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47화 (47/127)

九장. 정문부. (6)

오크 전사를 두고 상호는 같이 그를 포위한 다른 세 사람과 눈빛을 교환했다.

오크 전사의 주의를 임충이 빼앗는 사이, 기습적으로 상호가 창을 찔러갔다.

“취잇!”

오크 전사는 상호의 공격을 알아채고 창을 피했다.

바로 그 순간, 반대편에 서 있던 율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아래서 위로 검을 휘둘렀다.

검이 등을 베고 지나가면서 피를 뿌렸다.

“크와아아!”

“죽어라, 괴물!”

율을 향해 반사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려는 오크 전사를 향해 이번엔 정문부가 검을 휘둘렀다.

오크 전사는 검이 날아드는 것을 간파하고 재차 옆으로 몸을 빗겨 피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오크 전사는 방패를 든 팔을 크게 휘둘렀다.

“크윽!”

간격을 좁히며 공격하려 했던 상호와 임충은 강철로 된 방패를 피해 뒤로 다시 물러나야만 했다.

오크 전사는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자신을 둘러 싼 네 사람을 노려보았다.

“보통 내기가 아니군.”

“북방의 거란이나 여진족 중에서도 이 만큼 잘 싸우는 존재는 거의 없었소.”

“다들 조심하십시오.”

오크 전사는 어떻게든 본거지로 돌아가기 위해 난폭하게 날뛰었다.

이런 놈을 상대로 임충과 정문부가 정면을 막아서 상호와 율이 뒤를 노렸다.

“쿠어어어!”

“가게 둘 성 싶으냐!”

자신을 달려오는 오크 전사를 본 정문부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방패를 앞에 두고 오크 전사 몸에 직접 부딪쳤다.

충격과 함께 정문부는 방패째로 도로 반대편으로 튕겨나갔지만 오크 전사 역시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멈췄다.

“타핫!”

상호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왼쪽 허벅지 뒤를 창으로 찔렀다.

창날은 그대로 오크의 살과 근육을 찢어발기며 안쪽까지 파고 들었다.

이에 오크 전사는 창에 찔린 다리를 절뚝였다.

그런 놈을 노리고 율이 뛰듯이 다가와 도끼를 쥔 손의 손목을 베고 바람처럼 지나쳤다.

손목에서 피가 쏟아지면서 오크 전사는 도끼를 놓치고 말았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임충이 달려와 오크의 목젖을 향해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커, 커헉!”

오크 전사는 숨 한 번 헐떡이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뒤를 쫓아온 오크들은 모두 전멸하였다. 이에 반해 토벌대의 피해는 중상자 한 명에 경상자 셋에 불과했다.

완벽한 승리에 상호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계획한대로 움직였다고는 해도 이렇게 희생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니. 초짜 헌터들보다도 낫네.’

상호가 헌터로 활동하면서 헌터라는 신종 직업에 흥미를 갖고 또는 무작정 돈이 된다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이 일에 뛰어드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봐왔다.

그저 무기나 돈으로 산 능력을 믿고 달려든 그들은 막상 실전에서는 패닉을 일으키고 사고만 일으키는 통에 생기지 않을 희생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선 늘 맹수나 북방 오랑캐와 사투를 벌이며 살아온 함경도의 사람들은 싸움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초짜 헌터보다 낫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헌터들이 쓰는 장비나 능력까지 더해준다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그것은 먼 훗날이 될 것이었다.

“자, 이제 남은 건 오크 로드뿐인가.”

게임으로 치면 보스만 남은 셈이다.

상호를 비롯해 토벌대는 다시금 텅 비게 된 본거지로 들어갔다.

아까 불화살로 태운 나무 목책은 이미 검게 타버린 상태였고 주변으로 불씨가 옮겨가 다른 곳에서도 화재가 난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산 전체에 불이 나 큰 화재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오크 로드를 처치하는 게 먼저였기에 아까 눈여겨 본 움막 앞으로 다가갔다.

부하들이 모조리 몰살된 상황에서도 오크 로드는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안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너무 위험합니다. 차라리 연기를 피워 안쪽으로 보내는 게 낫겠네요.”

