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야차…… 감히 네놈이 너희 대리자들을 창조한 내 앞을 가로막아?]
위상은 규류를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말은 바로 해야지? 확실히 대리자 일족은 우(无)에게서 태어났지만 지금 넌 우도 란도 아닌 괴물에 불과하잖아. 안 그래?]
[괴, 괴물?]
규류는 창을 고쳐 잡으며 위상에게 말했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어. 인간과 우리가 다른 점을 말이야. 어째서 인간은 강해질 수 있고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무는지.]
파밧―!!!
규류는 위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인간과 대리자 일족이 창조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에겐 열망을 주었고 대리자 일족에겐 공포를 주었다는 점이다.]
쾅―! 쾅―! 콰앙――!!
규류의 창끝이 위상에 닿을 때마다 맹렬하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처음부터 신이 그렇게 우리를 만든 것이지. 왜일까?]
위상은 규류의 공격을 쳐내며 그를 노려봤다.
눈빛이 닿는 것만으로도 규류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오히려 눈을 질끈 감으며 창을 몰아쳤다.
[그건 온전한 위상과 달리 우리를 창조한 신이 오히려 이기적이고 겁쟁이기 때문이지! 강한 힘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우리는 인간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항상 정체되어 있는 기분.
생각해 보면 야차의 무수히 많은 술법들도 결국은 야차 일족의 시조인 무휘의 【역진경】에 기반되어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었지. 우리의 창조자는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피조물에게서 느끼는 열등감 말이지.]
조금씩 변화는 있어도 결국 야차의 술법은 시조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단 한 명, 무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네가 만든 장난감 따위가 아니야!! 우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고 우리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스아아아악―――!!!
투명한 창날에 규류의 기운이 담기자 핏빛과도 같은 짙은 붉은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콰아앙―――!!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
규류는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그 어떤 때보다 더 완벽한 공격이라 확신했다.
[조잘조잘 시끄럽게 나불대는구나. 이제 다 떠들어댄 거냐.]
[……!!]
부러질 것처럼 아치로 휜 창대는 규류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큼 완벽했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고 창끝에 닿아 있는 위상의 모습은 마치 벌레가 문 것처럼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너희를 성장하지 못하게 가두어 창조하였다고? 멍청한 것…… 자신들의 부족함을 왜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는 거지?]
[뭐?]
[네가 말한 그 한계를 스스로 무너뜨린 자를 너도 알 텐데?]
규류는 위상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무명. 남궁과 함께 있는 저 영혼 말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선조를 뛰어넘었다. 이런데도 내가 너희들의 성장을 제한했다고?]
콰앙―!!!
위상은 자신을 찌르고 있던 규류의 창을 마치 파리를 쫓아내듯 손으로 치웠다.
[크윽?!]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그 한 번으로 규류의 몸이 크게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컥!!]
고꾸라진 규류가 피를 한 움쿰 토해내며 쓰러졌다.
[나는 너희들에게 공포를 심어준 적 없다. 공포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너희들의 성장 역시 너희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쿵― 쿵― 쿵―!!
위상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다.
[신에게 반기를 드는 용기도 없어 평생 대리자 일족으로 살아온 놈들이…… 성장과 진화를 입에 담을 수 있느냐.]
[쿨럭…….]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위상이 규류의 머리 위로 발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벌레를 밟아 죽이는 것처럼 위상의 발이 그대로 규류가 있던 곳을 내리쳤다.
[…….]
하지만 그 순간 위상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게 변했다.
[요르,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네 힘이 정녕 내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수십 마리의 뱀들이 규류를 둘러 싸 위상의 공격을 막아냈다.
가까스로 공격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하급 뱀들은 위상의 일격에 사방으로 터져 나갔고, 그 빈틈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규류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막을 수 있을까?]
위상은 다시 한번 발을 들어 올렸다.
“말이 많네. 정말.”
촤자자자자작……!! 콰각――!!
동시에 축이 되는 다리 위로 날카로운 전격이 스치며 마치 칼날처럼 위상의 발목을 그었다.
쩌저적……!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처럼 위상의 발목이 벌어지더니 거대한 몸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사, 살았다……?]
눈을 감고 있던 규류는 낯익은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소민 양……?]
규류는 신기했다.
자신의 덩치에 반의반도 안 되는 작은 소녀의 등이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걸까.
[……평범한 사상 마법이 아니로군.]
위상은 깨끗하게 잘려 나간 자신의 발목을 보며 그녀를 노려봤다.
펄럭―
그 순간 소민의 어깨 위로 요르가 뱀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망토를 둘렀다.
[그럼. 내 힘이 보태어진 마력이 평범할 리 없지.]
[천외의 망토……? 그건 남궁 님께 주신 것 아닙니까?]
[보물이 꼭 하나란 법은 없잖아. 그리고 이건 그에게 준 것 같은 하급품이 아냐. 이 몸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것이지.]
[하, 하급품이라뇨…….]
규류는 요르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영력과 마력의 융합인 뇌화에 위상의 힘까지 보태어졌다. 그야말로 신과 영혼, 그리고 자연의 힘이 합쳐진 것.]
