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1화 (21/127)

四장. 점령지를 돌파하다 (5)

갑자기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들은 전라도 북변에서의 왜군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순찰 중이던, 전라도 군영 소속의 군졸들이었다.

“노부유키님,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어서 철퇴를 하심이······.”

“에이잇! 그래 봤자 조선군이다.”

다분히 불리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부유키는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가는 불명예보다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50기의 조선 기병과 20기의 무사들이 서로를 향해 돌격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을 때, 양측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화살을 날렸다.

쉬시시싯!

“으억!”

“크아악!”

화살을 서로를 향해 날아들고 그것에 명중당한 자들이 비명과 함께 말에서 낙마했다.

이미 기세를 탔기에 화살에 동료가 쓰러져도 양쪽 모두 물러섬 없이 계속해서 거리를 좁혔다.

“죽어라아앗!”

“오랑캐 놈들아 덤벼라!”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면서 양측은 활 대신 근접전을 위해 무기를 잡았다.

“에잇!”

철로 된 투구를 쓴 조선군 기병이 편곤을 크게 휘두른다.

이것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마 무사는 크게 휘청거리다가 지면을 추락했다.

“크헉!”

한편, 근처에서는 나기나타에 어깨를 베인 조선군 병사가 비명을 토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연신 펼치며 뒤엉켜 싸우는 기병들은 고함을 토하며 말을 연신 몰았다.

초반에는 팽팽한 맞대결이었지만 차츰 조선 기병 측이 우세를 점하였다.

추격을 위해 갑옷을 가볍게 입고 무기 또한 창과 활 정도만 챙긴 왜군과 다르게, 조선군 측은 기병전 때 입는 두꺼운 두정갑을 입고 있고 무기도 편곤 같은 일격 필살의 무기를 챙겨 전투에 임했기에 우세를 점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왜군 측은 추격을 하느라 말들이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크윽! 조선군 따위에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이대로 계속 싸워봤자 전멸만 당할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물러나셔야 합니다.”

계속해서 수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곁에서 후퇴를 종용하니 더 이상 공을 다툴 때가 아님을 안 노부유키는 황급히 말 머리를 돌리며 외쳤다.

“후퇴다! 후퇴!”

살아남은 기마 무사들은 일제히 전장을 이탈하기 위해 말 머리를 돌렸다.

물론 이것을 그냥 두고 볼 조선군이 아니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쫓아라!”

모처럼 승기를 잡은 조선군 측은 도망치려는 왜군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이미 발이 느려진 말을 탄 무사들은 이 추격을 쉽게 따돌리지 못했다.

상황이 이리되자 하급 무사 몇이 말 머리를 돌렸다.

“노부유키님, 어서 가십시오!”

“여기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충의를 보이는 부하들에 대해 노부유키는 감사의 말도 표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

이런 가운데 자발적으로 남은 무사들은 그대로 마주 달려오는 조선군 기병과 맞부딪쳤다.

“이야압!”

“이노오옴!”

길을 막아선 무사들을 조선군 병사들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접전이 펼쳐지고, 곧 무사들의 목은 허무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조선군은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도주한 왜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또 이쪽이 입은 피해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끝난 모양이군요.”

“저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저리 되었을 테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좀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였던 상호 일행은 다시 돌아오는 조선군 기병들을 맞이했다.

먼저 임충은 앞서 말을 몰아온 기병들의 지휘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곤경에 처했던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소.”

“때마침 지나치던 길에 운 좋게 도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보다 이런 곳에서 왜군의 추격을 받다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소만?”

“본관은 여기 있는 효력부위와 함께 세자 저하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내금위 무관 임충이라고 하네.”

“세자 저하라면 지금 분조를 이끌고 계시다는 광해군 마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임충이 내금위 소속이라는 사실과 광해군의 명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 지휘관의 태도는 곧바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풍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세자 저하께서 남쪽에 남아 전쟁을 지휘하고 계신 겁니까.”

“그러하네.”

임충의 말에 병사들은 모두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이은 패전에 믿었던 임금과 조정마저 백성들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가버린 현 실정 때문에 비록 다른 자들처럼 나라를 지키는 의미를 버리고 달아나진 않았어도 내심 나라에 실망하던 마음이 컸던 참이다.

그런데 나라의 국본인 세자가 위험을 각오하고 남쪽에 남아 전쟁을 지휘한다고 하니 새삼 기뻤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관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세자 저하의 명에 따라 길을 가던 중이라고 하셨는데···혹시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물어도 되겠는지요?”

이 질문에 임충은 잠시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지만 쉽사리 알려줘도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임충보다 먼저 상호가 답하였다.

“우리는 지금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로 가던 중입니다.”

“전라좌수영이라면 얼마 전에 해전으로 큰 승리를 거둔 곳 아닙니까?”

군관은 반색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순신 장군이 올린 첫 승전보는 전라도 지방 일대에 쫙 퍼진 모양이다.

“바다에서 왜구들의 배를 몰살시켰다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장군이 아주 잘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암요. 덕분에 이곳 전라도 민초들은 한 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군관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보는 가뜩이나 연전연패를 해온 조선군이나 민초들로선 암울한 전쟁 중에 간만에 듣는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다.

“헌데 어째서 해로로 가지 않고 육로를 통해 여수까지 가시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사정 상 어쩔 수 없었죠.”

사실 해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원도 이천에서 서해 쪽으로 가려면 어차피 왜군 점령지를 지나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고 아직 광해군에게만 인정받았을 뿐, 정식으로 조정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한 부분 때문에 은밀히 움직일 필요가 있어 육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한 사정까지 밝힐 수 없었기에 일단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이에 군관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여기서부터 전주까지 저희가 호위를 맡아드리겠습니다.”

