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4화 (44/127)

九장. 정문부. (3)

상호와 사람들은 오크들의 추격을 피해 산등선을 따라 부지런하게 이동했다.

슬슬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가운데 일행은 잠시도 쉬지 않고 산길을 따라 뛰다시피 걸었다.

“헉, 헉!”

“조금만 힘내게.”

부상 입은 군졸이 당장이라도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쓰러질 기색이었다.

아예 한 명은 임충의 등에 업혀 실려 옮기지는 판국이고 유일한 여성인 율 역시 티는 내지 않아도 많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며 상호는 초조함을 느꼈다.

아직 왔던 길의 절반도 못 온 시점에서 속도가 떨어진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래서는 오크들에게 따라잡히기 십상이었다. 아니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만에 하나 오크들이 고을까지 쫓아올 경우엔 더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몰랐다.

오기 전에 봤던 그 고을은 제대로 싸울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미 한 번 오크들의 침입에 크게 겁먹은 상황이다. 그런 마당에 다시 한 번 공격받게 되면 다들 큰 패닉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결국 여기서 놈들을 완전히 뿌리쳐야 한다는 건데······.’

이 인원으로 정면으로 싸운다는 것은 무리다.

결국 오크들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상호 한 사람뿐이었다.

‘혼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무척 내키지 않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모두를 살리고 오크 토벌에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정을 내린 상호가 점차 걸음을 늦추며 일행의 뒤쪽으로 처졌다.

그러자 달리던 율이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리, 갑자기 왜?”

“지금 상황에선 누군가가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어. 내가 여기서 오크들을 막을 테니 다들 먼저 가도록 해.”

“무모하네.”

상호의 말에 정문부가 정색하며 말했다.

혼자서 추격해오는 적을 막겠다는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임충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도 같이 남겠습니다.”

“저도 남겠어요.”

율도 옆에서 거들며 말했다.

이런 두 사람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상호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자들도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더 빠지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될 겁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 오크들을 상대하는 편이 시간을 벌고 탈출하기에 더 좋습니다.”

이 말은 결코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렇게 상호가 말했지만 율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 그대로 남겠어요. 절대로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할 테니 부디 허락해주세요.”

“율.”

“나리.”

간청해오는 율을 보니 순간 마음이 약해진다.

그렇지만 상호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이번 일에 율을 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내 뜻에 따라주었으면 한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리······.”

“임 무관님, 여기 사람들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임충은 상호의 결의를 받아들이고 말에 따라주었다.

결국 율도 상호와 함께 남겠다는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부디 무사하시게.”

“그래야죠.”

상호는 정문부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모두가 다시 길을 서두르고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자신 있게 말한 게 있으니 실수 없이 성공해야지.”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듯 말하며 상호는 일단 높은 곳을 찾았다.

나무가 없는 큰 바위가 자리한 곳까지 가서 뒤따라오는 오크들이 어디까지 따라왔는지 확인해보았다.

이럴 땐 ‘매의 눈’ 능력이 아주 유용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멀어서 못 볼 곳도 상호라면 코앞에서 보듯 볼 수 있었다.

“찾았다!”

약 20분 전 쯤에 지나쳐온 산등선에서 오크들이 뛰어오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특히 그 중 상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제일 선두에 선 오크였다.

“저 차림새··· 적어도 오크 전사는 되겠는데.”

코어를 가진 상위 개체가 있다는 것은 상호에겐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궁술 솜씨를 제대로 뽐낼 때가 된 것 같네.”

이천으로 떠나 여수로, 여수에서 이치 고개로, 그리고 다시 이곳 함경도 땅까지 오는 기간 내내 꾸준히 궁술을 연습했다. 그리고 실전을 통해 그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이젠 본래 장기인 원거리 저격을 선보일 수 있으니 오크 무리와의 유격전도 해볼 만 했다.

“취이익!”

“췩!”

강건한 종족답게 오크들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산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땅에 남겨진 흔적, 그리고 미세한 체취.

단지 그것만으로 드넓은 산 속에서 한 번도 딴 길로 새는 일 없이 추격해온 오크들은 점점 진해지는 체취를 통해 자신들이 거의 다 따라잡은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타탁.

길 가운데를 막은 바위를 두고 제일 선두의 오크 전사는 곧장 바위를 발을 밟고 뛰어 넘었다.

그 모습에 뒤따르던 오크들도 연달아 바위를 넘어 반대편으로 착지해갔다.

그런데 그 때!

멀리서 날아든 한 대의 화살이 막 바위 위를 넘던 오크의 가슴팍에 정확히 명중했다.

화살에 맞은 오크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크와아!”

오크 전사는 자신을 따르던 부하가 죽자 포효를 하며 화살을 쏜 상대를 찾았다.

그러나 무려 500여 미터 바깥에서 상호가 화살을 날렸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좋아, 우선 한 마리 잡았고.”

목표를 정확히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상호는 미리 봐둔 두 번째 사격 지점까지 달렸다.

장소에 도착하고 다시 시위를 당겼다.

‘매의 눈’을 통해 저 멀리 떨어진 오크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오크 전사를 먼저 잡고 싶지만 놈의 무장을 생각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몸통 대부분을 감싼 철편을 엮어 만든 갑옷을 입고 있고 머리엔 투구도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이러한 놈을 한 발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대신 대른 오크를 노리기로 했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고 긴장을 풀면서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상호는 지금 산에 부는 바람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화살을 쏘았다.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이번 화살은 비록 노린 부위를 맞추지 못했지만 표적인 오크에게 적중했다.