요르는 위상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아무리 너라도 쉽게 볼 순 없을걸.]
[신……? 고작 네놈 따위가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느냐. 같잖은 것……!!]
콰가가가각……!!
소민의 뇌화가 다시 한번 위상을 향해 쏟아졌다.
위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아닌 그녀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전은 마치 뱀이 기어가듯 수평으로 뻗어나갔다.
카앙―!!
위상의 남은 다리에 닿기 직전 위상의 주먹이 소민의 뇌화를 부숴 버렸다.
[건방진…….]
유리 파편처럼 부서진 뇌화의 잔해들이 낙엽처럼 사방에 흩어졌다.
위상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서걱―
그 순간, 다시 한번 위상의 몸이 흔들리며 뒤로 쓰러졌다.
푹―! 푸푹―!! 푹―!!
지면 위로 사슬들이 튀어나와 쓰러진 위상의 팔과 다리를 움켜잡았고, 그 위로 남궁이 야차의 무구들을 사지에 찔러 넣었다.
[윽…….]
각종 무구들이 위상의 몸에 박힐 때마다 규류는 처음 남궁을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동화 속 거인처럼, 바닥에 쓰러진 위상의 몸에 수십, 수백 자루의 무구들이 박혔다.
“서운하게 한눈팔면 안 되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궁은 위상의 이마에 검을 밀어 넣었다.
[네놈의 공격이 통할…… 크아아아아!!!]
남궁을 비웃던 위상은 조금 전과 달리 그의 검이 몸을 찌르는 순간 마치 불에 데인 것처럼 지독한 고통을 느꼈다.
[제기랄……! 린의 힘이 아직도……!!]
생각지 못한 고통에 위상은 인상을 찡그리며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요르 녀석…… 내게 준 망토가 하급품이었다고? 하긴, 지금 내겐 그보다 더 대단한 게 있으니…….”
남궁의 뒤에선 아내의 영혼이 마치 망토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이마에 박힌 검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결국은 인간의 영혼 하나……! 네놈도 네 아내도 네 자식이 보는 앞에서 모조리 죽여주마!!]
“영혼 하나라…… 내가 말이야. 다른 건 없어도 딱 하나 남들보다 많은 게 있지.”
콰직―!!!
그 순간, 위상의 양팔 위로 검은 연기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양다리와 가슴 위에까지.
[영혼 병사…….]
규류는 쓰러진 위상의 위에 박힌 무구들을 움켜잡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콰직―!!!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박힌 무구들을 위상의 몸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규류가 뿌린 야차의 무구들은 마치 못을 박히듯 하나둘 위상의 몸에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무구들의 날에는 린의 사슬 조각이 박혀 있었고, 그 무구들이 위상의 몸을 파고들 때마다 악취와 함께 전신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우(无)여…… 너를 믿고 따랐던 시절이 슬프구나.]
위상의 앞에 선 레오릭은 천천히 검을 들어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레오릭……!! 이 배신자!! 감히 네놈이……!!]
[우린 배신한 것이 아니야. 오히려 네게 배신당한 거지. 네 말에 속아 우리 일족은 평생을 탑에 갇혀 지냈다.]
라테아가 도끼를 들어 위상의 어깨를 내려쳤다.
[……크아악!!]
[오직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일족들이여…….]
위상의 비명을 뚫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때가 되었도다.]
엘프의 왕, 아카샤 타누비엘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펄럭이는 망토 안으로 검은 연기들이 솟구쳤다.
솨아아악―――!!
휘몰아치는 연기 속에서 수십 명의 사신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위상의 몸에 박혀 있는 무구들을 뽑아 미친 듯이 찌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
무구를 휘두를 때마다 귀곡성이 들리는 것 같았고. 그 비명은 마치 그들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
위상은 거칠게 몸을 비틀었지만 자신의 몸을 옭아맨 사슬이 점점 더 단단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크르르……!]
[캭! 캬악……!!]
영혼 술사의 소환술로 소환된 언데드들이 양쪽에서 사슬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위대한 위상이여. 당신에게 원한은 없지만…… 세계의 종말은 비룡족의 종말로 이어지는 일일 터이니 싸울 수밖에. 나는 더 많은 미래를 보고 싶다.]
윌무스는 위상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렸다.
그의 브레스가 사슬을 타고 피어오르고, 사슬의 불꽃이 다시 한번 위상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원시성령이여.]
나트리엘이 불타오르는 사슬에 뿔을 들이받자 빛이 분산되는 것처럼 수십 가지 색깔의 빛 가루들이 뿌려졌다.
폭죽처럼 가루들은 타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오르며 순식간에 엘더 드래곤의 불꽃을 몇 배로 증폭 시켰다.
“그만.”
남궁의 명령에 영혼 병사들의 공격이 일제히 멈췄다. 몰아친 공격에 반쯤 녹아버린 위상의 몰골은 처참했다.
“신을 내려다보는 것도 나쁘진 않군.”
남궁은 떨리는 위상의 눈동자 위로 검 끝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