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34화 (34/127)

七장. 이치 전투 (3)

갑작스러운 기습에 왜군은 큰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임충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왜군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난전을 유도했다.

“죽어라!”

“으아악!”

결코 멈추지 않고 왜군 사이를 누비는 기마병들의 활약은 출중했다.

이런 혼전 속에서 상호도 벌써 일곱이나 되는 적을 쓰러뜨렸다.

“거기 서라.”

상호는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왜병 하나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런데 상호가 달리는 방향의 측면에서 한 왜병이 장창을 꼬아들고 뛰었다.

이대로라면 상호가 옆에서 날아든 창에 꿰뚫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염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걱!

옆에서 휘둘러진 장검에 의해 창대 중간이 잘라졌다.

그것을 본 왜군 병사가 놀라며 검을 휘두르는 상대를 보았다.

“계집?”

“······.”

남장 비슷한 차림을 했지만 고운 얼굴을 가진 율을 보고 여자임을 안 왜군 병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대의 반응에 살짝 눈가를 찡그렸던 율은 말에 탄 채로 능숙하게 재차 검을 내질러 왜군의 머리를 쳐내고 곧장 상호의 뒤를 따랐다.

임충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따르는 상호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율은 한시도 상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왜군 보병을 상대로 혼전을 펼치면서 그들을 혼란시키던 이 때.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기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온 왜군 측 기마무사들이었다.

“후퇴한다!”

임충은 이들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퇴각을 명령했다.

하지만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선물은 남겨두기로 했다.

“비격진천뢰에 불을 붙여라.”

“넷!”

지시에 따라 수십의 기병들이 말안장에 챙겨둔 비격진천뢰를 꺼냈다.

그것에 불을 붙인 후, 왜병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점과 적 기마 무사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던지고는 모두가 말을 재촉해 속도를 냈다.

“깜짝 놀랄 거다.”

상호는 말을 몰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폭발물을 이용해 후퇴를 요긴하게 하자는 발상을 내어 이번 왜군과의 싸움에서 비격진천뢰를 쓰게끔 한 사람은 바로 상호였다.

쾅! 콰앙!

심지가 다 타들어가면서 바닥에 굴러다녔던 비격진천뢰가 일제히 폭발했다.

“아악! 내 다리!”

“히이이잉!”

폭발에 휘말린 왜병들이 죽거나 크게 다쳐 쓰러졌다.

그리고 달려오던 기마 무사들 중에 앞에 있던 자들도 말이 쓰러짐에 따라 같이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꼴좋군.”

안전한 거리까지 멀어지고 말의 기력을 생각해 속도를 줄인 가운데 상호는 혼란에 빠진 왜군 쪽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왜군 추격을 따돌리고 미리 설정해둔 2차 집결지로 부대는 다시 집결하였다.

같은 시간, 고경명이 이끄는 본대는 서둘러 이치 고개 쪽으로 퇴각해갔다.

이런 가운데 뒤쪽에서는 금산성에서 추격해온 부대와 고인후가 이끄는 후미 부대가 전투를 펼쳤다.

“저기 있다!”

“적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거다!”

선두로 오는 왜군 기마대를 상대로 고인후는 결사의 각오로 자신을 따르는 수백 명의 병사들과 함께 맞서 싸웠다.

결사의 각오로 막아서는 고인후 부대 때문에 추격 부대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발이 묶여버렸다.

이렇듯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전장은 더욱 확대되어갔다.

불시의 기습으로 선두가 당한 고바야카와 군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부대를 재정비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성을 공격한 것도 모자라 겁도 없이 먼저 선공을 취할 줄이야.”

“아마도 우리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함이겠죠.”

“고작 농민 따위가 모여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가는군.”

고바야카와는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 관군이 아니라 의병이라는 사실에 기막혀했다.

전국 시대를 걸치면서 숱한 전투를 치러온 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주를 위해 자발적으로 농민들이 무기를 든 사례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전쟁 발발이 얼마 되지 않아 일반 백성들이 의병을 결성해 맞서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당장 놈들을 토벌하여 두 번 다신 우리에게 반항할 여지를 갖지 못하게 하겠다!”

