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67화 (267/270)

267화

후우…… 하아…….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토해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한 듯,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더욱더 많은 산소를 원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온몸이 으스러지는 느낌이로군.”

알렉 트라만은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미안하구나. 내 힘이 그대의 육체를 병들게 하는 모양이야.]

해와 달의 관망자, 두르가는 안색이 창백한 그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이 계셨기에 도시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알렉은 잠시 검을 내려놓았다.

긴장 가득 검을 잡고 있던 팔이 그제야 파르르 떨렸다.

“……감사합니다.”

죽은 자들이 부활했을 때만 하더라도 알렉은 저 많은 적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었다.

적의 수에 비해 싸울 수 있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내어줄 각오를 하고 임한 전장.

하지만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앞에 두르가가 나타났다.

그의 계시자로 뽑혔지만 실제로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위상과 함께 싸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알렉은 처음으로 계시자로서의 명예를 느꼈다.

“인간을 버리지 않으셔서.”

두르가는 알렉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

미소를 지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어쩌면 단 한 번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르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르…… 네가 인간을 사랑한 이유를 알겠군.]

위상들은 그저 계시를 내릴 뿐이었다.

그것이 신으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인간과 함께한 이 순간에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

살아 있음이었다.

“저들을 보십시오. 비록 끔찍한 상황이지만…… 저들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사자(死者)의 습격으로 인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래도 분명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알렉을 향해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알렉 역시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들에게 회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놀랍게도 수많은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산을 이룬 꼭대기였다.

[위상의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치고는 제법이로군.]

그리고 알렉이 만들어낸 시체의 산만큼이나 높은 또 다른 시체의 산 위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조금 억울할 만하겠어. 최강을 노릴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해 보이는 데. 하필 상대가 괴물이라니. 안 그래?]

카를로스였다.

악마답게 그는 끔찍한 시체의 산 위에서도 뒹굴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 게다가 그런 괴물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긴.]

“그리고 적이 될 뻔했던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싸우고 있고. 네가 우리 세상에서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알렉은 카를로스를 바라봤다.

“이제 와서 그런 것까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지.”

[미안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희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약속하지. 더 이상 악마는 인간 세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카를로스가 밟고 있는 시체의 산에는 악마들의 것도 섞여 있었다.

치열했던 전투인 만큼 악마들의 죽음도 적지 않았다. 그 전의 일에 대한 사죄라고 하기엔 우습지만 악마들은 마치 이곳이 자신들의 세계 인 양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걱정 말게. 저치가 허튼 생각을 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카를로스의 옆엔 드워프 쏜이 있었다.

두터운 갑옷으로 중무장한 그는 거대한 망치로 수많은 언데드들을 부숴 버린 뒤였다.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그건 한참 뒤의 일이잖습니까.”

“흠?”

“훗날 서로의 경계가 세워진다 한들 어쨌든 지금은 모두가 함께 있는 것이니까요.”

알렉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구분 짓는 일이 무의미한 것 같군요.”

동료(同僚).

낯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지금 이들의 관계를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았다.

“살아남아서 다행입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닐세.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확실히…… 또 다른 마물이 이 세계를 덮칠 수도 있겠지요.”

알렉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결과는 같을 겁니다.”

그의 눈빛엔 희망이 있었다.

“돌아오는 건 단 한 명일 겁니다.”

* * *

[……감히!!]

위상은 자신의 위에 올라서 있는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푸욱―!!!

하지만 남궁은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검을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아악!!!]

위상의 비명과 함께 남궁이 그의 몸에 밀어 넣은 검날이 파캉! 하는 소리을 내며 부서졌다.

“…….”

남궁은 가루가 되어버린 검날을 바라보며 남아 있는 손잡이를 뒤로 던졌다.

“역시…… 린의 사슬은 분명 네게 충격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린 역시 온전한 위상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본질은 같다는 건가.”

린의 힘만으로는 위상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숨통을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역시 쉽게 갈 순 없는 모양이군…….”

남궁은 아쉬운 듯 쯧― 하고 혀를 차며 위상의 몸에 박혀 있는 또 다른 검을 뽑았다.

[아무리 해봐라. 고작 그런 힘에 내가 소멸될 것 같으냐……!! 유한한 생명을 가진 네 육체는 서서히 죽어가겠지만 나는 영원히 존재 할 것이다.]

“글쎄. 네가 쉽게 죽지 않는다면 나도 쉽게 살게 해줄 생각은 없어.”

푸욱―!!!

남궁의 검이 위상의 옆구리를 베었다.

살점이 잘려 나가자 갈비뼈인 듯한 시커먼 뼈가 보였다.

[크아아아아!!!]

레오릭의 검이 위상의 뼈를 후려쳤다.

쾅―! 쾅―! 쾅―!!!

