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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포칼립스의 폭군-269화 (269/270)

269화

[미친……!!]

위상은 남궁의 제스처에 인상을 찡그리며 붙잡고 있던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콰아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남궁이 바닥에 꽂혔고, 그를 두르고 있던 갑옷이 산산조각 났다.

치이이익…….

부서진 갑옷 조각들은 힘겹게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영혼이 꺼지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이제 너를 지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

[비참하구나. 포기를 모르는 인간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지.]

비틀거리는 남궁을 보며 위상은 말했다.

[너는 왜 우리를 원망하지? 카니발을 통해 너희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필멸자들이 역사를 세웠다. 그 역사 속에서 무수한 발전을 이루었고 너희는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위상은 말을 이어갔다.

[이번 카니발도 마찬가지였다. 카니발의 규율대로 그저 살아남고 승리했다면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너는 굳이 카니발을 종결시키고 위상들을 사라지게 하겠다며 란과 우를 깨웠지.]

쿠드드드드…….

위상이 손으로 남궁의 몸을 가리키자 그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턱―!

손가락을 꺾자 남궁의 몸이 위상에게로 날아갔다.

“큭……!!”

위상이 다시 한번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린과 루까지 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으니 결국 나를 완성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위상은 남궁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이 세계를 망하게 한 건 네놈이다.]

“싸울 수 있다…….”

빠득―

그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위상이 이를 갈았다.

[지긋지긋한 놈……!! 도대체 왜 포기를 하지 않는 거냐.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텐데……!! 살려달라고 빌어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란 말이다!!]

“크, 크큭…… 가장 위대한 신이란 자가 바라는 것이 고작 그런 거라고? 확실히…… 너는 온전한 위상이 아냐. 아니, 신이라 불릴 수도 없는 놈이지.”

[……뭐?]

“넌 기껏해야 란과 우가 만들어낸 괴물에 불과해.”

[감히……!!!!]

위상은 일그러진 얼굴로 남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만 포기하란 말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왜 하려는 거지? 진심으로 너 따위가 나를 이길 거라 생각한 것이냐!!]

“싸울 수 있어.”

[……?]

그 순간 위상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껏 남궁이 반복해서 한 말이 어쩐지 자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 수아야.”

쩌적…… 쩌저적……!!

그때였다.

위상의 오른쪽 가슴에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뭐, 뭐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저린 고통에 위상의 형체가 크게 흔들렸다.

“지지 말자. 절대로.”

남궁은 그 순간 눈을 감았다.

위상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균열 속에서 하나의 빛무리가 피어올랐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인간의 영혼 따위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거지?]

위상은 몸을 뚫고 나오는 빛이 수아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빛은 점점 더 커져갔고 놀랍게도 남궁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위상의 피부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위상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서서히 벌어지는 가슴의 틈을 막으려 양팔로 스스로를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그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은 더욱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 힘이 단순히 인간의 영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빌어먹을 린……!! 네놈의 짓이었구나!!]

쩌적……! 쩌저저적……!

그 순간 위상의 가슴이 열리고, 새어 나온 빛이 줄기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그래. 맞아. 란도, 우도 아닌, 그렇다고 온전한 위상도 되지 못하는 편협한 위상이여.]

[닥쳐……!! 분명 먹어치웠을 텐데……? 잘근잘근 씹어 조각을 내어 삼켰을 텐데! 왜 아직 네놈이 살아 있는 거냐!!]

[네가 삼킨 건 내 영혼이 아니다.]

빛무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슬펐고 슬픔 속에 뜨거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뭐?]

위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전 남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설마? 내가 먹어치운 게 비천한 인간의 영혼이었다고……?]

[비천하다는 말을 담기엔 나의 계시자는 고귀하다. 너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지.]

그의 말에 대답하듯 빛무리가 일렁였다.

남궁은 그 모습에 눈을 감았다.

‘진정하자…….’

차가운 위상의 차원 속에서 느껴지는 옅은 온기는 마치 아내의 것같이 느껴졌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고마워. 수아야.’

위상의 몸속에 들어왔을 때 남궁이 꺼낸 영혼은 단순히 린의 것만이 아니었다.

린의 영혼 안에 숨겨놓은 아내의 영혼.

그리고 위상이 린의 영혼을 먹어 치우려던 순간 아내의 영혼이 린의 영혼을 감쌌다.

린의 계시자였기에 그녀 역시 당연하게도 린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위상이 속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먹어치운 영혼이 린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수아의 것이었다.

그 덕분에 린의 영혼은 위상에게 흡수되지 않을 수 있었다.

반대로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 위상은 더욱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위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위상이 탄생한 것이었다.

란과 우가 합쳐졌을 때보다 더욱더 짙은 욕망의 신이 말이다.

솨아아아악……!!

위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사슬이 되어 그의 사지를 옭아매었다.

[이것 놔……! 놓으란 말이다!!]

