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25화 (25/127)

五장. 해룡 토벌! (4)

율이 씨 서펜트 로드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상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피해!”

“······!”

뒤늦게야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율은 선뜻 피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녀의 두 팔엔 아까 부축하던 군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씨 서펜트 로드가 갑판을 향해 빳빳이 세웠던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접근시켰다.

‘뭔가 방법이······!’

절체절명의 율을 본 상호는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때마침 바닥에 굴러다니는 포환이 눈에 들어왔다.

“흐랴아아앗!”

포환을 대뜸 집어 든 상호는 있는 힘껏 한 손으로 그것을 던졌다.

마치 투포환 선수처럼 던진 포환은 대포를 쏘는 것처럼 쭉 뻗어나가 씨 서펜트 로드의 얼굴에 정확히 명중했다.

“쿠와아앗!”

비명을 토하며 고개를 젖히는 씨 서펜트 로드.

이 틈에 임충이 빠르게 달려가 부상자와 율을 부축해 다른 쪽으로 피했다.

“창을!”

“여기 있습니다.”

상호의 말에 군관 중 한 명이 창을 던져주었다.

그것을 공중에서 받아낸 상호는 맹렬한 기세로 난간을 한번 딛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리곤 최대한의 힘으로 비늘로 덮인 몸통에 창날을 깊게 박아 넣었다.

지금 공격에 씨 서펜트 로드는 몸부림을 치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크윽.”

아직 몸통에 매달린 상호는 창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안간힘을 쓰며 바다에 떨어지지 않게 버텼다.

이대로 있으면 물속에 딸려 들어가게 될 게 분명했다.

“나리!”

아래에서 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 자신을 믿고 뛰어내리라는 것으로 보였다.

아까 자신이 구해줬던 율을 믿고 상호는 과감히 잡고 있던 창대를 놓았다.

수 미터 위에서 떨어진 상호를 율이 아슬아슬하게 붙잡는다.

“꺄악!”

“으아악!”

비명이 동시에 터지고, 두 사람 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면서 갑판 위에 쓰러진다.

가녀린 소녀의 몸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내를 받아낸다는 게 사실 불가능한 일이니 이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호는 자신의 밑에 깔린 율을 걱정하며 말했다.

“괜찮아? 나 때문에 다친 것은 아니지?”

“전 괜찮아요.”

다행히 율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에 있는 율의 얼굴은 무척 빨개 보였다.

“저, 저기 나리······ 죄송하지만 좀 비켜주시면 안 될까요.”

“미, 미안.”

그제야 상호는 자신이 율을 아래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탄 상태라는 것을 자각했다.

“노를 더 저어라!”

이때, 망루 쪽에서 정운의 고성이 들려왔다.

상호의 공격에 씨 서펜트 로드가 배에서 잠깐 떨어진 틈을 노려 거리를 두려는 것이었다.

또한 다른 씨 써펜트들을 상대하던 판옥선들에게도 깃발로 신호를 보내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정운의 지시에 네 척의 판옥선은 노를 저어 서로를 향해 접근했고, 사각 대형을 취하였다.

“포를 서둘러 장전하라!”

“좌현의 포를 모두 우현으로 이동시켜라!”

밀집 대형을 취한 덕에 한쪽만 신경 쓰면 되었기에 갑판 위의 포를 모두 한쪽으로 몰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씨 서펜트들이 다시금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판옥선들을 향해 접근하였다.

“쏴라!”

네 척의 판옥선에서 일제히 포를 쐈다.

이번에 수십 문에 달하는 포가 동시에 발사되었기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씨 서펜트들은 여지없이 포탄에 얻어맞았다.

폭음과 함께 접근하던 씨 서펜트들이 피를 뿌리며 바다 위로 쓰러져 갔다.

“크오오오!”

동족들이 계속해서 당하는 것에 분노한 것일까.

상처 입은 모습으로 씨 서펜트 로드는 좀 떨어진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워터 브레스를 정확히 대장선을 향해 뿜어냈다.

“전타, 우현으로!”

