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콰아아아앙―――!!!
[란……!! 이대로는 안 돼!! 어차피 하나가 되기로 했었잖아! 왜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거냐!]
몰아치는 루의 공격에 우(无)는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멍청하긴……! 너는 정말 저 녀석이 단순히 남궁의 몸을 빌린 루이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으면 당장에 하나가 되었을 거라고!]
[……그럼? 저게 루가 아니라는 말이냐?]
우(无)는 그의 대답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뭔가…… 분명 있다. 남궁 그놈이 아무런 확신도 없이 루에게 모든 것을 맡겼을 리가 없어.]
[고작 그런 불안 때문에? 미치겠군. 위상이라는 녀석이 인간이 두려워 거짓된 연기나 하고 있었던 것이냐! 그럴 거면 그냥 내게 먹혀라!!]
[멍청하긴……!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저놈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잖아!]
“너희들은 여전하구나.”
촤르르륵……!!
순간 남궁의 사슬이 두 위상을 노렸다.
“하나가 되길 바라면서 결국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신세니까.”
[……닥쳐!!]
“너희들에게 속아 낙원에서 떨어졌던 그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게 모두 너 때문이다……!! 처음부터 네놈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해! 위상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필멸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너를 만들고 난 뒤 어째서 위상은 자신을 반으로 갈라 우리를 태어나게 한 것이지?]
[위상인 우리가 너보다 못한 것이 말이 되냔 말이다……!!]
란과 우는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절대자에게 대적하는 약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신과 인간의 위치가 역전된 상황은 다른 위상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하나가 되기엔 남궁이 가진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이대로 싸우자니 루의 힘을 이기지 못하겠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로군.]
[절대자라고 생각했던 위상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니……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군.]
[이대로 결말이 지어지는 건가……?]
[글쎄, 두고 봐야겠지.]
위상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우습지 않아?]
해와 달의 관망자, 두르가는 어쩐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요르에게 말했다.
[뭐가 말이야?]
[카니발을 개최한 건 우리였어. 그리고 설령 우리가 루로부터 태어난 불완전한 신이라 할지라도 기억을 전승하면서 이 축제를 이어왔지.]
[그런데? 막상 카니발을 사라지게 하려니 아쉬운 거야? 이제 와서 주인 행세라도 하고 싶은 거냐.]
두르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쉬운 게 아니다. 적어도…… 우리 팔위상이야말로 카니발에 가장 오랜 영향력을 끼친 존재라는 말이야. 그러니…… 적어도 끝낸다면 우리의 손을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서라. 란과 우를 상대로 네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야.]
[……너는 만족하는 거냐.]
요르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뭐가?]
[이대로 팔짱 낀 채로 누가 이기는가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철컥―
두르가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루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나라면 그는 어째서 내게 관망자라는 위명을 주었을까.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의미 일까?]
요르는 그를 바라봤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와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존재지. 내게 그런 위명을 지어준 것은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화가 날 뿐이다.]
두르가는 위상과 싸우는 루를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저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잘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는 낮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것이 있다면 해야겠지.]
* * *
“란, 그리고 우여. 이제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을 마무리 지을 때가 온 것 같다.”
[……닥쳐! 지금껏 우리가 어떻게 참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순 없다!]
“그럼? 하나가 되리라 마음먹은 건가. 좋아. 그건 그것대로 바라는 일이지. 어디 한번 해보지?”
[크윽……!!]
[란,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녀석은 온전한 위상이 만든 유일한 필멸자다. 그런 자가 위상의 힘까지 가졌다면…… 지금 우리로서는 녀석을 감당할 수 없어.]
우(无)는 사슬을 피하며 란에게 소리쳤다.
[하나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야. 우리에겐 이번이 마지막 기회 일지도 모른다고!]
란은 그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 역시 우(无)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쉽사리 하나가 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손을 내놔.]
란이 말했다.
[약속해라. 누가 온전한 정신의 주인이 되든지 간에 이 세계를 지우겠노라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우(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시간이다.]
솨아아아악―――!!!
란과 우가 손을 잡자 그들을 둘러싸고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호? 드디어 하는 건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선택이겠지. 그런데 꼴이 우습군. 저들은 원래 하나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것을 억지로 하고 있으니 말이야.]
[오감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존재 하듯 인간을 만든 위상은 그것이 훨씬 더 발달되어 있을 테니까요.]