마치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처럼 레오릭의 검이 내려쳐질 때마다 조금씩 위상의 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내게 육신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공격이 내게 먹힐 것 같으냐!]

“우리도 이걸로 네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콰직―!!!

위상의 갈비뼈가 부러지자 틈이 생겼다.

남궁은 거침없이 녀석의 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빠!!”

소민이 그 광경에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그는 위상의 몸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너는 안 된다.]

“이, 이거 놔요!! 마력이 없어서 아빠가 모르는 거예요. 저 안은 끔찍한 혼돈 속이라고요……! 마력과 영력이 뒤엉켜 소용돌이 치고 있단 말이에요!”

자신을 막아서는 요르를 향해 소민이 소리쳤다.

[설마 저 녀석이 그것도 모를까. 마력이 없다 뿐이지 녀석은 혈맥술을 익혔다. 마력을 감지하는 건 너 못지않을 거다.]

낯선 목소리에 소민이 고개를 돌렸다.

[너도 그때 착각하지 않았더냐. 마법을 익혔냐고 물었던 순간이 있을 텐데.]

무명의 영혼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위상의 몸에 들어가기 전에 우릴 분리시켰어.]

그의 뒤에는 두 개의 영혼이 더 있었다.

라테아와 나타스의 것이었다.

[솔직히 저 끔찍한 곳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지만……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군. 마왕이나 되는 내가 겁을 먹었으니 말이야.]

[마왕이 뭐 대순가. 어차피 그에게 죽었으면서.]

[끄응…….]

나타스는 라테아의 말에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너무 걱정 마라. 레오릭이 함께 갔으니까. 그는 특별한 영혼이다. 위상의 파도 속에서도 남궁을 지켜줄 거다.]

[그래. 아버지라면 그를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소민은 여전히 불안한 듯 떨리는 눈빛으로 위상을 바라봤다.

“그럼 레오릭 아저씨는요?”

[……뭐?]

생각지 못한 그녀의 물음에 라테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어차피 죽은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죽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영체인 자신들마저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있었다.

[고맙구나.]

라테아는 낮게 웃으며 소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버지께서 그를 지키듯, 나는 너를 지키마.]

* * *

‘꼭 바닷속에 있는 것 같군…….’

몸을 감싸는 부유감과 동시에 묵직하게 짓누르는 압력과 칠흑 같은 어둠은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무모하긴…… 내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헤엄치듯 위상의 몸속을 지나는 남궁의 몸엔 검은 갑옷이 둘러져 있었다.

[지금 네가 상대하는 건 단순한 위상이 아니다. 팔위상들과 달리 온전한 위상은 차원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고.]

레오릭의 갑옷이었다.

[그 말은 몸 안에 차원의 힘을 머금고 있는 것과 같아. 자칫 잘못하면 위상의 핵을 찾기 전 몸 안에 있는 수많은 차원들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

‘녀석은 온전한 위상이 아냐. 린이라는 마지막 조각이 빠져 있으니까.’

[위상의 불안전함을 노리는 것이라도 이건 너무 위험해. 위상의 차원력은 끝없이 팽창되고 그로 인해 차원은 계속해서 광활해진다. 차원은 모든 것을 양분으로 삼는다. 내 갑옷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레오릭의 말처럼 남궁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이 조금씩 부식되고 있었다.

[이 넓은 곳에서 녀석의 핵을 어떻게 찾을 거지?]

촤르륵……!!

그 순간 남궁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사슬이 나선의 형태로 감겼고 그 끝에 작은 구체가 일렁였다.

‘네 말대로 린이 위상에게 없다 해서 녀석이 불완전하다고 볼 순 없겠지. 나는 불완전함을 노리는 게 아냐. 오히려 반대다.’

[반대……?]

‘아까 린의 힘으로 위상의 핵을 노렸을 때 오히려 검이 부서졌던 거 기억나지?’

[물론이지. 그래서 네가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거잖아.]

‘린 역시 결국 란과 우와 같은 온전한 위상의 조각이란 의미지. 그들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끌어당긴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하듯 린의 영혼이 심해 속 같은 짙은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린이 이끄는 곳에 놈이 있을 거다.’

[자, 잠깐…… 이건 이것대로 너무 위험한 것 아냐? 그 말은 린의 영혼과 위상의 핵이 만난다는 거잖아. 만약 반대로 위상이 린의 영혼을 먹어치우면?]

레오릭은 남궁의 말에 당혹스러운 듯 되물었다.

[더 끔찍한 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어.]

‘때로는 모험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니까.’

[이건 모험 수준이 아닌데…….]

‘저긴가.’

그 순간 레오릭의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린의 영혼 앞에 붉은 소용돌이 하나가 나타났다.

[……자신 있나?]

레오릭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스르릉―

남궁은 대답 대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