정운의 다급한 외침에 키잡이가 용을 써서 배의 방향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고 워터 브레스가 판옥선의 측면을 강타했다.

“우아아앗!”

“물이 들어온다.”

수압에 의해 배의 선체를 이루는 목판이 부서지면서 물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래층에서 노를 젓던 격군들은 비명과 함께 노를 놓치고 물에 의해 반대편 벽까지 휩쓸렸다.

“어서 구멍을 막아라!”

“배가 가라앉도록 두면 안 된다.”

상황이 급박해지니 일부 군관과 군졸들이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긴급 보수에 나섰다.

상호는 어떻게든 씨 서펜트 로드를 쓰러뜨리고 싶었다.

마침 그의 눈에 천자총통이 들어왔다.

“이봐요!”

“예?”

“다시 대장군전을 장전해주십쇼.”

상호는 화포장의 어깨를 꽉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다시 포를 쏘라는 말이 가당치도 않게 들렸지만 상호의 눈빛에 위압된 화포장은 반박 한 마디도 못해보고 고개를 빠르게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갑판 위에 남은 대장군전은 단 한 발이었다.

그나마 옮길 군졸이 없어 그것을 상호가 직접 들어야 했다.

“저도 돕겠어요.”

율이 손을 거들고 상호가 든 대장군전의 한쪽을 붙잡았다.

세 사람이 합심하니 장전하는데 시간은 거의 걸리지 않았다.

이제 쏘기만 하면 된 일.

상호는 씨 서펜트 로드와 현재 위치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아까보단 확실히 거리가 줄었다. 이번에야말로 놈의 몸에 구멍을 뚫어주겠어.’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며 상호는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천자총통의 조준을 맡았다.

‘매의 눈’ 능력으로 상대를 최대한 포착한 다음 신중하게 포구의 방향을 맞췄다.

막 조준을 끝내고 발사하려는 그 순간!

“크오오오!”

이때, 불쑥 배 바로 옆에서 한 마리의 씨 서펜트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배를 몸으로 밀쳐댔다.

이 바람에 발사를 준비하던 상호를 비롯해 갑판 위에 있던 모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크게 휘청거렸다. 이뿐만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 않던 천자총통도 갑판에서 밀려나려 했다.

“크윽!”

상호는 천자총통을 제자리에 고정하기 위해 온몸으로 그것을 잡고 지탱했다.

상호를 도와 율과 임충, 그리고 여러 명의 수병들도 힘을 보태 밀리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천자총통을 제 자리에 있게 하는데 성공하고 상호는 서둘러 발사를 준비했다.

펑! 펑!

다른 지자총통이 불을 뿜어 가까이에 붙었던 씨 서펜트를 격침시키는 가운데, 몸소 씨 서펜트 로드가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와라.’

가까이 와준다면 상호로선 바라는 바였다.

상호의 눈은 스킬의 영향으로 유독 강렬하게 빛났다.

“어서 쏴야 합니다!”

“어서요!”

물살을 가르며 씨 서펜트 로드가 바짝 가까이 오니 주변에서 재촉해왔다.

그렇지만 상호는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거리가 더 좁혀지기 기다렸다.

이윽고 씨 서펜트 로드의 몸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배 갑판 일부를 덮을 지경이 되었다.

“지금이다!”

“넵!”

기다리던 화포장은 서둘러 화섭자로 심지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이 순간, 공교롭게도 높은 파도가 치더니 갑판 위로 바닷물이 넘쳐 들어왔다.

쏴아아아.

위에서 쏟아지는 바닷물에 모두가 홀딱 젖어버렸다.

“이, 이런!”

화포장은 불씨가 꺼진 화섭자를 들고 망연자실해 했다.

중요한 순간에 포를 못 쏘게 되어버린 것이다.

“뭐 이런······.”

황당함에 상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율이 돌연 상호의 옷깃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리가 가진 그 신기한 화섭자로 불을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율은 전에 한 번 봤을 뿐인데 용케도 라이터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호도 그 생각을 했던 차였기에 바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달칵.

