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크윽……?!”
덴 하울의 목덜미를 언데드가 물어뜯었다.
“조심하십시오!!”
그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그에게 달라붙은 언데드를 떼어냈다.
“여기 치료를!!!”
쇄골이 보일 정도로 깊게 살점이 뜯겨져 나간 덴의 상처는 심각했다.
“괜찮습니다. 회복 마법은 저도…….”
부축을 하는 병사들에게 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상처 부위에 손을 얹는 순간 그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종결 마법이란 가장 강력한 마법 중 하나를 쓸 수 있는 그가 어째서 언데드에게 틈을 보 인걸까.
‘마법이…… 안 써진다.’
덴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단순히 마법이 써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마력이 사라진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하지만 치료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휴, 물론입니다. 덴 하울 님은 가장 중요한 전력인데요. 절대로 어려워 마십시오.”
지원부대에 있던 회복술사가 덴의 상처를 빠르게 살폈다.
상처는 깊었고 고통스러운 치료 였을 텐데도 덴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전력…….’
덴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스스로도 당혹스러웠다.
그들에게 분명 자신은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저들은 어떤 기분일까.
“여기 회복 포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력을 너무 많이 쓰신 것 아닐까요? 잠시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덴은 치료사가 건네는 포션을 받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마력이 사라진 거지?’
그는 다급히 몸 안의 마력을 다시 한번 운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맥 안은 텅텅 빈 것 마냥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이 사라진 마법사.
평범한 마법사에게도 마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겠지만 그는 더욱이 계시자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마력의 원천은 위상으로부터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마력이 끊어졌다는 것은…….
“위상이…… 소멸했다.”
꿀꺽―
덴은 마른침을 삼켰다.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덴은 상공을 바라봤다.
“뭐 하고 있어? 대단하신 팔무성께서 벌써 지쳐서야 쓰겠어?”
“어서, 가야지.”
“그래, 그래.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
주저앉아 있던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들려오는 목소리. 그들은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 함께 연구를 하던 동료들이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연구소에서 가운을 입고 있고서 연구를 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새하얀 가운 대신 마물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모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
덴은 그들을 바라봤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 또한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들고 있는 무기들도 제각각이었다. 게다가 그마저도 사실 문이 닫히고 생존자들에게 주어지는 기본 보상으로 산 것들이었다.
“마법을 더 이상 쓸 수 없어.”
“……뭐?”
“아무래도 마력이 사라진 모양이야. 나를 뽑은 위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그, 그런…….”
동료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쓸모가 없어졌어. 빌어먹을……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덴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며 자책했다.
마력이 사라진 지금 그는 이제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지키기 위해 싸우던 강자가 이제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가 된 것이었다.
“젠장…….”
언제나 차분하던 덴이었지만 그는 처음으로 어울리지 않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인 거지?”
사이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마물을 막으려 했었던 순간에도 결국은 남궁에게 도움을 받았었다.
각오를 다졌으나 언제나 남들의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다.
“야, 네가 뭐가 어때서? 변변찮은 우리들보다 훨씬 대단한 일을 해냈는데.”
“그래, 맞아. 솔직히 우린 너무 자랑스러운데? 함께 연구실에 있던 동료가 계시자라니! 평생 자랑거리라고.”
그들은 고개를 숙인 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들 좀 봐. 변해 버린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기껏 이런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 것뿐이잖아.”
“그래, 남들보다 좀 똑똑하다고 으스대던 시절이 정말 바보 같게 느껴질 뿐이지.”
“하지만 너는 우리와 달라.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을 해냈으니까. 솔직히 난 너를 보며 부러워 시기한 적도 많았어.”
“다니엘…….”
연구실의 동료 중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그리 말하자 덴은 짐짓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도 너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내가 계시자로 뽑혔었다면…… 나도 너처럼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고 말야.”
“내가 멋있어? 바보 같은 소리야.”
“맞아. 바보 같은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지. 네가 사이판에서 목숨을 걸며 싸우는 걸 보고 말야.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너 처럼 대단하진 못해도…… 이제 도망치곤 싶진 않으니까.”
다니엘은 덴 하울에게 가지고 있던 검을 건넸다.
“마법을 쓰지 못 한다고 해서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 이제부터 계시자 덴 하울이 아닌, 인간 덴 하울로서 싸우면 되지.”
“내 힘이 사라진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불안해할 텐데.”
“야.”
짜악―!
다니엘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덴의 등짝을 때렸다.
“네게 모든 걸 맡길 만큼 우리는 약하지 않아. 그러니 이번엔 우리가 앞장서마.”
동료들은 덴의 앞을 지나치며 말했다.
“잘 따라와.”
덴은 그들의 등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 * *
쾅―! 쾅――!!!!
전장을 휘몰아치는 번개 속에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주변에는 새까맣게 타 버린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고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시체 더미 아래에서 마법을 영창했다.
“……소민아. 괜찮아?”
