위상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요르가 화롯불을 다루는 자를 향해 웃었다.

[당장 이 창살을 치워, 두르가!]

[아쉽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저건 나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닐세. 요르와 레아의 힘이 함께 섞여 있어.]

[이 정도는 돼야 저들도 쉽게 나올 수 없을 테니까.]

[……그럼 우리는?]

[알아서 잘 도망쳐야지. 뒈지기 싫으면.]

[이…… 이익!!]

미풍의 어머니, 그라시엘은 창살을 움켜쥐며 요르를 노려봤다.

치이이익……!!

하지만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냉기에 그녀는 그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좋아…… 이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어떻게 저놈이 태초의 위상들을 압도할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을 너희도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 우리도 몰랐지. 아마 저 녀석도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걸.]

극명한 힘의 차이.

태초의 위상들의 강함은 누구보다 싸워본 자신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긴, 태초의 위상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네놈들이 알 리가 없지.]

[……뭐?]

요르는 그 순간 피식 웃었다.

[너희는 지금 저 녀석이 진짜 남궁으로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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