무명과 라테아는 란과 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달된 감각이라도 그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 하는 것 같군요.]
[전능하나 전지하지 못하다. 그것이 위상의 위대함이자 가장 큰 맹점이니까.]
[사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깜짝 놀라겠군요.]
라테아의 말에 무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놀랄 겨를이 있을까? 그 사실을 알기도 전에 소멸될지도 모르는데.]
[글쎄, 그렇게 쉽게 끝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无)는 충동적이지만 결코 우둔하지 않아. 그 역시 뭔가 다른 것을 숨겨놓았을 수 있다. 쉽게 당할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이대로 란의 힘까지 합세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끝이지.]
낙관적인 무명과 달리 레오릭은 여전히 지금 상황을 견제하는 듯 보였다.
[루(淚)……!!!!]
그때였다.
연기가 사라지며 거센 돌풍과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울리며 소용돌이 안에서 검은 안광이 빛났다.
소용돌이 안쪽에 두터운 팔이 보였고, 루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축이 떨렸다.
[과연…… 엄청난 위압감이로군. 저게 온전한 위상의 모습인 건가.]
콰가가가가각――!!!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이 루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 순간 사슬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카앙―!!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위상의 팔이 튕겨 나가며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내 눈엔 불안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만 보이지만.”
루는 위상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함이란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어찌 필멸자 주제에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있으려 하는 것이냐!!]
사슬에 닿은 손등이 불에 덴 듯 타들어갔고 위상은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처음부터 너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
“정녕 그것이 네가 원하는 건가.”
[그래!! 나는 이 세계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필멸자들의 세계가 아닌 신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린이 그 말을 들으면 슬퍼하겠군.”
[……뭐?]
촤르르륵……!!
그 순간 사슬이 위상의 팔에 감겼다.
콰득……!!
“아마도 너희는 기억 못 하겠지. 하긴, 온전한 위상이 너희 둘로 갈라지기 이전에 나와 함께 만든 것이니.”
[린이라니……?]
루는 위상에 감긴 사슬을 가리켰다.
“그는 위상이 남긴 마지막 의지다. 언젠가 너희들이 날뛸 것을 알기에 너희를 옭아매는 사슬로서 그 안에 잠들어 있었다.”
[사슬……? 웃기지 마라!! 이 사슬은 우리를 잇는 연장선일 뿐이다!!]
“그 연장선 끝에 린이 있고 그 린을 온전한 위상이 만든 것이다.”
[……어째서?]
위상은 사슬을 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슬은 더욱더 강하게 그를 조여왔다.
“인간을 위한 결말을 짓기 위해.”
[……컥!!]
팔목에 감겨 있던 사슬이 뱀처럼 위상의 팔을 타고 올라 소용돌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촤르륵―――!!!!
사슬이 위상의 목을 감싸자 그는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고 전신을 감싸던 소용돌이가 힘없이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위상인 내가 고작 사슬에…….]
위상은 당혹스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너희 둘이 하나가 된 것이 온전한 위상이 된 것이라 하지만…… 정작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
루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위상을 향해 말했다.
“온전한 위상은 자신이 만든 세계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웃기지 마……!! 우리 역시 위상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세상을 정화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존재들이란 말이다!!]
위상의 외침에 루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그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삶을 보며 오히려 부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음을 알고 언젠가 분열될 것임을 직감한 것이지.”
[우리가……? 하찮은 필멸자를 부러워한다고?!]
“부정하려 하지 마라. 너희 역시 나를 낙원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었으니까.”
[그, 그건……!!]
“신은 가지지 못하고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알았기 때문이지.”
위상의 눈빛이 떨렸다.
“자율의지(自律意志).”
그 순간, 사슬이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남궁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 탄생하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신의 의지로서 행하는 것.”
위상은 분명 위대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규율 속에 얽매여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서 살아간다. 그것이 어쩔 때는 실망스러운 결말을 내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위상은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수행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지 않는다.
“나를 만든 온전한 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부족한 필멸의 자율성을 부러워했고, 그 욕망이 너희를 만든 것이다.”
[우…… 웃기지 마! 위상이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사슬 속에서 나타난 남궁이 위상을 감고 있는 사슬을 잡아당겼다. 위상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히며 남궁과 눈높이가 같아졌다.
“그래.”
남궁은 칠흑같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