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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65화 (265/270)

265화

[정말로 일을 저질렀군.]

[놀랄 것도 없지. 알고 있었던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막상 이게 현실이 되니 나도 모르게 떨리는군.]

[떨릴 게 뭐 있겠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도하는 것뿐인데.]

규류와 현류는 일렁이는 상공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림자 회랑에 들어갈 순 없지만 범상치 않은 하늘의 모습을 보며 신들의 싸움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도뿐이라…… 정말 그걸로 끝인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신들의 전쟁이다. 우리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해.]

현류는 냉정하게 말했다.

[인간 세계에 소환된 사자들을 막기 위해 야차들을 보냈어. 그들 역시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닌 우리와 같은 대리자 일족이니, 우리가 그들에게 관여하는 것이 규율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남궁의 세계를 최대한 피해 없이 지켜내는 것.]

[알고는 있지만…….]

현류의 말이 맞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남궁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계를 지키는 것일 터.

다만…….

[내키지가 않아.]

[어째서?]

[현류, 너는 남궁을…… 아니, 인간을 보며 느낀 것이 없어? 가장 약하다 생각했던 인간이 지금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어. 신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고.]

[그래서?]

[그, 그래서라니…….]

[너도 그림자 회랑에 가고 싶은 거냐? 네가 아무리 야차와 거인을 다스리는 수장이라 하더라도 위상에 힘에는 미치지 못해. 그런데 그 위상들마저 압도하는 태초의 위상과 싸우겠다고?]

규류는 현류의 말에 입술을 씰룩였다.

[인간을 가장 약하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우리의 잘못이었던 거지. 인간은 약하지 않고 가장 강한 종족 중에 하나인 거야. 그러니 그들에게 미래를 맡겨도 부끄러운 일이 아냐.]

[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군.]

규류는 현류의 말에 입술을 비쭉거렸다.

[인간이 강한 종족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저 회피에 불과해. 인간은 강하지 않았어. 다만 의지를 관철시키며 강해진 거다.]

[…….]

[그리고 그건 단순히 인간의 특질만은 아냐.]

꽈악―

규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야차도 할 수 있다.]

[너도 신이 되고 싶은 거니.]

그때였다.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연화의 목소리에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누, 누님…….]

[말해보거라. 규류야. 강해지고 싶은 이유가 일족의 수장을 넘어 신에 도달하고 싶은 것이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그를 돕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현류의 말처럼 인간 세계를 위해 싸우면 되지 않느냐.]

[그것도 분명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다만…….]

[다만?]

[저는 인간 세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그의 동료로서.]

연화는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엿한 전사(戰士)가 되었구나.]

그녀는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렇다면 그의 걸맞은 무기가 있어야겠지.]

[……네?]

[검묘에서 갓 태어난 아이란다.]

우우우웅…….

연화가 규류의 팔을 잡아당겨 뒤를 보게 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창이 하나 놓여 있었다.

꿀꺽―

마치 얼음을 갈아 만든 것처럼 투명한 창날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

연화의 혼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게 힘이 되어주거라. 일족의 전사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누님…….]

[뒤는 우리에게 맡기거라. 그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지킬 테니.]

규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콰아아아앙―――!!!

사슬과 위상의 주먹이 격돌했다.

날카로운 굉음이 터져 나왔고 새하얀 빛이 번뜩였다.

“으아아아아아―――!!!”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남궁은 포효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

아니,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저것이 정녕 인간과 신의 싸움인가…….]

“우리가 끼어들 자리가 없군.]

요르와 루는 남궁과 위상의 싸움을 보며 허탈한 듯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 모두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위상의 모습을 좇을 수 없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남궁의 모습까지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영역을 뛰어넘은 위상의 힘도 대단하지만 그 속도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는 남궁 역시 더 이상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우득…… 우득…….

검을 든 팔뚝의 힘줄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더 이상은 위험해!!]

무명의 외침이 들렸다.

“조금 더.”

하지만 남궁은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더 혈맥 안에 힘을 밀어 넣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누구보다 혈맥술을 잘 알고 있는 무명이었기에 지금 남궁의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

콰가가가각―――!!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지 못했다.

남궁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단순했다.

한 명은 주먹을 휘두르고 또 다른 한 명은 검을 휘두르는 것뿐.

신과 인간의 대결이란 거창한 이름이 없이 싸움의 양상만 놓고 본다면 그저 막무가내로 치고받고 싸우는 애들 싸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단순한 싸움에 내지른 주먹이 대지를 부수고 휘두른 검이 공기를 갈라 버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슬의 힘은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수아가 그 힘을 완벽하게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건가.’

온전한 위상이 남긴 마지막 힘, 린의 위력은 현재의 위상과 대등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의 역량의 차이는 힘의 격차를 만들어냈고, 아주 미세하지만 먹어치운 팔위상의 힘 역시 조금씩 전세를 기울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남궁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격(一擊).’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조급한 모양이로구나. 눈빛에서 의도가 보이는군.]