상호는 안에 있을 오크 로드를 바깥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앞쪽에 인근에서 공수해온 불씨를 이용해 모닥불을 피웠다.

불쏘시개로 쓰인 송진이 아직 나오는 생생한 소나무 가지를 썼기에 금방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바람 방향에 따라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쿠워어어어!”

포효가 들리더니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날 송곳이 꽂힌 가죽 갑옷을 입고 동물의 뼈나 이빨, 발톱 등으로 만든 목걸이를 찬 오크 로드는 다른 오크의 두 배나 되는 체형을 갖고 커다란 식칼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크르르르.”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오크 로드는 낮게 울음소리를 내며 토벌대의 면면을 쭉 훑어보았다.

이미 오크들과 교전을 치르게 되면서 이들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오크들과는 질적으로 틀린 오크 로드의 존재감 앞에서는 위압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겁 낼 것 없습니다.”

오크 로드의 위압감을 제일 먼저 떨친 것은 역시 상호였다.

모두의 정신을 깨우는 외침을 토해낸 상호는 쥐고 있던 창을 그대로 오크 로드한테 던졌다.

상호의 괴력에 의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창은 날아갔다.

하나, 오크 로드가 든 칼이 한 번 휙 내질러진 것만으로 창은 그대로 공중에서 분쇄되었다.

“체엣!”

박살나는 창을 보며 상호는 혀를 찼다.

역시나 오크 전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치를 저 오크 로드는 갖고 있었다.

놈을 상대로 단독으론 이길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다 같이 힘을 모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놈이 강하다고 해도 우리 모두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 당연하지.”

방금 일로 위축된 인원들의 사기를 독려하는 상호의 말에 정문부도 가세했다.

두 사람의 말에 위압되었던 이들은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다시 들었다.

“쿠워!”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오크 로드는 재차 포효를 토해내면서 싸울 태세를 취했다.

곧 토벌대는 입구를 막고 반포위의 진형을 구축했다.

“놈이 달아날 길을 막아라!”

오크 로드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보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놈을 보며 상호는 한쪽 손을 위로 높게 들었다.

“발사!”

상호의 명령에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사수들이 일제히 오크 로드를 향하여 화살을 날렸다.

상호의 머리 위를 지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화살들은 오크 로드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쿠워어어!”

오크 로드가 풍차처럼 칼을 휘두르자 그 궤적을 따라 강풍이 불었다.

이로 인해 십여 발의 화살은 다 중간에 엉뚱하게 날아가거나 부러졌다.

공격은 실패했지만 놈의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지금입니다!”

상호의 재차 이어진 명령에 창을 든 살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꺼번에 내질러져 오는 창을 본 오크 로드는 다시 한 번 크게 칼을 휘둘렀다.

풍압과 함께 창들은 무참히 꺾였고 이를 들었던 살수들은 뒤로 나뒹굴게 되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임충이 자세를 최대한 낮추며 거리를 좁혔고 지면에서부터 위로 올려치는 검격을 날렸다.

“크아아!”

옆구리를 살짝 베인 오크 로드는 분개하며 임충을 향해 옆으로 칼을 내질렀다.

이 일격을 받아냈지만 임충의 몸은 하늘을 떠서 오두막 벽에 부딪쳤다.

“이런! 이 요괴 놈이!”

임충이 날아가는 모습에 분개한 정문부가 오크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그러나 곧장 오크 로드의 발길질이 앞으로 내민 방패를 강타하면서 정문부는 뒤로 쓰러졌다.

이를 본 상화와 율은 쓰러진 정문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받아랏!”

상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창을 빠르게 찔렀다.

오크 로드는 창대를 중간에 붙잡았다.

“크윽!”

상호는 힘을 줘 떨쳐내려 했지만 오크 로드는 그보다 훨씬 힘이 강력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체험에 상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창대에서 손을 놓았다.

이런 가운데 율이 오크 로드를 한 차례 베고 지나가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막상 공격을 성공한 율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분명 제대로 베었지만 상처는 지극히 작았던 것이다. 이는 오크 로드의 피부가 아주 튼튼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공격으로 큰 이득은 못 봤지만 정문부가 무사히 이탈하도록 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넷이 덤벼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 오크 로드.