“저희야 좋지만···그래도 문제 없는 것입니까?”

“하하, 어차피 저희 임무는 이곳 일대의 왜군 동향을 파악하고 전주성으로 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지요.”

“그렇다면야 감사히 도움을 받죠."

이리 하여 상호 일행은 기병들과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죽은 조선군 병사를 가매장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일을 마친 후, 곧 떠날 채비를 했다.

모두 말에 올라타고 천천히 줄 지어 이동하는 가운데, 옆에서 말을 몰던 군관이 돌연 상호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부위께선 상당히 희한한 옷을 입고 계시는구려.”

“그런가요.”

“그것을 입고 숲에 있으면 도저히 못 찾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든 옷이죠.”

상호는 군관과 담소를 나누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위장색이 있는 옷이 여러모로 좋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내 옷과 비슷한 옷을 만들어 헌터 일을 하게 될 사람들에게 입혀보자.’

상호는 군관을 슬쩍 보았다.

마침 대화를 한 김에 여러 정보를 얻을 기회였다.

해서 상호는 넌지시 질문을 군관에게 하였다.

“전쟁을 치르느라 힘드시죠. 요즘 왜군들은 어떻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그나마 지금까지는 주 공격로가 아니어서 버틸 수 있었는데 지날 달부터 후속해서 온 왜군 부대가 이쪽으로 진격해와 연달아 소규모 접전이 벌어지고 있죠. 그 때문에 우리들도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 정탐을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얼마 전에 금산성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방어선을 급히 웅치까지 물린 지경입니다.”

얼마 전,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대패한 전투 중 하나인 ‘용인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 많은 병력을 보냈던 터라 전라도를 지키는 조선군의 전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랬기에 김제군수 정담, 동복현감 황진, 나주판관 이복남, 전 전주만호 황박 등이 남은 병력을 추슬러 웅치에 집결하고 다음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상호는 기억에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웅치, 그리고 이치에서 조선군이 승리를 거뒀었지.’

이치 전투.

큰 승리를 거둔 전투라고는 할 수 없으나 전라도 지방을 왜군의 손에 지켜내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던 전투다.

게다가 이 전투에선 훗날 ‘행주 대첩’이라는 조선 3대 대첩을 이끄는 명장 ‘권율’이 활약을 한다.

‘으음, 이 전투 역시 가볍게 넘어갈 전투는 아닌데.’

한산도 전투만큼이나 이치 전투도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끄응! 한산도 대첩하고 이치 전투,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였더라.’

이 부분에 대해서 딱히 알 필요가 없었기에 당연히 기억을 못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니 참으로 난감했다.

그래서 상호는 이것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왜군이 곧 쳐들어온다거나 하는 그런 낌새는 없는 겁니까?”

“글쎄요. 하급 군관에 불과한 제가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전라도를 노리고 쳐들어오는 왜장 소조천륭경이라는 작자가 최근 금산성을 떨어뜨리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소조천륭경?”

일본 이름을 한자식으로 풀이한 것을 상호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중요한 것은 왜장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이끄는 왜군의 동향이었다.

‘금산이라면 전주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그 사이에 이치 고개가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전투가 있을 거란 것이군.’

하지만 최근 막 성을 떨어뜨린 참이라면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음 침략 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하면 여수에 가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고 나서 되돌아와 이곳 일을 봐도 될 것 같았다.

상호는 이어서 자신의 일에 관련된 질문을 하였다.

“혹시 전라도 땅에서 요괴가 나타났다는 소문 같은 것 듣지 못했습니까?”

“요괴에 대한 뜬소문이라면 피난민을 통해 들은 바는 있습니다만 대게 다른 지방 얘기일 뿐, 이곳에 그런 게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군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 전라도 땅에는 게이트가 생각보다 적게 나타난 게 분명했다.

사실 게이트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 같은 험지에 발생하기가 쉽기 때문에 평야 지대가 많은 전라도 땅엔 생길 가능성이 적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놓고 본다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유일하게 남쪽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을 받지 않은 전라도 땅은 조선에게 있어 생명줄과 같은 땅이다.

만약 이곳에 몬스터가 다발로 발생해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가뜩이나 전라도를 노리고 침략 행위를 개시하려는 왜군을 막아야 하는 조선군의 입장이 매우 불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되었다면 역사와 한참 어긋난 결과가 나와, 최악의 경우, 조선군의 몰락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심을 할 수만은 없지.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어쨌든 여려 가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격의 염려 없이 지리에 밝은 기병들의 도움 덕에 최단 거리로 빠르게 전주 땅까지 올 수 있었다.

이곳에서 기병들과 작별한 상호 일행은 남은 거리를 부지런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며칠을 달린 끝에 전라도 여수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전라 좌수영?”

수많은 목조 건물이 해안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진(陣) 안엔 당연히 바다에 접한 부두도 존재했다.

부두에는 조그마한 초탐선들이 즐비하여 있고, 그 뒤편으로 그 유명한 판옥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헉!”

하지만 상호의 눈길을 빼앗은 것은 판옥선들 옆에 정박해 있는 둥근 형태의 배였다.

‘내가 거북선의 실물을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감격에 겨워 상호는 거북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등 꼭대기 부분에 돛이 달려 있고 천장이 배의 윗부분을 덮고 있다.

‘철갑선’이라는 명성과 달리 천장은 나무 재질로 만들었고 거기에 쇠로 만든 압정을 촘촘히 박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만 가시지요.”

“아, 예.”

임충의 말에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담아 마지막으로 거북선을 보고는 상호도 발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마침내 한자로 ‘전라좌수영’이라고 적힌 관청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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