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9화 (9/127)

二장. 광해군을 구하다 (3)

상호는 두 사람에게 우선 몬스터에 대한 설명부터 하였다.

“지금 이 땅에 출현한 존재들은 아마도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기괴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과연 어디서 왔을지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건 생각지 못하였네. 도깨비나 요괴가 조선 팔도에 출현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네.”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들은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또 존재합니다.”

상호의 말에 광해군의 동공이 순간 커졌다가 작아졌다. 그만큼 놀랐다는 것이리라.

사실대로 미래에서 왔다고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아직 시간 이동에 대한 개념이 없는 조선 시대 사람들한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말한 것이다.

뭐 도교나 불교에서 선계나 지옥 같은 별개의 세계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 있어 이 부분은 이해시키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상호는 그런 그에게 미리 이쪽 시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끔 가공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 요괴들은 본래라면 이어지지 않을 세계에 사는데, ‘전이문’을 통해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전이문이라는 게 무엇인가.”

“쉽게 말해, 두 세계를 잇는 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괴들이 사는 세계라니, 마치 산해경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구나.”

광해군은 놀랍게도 조선 시대에는 ‘괴력난신’이라 하여 천대받던, 기괴한 일에 대한 기록이 담긴 산해경을 아는 모양이다.

광해군은 콕 찌르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저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에서 온 자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뭣이라!”

생각도 못한 대답에 광해군은 체면을 챙기지도 못할 만큼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광해군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상호를 보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선계에서 온 신선이라는 건가?”

“음,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신선이 뭔지는 안다.

도를 닦아 불로불사를 이뤄 하늘로 올라간 이들을 신선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광해군이 그쪽으로 상호를 오인한 모양이다.

상호는 이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상대의 오해를 이용하는 편이 앞으로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사실 신선까지는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그 단계로 가려고 하던 선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허어!”

상호의 말에 광해군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상호는 지금 바뀐 설정에 맞춰 다시 말을 지어내 이어갔다.

“본래 도를 닦던 몸인 제가 이 땅에 온 것은 세상을 어지럽힐 요괴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함입니다.”

“도저히 믿기 어렵군. 정녕 신선이 실존했단 말인가.”

“아마 믿기 어려운 얘기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여 그 증거를 보여 드리죠.”

자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광해군의 신뢰를 보다 확실히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상호는 이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었다.

광해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인다면 내 그대를 귀하게 대할 것이나, 만약 거짓을 고했다면 바로 참형에 처할 것이다.”

“절대 실망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상호는 자신 있게 답했다.

그리고 한 식경 후, 상호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준비가 되었다.

“우선 기본적인 제 능력을 보여 드리죠.”

상호는 군졸들이 썼던 장창을 손에 쥐었다.

그것을 한 자루도 아니고 세 자루 모아 두 손으로 든 후, 상호가 한 일은 바로 격파였다.

우드드득.

수수깡 부서지듯 세 자루의 창대 모두가 깔끔하게 부러졌다. 그것도 오로지 팔의 힘으로만 말이다.

“허어.”

광해군은 이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장사라 불리는 자들조차도 해내기 힘든 일을 딱히 힘을 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호가 해내니 탄성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의 곁을 지키던 호위 무사인 임 무관은 냉철하게 말하였다.

“장창을 맨 손으로 세 자루나 부러뜨리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놀라운 재주라고 볼 만한 것은 아닙니다. 허니 이것만 보고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사료되옵니다.”

“크흠, 그렇군.”

상호는 태도를 바꿀 뻔했던 광해군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내심 혀를 찼다.

‘이럴 때에 찬물을 확 끼얹다니.’

사실 이 정도는 몬스터 코어의 힘으로 쉽게 신체 능력을 올릴 수 있는 헌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확실히 차력을 하는 것으로 보여질 테니 이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긴 했다.

하여 상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세자 저하.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제가 보인 힘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게 아니라 요괴들 중에서 특별할 존재들이 품고 있는 신비한 보옥을 취한 덕분에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잠시만, 방금 그 말을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라.”

방금 전의 상호가 한 말에 광해군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이 모습에 상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끼를 딱 물어버렸어!’

방금 전에 상호가 보여준 괴력은 광해군에겐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이 선천적인 게 아니라 후천적인 요소로 얻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지금 조선은 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전쟁을 지휘하는 광해군의 입장에선 믿기 어렵더라도 일단 넘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살던 곳에서도 이와 같이 요괴들이 나타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신통력을 부릴 수 없는 저 같은 자는 그들과 맞서 싸울 힘이 없었지요.”

21세기 미래를 선계로 바꾸고 헌터를 선인을 바꿔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상호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광해군은 무척이나 관심 깊게 들었다.

“···이리 하여 요괴로부터 얻은 힘을 토대로 육체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신통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실로 믿기지 않는 이야기로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요괴에게서 나온다는 보옥은 마치 전설에나 나오는 용의 여의주와 같은 것이겠군.”

“네. 이 보옥의 힘을 취하면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일당천의 무장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만약 요괴를 토벌해서 그런 힘을 가진 자를 백 명, 천 명 이상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이 나라를 공격한 왜군들을 격퇴하고 다시 섬으로 쫓아버릴 수도 있겠죠.”

