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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6화 (46/127)

九장. 정문부. (5)

상호는 우선 정문부가 확보한 전력을 점검했다.

모여 있는 인원의 수는 약 60여 명 정도였다.

“진짜 병사가 아니니 어쩔 수 없나.”

그나마 병사 축에 속하는 관아를 지키는 포졸들은 마지못해 온 것처럼 비루먹은 개 마냥 한쪽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오히려 상호의 눈에 좋게 보인 쪽은 사냥꾼들과 백정이었다.

처음 이천에서 고블린을 잡을 때도 맹수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사냥꾼이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싸움에 임했었다.

그런 사냥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함경도 사냥꾼들은 일단 눈빛부터가 남달랐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팔천(八賤)이라고 해서 천민 계급에 속하는 백정은 과거 유목 민족이었다는 말이 사실인 듯 다른 일반 농민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체격도 우람했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함께 온 농민들도 이천에서 데리고 싸웠던 사람들에 비하면 차분하고 싸움을 겁내하지 않았다.

“우리가 싸울 적에 대해 말해주셨습니까?”

“사전에 말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크게 동요할까 싶어 대략 내가 본 것을 알려주었네.”

“흐음, 그렇군요. 그런데 의외로 다들 표정들이 나쁘지 않군요.”

“이곳은 함경도네. 늘 북방 오랑캐들의 노략질에 당하기 때문에 다들 싸움이라면 이골이 났지. 그리고 이들에겐 요괴나 오랑캐나 자신들의 터전을 흔드는 적에 불과하니 저렇게 대범하게 굴 수 있는 것이지.”

처음 보는 오크들의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론 이곳 사람들은 그들을 오랑캐와 같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의외로 순응하는 게 빠른 것은 그만큼 이곳 함경도가 사람 실기 힘든 땅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부리는 병사만큼은 아니지만 이들이라면 능히 한 사람 병사 몫을 해낼 것이네.”

정문부가 말한 병사란 함경도 지방의 배치된 조선군을 말하는 것이었다.

함경도 정예병은 조선에서 유일무이하게 실전 경험을 두루 쌓아 임진왜란 때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때도 정예군 취급을 받았다.

특히 병사 다수가 거란이나 여진족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기병으로 주로 육성되었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이 대거 이들을 내려가 탄금대에서 그들 대부분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 정예병은 아직 함경도에 잔존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런 정예병이 있다면 좋겠지만, 나도 이 시대의 싸움에 적응했고 또 능력도 새로 얻었으면 충분히 할 만하다.’

어제 오크 전사를 쓰러뜨린 일을 떠올리며 상호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먼저 확실히 해둬야 할 게 있었다.

“토벌을 하는데 돕는 대신, 한 가지 요구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이번 토벌 작전의 지휘를 제게 맡겨주십시오.”

“자네가 지휘한다고?”

“정문부 공께서 우수한 지휘관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상대는 사람의 인지를 뛰어넘는 괴물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방식을 제가 더 잘 알기에 이리 말하는 것입니다.”

상호의 말에 정문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날 밤, 임충을 통해서 상호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누구의 명을 받아 무슨 목적으로 행동하는지 전해 들었다.

그런 만큼 마음의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다.

“알겠네. 자네를 믿고 따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선뜻 요청을 받아준 정문부의 결의에 상호는 고개를 숙였다.

이로써 이천과 그리고 웅치에서처럼 지휘권을 쥔 상호가 한 일은 모인 인원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곳 함경도는 하도 오랑캐의 침입을 많이 받은 터라 관아엔 유사시 고을의 장정들에게 나눠줄 꽤 많은 무기가 비축되어 있어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무장은 나쁘지는 않았다.

상호는 나눠진 인원들에게 차례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적의 공격을 막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상대의 힘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니 결코 힘으로 상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갔습네다.”

상호의 말에 백정을 포함해 인원 중 가장 힘을 쓸 수 있는 십여 명의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들의 역할은 헌터의 용어로 말하자면 ‘쉴더’였다.

