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장. 과거로 온 헌터 (2)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상호는 굳게 닫혔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며 완전히 떴다.
맨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의 나뭇가지들과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밝은 햇살이었다.
그것을 멍한 시선으로 보면서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죽지 않은 건가.’
꼼짝없이 죽게 되리라 생각했던 그로선 지금 보이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비로소 본인이 명백히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허억!”
놀라며 벌떡 상체를 일으킨 상호는 자신의 몸 곳곳을 손으로 만져댔다.
어디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상호는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꿈은 아니겠지?”
다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마지막의 상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공간의 비정상적인 풍경이 아닌 평범한 숲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사히 탈출했음을 확신시켰다.
“하, 하하.”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상호는 잠시 동안 실컷 웃었다.
이 순간만큼은 무신론자였지만 신의 찬양하지 않을 수 없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아난 것을 자축한 뒤에 다음으로 상호가 한 일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일단 총기며 다른 장비는 탈출 당시에 거추장스러워 죄다 벗었기 때문에 가진 것은 나이프와 라이터, 그리고 바지 옆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초코 바 하나가 전부였다.
다음으로 같이 공략에 나섰던 헌터들을 찾았다.
“뭐야 다 어디 갔어?”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사람 그림자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변의 풍경도 아공간 진입 전에 본 모습과 많이 달랐다.
분명 생명력이 소진되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비쩍 마른 나무만 있었는데, 지금 이곳은 풍성한 나뭇잎으로 넘치는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란 숲이었다.
“설마 다른 곳에 떨어진 건가?”
그 때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계화되었던 지역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다른 지역으로 튕겼을 가능성도 전혀 제로는 아닌 것이다.
이 생각이 미치자 상호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군대와 헌터에 의해 보호받는 안전 지역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국토 어디든 안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냥 평화로워 보이던 풍경도 이제 그렇지 않게 생각되었다.
상호는 다시 헌터로서의 감각을 끌어올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난 죽은 목숨이겠지. 제길, 이번에도 운이 따라서 살아 돌아갈 수 있으려나.”
상호는 푸념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늘 이렇게 목숨에 경각에 달릴 때면 헌터가 된 것이 후회가 된다.
‘진짜 이번에 살아 돌아가면 헌터 짓 때려치운다.’
마음속으로 그리 생각하는 상호지만 과연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몇 번이나 과거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상호는 대학을 다니던 중에 몬스터 사태를 맞이했다. 당시 상황에선 대학 졸업은 고사하고 도시를 습격한 몬스터로부터 살아남는 것에만 전념해야 했다.
곧 군대에 의해 1차적인 위기가 끝나고, 이어서 헌터가 대두되면서 더 이상 위협받는 삶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했기에 결국 고민하다가 헌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육군 보병으로 병장 전역을 했다는 했다는 등 딱히 잘난 부분도 없고, 평균 이하의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가졌던 상호는 초짜 시절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었다.
어찌어찌 운으로 살아남으면서 헌터 일을 통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경쟁이 치열한 몬스터 코어 우선권을 사서 그것을 취했다.
몬스터 코어는 상호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고 그 힘을 통해 좀 더 쉽게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위험한 몬스터 토벌에 참가해 돈을 벌었다.
돈을 벌기 위해 몬스터를 죽이고, 몬스터를 보다 쉽게 죽이기 위해 돈을 쓰는 악순환을 반복하다보니 일반인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결국엔 헌터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돈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일단은 산을 내려가서 도로를 찾자. 그러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겠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했기에 상호는 서둘렀다.
하지만 지금 있는 산속은 생각보다 깊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나침반이 없지만 헌터의 기본 소양으로 배운 독도법으로 방향을 가늠하며 계속 움직였는데도 도로나 민간 시설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아, 하아.”