상호는 식은땀을 뺨을 통해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만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강하다.’

이대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상호는 뭔가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자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쿠어어!”

“놈을 막아라!”

오크 로드가 포효하며 자신을 포위한 토벌대를 향해 돌진을 시도했다.

놈이 오는 것을 보고 방패와 창으로 막아보지만 단지 몸을 부딪쳐온 것만으로 뭉쳐있던 사람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으으.”

“아이구야!”

신음하는 사람들을 두고 상호는 황급히 물의 속성력을 사용했다.

“수룡시!”

오크 로드에게로 향하는 물화살들!

몸을 돌린 오크 로드의 팔다리, 몸통에 타격이 들어갔다.

관통까지는 못했지만 타격에 오크 로드가 처음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세!”

“넷!”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임충과 율이 각각 나란히 달려 오크 로드를 검으로 공격했다.

임충의 검은 왼쪽 팔뚝을 베었고 율의 검도 재차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쿠와!”

피를 흘리면서 오크 로드는 난폭하게 도끼를 뒤쪽으로 휘둘렀다.

도끼 날이 아슬아슬하게 몸짓에 의해 크게 움직이던 율의 댕기 머리를 스쳤다.

율은 앞구르기로 공격을 피해내고 그대로 수그린 자세에서 오크 로드의 발목 쪽을 노리고 매섭게 검을 뿌렸다.

허벅지 뒤로 반쯤 파고든 검에 오크 로드는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릎을 굽혔다.

“잘 했다!”

몸을 추스르기 무섭게 어느새 창으로 무기를 바꾼 정문부가 오크 로드에게 냅다 창격을 가했다.

비록 오크 로드가 몸을 틀어 갑옷 때문에 타점이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그래도 공격은 통했고 맞은 부분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크 로드를 더욱 흥분케 할 뿐이었다.

“쿠어어!”

오크 로드는 연이은 상처에 포효를 하며 앞에 선 정문부를 향해 칼을 수직으로 휘두른다.

이에 대응해 정문부가 창대로 칼을 막아보았지만 허망하게 창은 두 동강이 나고 아울러 입고 있던 두정갑도 크게 찢어졌다.

그나마 천운이랄까.

창의 간격 덕에 거리를 좀 더 두고 있었던 덕에 갑옷만 찢기고 몸은 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상호의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무턱대고 덤벼들어봤자 놈의 성질만 난폭하게 키울 뿐이다.’

각자 나름 오크 로드를 잘 상대하고 있지만 막상 연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오크 로드의 숨통을 끊을 만한 치명적인 공격을 넣기 전에 먼저 이쪽이 지쳐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상호는 이리 생각하면서도 나서지 않고 오크 로드의 움직임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거칠고 무절제해보이지만 실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놈의 움직임은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관찰한 끝에 오크 로드의 행동에 몇 가지 패턴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상호는 세 사람에게 들리게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율은 우측으로 세 발자국 이동하고 임 무관은 지금 위치에서 한 발 앞으로 이동해요.”

지금 상호의 말은 지시나 다름없었다.

오크 로드와 근접해 싸우던 율과 임충은 상호의 지시에 순간 망설였다.

위험한 적을 코앞에 두고 타인의 말을 믿고 행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호를 믿어보기로 했다.

챙!

오크 로드가 하던 습관대로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돌격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간 위치에선 놈은 자신이 칠 상대를 찾지 못했다.

상호가 말한 위치로 이동한 두 사람은 오크 로드의 공격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배후를 점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이다!”

상호의 외침에 두 사람은 무의식중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에 오크 로드는 등에 생긴 긴 두 줄기의 상처에 몸을 바들 떨었다.

상호의 지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문부 공은 우측으로 돌아서 들어가고 율은 왼쪽 두 발자국 이동, 임 무관은 하단 공격을 주의하십시오!”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

세 사람은 상호의 말대로 따랐다.

그러자 자연스레 品자 형태로 오크 로드를 포위하게 되고 오크 로드는 세 사람의 공격에 허우적거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세 사람 모두 믿음을 갖고 상호의 손발이 된 것처럼 착착 움직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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