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4화 (14/127)

三장. 고블린을 격퇴하라 (3)

상호는 자신이 쏜 화살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중해 전방을 보았다.

털썩.

“엥?”

상호는 자신이 노린 고블린이 아니라 옆에 있던 녀석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고 빗나간 화살이 우연히 옆에 있던 놈에 맞은 것이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예상치 못한 이 결과에 상호는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대장으로서 본을 세웠으니 된 셈이다.

“에잇!”

“여차!”

상호의 한 발이 신호가 되었고, 열 명 남짓의 인원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누가 조선 사람 아니랄까 봐 쏜 화살 대부분이 정확하게 표적인 고블린들에게 명중했다.

“키이익!”

“캬카칵!”

남은 고블린들이 쓰러진 놈들을 보더니 경고의 소리를 발하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임충과 다른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스르릉.

가장 선두에 나선 임충이 화려한 춤사위를 뽐낸다.

몬스터 코어의 힘을 받은 탓일까, 전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담은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고블린들이 피를 뿌리며 저 만치까지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남윤수, 남율 부녀도 검을 들고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

남윤수도 그렇지만 뜻밖에도 율도 빼어난 검 솜씨로 손쉽게 고블린을 베어 넘겼다.

‘믿음직스러운 걸.’

상호는 세 사람의 활약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이 표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무예를 전문적으로 익힌 세 사람과 다르게 나머지 인원의 근접전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카앗!”

“우아아악! 이거 놓지 못혀!”

몸에 올라탄 고블린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얼굴을 마구 할퀴자 위로 묶었던 상투가 마구 풀어헤쳐지는 줄도 모르고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그 모습에 율은 좌익세(左翼勢)로 날을 위로하여 수평으로 얹은 다음, 오른발을 내디디며 달라붙은 고블린의 목 등을 베었다.

머리가 떨어지고 몸통도 의병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그것을 본 상호도 나서게 되었다.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막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는 고블린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화살을 쏴 도망치려는 놈들을 쓰러뜨렸다.

고블린들이 이렇게 섬멸되니 아까까지만 해도 쩔쩔매던 자들이 한 마디씩 했다.

“별것도 아니구만.”

“그러게 말이여.”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상호는 실소를 지었다.

한 명이 조금 다치긴 했지만 스무 마리 가량의 고블린을 해치우는 데 성공하니 토벌대의 사기는 크게 올랐다.

다시 산 정상 쪽을 향하여 이동하게 된 토벌대.

“저것이 뭣이다냐?”

“세상에나.”

산 정상 부근에서 대낮인데도 눈에 띌 만큼 빛나는 타원형의 구멍이 모두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상호야 익숙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이들을 향해 상호는 말했다.

“너무 겁먹을 것 없습니다. 저것만 파괴하면 더 이상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것을 빨리 없애도록 하지.”

괴물들이 나타나는 원인이라는 말에 임충이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하지만 이때!

“캬오오오오!”

산중이 떠나갈 기세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다들 그 포효에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는 가운데, 몇 명만이 그나마 공포를 이기고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상호만이 이 소리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었다.

‘드디어 수호자의 등장인가.’

게이트 키퍼, 로드는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자신이 이쪽 세계에 넘어올 때에 지나온 게이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동종의 몬스터보다 몇 배나 강력한 힘을 게이트로부터 받는 조건으로 게이트의 수호에 대한 의무를 갖는 로드는 게이트의 반경으로 일정 거리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지금의 포효는 게이트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경고이자 남은 부하들에게 침입자를 제거하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상호는 얼른 주저앉은 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곧 놈들이 우리를 해치기 위해 몰려들 테니 다들 싸울 준비를 서둘러요!”

“아, 알겠네.”

상호의 말에 비로소 사태 파악이 된 사람들은 엉거주춤 일어나 무기를 고쳐 잡았다.

잠시 뒤, 상호의 말대로 게이트가 있는 위쪽에서부터 수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떼 지어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다분히 많은 숫자에 무기를 든 민병들 사이에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허이구! 천지신명이시여.”

“저것들을 다 어떻게 상대한다냐. 도망쳐야 하는 것 아녀?”

이런 분위기에 참다못한 임충이 눈을 부라리며 호령했다.

“행여나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만약 도망치는 자가 생긴다면 바로 내가 그를 벨 것이다!”

좋게 말한다고 해도 카리스마라는 부분에서 모자람이 있는 상호를 대신해 강한 카리스마로 인원들을 통제하는 임충이 없었다면 필시 큰 곤혹을 치렀으리라.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은 상호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고는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오기 전에 먼저 총통을 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어서 발사 준비를.”

“그렇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네.”

얼떨결에 온 다른 민병들과 다르게 총통을 다루는 자들은 세자를 따라 이천까지 온 군기시의 군관이었다.

본래 화약을 다루는 자답게 신속하게 분대의 인원들을 독려하여 발사 준비를 진행했다.

산길을 오르는 데 짐만 되었던 총통이 바닥에 깔리고 그 안에 화약과 탄환이 들어갔다.

제대로 된 준비도 안 되어 있고 포수 역시 임시변통이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선 없는 것보단 나았다.

발포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중간에 고블린들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을 써먹어볼까.’

상호는 이천 무기고에서 가져온 동그란 공 형태의 비격진천뢰를 한 손에 들었다.

“에이잇!”

상호는 투포환을 던지듯 화섭자로 불을 붙인 비격진천뢰를 냅다 전방으로 던졌다.

보통 장정의 힘으론 어림도 없을 만큼 멀리까지 심지에 불붙인 비격진천뢰를 연속해서 던진 상호는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몸을 숙여요!”