몇 시간이나 산속을 헤맨 상호의 전신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럼에도 상호가 쉬지 않는 것은 아직까진 해가 지지 않았다지만 이대로라면 밤을 산에서 꼼짝없이 보내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차츰 밀려왔기 때문이다.
“도로다!”
비탈진 언덕길에서 작은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선 상호의 얼굴이 한껏 기쁨으로 상기되었다.
드디어 언덕 아래로 평평하게 닦인 좁은 비포장도로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제 됐다. 밤을 산에서 보내지 않을 수 있겠어.”
대부분의 시골 마을들은 안전을 위해 주민이 소개된 상태다.
이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이 어디든 당장 안전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산에서 추운 밤을 보내며 몬스터의 습격을 걱정하는 것보다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도 쉴 수 있는 주택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터였다.
“응?”
이때, 상호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인 듯했지만 몬스터일 가능성도 있었다.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상호의 눈이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했다.
도로 옆 깎아지는 절벽에 의해 가려졌던 부분에서 한 무리의 집단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본 상호의 눈은 크게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 옷차림새는?”
상호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대열을 갖추고 이동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삿갓처럼 생긴 투구를 쓰고 긴 창과 조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뿔이 달린 것 같은 투구에 네모진 판처럼 생긴 보호대를 허리와 어깨에 매단 갑옷을 입고, 등에 커다란 깃대를 꽂은 채 말을 타고 있는 무사가 있었다.
이러한 군대의 모습은 딱 전국시대 후기 시점의 일본의 군대와 동일하였다.
몬스터가 나타난 이후론 드라마 제작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대신에 예전에 했던 것들의 재방송을 많이 해줬다. 그중에는 『불×의 이순신』 같은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도 있었다.
상호는 헌터가 되고 사냥을 나갈 때가 아니면 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어 터라 그런 사극을 즐겨봤기에 눈앞에 나타난 군대의 정체를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설마 드라마 촬영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황 상태가 된 상호는 바위 뒤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때, 상호에게 있어 너무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오오!”
짐승의 것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목소리도 아니다.
오직 살기로만 가득 채워진 이 소리는 헌터인 상호가 질릴 정도로 들어본 소리였다.
“설마?”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호는 납작 수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상호가 가진 특수한 능력인 ‘매의 눈’ 스킬이 발동되면서 그의 동공이 변화를 나타냈다.
이를 통해 상호는 1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의 상황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 볼 수 있었다.
앞서 왜군이 지나온 길을 따라 달려오는 황토색 피부에 어린아이보다 약간 큰 체구를 가진, 간신히 치부만 가죽으로 가린 괴물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 고블린이었어!”
상호는 자신의 짐작이 맞은 것에 탄성을 터트렸다.
“칙쇼!”
“우와아악!”
후미를 공격당한 왜군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나름 전국시대를 거치며 전장에서 뼈가 굳은 강병들이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 앞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살육당할 따름이었다.
“陣を備え戦え!”
말에 탄 사무라이가 호령하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상호의 귀에까지 닿았다.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취미로 일본 애니메이션 감상을 십 년 넘게 한 덕에 웬만한 일본 말은 머릿속에서 자동 번역을 할 수 있었기에, 바로 저 말이 병사들에게 ‘무능한 놈들! 진을 갖추고 싸워라!’라고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왜군 무장은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부하들의 추태에 분노를 마구 터뜨리더니 급기야 도망치던 한 명의 목을 허리에 차고 있던 일본도로 베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도망치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왜장의 일갈에 도망치던 일반 군졸, 아시가루들은 명령에 따라 대열을 정비했다.
터무니없이 긴 창을 든 창병이 앞에 서서 고블린의 접근에 대비하고 그 뒤에서 조총을 든 조총병들은 화약을 재고 사격을 준비했다.
‘느려!’
현대의 화기에 익숙해진 상호의 눈에 조총을 장전하는 모습은 너무나 답답해 보였다.
조총병들이 장전을 하는 동안, 창을 든 창병들을 향해 고블린들이 과감히 뛰어들었다.