위상이 발버둥칠 때마다 사슬은 오히려 그의 힘을 흡수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야. 발버둥 칠수록 사슬은 너의 힘을 더욱 먹어치울 거다.]

[내가……! 고작 이따위에……!!]

위상은 린을 향해 포효하듯 소리쳤다.

[포기해라. 사슬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온전한 위상의 힘이다. 인간의 힘에 물든 너는 절대로 사슬을 끊을 수 없을 테니.]

린은 그를 향해 말했다.

[빌어먹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를 속인 것이더냐!]

위상은 서서히 감겨 오는 사슬을 움켜잡으며 남궁을 바라봤다.

[남궁. 끝을 내거라. 오직 그대만이 이 축제의 막을 내릴 자격이 있으니.]

그 순간 린의 영혼이 남궁의 손바닥 위로 날아 들어갔다.

우우우웅…….

둥근 그의 영혼이 길게 늘어나더니 검의 형태로 변했다.

꽈악―

남궁은 검을 움켜잡았다.

그의 손이 닿는 순간 검날에 오러가 솟구쳤다.

[잔혹한 인간이여…… 자신의 아내마저 희생시켜서까지 이기려 하다니. 이것이 정녕 네가 원하는 것이냐.]

위상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궁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큭큭…… 사람들은 널 영웅이라 칭송하겠지. 하지만 결국 네가 죽인 거다. 네 아내를 말이야.]

[놈의 말을 들을 필요 없다. 자네 말대로 이 모든 것은 그녀의 계획이었으니까.]

“알아. 이제 와서 고작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아.”

[잘난 척하지 마라. 너는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 설령 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저주일 것이다!]

콰직―!!

그 순간, 남궁의 검이 위상의 가슴을 꿰뚫었다.

[크아아아악!!!]

검은 벌어진 가슴 속에 보이는 위상의 핵에 정확히 박혔다.

꽈드득……!!

남궁은 검을 비틀었다.

그리고 마치 유리가 깨지듯 비튼 검날이 산산조각 부서졌다. 수많은 파편들이 위상의 몸 안에서 폭발하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폭죽을 터뜨리는 것처럼 빛을 뿜어내며 사라지는 빛의 입자들.

“축제는 끝났다. 빌어먹을 새끼야.”

남궁은 눈을 감았다.

* * *

[고맙다.]

남궁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타일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군데군데 세상이 깨어지고 있었다.

떨어진 세상의 조각 뒤로 보이는 광원.

“감사의 인사는 수아에게 해야지. 그녀가 없었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녀의 희생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지. 그녀에게 너무 큰 빚을 졌군…….]

부서진 빛의 입자들이 모이며 린의 형상을 이루었다.

[빚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자네만큼은 돌아가게 해주겠네.]

린은 허공에 천천히 손을 저었다.

치직…… 치지직…….

그러자 저 멀리 보이는 광원 속에 작은 통로가 만들어졌다.

[위상의 몸속은 하나의 차원과 같으니…… 차원을 이을 수 있다면 문을 만들어낼 수 있지.]

남궁은 일렁이는 통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곳은 사라지고 있다. 내 힘 역시 이 세계와 함께 사라지고 있으니 통로의 끝이 안전할지는 미지수로군.]

“그럼?”

[차원력을 대신할 힘이 있다면 통로가 유지될 수는 있겠지.]

“차원력을 대신할 힘이라…….”

[이를 테면…… 영혼이겠지.]

린은 그 말을 끝으로 한 곳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남궁이 아닌 다른 이에게 말하고 있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 순간 레오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었나.”

[애초에 죽은 상태인데 살아 있냐고 물으니 뭔가 우습군. 뭐, 운이 좋게 아직 소멸되진 않았어.]

위상과의 전투에서 힘을 소진한 듯 레오릭의 형상은 린의 것보다 더욱 흐렸다.

[약속했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돌아가게 할 거라고. 내 영혼을 갈아서라도 저 문을 유지할 테니…….]

레오릭은 남궁의 어깨를 밀었다.

[가라. 딸이 기다리고 있잖아.]

“…….”

남궁은 아무런 말 없이 린이 만든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고마웠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린과 레오릭은 남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난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뭐?]

하지만 결의를 다진 그들에게 남궁은 피식 웃었다.

“축제가 끝나면 어른들은 돌아가는 아이들의 손에 풍선이라도 하나씩 쥐여 주기 마련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빌어먹을 축제라도 선물은 있는 법이거든.”

둘은 남궁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위상의 혜택.”

그것은 카니발에서 유일하게 위상이 인간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끝났잖아. 그 덕분에 마지막 마물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일 텐데?]

“글쎄. 내가 알기론 아직 선물을 주지 않은 위상이 있을 텐데.”

[설마…….]

남궁의 말에 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淚).”

태초의 인간이자 남궁 대신 팔각전의 힘을 이어받아 위상이 된 존재.

▶ 태초의 빛이 열립니다.

린이 만들어낸 통로를 통해 황금색의 빛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난 누구도 포기하지 않아.”

그 순간 남궁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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