“잠깐 주군,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조선군의 기마대도 좀 전에 아군을 공격해오지 않았습니까. 행여 함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깟 소규모의 기마대는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보내온 것에 불과하다. 그런 놈들이 두려워 적을 무사히 보낼 성싶은가.”

고바야카와는 정확하게 고경명 부대의 의도를 꿰뚫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이더니 곧 한 명에게서 멈췄다.

“다케가와.”

“하잇!”

호명 받은 무사가 벌떡 일어나서 고바야카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를 향해 고바야카와는 명령을 내렸다.

“너에게 삼천의 병력을 줄 테니 신속하게 움직여 적의 본대보다 먼저 앞질러가 길목을 차단해라.”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가미자키.”

“네, 주군!”

“너에겐 오백의 기병을 주겠다. 당장 거슬리는 조선군 기병을 한 놈도 남김없이 격멸해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왜장들은 군례를 올리고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순수하게 전투 병력으로 꾸려진 삼천의 정예들은 고바야카와의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길로 움직였다.

이들이 최소한의 장비만 갖고 도로가 아닌 산을 통해 움직인 통에 임충은 이런 별동대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와아아아!”

“돌격 앞으로!”

전열을 추스르고 다시금 왜군의 선두를 치기 위해 임충의 기마대가 돌격을 감행했다.

다시 한 번 더 기병의 특성인 기동력을 살려 고바야카와 군의 허술한 부분을 노리며 공격해 봤지만 이미 한번 호되게 당한 바 있는 왜군은 철저히 돌격에 대비하여 대응해왔다.

“조총 부대다.”

“침착해라. 조총의 사정거리 밖이니 걱정할 것 없다!”

창병 뒤로 심지에 불을 붙인 조총병들이 나타났지만 임충은 병사들을 안심시키며 공격을 독려했다.

그의 말대로 조총의 사정거리는 지금 기마대가 활을 쏘는 위치까지 닿지 못했다.

“화살을 쏴라!”

임충은 돌격 대신 옆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면서 화살을 쏘게끔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명령에 기병들은 각궁으로 화살을 날렸다.

날아간 화살에 몇몇의 왜병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곧 그 자리를 다른 이가 채움으로써 대형을 굳건히 했다.

조총 사격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화살을 쏘는 이런 식의 공격은 왜군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왜군의 진격을 막는 것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기에 임충은 이러한 방식을 고수했다.

“에잇!”

말을 타고 달리면서 상호 역시 다른 기병들처럼 화살을 날렸다.

이젠 말 타기에 꽤 익숙해져 흔들림 속에서 활을 똑바로 잡고 화살을 쐈다.

궁술 솜씨가 향상된 데다가 ‘매의 눈’ 능력 덕분에 노린 것을 열에 일곱 정도를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싸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두두두.

또다시 남쪽에서부터 기병들이 온 것이다.

“아까보다 숫자가 배나 더 많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이번엔 작정하고 기병들을 보낸 것 같군.”

임충은 고바야카와의 명령을 받은 왜장 가미자키가 이끄는 기마대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번엔 쉽게 뿌리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바로 후퇴를 하셔야 합니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오는 적의 규모가 큰 것을 본 부하들이 후퇴를 종용했다.

임충은 직감적으로 저들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서둘러 후퇴 명령을 내렸다.

“전원, 후퇴한다!”

“넷!”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황급히 말 머리를 돌려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퇴각하는 조선군을 쫓아 가미자키의 기마대가 전력으로 그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추격전 양상이 되고 좁은 논길 대신 논 자체를 가로지르며 상대를 뿌리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치잇!”

질주하는 기마대의 후미에서 상호는 조바심에 말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탄 말은 자꾸만 대열의 후미로 뒤처지기만 했다.

“제발 힘 좀 내라!”

상호는 바로 지척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말을 더욱 채찍질했다.

“하앗!”

“잡아라!”

이젠 왜군 측 기마무사들의 목소리까지 들려올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바로 이때! 따라잡힐 위기에 놓인 상호를 돕기 위해 율이 나섰다.

