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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68화 (268/270)

268화

[정말 지독한 놈이로군…… 내 몸 속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차원 속과 같다. 불완전한 차원력은 영혼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붉은 소용돌이 속에서 위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너뿐만 아니라 네 동료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위험? 이런 건 위험이라고 할 수도 없어.”

여전히 검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남궁은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할 것이다.”

촤르르륵……!!

그 순간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류가 린의 영혼을 둘러쌌다.

[이것을 먹으면 내게 부족했던 마지막 조각을 채우게 되는 것이겠지. 온전한 위상이 된다는 것…… 네 말대로 전쟁이 곧 끝날 수도.]

와그작― 와그작―

소용돌이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그의 주위를 맴돌던 린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마치 사과를 씹어 먹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영혼을 먹어치운 소용돌이가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괜찮은 건가? 린의 영혼을 저대로 아무렇지 않게 먹게 놔둬도…….]

레오릭은 불안한 듯 물었다.

하지만 남궁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 없이 위상의 변화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게 린이 바라는 것이거든.’

[……뭐?]

레오릭에게만 들리도록 머릿속으로 얘기한 남궁의 말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힘은 확실히 위상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 하지만 그 정도의 위력으론 희망이라 칭하기엔 약해. 결국 린의 힘도 위상을 죽일 순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위상은 어째서 린을 남겨둔 것일까.

‘온전한 위상은 알고 있었던 것이지. 위상은 그것이 유일한 자신의 부족함이라 여기고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사실이잖아? 란과 우는 태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온전한 위상이 갈라진 것이고 그들에게 빠져 있는 건 린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린을 먹는다고 해서 그들이 완벽해질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이지?]

쿠그그그그…….

린을 먹어치운 위상의 소용돌이의 내부에서 어쩐지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존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으음…… 글쎄.]

‘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 그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니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 네가 그 지옥을 버티며 회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었으니까.]

‘그래. 그건 단순히 힘이 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야. 계시자들과 비교하면 전생의 난 보잘것없었으니까.’

하지만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아닌 자신이었다.

딸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

딸을 살리겠다는 열망.

그것이 남궁을 지옥 속에서 버티고 살아남게 해준 것이었다.

‘힘이 있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온전한 위상이 된다 해도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자신을 잃어버린다…… 설마?]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란과 우는 온전한 위상의 욕망만 떨어져 나온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녀석들은 모든 걸 갈구하지.’

[그렇겠지. 인간마저 시기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래서 자신들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린을 먹게 되면 온전한 위상으로서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크륵…… 크륵…….

린을 삼킨 위상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시작되었군.”

남궁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욕심이 스스로 독을 삼키게 만든 것인가. 이대로 란과 우의 이성이 사라지고 온전한 위상으로서 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온전한 위상이 된다 해도 그 역시 사라져야 한다.’

[왜……? 온전한 위상은 루를 만들었잖아. 인간을 사랑하는 존재라고 생각되는데?]

‘인간을 사랑한 건 루지 온전한 위상이 아니야.’

[……뭐?]

남궁은 눈을 감았다.

루의 계시자인 아내의 영혼이 자신에게 스며들었을 때, 그는 아내가 가지고 있던 루의 기억들을 볼 수 있었다.

‘루는 모든 필멸자들의 감시자라고 했다. 그는 인간을 비롯한 많은 존재들을 만들었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단죄하는 처단자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했어.’

[처단자라니…….]

‘하지만 루가 탄생한 이후 온전한 위상이 란과 우로 갈라지면서 그를 제약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지. 그래서 팔위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해.’

남궁은 여전히 검을 쥔 손을 풀지 않았다.

‘그 어떤 신이라도……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피조물을 사랑할 순 없는 법이니까.’

[산 넘어 산이로군.]

촤르륵……!!

레오릭은 영혼의 힘을 끌어 올렸다.

남궁이 두르고 있던 갑옷 위로 푸르스름한 막이 덮여졌다.

[미안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그만둬. 네 영혼까지 갑옷 안에 녹일 필요 없어. 영혼력이 모두 사라지면 영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산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할 리 없잖아.]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그만둬. 밖에 라테아가 기다리고 있는 걸 잊었어?’

[내 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살려 보낼 거다.]

콰가가가강……!!

갑옷을 감싸던 영혼력이 폭발하자 남궁의 육체 안으로 레오릭의 힘이 밀려 들어왔다.

[보잘것없는 사자(死者)의 것이지만 그래도 한 시대에 이름을 남겼던 힘이다.]

‘……너의 힘이 보잘것없다고?’

남궁은 혈맥을 타고 밀려오는 힘을 받아들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지금껏 너보다 더 강한 자를 본 적이 없어.’

[영광이로군.]

오랜 세월 영혼 병사로 함께 해왔지만 레오릭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오릭의 영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처럼 묵직하고 단단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분명 느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남궁은 헤엄치듯 위상의 소용돌이를 향해 달려갔다.

[남궁, 너와 둘뿐이었던 때 말이야.]