“······.”

은근히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부담감을 가진 광해군한테 있어서 지금 들려온 말은 너무나 솔깃한 말이었다.

상호는 광해군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자 자신이 가진 또 다른 능력을 보이기로 했다.

“단순히 힘이 강해지고 몸이 날쌔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제가 얻은 특수한 능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상호는 그리 말하고 몇 가지 준비를 부탁했다.

과연 어떤 재주를 보여줄까 궁금해 하며 광해군은 곧 병졸을 부려 필요한 것을 준비케 했다.

첫 번째 시험은 약 200보 떨어진 거리에 놓여 있는 과녁 한가운데에 붙은 화선지에 적힌 아주 작은 글자를 식별해 내는 것이었다.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지만 똑같이 베껴 그리는 것이라면······.’

상호는 처음 써보는 붓글씨로 깨알 같은 글자를 똑같이 써 내려갔다.

여러 획의 어려운 글자들을 정확히 맞추어 나가자 이를 보는 광해군의 표정이 시시각각 놀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그 놀람이 절정에 달한 것은 상호가 숙련된 궁수가 직선으로 쏘아 날린 화살대에 적힌 글자를 맞췄을 때였다.

상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근의 산에 올라간 군졸이 가진 물건을 알아맞히는 일도 막힘없이 해내었다.

제아무리 시력에 자신 있는 자라고 해도 이러한 재주를 펼칠 수는 없다.

이 정도 되니 광해군은 물론이고 부정적이던 임 무관조차 상호의 놀라운 재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신통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재주이도다.”

“이밖에도 몬스······ 아니, 요괴들을 잡으면 얻게 되는 보옥을 통해 더더욱 놀라운 신통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가능합니다.”

“그 말인 즉, 나도 이런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단 얘기군.”

광해군은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말하였다.

이러한 힘만 자신과 그리고 조선의 군대가 취할 수만 있다면 평화로운 이 땅을 침략한 왜적들을 무찌르고, 나라의 지존인 자신의 아비가 볼품없는 모습으로 북으로 몽진하는 굴욕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임 무관이 광해군에게 충언을 올렸다.

“실로 놀라운 신통력은 분명하나 그래도 요괴라는 존재에게 얻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사대부들이 이러한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사특한 괴력난신의 힘을 취했다고 상소를 빗발치게 보내올 것입니다.”

“으음.”

임충의 직언에 광해군은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유교의 나라다 보니 괴력난신, 혹은 귀신이나 불가사의한 힘에 의존하는 것을 사도로 본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조선의 국본이 될 세자가 그런 힘을 이용한다는 게 알려지면 유교를 깊이 숭배하는 선비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광해군은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광해군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본 상호는 재빨리 그에게 제안 한 가지를 하였다.

“외부의 시선이 껄끄러워 망설여지신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뭔가 좋은 대안이라도 있는 것인가?”

광해군은 상호가 의견을 제시하자 크게 관심을 보였다.

사실 상호는 광해군을 만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선 나름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 만큼 그것을 극복한 방안을 곧장 답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 모두 요괴의 힘 같은 미지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진 않을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국입니까. 당장 이 국토를 유린하는 외국의 군대가 있고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요괴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야 말로 그들을 무찌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민중들에게 큰 의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야 그렇겠지.”

“보옥을 통해 얻은 힘으로 국가를 지키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하면 누구라도 그 힘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열변을 토해내는 상호의 모습에 광해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상호는 기세를 타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만 당장 세자 저하께서 이러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반발이 클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외부의 다른 세력이 이 힘을 바탕으로 왜군과 요괴를 토벌하게 함으로써 이 힘이 나라를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자들에게 그 힘을 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리되면 후일 그것이 나라가 해가 될 지도 모르지 않은가.”

“물론 그런 걱정을 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조정에 충성하는 선별된 인원에 한해서 힘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세간의 분위기가 좋아지면 그 때는 조정이 나서서 그들을 품는 것으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 참 혜안이로구나.”

광해군은 상호의 제안을 무척이나 좋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갖는 부담은 적고 또 얻을 수 있는 게 크니 그로선 마다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자네가 보여준 그러한 능력을 가진 병사가 백 명, 아니 천 명만 되도 능히 우리 땅을 침략한 왜적을 모두 몰아낼 수 있겠지.”

“분명 그럴 것입니다.”

“자네 제안에 따라 일을 은밀히 진행하는 게 좋겠군. 나 역시도 직접 나서서 도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최대한 지원을 해주겠네.”

광해군의 이 말에 상호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을 다시 꺼냈다.

“저하, 괜찮다면 한 가지 더 청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말해보라.”

“이번 일은 저 말고 적합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게 이 일을 전부 위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제까지 한 말은 모두 이것을 위한 밑밥이었다.

상호는 자신의 가슴에 한 손을 얹으며 호소력 있게 말했다.

“요괴 토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직접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하긴 요괴에 대해 일면식이 없는 우리보다야 선계에서 도를 닦았고 요괴들에 잘 아는 그대가 훨씬 이 일의 적합자일 테지.”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상호는 광해군을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그의 조력을 받게 되었다.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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