“나리! 허리를 숙여주세요!”

앞서 달리던 율의 외침에 상호는 반사적으로 행동을 취했다.

그것을 보고 율은 갑자기 말 위에서 허리를 돌리더니 곧장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방금까지 상호가 꼿꼿이 서 있던 위치를 지나 그대로 선두에서 오던 한 기마 무사의 갑옷에 적중했다.

“으아악!”

낙마한 그자는 뒤따르던 말의 말발굽에 깔리며 비참한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에서 추격해오던 왜군 기마대의 속도가 다소 늦춰졌다. 하지만 화살을 쏘느라 율이 탄 말은 상호가 탄 말보다도 뒤처지게 되었다.

그것을 본 상호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괜히 나 때문에······.’

이대로 자신 때문에 율이 위기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말 머리를 돌려 율을 돕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이성이 그것을 막았다.

대신 상호는 율을 도울 방법을 바로 생각해냈다.

‘집중이다, 집중!’

상호는 의식을 집중해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새로 얻은 힘, 물의 속성력을 이끌어냈다.

그러자 말을 달리는 상호의 주변으로 물방울이 생성되더니 한 점으로 모여 뭉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물이 확보된 순간!

“가라앗!”

상호가 외침과 함께 뒤쪽으로 손을 뻗자 모였던 물이 화살 형태가 되어 일제히 왜군을 향해 날아갔다.

“허억!”

“뭐냐, 이건!”

놀란 왜군들은 황급히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날아든 물 화살의 속도가 빨랐다.

아직 능력 개발 초기 단계이기에 날아간 물 화살에는 살상력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몸 전체에 충격을 주어 낙마시킬 정도는 되어 대여섯 명의 인원을 낙마시켰다.

그리고 이 공격은 뜻밖에도 부수적인 효과도 낳았다.

“방금 그건 대체 무엇이냐!”

“해괴한 수를 쓰는 자가 있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따라오던 왜군 기마 무사들이 속도를 늦췄다.

그 틈에 상호는 율과 함께 다시금 뒤와 거리를 벌렸다.

격차가 생기자 결국 왜군 측은 추격을 단념하게 되었다.

이탈하는 데 성공한 임충이 이끄는 기마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후와!”

개천에 얼굴을 담갔다가 뺀 상호는 흐르는 물의 차가움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도 말을 격렬하게 타서 그런지 엉덩이의 살가죽이 벗겨진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아까 힘을 써서 그런지 급격하게 지친 상태였다.

“단순히 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특정한 형태를 취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힘드네. 좀 더 복잡한 형태의 능력을 만드는 것은 지금으로선 무리이려나.”

이전까지 이능이라고 할 만한 능력이라곤 ‘매의 눈’밖에 갖고 있지 않던 터라 몬스터 코어로 올릴 수 있는 능력을 당장 절실하게 필요한 근력이나 민첩에 투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속성력을 얻었으니 그 능력을 보다 활용하기 위해서는 몬스터 코어를 통해 정신력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물론 거기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능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훈련을 하여 최대한 정신력 소모를 줄일 필요도 있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노력은 해야겠지. 가만, 이러한 능력을 보다 실전에서 잘 발휘하려면 고유 명칭을 붙이는 게 좋다고 했었지.’

과거에 다른 헌터들을 통해 들었던 얘기를 떠올린 상호는 아까 왜군들에게 썼던 기술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본래 이런 형태의 공격법에 ‘아쿠아 애로우’나 ‘워터 애로우’ 같은 이름들이 자주 쓰였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런 이름은 적절치 않았다.

“수류의 화살, 음 아니면 간단하게 물 화살로 할까.”

그런데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 하나 갖고 이렇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취향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 하나도 능력의 위력이나 성공 확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수룡시, 이 이름이 괜찮을 것 같은데.”

씨 서펜트를 쓰러뜨리고 얻은 몬스터 코어를 통해 획득한 능력이니 이 이름이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처음 생각해냈을 때부터 뭔가 마음으로 와 닿는 느낌이 있었다.

이렇게 상호는 자신의 특기를 한 가지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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