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장. 광해군을 구하다 (1)
다음 날이 되고 상호는 관청의 앞에 나가서 하루 종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수고에도 불구하고 내관의 얼굴은 고사하고 사람 한 명 보지 못했다.
“그 영감탱이를 그냥······!”
상호는 그다음 날이 돼도, 또 그다음 날이 돼도 별다른 소득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관청에 쳐들어가 내관의 멱살이라도 잡고 내 호랑이 가죽 내놔라,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됨을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인내하며 기다릴 따름이었다.
“워어, 길을 비켜라!”
“뭐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거리의 분위기를 감지한 상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앞에 있는 거리로 무복을 입은 이들이 말을 타고 가로질러갔다.
이 순간, 상호의 눈길은 검은 말을 타고 내달리는 젊은 청년의 얼굴에 꽂혔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이들이었다. 그 모습이 신경이 쓰인 상호는 마침 같은 것을 구경하던 갓을 쓴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뭔가.”
“방금 지나간 군관들은 지금 어디로 가는 거랍니까?”
“자네는 아직 소문을 못 들었는가. 세자 저하께서 요즘 곤경에 처한 고을을 돕기 위해 직접 가신다고 하더군.”
“네?”
“도대체 그 요괴라는 게 진짜 있는 것인지. 아무튼 세자 저하께서 병사들을 이끌고 가시니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테지.”
노인의 말에 상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이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호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믿을 수 없는 내시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이 기회에 광해군에게 접근하는 게 좋겠어.”
상호는 바로 광해군이 토벌을 하기 위해 향한 곳이 어딘지 수소문하였다.
다행이 장돌뱅이 중 이 근방에 일어난 요괴 소동에 대해 아는 자가 있었다.
“여기서 하루 반만 가면 송로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요 며칠 새 변괴가 잇따라 일어났지.”
약 50가구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최근 밤마다 가축이 없어지고, 외곽에 있던 초가집에서 일가족이 사라지는 등, 괴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멧돼지나 노루를 잡기 위해 만들어둔 올무에 인간 모습의 괴상한 생물체가 잡히는 일도 벌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단매로 그 괴생물체를 두들겨 때려잡고 지방 관아에 이 사실을 고했다.
하지만 관아는 전쟁 통에 그런 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무시를 해버렸다.
그리고 이틀 뒤, 올무에 잡혔던 괴물과 비슷하게 생긴 괴물들이 대거 나타나 마을을 습격했다.
그 결과, 수십 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쳤고 젊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괴물들의 손에 납치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되니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또는 급히 도움을 청하는 장계를 광해군에게 보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 피해를 낼 정도라면 이미 게이트를 통해 꽤 많은 수의 몬스터가 넘어온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면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토벌에 나선 광해군이 지휘하는 토벌대가 장차 분명 큰 곤경에 처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광해군을 내가 구한다면 환심을 살 수 있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여기까지 생각을 한 상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리하여 상호는 토벌에 나선 광해군을 쫓아 송로촌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향하게 된다.
*****
곧장 길을 떠났지만 말을 타고 움직인 광해군 일행을 따라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길이 잘 닦여 있는 현대와 다르게 험난한 산길을 통해 목적지로 가야 하는 만큼 상호는 휴식도 마다하고 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허억, 도착, 했다.”
꼬박 밤을 새어가며 달리고 또 달렸다.
몬스터 코어를 통해 강화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강행군이었기에 지금 상호의 상태는 파김치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힘겹게 마을로 진입하는 고개를 넘은 상호의 눈에 마을의 풍경이 보였다.
불타 버린 집과 울타리, 마른 핏자국들이 아직도 습격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이 흔적만 봐도 이곳에 닥쳤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토벌군은 어디에 있지?”
마을로 들어선 상호는 곧 토벌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행군을 마치고 마을에 도착해 삼삼오오 모여 솥단지를 걸고 음식을 준비하는 군졸들의 복장은 제각각이었다.
이번 토벌군엔 궁궐에서부터 세자인 광해군의 호위를 위해 따라온 군관 여덟에, 5위 중 하나인 의흥위에 속한 갑사 50명, 그리고 이곳 지방군 소속의 병사 70여 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 토벌군을 지휘하는 것은 정 5품 창신교위에 있는 남지만이라는 무관이었다.
상호는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돌아다니며 광해군이 있는 곳을 찾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자가 하룻밤을 머물 곳이니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을 찾으면 간단한 일이었다.
“저 기와집에 광해군이 머물고 있는 게 분명해.”
이 산골 마을에서 유일하게 양반 노릇을 하던 사람이 살던 작은 기와집이 광해군이 하루를 머무는 곳이었다.
담벼락 주위로 군관과 군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감히 접근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토벌에 들어가면 호위 인원도 적어질 테고 접근할 기회도 생길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상호는 토벌군의 동향을 살피며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당장 멀쩡한 집들은 토벌군이 다 차지한 통에 반쯤 불타다 남은 집에 은신해야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음식 하나 입에 넣지 못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마을 한 구석에서 쪽잠을 청하였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 날을 맞이했다.
“각 대, 대열을 갖춰라.”
마을을 습격한 괴물들을 토벌하기 위해 해가 뜨기 무섭게 군졸들이 짐을 챙기고 대열을 갖췄다.
토벌대의 준비가 끝나자 기와집에서 두정갑을 입은 젊은이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전 날, 지나쳐가던 토벌대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그 사람이었다.
주변 군관들이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젊은 남성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보아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왠지 눈이 가더라니, 저 사람이 바로 광해군이구나.’