몇몇은 창에 찔려 그대로 죽어나갔지만 다른 놈들은 긴 창을 교묘하게 피하며 뼈로 만든 단검을 마구 휘둘러 빈틈이 생긴 창병의 목과 겨드랑이, 허벅지를 찌르고 벴다.
“크헉!”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창병들. 하지만 그들의 희생 덕분에 조총병들이 방포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발사!”
조총들이 일제히 희뿌연 연기와 함께 총탄을 발사하자 막 코앞까지 달려왔던 고블린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한차례 사격이 끝나자 조총병들은 재차 사격을 하기 위해 주섬주섬 화약을 쟀다.
나름 정예병이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꽤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멀리서 이것을 보는 상호가 볼 땐 그게 아니었다.
‘저딴 걸로 고블린을 상대하겠다고? 미친 것 아냐!’
겉보기엔 약해빠져 보이지만 고블린은 결코 얕잡아볼 상대가 아니다.
실제 게이트가 수시로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많은 종류의 괴물이 나타났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민간인과 헌터를 죽인 게 바로 고블린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총기로도 쉽게 해치울 수 없는 게 몬스터인데 그런 적을 고작 화승총 따위로 상대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다.
그런 상호의 생각대로 고블린들은 총격에도 불구하고 둘 셋씩 왜병에게 붙어서 살해를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창병들이 완전히 무너지니 뒤에 있던 조총병들도 고블린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키키킥!”
“아아아악!”
억센 손길로 갑옷을 강제로 뜯어낸 고블린들은 사정없이 손톱을 세워 무자비하게 배를 찢고 그 안의 내장을 끄집어냈다.
이러한 무참한 살육이 공포를 심었고 결국 다시 살아남은 왜병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줘!”
그러나 등을 보이고 도망친 자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키야앗!”
“케켁!”
고블린들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등을 내보인 자들을 덮쳤고 주저 없이 찌르고 베었다.
어느새 살아남은 자는 말에 탄 무사밖에 남지 않았다.
무사는 허리에서 일본도, 혹은 왜도라 불리는 검을 뽑아내며 소리쳤다.
“크윽! 이 요괴들아! 가시마 가문의 이야미를 우습게 보지 마라!”
그런 다음 기세 좋게 말을 타고 고블린들이 있는 곳으로 돌격하였다.
말이 달려오는 방향에 있던 고블린들은 황급히 좌우로 흩어졌다.
그런 놈들 중에 굼떴던 한 놈은 말발굽에 치여 저만치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이야아압!”
무사는 왜도로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들을 연거푸 베어나갔다.
하지만 혈혈단신으로 싸우기엔 고블린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크윽!”
막 베인 고블린에게서 검을 빼려던 무사는 자신의 말에 매달린 고블린들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킥! 킥!”
“카카캇!”
고블린들이 곧 말의 다리도 붙잡았다. 그렇게 매달린 놈들의 등을 타고 다른 고블린들이 올라가니 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되었다.
급기야 무게를 이기지 못한 말이 옆으로 쓰러지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사와 고블린들도 덩달아 땅에 나뒹굴었다.
“칙쇼!”
겨우 다시 일어나 왜도를 휘둘러 간격 안에 들어온 고블린들을 베던 무사의 등 뒤에 고블린이 달라붙는다.
“놔라, 이놈!”
무사가 놈을 떼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 한 마리를 시작으로 팔다리에 고블린들이 차례대로 들러붙자 무장은 일본도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다.
그 틈에 고블린들은 갑옷을 뜯고 얼굴에 쓴 귀신 형상의 가면도 억지로 떼어냈다. 그리고는 마치 어린 아이가 개구리를 잡아다가 가지고 놀듯 눈알을 손가락으로 후벼 뽑고 귀를 잡아 뜯었다.
“아아아악!”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들려왔지만 상호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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