뚜껑을 열고 바로 불을 켰다.

“세상에!”

“어떻게 한 번에 불이 붙지?”

놀라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

다행이 기름 먹인 심지는 바닷물에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불이 붙었다.

치이이익!

심지가 타들어가면서 검게 변해갔다.

“크오오옷!”

그 사이에 판옥선 옆에까지 온 씨 서펜트 로드는 자신의 육중한 몸으로 판옥선을 강하게 밀며 동시에 머리를 숙여 워터 브레스를 위에서부터 쏘고자 했다.

만약 브레스가 직사로 뿌려진다면 나무판자로 만든 판옥선 같은 것은 단숨에 둘로 쪼개져 침몰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상호는 발로 순간적으로 천자천통의 뒷부분을 힘껏 밟았다.

포구가 순간 위로 치솟고 그와 동시에 폭연과 함께 앞쪽에 장전되었던 대장군전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앞으로 발사되었다.

퍼억!

파열음과 함께 몸체에 거대한 구멍이 뻥 뚫리고 살점과 피가 뒤편으로 날아가는 대장군전을 따라 뿌려진다.

단 일격!

정통으로 쏜 대장군전 한 발에 씨 서펜트 로드는 허망하게 죽임을 당해 그대로 수면으로 미끄러지듯 처박혔다.

* * *

둥. 둥.

북 소리와 함께 바다에서의 싸움이 마침내 종료되었다.

바다 위엔 씨 서펜트들의 시체가 처참한 형체가 되어 수면 위로 반쯤 떠있었다.

한 마리도 빼지 않고 모두가 판옥선의 화포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다.

조선 수군 측의 피해는 정운이 타고 있던 녹도 1호선이 수리가 필요할 만큼 크게 파손되었고, 이십여 명의 수군이 죽거나 다쳤으며 격군 중에도 크고 작은 부상자가 다소 나왔다.

그나마 한 척의 배도 침몰하지 않았고 사상자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중요한 대첩을 앞두고 귀한 전력을 잃게 했다면 이순신 장군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지.’

점고를 끝내고 다들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상호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마무리를 하기 위해 다른 판옥선으로 옮겨 타 섬으로 향했다.

우웅.

“찾았다.”

해안 절벽 사이로 움푹 파여 있는 공간 안에서 게이트를 찾아냈다.

상호는 지체없이 준비한 폭탄으로 게이트를 파괴했다.

이제 게이트를 파괴했으니 더 이상 이 부근 해역에 씨 서펜트가 나타날 일도, 그리고 곧 있을 한산도 대첩을 치르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상호는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이용해 섬의 해안까지 끌고 온 씨 서펜트 로드의 시신을 해체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처음 잡아본 씨 서펜트였기에 내부의 몸 구조는 잘 알지 못하지만 헌터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능숙하게 바늘을 벗기고 살점을 베어 몬스터 코어가 있을 만한 위치를 탐색했다.

“찾았다!”

살점을 후비던 칼끝에 뭔가 딱딱한 것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감을 믿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자르니 마침내 몬스터 코어를 채취할 수 있었다.

“이것은!”

상호는 은은하게 빛을 내는 푸른색의 몬스터 코어를 보곤 순간 터져 나오려는 함성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푸른색의 몬스터 코어는 특수 능력, 즉 스킬을 사람에게 랜덤으로 부여한다.

상호에게 있어 두 번째로 스킬을 얻을 찬스가 생긴 것이다.

“꿀꺽.”

상호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몬스터 코어를 보면서 번민에 빠졌다.

어렵게 얻은 기회다.

어떤 스킬을 손에 쥐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과거로 떨어져버린 자신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반면에 이런 고민도 머릿속에 들었다.

‘스킬의 힘을 이순신 장군에게 드리면 그 분께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이순신은 상호도 존경해 하는 인물이다.

그랬기에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스킬의 힘을 양도함으로써 이순신의 지지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으으, 이것을 어찌할까······.”

손에 보물을 쥐고 고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어느 쪽도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상호의 결단은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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