상호는 광해군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토벌대는 요괴가 최초 목격되었다는 산으로 출발하였다.
“슬슬 뒤따라가 볼까.”
이쪽의 존재가 토벌군에 들키지 않고 뒤를 쫓아야 했다.
하여 상호는 거리를 적당히 두고 토벌군을 뒤따라갔다.
목적지가 산이기에 말은 마을에 둔 토벌군은 곧 여러 소집단으로 나뉘었다. 아무래도 산속에 있는 요괴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수색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쯧! 이 인원에 구닥다리 장비를 갖고 쪼개질 생각을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그래.”
전문적인 몬스터 사냥을 해온 상호의 눈엔 토벌대의 모습은 마치 유치원생들이 소풍 나온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몬스터 레이드는 호랑이 사냥 같은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흉포하고 또 위협적인 전투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어떤 의미론 인간보다도 더 영악한 놈들뿐이라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쳐들어갔다간 모두 줄초상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서 그런 말을 해도 믿어줄 리 만무하겠지.”
그리고 뭣보다 광해군의 위기 때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계획을 위해서는 지금은 토벌대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 상호에겐 더 좋았다.
상호는 여럿으로 나뉜 토벌대 중에서 광해군이 포함된 집단을 확인하고 그 뒤를 뒤따랐다.
점점 산길이 험악해지고 산의 경사도 심해졌지만 광해군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장검과 등에 활 통을 매고 꿋꿋이 걸음을 옮겼다.
그 주변을 호위 무사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고, 주변에선 스무 명 남짓의 병사들이 경계를 하며 산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약 150m 정도 떨어진 아래쪽에서 상호가 그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별일은 없어 보이는데······.’
상호는 바위 틈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위쪽으로 이동하는 광해군 일행을 살폈다.
그러는 그의 오른손엔 조선 낫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이것은 아까 있던 마을에서 나올 때, 무기로 삼고자 빈 집에서 슬쩍 빌린 것이었다.
“음······?”
뒤를 쫓아 산 위쪽으로 이동하려던 상호는 ‘매의 눈’ 능력으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되는 거리를 초정밀하게 볼 수 있는 이 특수 능력에 발견된 것은 땅에 떨어진 지 아주 오래되어 퇴비화된 낙엽이 들썩거리는 모습이었다.
‘뭔가가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낙엽 더미가 미세하게나마 움직인다는 것은 저 안에 뭔가가 숨어있단 소리였다.
산짐승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곧 상호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지금 저런 기척이 한 곳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광해군과 그 수행원들이 기척이 느껴지는 산 윗부분을 향해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떤 녀석들이지?’
상호는 이에 ‘매의 눈’ 능력을 더욱 활성화해 기척이 느껴지는 지점을 더욱 자세하게 살폈다.
그 결과, 낙엽 밑에 숨어 있는 것이 고블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게이트가 있는 방향인 모양이군.’
고블린은 비록 몬스터 중에서도 최약체지만 교활함은 꽤 있는 편이다.
기습이나 매복 같은 전술도 쓸 줄 알고 함정 같은 것도 설치해 헌터들을 애먹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고블린들이 은신해서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저쪽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는 광해군과 수행원을 보면서 상호는 손에 땀을 쥐었다.
한 편, 고블린들은 교활한 몬스터답게 그 흉성을 바로 폭발시키지 않고 사람들이 좀 더 오기를 기다렸다.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세자 저하.”
“난 괜찮네.”
“언제든 힘드시면 소인에게 말씀하십시오.”
자신이 가는 길에 어떤 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광해군은 곁을 수행하는 군관과 담소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양측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절호의 기회를 엿보며 뛰쳐나갈 준비만 하던 고블린들의 눈은 살의로 번뜩였다.
‘이대로 보내면 광해군이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위기에 처한 광해군을 돕는다는 계획도 좋지만 동시에 광해군의 안전을 생각 안할 수 없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상호는 뭔가 수를 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 고블린들은 무방비의 인간들을 바로 칠 수 있게끔 거리가 최대한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런 놈들을 지금 바로 끌어내려면······.’
매복한 고블린들의 신경이 최대로 예민해있다는 것이다.
상호는 이 사실을 인지하며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
바짝 마른 것이 일시에 힘을 줘 부러뜨린다면 소리가 꽤 크게 들릴 것 같았다.
“좋아, 이거면 되겠어.”
상호는 위를 보면서 두 손으로 잡은 나뭇가지를 그대로 힘껏 꺾었다.
콰득!
마른 나뭇가지를 단숨에 꺾을 때 나는 그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긴장하여 산으로 오르던 광해군과 그 수행원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상태로 매복하였던 고블린들에겐 이 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들렸다.
그랬기에 이 소리는 양측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되었다.
“카아앗!”
“캬오오!”
의도와는 무관하게 소리에 의해 자극을 받은 고블린들이 당초 예정보다 일찍 몸을 숨긴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나타난 고블린의 숫자는 약 30~40마리 정도였다.
“헉!”
“적, 적이다!”
고블린들을 발견한 군관과 군졸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것에 더 자극받은 고블린들은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무기를 들고 산비탈을 따라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인데 생전 처음 보는 고블린의 모습에 군관과 군졸들 모두 너무 놀라 제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곧 세자인 광해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떠올린 호위 무사들이 검을 뽑으며 일갈했다.
“모두 무기를 응전하라!”
“세자 저하를 지켜야 한다!”
외침이 잇따라 들리니 그제야 군졸들도 무기를 들고 싸울 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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