힘이 대등하다 하더라도 인간과 신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육체의 한계였다.

안타깝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 한 것은 남궁에게만 국한된 일이었다.

“흐압……!!!”

남궁은 손목에 감겨 있던 사슬을 풀어 【만악검】의 검날에 감고서 위상을 향해 휘둘렀다.

[느리구나. 느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맞지 않는 공격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지.]

“……그래?”

남궁은 미끄러지듯 검을 바닥에 박아 넣고서 그것을 축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몸을 돌렸다.

촤르륵……!!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다른 한 자루의 검을 뽑아 나머지 사슬을 감았다.

파칵―!!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공격이 먹힐 것 같으냐!!]

위상은 자신을 향하는 남궁의 검을 비웃었다.

[……?!]

검날은 분명 그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마치 위상의 몸을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반대로 검이 늘어나는 것처럼, 남궁의 검이 위상의 허리를 베었다.

치이이익……!

검날에 감긴 사슬이 위상의 살점을 태웠다.

[크윽!!]

위상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인상을 찡그리며 남궁을 바라봤다.

콰자자자자작―――!!!

남궁은 멈추지 않고 검을 뿌렸다.

콰아앙!!!

사방에서 폭발이 일었고 매서운 그의 공격이 위상을 노렸다.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쏟아지는 검격은 단 한 번도 위상에 닿지 못했다.

꽈아악……!!

위상이 남궁의 검을 움켜잡았다.

사슬에 손이 불에 데인 듯 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필중(必中). 반드시 첫 공격은 명중된다. 이 검이 가진 특징이지.”

남궁이 쥐고 있던 검은 다름 아닌 연화가 만든 17번째 검이었다.

“별것 아닌 검의 규율마저 벗어날 수 없는 걸 보니 너도 별 볼 일 없어 보이긴 마찬가진데?”

[닥쳐라!!!]

콰아아아―――!!

위상의 주먹이 남궁이 있던 자리를 내려쳤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17번째 검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궁!!!]

요르가 그 광경에 황급히 소리쳤다.

파앗―!!!

그때였다.

연기가 폭발하며 튀어나온 인영이 위상의 뒤를 노렸다.

남궁이었다.

탁―!!

타다다다닥―――!!!

살을 내어주고 뼈를 깎는 것.

위험한 도박이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할 때 필요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 상대가 신이라면 이 정도의 위험도 없이 이길 수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너무나도 깨끗한 공격이었다.

촤아아악―――!!

남궁의 검이 위상의 목을 베었다.

쿠웅……!

어찌나 힘을 쏟아부은 것인지 위상의 몸을 뚫고 그의 검이 바닥에 박혔다.

[아직 놈의 핵이 부서지지 않았어!!]

알고 있다.

보이는 육체는 허상에 불과했다.

위상의 본질은 영혼.

그것을 베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재생할 것이다.

“후웁……!!”

남궁은 숨을 참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박힌 검을 있는 힘껏 뽑았다.

목이 잘린 위상의 몸이 본능적으로 바닥에 박혀 있는 남궁의 검을 밟았다.

카아앙……!!!

“……!!!”

남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바닥에 박혀 있던 그의 검이 위상의 공격으로 인해 반으로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크큭…… 이제야 조금 볼만한 얼굴이 되었구나.]

위상은 남궁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그 얼굴을 내가 기억해 주마.]

남궁은 황급히 손을 더듬었다.

하지만 더 이상 위상을 공격할 무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싸울 수 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데…….

빠득―!!

남궁은 이를 갈았다.

[크하하하하하―――!!!]

위상의 거친 비웃음이 들렸다.

남궁은 날아오는 주먹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굉음이 들렸지만 고통은 없었다.

남궁은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규류?”

위상의 공격을 막아선 그의 모습을 보며 남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 괜찮으십니까. 이런 재밌는 싸움을 치사하게 혼자서 하고 계셨습니까!]

까드드득…… 끄득…….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위상의 주먹을 막고 있는 규류의 창은 당장에라도 부러질 듯 휘어 있었다.

[누님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창인데…… 진짜 말도 안 되는 힘이로군.]

규류는 있는 힘을 다해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 위상의 주먹에 결국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쿠웅―!!

규류는 등에 메고 있던 관과 같은 거대한 상자를 내려놓았다.

[검묘의 무구들입니다. 마음껏 골라 쓰십시오.]

촤르르륵……!!

놀랍게도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서 온갖 병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가 왜 여기에 온 거야?”

[그야 남궁 님이 여기에 계시니까요. 섭섭합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부르실 줄 알았는데.]

“너를 왜?”

[왜…… 왜냐니요!]

규류는 남궁의 되물음에 오히려 마음이 상했다는 듯 입술을 삐쭉거렸다.

[역갑술을 익혔잖습니까. 얻어맞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굽쇼.]

그는 자신의 가슴을 퉁퉁 때리며 남궁을 향해 말했다.

[제가 아니면 누가 형님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남궁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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