그녀와 함께 있던 성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효주 누나의 참악 부대가 에이라 미쉘을 막는 데 성공한 것 같아. 광신술의 효과가 사라진 걸 보니 말이야. 그리고…….”
성우는 저기 멀리 명훈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의 검에 진웨이의 목이 잘리는 것을 확인하며 성우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이제 정리가 되어가고.”
“응, 다행이에요.”
“남아 있는 시체들을 상대하는 건 우리들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내 군신화도 아직 유지할 수 있고. 그러니까 이제 좀 쉬어.”
성우는 소민의 팔을 움켜 잡았다.
“나는 그냥…… 화가 나.”
“응?”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사람들은 그냥……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인데. 왜…….”
성우는 눈물을 훔치는 소민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왜 우릴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성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고개를 들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마치 총알이 발사되는 것처럼 재빨리 튀어나갔다.
“아빠!!!!”
소민은 남궁에게 와락 안겼다.
“고생했어. 소민아.”
“아빠…… 엄마가…… 엄마가…….”
“알고 있어. 위에서 모두 봤어. 정말 잘 해냈어.”
남궁은 어린 딸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꽉 안아 주었다.
“형님!!”
명훈이 그를 보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보지 않아도 진웨이와의 싸움이 치열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명훈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응. 다행히 여긴 정리가 되어 가는 모양이군.”
“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대리자 일족으로 되면서 전력이 보강된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 카니발이 끝나고도 넌 계속 훈련을 해왔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진웨이를 잡는 게 쉽진 않았을 거다. 모두 노력한 대가야.”
“감사합니다. 위상의 힘도 컸습니다. 해와 달의 관망자가 인류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꽃의 여왕을 비롯해서 탑의 이종족들까지 가세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언데드들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문제는 오히려 팔무성들일 거다.”
“네? 그들이 왜요?”
“위상들이 죽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대부분 소멸되었을지도 모르지. 위상이 죽으면 계시자의 힘도 사라져. 그렇게 되면 팔무성들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수준이 될 수도 있어.”
“그런…….”
“명훈아, 네가 아직 남아 있는 팔무성들을 찾아서 보호하도록 해. 해와 달의 관망자가 이곳에 강림했으니 적어도 알렉은 힘을 잃지 앓겠지. 그 녀석에게 연락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지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형님은요?”
“나는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 다시 가야 해.”
“혼자서요?”
“아니. 데리고 갈 사람이 있어. 그래서 온 거야.”
그의 말에 소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꽉 움켜잡았다.
“너는 이곳에 남아 있어.”
“엑?”
생각지 못한 남궁의 말에 소민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누군데요?”
남궁은 소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엄마와 함께 갈 거야.”
“어, 엄마요?”
“그래. 이 일을 끝내려면 수아의 힘이 필요하거든.”
“안 돼!! 아빠 설마 사령술을 쓰려고 하는 거야?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생각을 해!”
“사령술은 아니니까 걱정 마.”
그는 소민의 손바닥을 자신의 손 안에 포개었다.
“수아야. 항상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이제야 깨달았어. 내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가 길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란 걸.”
우우우웅―
소민의 손을 타고 옅은 빛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힘들겠지만 내게 힘을 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 엄마의 영혼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말이다.
“엄마……?”
“네가 전생으로부터 가져와 준 이 힘이 없었다면 나는 처음부터 무너졌을지도 몰라.”
시간축을 비틀고 처음 방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잠자는 소민을 보고 울던 자신을 감싸주던 옅은 아내의 영혼.
하지만 그건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님을 그에게 말해주려는 것이었다.
“내가 잘난 게 아니었어.”
남궁은 뺨을 어루만지듯 빛을 쓰다듬었다.
“위대한 것은 너였다.”
솨아아아악――!!
그 순간 빛무리가 남궁을 감쌌다.
영혼 계약과는 다른 느낌.
남궁은 아내의 영혼이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 옴을 느꼈다.
“우리의 아이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살아갈 이 세상을 위해.”
“아빠…… 엄마…….”
소민은 남궁이 마지막 싸움을 위해 돌아갈 것임을 직감했다.
“기다릴 수 있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 아니, 끄덕이려던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그러고는 남궁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이제 기다리지 않을래. 힘든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나는 아빠, 엄마 곁에 있을 거야.”
“소민아…….”
머뭇거리는 남궁과 달리 그를 감싸고 있던 빛무리가 마치 그녀를 안아주듯 흩날리며 피어 올랐다.
“그게 가족이잖아.”
딸의 목소리가 남궁의 가슴을 찔렀다.
새하얀 빛이 그들을 감쌌고 빨려 들어가듯 상공을 향해 흩어졌다.
세상의 종말.
혹은,
새로운 시작.
이제 곧 그 결말이 나올 것이다.
“다들 손님 맞을 준비를 해라.”
하지만 두려울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속에서 태산처럼 굳건한 명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형님께서 돌아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