레오릭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남궁은 소용돌이를 향해 검을 밀어 넣었다.

‘우린 함께 돌아갈 테니.’

* * *

카아앙―!!!!

검이 부러졌다.

충격으로 남궁의 몸이 휘청거렸고 몸에 두르고 있던 갑옷의 일부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갑옷을 덮고 있던 푸르스름한 막도 군데군데 깨져 더욱 흐릿해졌다.

‘……괜찮아?’

공격을 당한 것은 남궁인데, 그는 오히려 물었다.

레오릭에게 향한 것이었다.

‘…….’

하지만 아쉽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막이 그가 소멸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대화를 나눌 여력도 없이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상황일 뿐.

[기대 이상이자 기대 이하로군.]

소용돌이는 하나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체형은 건장한 남성의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아리따운 여성 같았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성별이 다른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충만한 힘이로다. 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힘이야. 이것이 위상으로서 린이란 조각이 채워졌을 때 가질 수 있는 온전한 힘인가.]

란과 우가 합쳐졌던 위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남궁의 눈앞에 서 있는 위상은 전혀 다른 위상이었다.

“후우…….”

남궁은 부러진 검을 더욱 꽉 움켜잡으며 낮게 숨을 토해냈다.

“한 가지 묻지. 너는 온전한 위상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무슨 뜻이지?”

[우리는 기억의 전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갈라지기 이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란과 우의 기억뿐. 다만 그저 느낄 뿐이지. 그렇기에 이 힘이 진짜라는 것을 안다.]

“……란과 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린의 계획은 아무래도 틀어진 모양이군.”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마지막 조각이었던 린이 합쳐지면서 란과 우의 기억이 소멸되고 새로운 인격의 위상이 태어나길 기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적은 안타깝게도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짓이었지만 덕분에 완벽해질 수 있었다. 네게는 고마움을 표해야겠군.]

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팟―!!

남궁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순간, 위상이 그의 앞에 천천히 팔을 저었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남궁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느려진 것 같았다.

단 하나, 위상의 손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퍼억―――!!!

위상의 주먹이 남궁의 복부를 내려쳤다.

아픔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쿨럭…….”

수미터를 구르다시피 밀려 나간 뒤에야 남궁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놀랍다. 네가 대단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힘을 이 정도까지 버텨낼 줄은.]

바닥에 쓰러진 남궁은 검붉은 핏덩이를 연신 뱉어냈다.

저벅― 저벅― 저벅―

위상은 그런 그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너 정도의 필멸자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겠지. 걱정 마라. 인간을 소멸시키지 않을 테니.]

방금 일격에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정신마저 아늑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아, 하아…….”

바닥에 쓰러진 남궁은 당장에라도 눈을 감고 싶었다.

얼마 동안 싸운 걸까.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은 강철 같은 남궁의 의지를 서서히 녹슬게 만들었다.

[칠 일이다. 네가 이곳에 있었던 시간.]

위상은 마치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이 창조되었던 날만큼 너는 내게 반기를 들었다. 훌륭하군.]

스르륵―

위상은 그를 들어 올렸다.

힘없이 축 처진 남궁의 몸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쉽게 들어 올려졌다.

[너의 죽음이 나머지 인간의 삶을 지 줄 것이다. 기뻐해라. 모든 차원 중에 너희 인간들만은 살아남을 것이고 너는 영웅으로 남을 테니.]

위상은 그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축제는 영원이 계속될 것이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직 단 하나의 대리자 일족이 이 축제를 영원히 이어갈 테지.]

찢어진 입꼬리는 인간이 아닌 흉물스러운 괴물처럼 귀 끝까지 길게 이어졌다.

[바로 너희 인간.]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

어둠 속에 위상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성별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목소리는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너희들은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삶을 준 너를 인간들은 영원히 원망하겠지!!]

위상은 쏟아내듯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감히……!! 감히 신에게 반기를 든 네놈들을 쉽게 죽여줄 것이라 생각했느냐!!]

푸욱―

그때였다.

위상의 웃음을 뚫고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

멱살이 잡힌 채 허우적거리던 남궁이 힘겹게 들고 있던 부러진 검을 그의 팔목에 박아 넣었다.

빠득―!!

그 모습에 위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위상은 잡고 있던 남궁을 거칠게 던졌다.

콰드드득―――!!

내동댕이쳐진 그는 다시 한번 수차례 바닥에 튕기며 밀려 나갔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거냐! 너란 인간은 진정 끔찍하구나!! 이제 와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다 죽어가는 남궁의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억 한 듯 소리치는 것은 위상이었다.

[……왜 절망하지 않는 것이냐! 왜 울부짖지 않는 것이냐!!]

“아직…… 싸울 수 있으니까.”

위상은 보고 싶었다.

자신을 이토록 끔찍하게 괴롭힌 인간이 슬퍼하는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끝끝내 눈앞의 인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위상의 감정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싸울 수 있어? 웃기지 마라……!그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다고……!!]

“있지.”

그 순간 남궁은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렸다. 부러진 팔은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기껏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정도.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거.”

그는 신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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