‘쉴더’는 전문 ‘탱커’와 다르게 다수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방어를 펼치고 그들의 진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하는 헌터들을 가리키는 말로이다.

오크에 비하면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방패를 들고 버티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여러분은 걸음을 멈춘 오크의 숨통을 끊는 역할을 해주면 됩니다.”

“어떤 괴물이든 이 창으로 찔러 죽일 수만 있다면야 무서울 것 없지.”

“암만! 이 몸이 이십 년 간 호랑이만 열 마리도 넘게 잡은 사람이여.”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냥꾼들은 호기롭게 말해왔다.

조선 팔도에서도 가장 맹수가 많은 백두산 일대를 누비는 이들 함경도 사냥꾼은 호랑이를 코앞에 두고 절대 기죽지 않고 뱃가죽에 창을 꽂을 만큼 담대함이 큰 자들이라 전투 때 이들이 실수 없이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머지 향반들과 농민, 그리고 포졸들의 역할은 후방에서 화살을 쏘는 사수의 역할을 맡거나 지원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렇게 역할을 정하고 설명을 끝낸 후에야 상호는 오크들의 본거지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이 근방에서 놈들과 만났죠.”

“하루가 지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추적할 수 있습니다요.”

사냥꾼 중에서도 추격에 능한 자가 오크들과 처음 조우한 장소에서부터 오크들의 본거지를 찾아 앞장 서 추적에 나섰다.

그를 따라 이동하면서 상호는 혹 오크들이 매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약 3시진(6시간)을 험준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니 마침내 오크들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었다.

“벌써 산채까지 만들어 놓은 건가.”

높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통나무를 잘라 만든 목책은 대단히 엉성해도 쉽게 침입을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입구는 하나로 두세 사람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안쪽은 안 보이네.”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매의 눈’으로도 목책 너머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남은 오크의 수가 정확히 몇인지, 오크 로드를 제외하고 오크 전사 같은 상위종이 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꺼림칙스러웠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날 수는 없었다.

“준비는 끝났네.”

“알겠습니다.”

하나뿐인 입구를 두고 인원 배치가 완료되었다.

상호는 앞쪽에서 서서 손을 드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에잇!”

저마다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수들이 일제히 불화살을 쏘았다.

날아간 불화살은 나무로 만든 방책과 그 주변 수풀에 불을 붙였고 곧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취잇!”

“쿠라쿠챠!”

연기를 보고 무장한 오크들이 무리 지어 방책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상위종은 없고 모두 일반 오크로 모두 합해서 열 마리였다.

“가죠!”

“알겠습니다.”

입구를 돌파하기 위해 상호는 임충과 정문부, 그리고 율을 대동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곧장 다른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뒤따랐다.

“마가르차!”

“크워!”

오크들은 갑작스런 기습에 당확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금방 기가 번득이는 눈빛을 취하며 바로 무기를 들고 싸울 의지를 불태웠다.

“함경도 사내의 근성을 보여주마!”

“덤벼봐라, 이 돼지 머리 괴물아!”

고성을 지르며 먼저 방패를 든 ‘쉴더’들이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둥근 작은 방패, 팽배라 불리는 방패든 이들은 일제히 함께 돌격해 오크들을 밀어붙였다.

“쿠엑!”

“취에엑!”

자세를 무너뜨리는 팽배의 움직임에 오크들은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제 자리에 멈췄다.

“지금이다!”

상호는 ‘쉴더’를 맡은 사람들 뒤편에서 오크를 향해 창을 찔렀다.

이와 맞춰 사냥꾼들도 창으로 오크들을 공격했다.

매우 정확하게 급소만을 노리는 창에 태반의 오크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허업!”

상황이 유리해지자 측면에서 파고들어간 임충이 호쾌하게 검을 휘둘러 연달아 오크들을 베었다.

“죽어라, 괴물!”

정문부 역시 검을 오크에게 내지르며 용맹을 과시했다.