“쿠와악!”

어깨에 화살을 맞은 오크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몸을 버둥거렸다.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저래선 당장 싸움에 참가하지는 못할 게 확실했다.

“두 마리 제압 완료. 그럼 다음으로 이동할까.”

오크들이 뛰어오는 모습을 보며 상호는 서둘러 세 번째 사격 지점으로 향했다.

“쿠와!”

갑작스레 들린 소리에 상호는 뛰는 중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멀리에서 오크 전사가 바로 상호가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고, 발각된 건가.”

슬슬 이쪽의 위치를 들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차였다.

“쿠와차!”

이 모습에 오크 전사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일제히 오크들이 상호를 좇아 일제히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상호는 더 속도를 내어 달렸다.

“크윽!”

미끄러운 바위 면을 통해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진 상호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계속 달렸다.

세 번째 사격 지점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며 오크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확실히 빠르네.”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질주 하여 달려온 오크들은 어느새 반이나 거리를 줄인 상태였다.

이러한 것이 조급함을 부를 수 있었지만 상호는 냉정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다시 시위를 당겼다.

슈웅!

“캬악!”

다시금 오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산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번에는 바로 도망치지 않고 다음 화살을 꺼냈다.

“한 번 더!”

거리가 가까워진 덕일까. 연달아 속사로 쏜 화살이 어김없이 오크들을 명중된다.

계속해서 동료들이 당하자 그제야 오크들은 나무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활을 가진 오크들이 상호가 있는 쪽을 향해 화살을 쏴댔다.

콰직.

날아온 화살이 근처의 나무에 엄청난 힘으로 박힌다. 동시에 나무의 파편이 폭발하듯 사방에 방출되었다.

명중률은 떨어지나 힘 하나는 엄청나게 담겨있는 화살이었다.

안 맞는다고 생각해도 막상 화살이 날아오는 상황이니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궁사들의 엄호 아래에 오크들이 점점 접근해온다.

상호는 자리를 피해 기어서 이동을 했다.

“취이익!”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오크의 비음.

상호는 비탈진 길에서 결단을 내렸다.

“에이잇!”

스스로 몸을 굴려 내리막으로 떨어지는 상호.

거친 흙먼지를 뿜어내며 상호의 몸은 점점 가속도를 내어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쿠와아!”

“취익!”

상호를 쫓아 오크들도 비탈을 거침없이 달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간신히 손에 잡히는 땅에 박힌 돌멩이를 잡아 겨우 멈춘 상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으으, 아파라.”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 정도 심하게 굴렀으면 어디 하나 부러지고 남았으리라.

하지만 ‘내구’의 능력치를 몬스터 코어로 강화한 덕에 잔 상처만 입었다.

상호는 흩어진 화살을 대강 주우면서 위쪽을 보았다.

쫓아오는 오크들.

가파른 내리막길임에도 속도를 전혀 줄일 생각을 안 하고 그대로 무식하게 내려오던 놈들 중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나무에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놈들은 개의치 않고 계속 뛰어왔다.

“여유부릴 틈도 없다는 건가!”

상호는 바로 근처까지 온 오크들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활을 들어 아까 주운 화살 중 하나를 가장 가까이 온 오크에게 날렸다.

하지만 화살은 달려오는 오크의 옆에 있는 나무 기둥에 맞았다.

“치잇!”

실수했다는 것에 탄식하며 다시 화살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것을 쏠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몇 걸음 앞까지 온 오크가 도끼를 휘두르려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 상호는 얼른 옆으로 몸을 굴렸다.

텅!

도끼는 상호가 아닌 나무에 반쯤 박혔다.

“얕보지 마라!”

상호는 반쯤 누운 상태로 아까 쏘려다 못 쏜 화살을 그대로 쏘았다.

화살은 정확히 오크의 목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피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오크를 뒤로 하고 상호는 바로 몸을 일으켜 달리기 시작했다.

“취이잇!”

“캬루챠!”

오크들의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상황.

상호는 온 힘을 다해 달리며 오크들을 따돌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앞에 있는 무성한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잡고 달리는 속도 그대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우선 뒤쫓는 오크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당장 위협이 되는 위치에 있는 오크는 모두 세 마리였다.

그 중에 한 마리는 도끼를 든 손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상호는 다급히 몸을 숙였다.

“카오오!”

오크는 그대로 도끼를 집어던졌다.

뱅그르르 회전한 도끼는 상호가 달리는 방향에 곧장 날아들었다.

“크윽!”

미리 인지하고 피했지 않았다면 당했을 게 분명했다.

도끼는 그대로 수그린 상호의 위를 지나쳐 뒤편의 나무에 박혔다.

이를 본 상호는 이를 갈며 말했다.

“돌려주지!”

상호는 이를 힘을 뽑은 뒤에 곧장 몸을 돌려서 방금 전에 그것을 던진 오크에게 던졌다.

날아간 손도끼는 방금 전 그것을 던진 오크의 미간에 정확히 적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두 놈이 거리를 좁혀왔다.

“피할 수 없다면 맞붙는 수밖에.”

상호는 달아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덤벼!”

“쿠와아!”

멈춰 선 상호를 향해 오크들은 흉흉한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