이 외침에 다들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한편, 고블린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비격진천뢰가 떨어진 지점까지 왔다.

치이이익.

짧은 시간 동안 심지가 타들어가고, 마침내 던져진 그 장소에서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폭발이 거하게 일어났다.

폭발과 부서진 철편이 고블린들을 다진 육편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고블린들은 폭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도 없는지 동료의 시신을 짓밟으며 접근해 왔다.

“지금입니다!”

상호의 외침이 들리고 승자총통에서 포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명중률은 절대 기대할 수 없는데다가 사정거리도 형편없이 짧지만 조란환을 꽉꽉 채워 전방에 쏘니 효과는 지대했다.

“케엑!”

선두에 온 이십여 마리가 피 떡이 되어 쓰러진다.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놈은 몇 놈 되지 않지만, 눈알이 날아가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어 전투력이 격감된 놈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초반 주도권은 잡아냈다.’

한 번 사격 이후 재장전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사격전은 애초에 무리였다.

상호가 총통과 비격진천뢰를 통해 노린 바는, 고블린의 전력을 깎아냄과 동시에 한풀 죽어버린 사기를 되살려 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확실히 잘 먹혔다.

“타핫!”

임충이 앞장서서 달리자 다른 자들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그 뒤를 따랐다.

경사진 산비탈에서 양측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리고 그 속엔 상호도 있었다.

“하압!”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머리통이 함몰된다.

검은 물체가 연달아 휘둘러질 때마다 주변의 고블린들이 잘도 날아간다. 지금 상호의 두 손에 들린 검은 물체는 바로 포졸들이 사용하는 육모 방망이다.

‘역시 이쪽이 나한텐 더 낫군.’

많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장검보다는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효과적인 둔기가 상호로서는 더 다루기가 편했다.

퍼억!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한계까지의 근력을 바탕으로 내지르는 상호의 일격에 고블린들은 피를 뿌리며 연신 쓰러져갔다.

그렇게 상호를 중심으로 앞에 나간 이들이 활약을 펼치니 다른 자들도 사기를 높이며 잘 싸워나갔다.

“키이익!”

“앗, 놈들이 물러난다.”

삼분의 일로 숫자가 줄자 고블린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놈들은 등을 돌려 산 위로 달아났다.

“이놈들, 게 섯거라!”

고블린의 피로 절여진 환도를 든 임충이 눈을 부라리며 뒤를 쫓았다.

그러자 승리감에 도취된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냉큼 따랐다.

“잠, 잠깐! 일단 재정비를 하고 가야 합니다!”

상호는 황급히 제지를 하려 했다.

사기가 오른 것은 좋지만 무턱대고 뒤를 쫓는 것은 위험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만류하는 상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미 상호는 뒷전이고 죄다 임충을 따라 저만치까지 가버렸다.

“아, 진짜!”

이런 사냥에선 지휘관, 즉 커맨더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문제는 커맨더로서 상호의 카리스마가 임충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젠장!”

하는 수 없이 뒤늦게나마 사람들을 따라 산 정상 쪽으로 향하는 상호였다.

산 정상에서 좀 내려온 자리에 위치한 평평한 땅.

밑에서 올라와 바위로 이뤄진 사이를 지나면 약간 내리막길이 있고 그곳에 평평한 땅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게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우뚝 선 우람한 체격의 고블린이 한 마리 있다.

철판을 엮어 만든 조잡한 갑옷에 자기 몸과 길이가 비슷한 월도를 든 놈의 앞에는, 그 짧은 사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네다섯 명의 사람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피를 흘리는 임충이 있었다.

“거봐, 이럴 줄 알았다니깐.”

고블린 로드는 게이트의 영향을 받아 다른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갖고 있다.

겨우 한 번 코어의 힘을 받았을 뿐인 임충이나 제대로 된 싸움법도 모르는 자들이 덤벼서 이길 상대가 아닌 것이다.

탄식하던 상호의 눈에 한 사람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로 율이었다.

쇄애애액!

칼바람 소리와 함께 호쾌하게 뻗은 칼날이 고블린 로드의 가슴팍을 노린다.

그러나 그 일격이 닿기도 전에 고블린 로드가 민첩한 움직임으로 뒤로 뛰었다. 그런 다음 반월형의 검신을 가진 월도로 연속해서 참격을 날렸다.

결코 작은 체격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거운 일격!

아직 나이가 어려 체격이 유독 작은 율로선 결코 받아낼 수 없는 공격이었다.

“꺅!”

검을 받아냈지만 그 충격에 밀려 율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고블린 로드는 재차 월도를 아래로 내려찍으려 했다.

“이 노오옴! 그리 내버려두진 않겠다!”

위기에 처한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남윤수가 검을 들고 중간에 난입하였다.

남윤수는 막 월도를 휘두르려던 고블린 로드의 목젖을 노리고 찌르기를 펼쳤다.

그것을 피해 고블린 로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허어업!”

이를 본 남윤수는 검을 살짝 뒤로 물리면서 칼날을 뒤집더니 간격이 짧은 가르기로 다시 한 번 고블린 로드의 목을 노렸다.

절묘한 시점에서 들어간 회심의 한 수, 분명 대부분은 ‘어?’하는 사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만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카앙!

“아닛?”

“크크큭.”

놀랍게도 그 짧은 사이에 월도를 사이에 끼워 넣어 방어를 해낸 고블린 로드는 사이하게 눈빛을 발하였다.

그 순간! 고블린 로드가 단숨에 칼을 비틀어 남윤수의 몸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아버님!”

그 광경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율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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