무반이 아닌 문반이지만 함경도 군진을 책임지는 자답게 검을 쓰는 솜씨가 꽤 뛰어났다.

여기에 율도 가세하니 입구를 막던 오크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안으로 들어가죠.”

“그러세.”

기세가 오른 토벌대는 그대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목책 안엔 꽤 넓은 공터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움막들이 여러 채 있었다.

“취이이잇!”

“역시 또 있었던 건가.”

갑옷으로 무장한 오크 전사가 움막에서 나온 약 스무 마리의 오크들과 함께 앞을 막았다.

그러한 놈들의 등장에 앞으로 달려가던 상호를 비롯한 모두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크워어!”

“쿠어!”

소리를 지름으로써 이쪽을 위압해오는 오크 전사와 오크들.

하지만 이미 기세가 오른 토벌대는 이 정도로 쉬이 위압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상호는 눈앞의 적보다 다른 쪽에 더 신경을 썼다.

‘놈은 어디에 있지?’

게이트 키퍼인 오크 로드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에 쓰인다.

이때, 상호의 눈에 다른 움막보다 큰 움막이 눈에 들어왔다.

필경 저기가 우두머리인 오크 로드가 지내고 곳이 분명했다.

“부하들이 알아서 막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어 나오지 않는 건가.”

상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 뒤에 임충과 정문부를 차례대로 보았다.

서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였다.

“철수한다!”

상호는 느닷없이 철수를 명령했다.

기세 좋게 안으로 들어와서는 갑자기 그러는 그의 행동은 의문투성이였다.

근데 더 놀라운 것은 임충이나 정문부,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 이에 동요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해 입구 밖으로 뛰어나갔다는 사실이다.

“쿠와아아!”

침입자가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모습을 본 오크 전사는 분노를 실은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는 오크들을 데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한 움직임이 전력으로 뛰면서 상호는 입가에 미소를 살짝 지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이 모든 것은 상호의 예상대로였다.

처음 공격을 시작했던 곳에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토벌대는 전력으로 후퇴했다.

오크 전사와 오크들은 어느새 바짝 뒤를 추격해오고 있었다.

상호는 옆쪽의 절벽을 보고는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지금이다!”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더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르르륵.

사람 머리통만한 돌들이 우박처럼 절벽 위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오크들이 있는 곳으로 낙하했고 그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꽤애액!”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돌에 얻어맞은 오크가 피를 뿌렸다.

방패를 가진 오크 전사나 몇몇은 낙석을 막아냈지만 그렇지 못한 놈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되었다.

이것을 본 상호는 크게 소리쳤다.

“돌격 앞으로!”

이 외침에 후퇴를 하던 토벌대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아까 입구에서처럼 팽배를 든 인원이 오크들을 밀어붙이고 뒤에서 창으로 급소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을 펼치니 손쉽게 처치를 할 수 있었다.

연달아 쓰러지는 오크들, 하지만 오크 전사는 쉬이 쓰러지지 않았다.

두캉!

“우와앗!”

팽배로 오크 전사의 일격을 받은 사람이 힘을 못 버티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를 본 임충이 몸을 날려 직접 오크 전사를 상대했다.

“하아압!”

기합과 휘둘러진 검.

그 일격은 오크 전사를 살짝 베고 지나쳤다. 하지만 입고 있는 갑옷 탓에 상처를 깊지 못했다.

“나도 돕겠네.”

정문부도 가세해 오크 전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을 피하며 오크 전사는 콧김을 뿜으며 도끼를 휘둘렀다.

“크윽.”

검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힘의 격차 때문에 정문부는 뒤로 밀렸고 검을 쥔 손아귀에서 상처가 생겨 그만 검을 놓쳤다.

이런 정문부를 노리고 오크 전사는 다시 도끼를 내리찍으려 했다.

“어림없지!”

상호는 창으로 오크 전사를 견제했고 뒤이어 율도 가세했다.

1대4의 대결.

살아남은 다른 오크들을 다른 인원에게 맡기고 네 사람은 오크 전사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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