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50화 (50/127)

十장. 북관대첩. (2)

국경인이 일으킨 반란군을 막기 위해 정문부는 바로 각지로 사람을 보내 더욱 많은 병력을 모았다.

또한 한 편으론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회유하려는 일도 진행했다.

그 결과, 국경인의 숙부인 국세필을 회유하는데 성공하여 무혈입성으로 경성을 되찾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에 더욱 많은 인원이 정문부 밑으로 들어오니 의병 부대는 삼천여 명의 부대로 확대되게 되었다.

무엇보다 두 왕자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정문부는 바로 모인 의병들을 이끌고 회령으로 진격해갔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뭣이! 국경인 그 자가 야밤에 도주를 했다고.”

“회령을 정탐하러 간 자의 보고에 따르면 경성이 떨어지고 난 바로 다음 날에 국경인이 일부의 측근만 데리고 두 왕자님과 함께 남쪽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회령까지 거의 다 온 상황에서 이런 보고를 받은 정문부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반란의 주체가 본거지를 버리고 도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일은 원래 역사에선 없던 일이었다.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은 상호의 예측대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남쪽에서 올라오는 가토 기요마사와 내통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역시 마찬가지로 역사보다 빠르게 이뤄진 정문부의 의병 궐기와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수중에 있던 경성을 뺏기게 되면서 국경인은 덜컥 겁을 먹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그대로 붙잡혀 반란의 죄를 추궁 받아 그대로 목이 달아날 것 같았기에 얼른 왜군이 있는 길주로 측근들과 선물로 바칠 두 왕자를 데리고 도주를 한 것이었다.

정문부는 분함을 드러내며 말머리를 돌렸다.

“서둘러 반역자를 따라잡는다.”

“아마도 오금산을 지나 덕수 고개로 넘어갈 겁니다. 그쪽이 길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니깐 말입니다”

“여기서 기병으로 쫓는다면 따라잡을 수 있겠나.”

“아마도···가능할 겁니다.”

이 근처 지리를 잘 아는 사냥꾼은 그리 말했다.

정문부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나는 기병들을 데리고 먼저 뒤를 쫓을 테니 종성부사는 뒤에 남은 부대를 데리고 회령을 점령해주시게.”

“알겠습니다, 북평사 나리.”

정문부의 의병 부대에 합류한 종성부사 정현룡은 명에 따랐다.

곧 정문부는 고르고 뽑은 백 명의 기병을 데리고 도주한 국경인을 쫓고자 했다.

그리고 여기엔 상호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랴!”

길잡이의 안내를 받아 정문부와 기병들은 신속하게 남쪽으로 달렸다.

국경인이 지나갔으리라 추정되는 덕수 고개를 넘는 길.

달리던 기병들은 한 곳에서 급작스럽게 멈추게 되었다.

“흡!”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들이 멈춘 것은 길 한복판에서 벌어진 처참한 살육 때문이었다.

적어도 수십이 되는 인원이 무참하게 살해되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정문부는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치를 떨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북평사 어른, 이들은 아무래도 국경인의 일당인 것 같습니다.”

“뭣이라?”

말에서 내려 시체를 살핀 군관이 이리 보고했다.

확실히 전원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과 국경인 일당이 이곳을 지나쳤을 것임 생각한다면 지금 여기 널브러진 시체들의 정체를 추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한편, 상호는 마찬가지로 말에서 내려 시체들 주변을 살폈다.

“이것은?”

“뭔가 발견한 게 있나?”

뭔가를 알아챈 눈치를 보인 상호를 향해 정문부가 말을 걸어왔다.

비록 친구가 되기로 했지만 사람들의 눈이 많은 자리였기에 상호는 전처럼 존대로 답변했다.

“제가 봤을 때는 이들은 웨어 울프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시체에 남은 상처의 흔적과 땅에 박힌 발자국을 통해 미뤄볼 때 거의 확실했다.

웨어 울프.

흔히 늑대 인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몬스터는 오크와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이다.

다만 오크와 다른 게 있다면 무리 간의 협동성이 뛰어나 집단 대 집단으로 싸우면 훨씬 어려운 몬스터였다.

“그 웨어 뭐시기도 요괴 중 하나인가?”

“그렇습니다.”

“허!”

상호의 대답에 정문부는 혀를 찼다.

아마도 이 근방에 게이트가 열린 것이리라. 그리고 거기서 나온 것은 이들 웨어 울프일 것이다.

하필 이들 웨어 울프의 영역을 지나친 게 이들의 큰 실책인 된 셈이다.

시신들을 살피던 군관이 정문부에게 다시 보고를 올렸다.

“두 왕자님의 시신으로 보이는 시체는 없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보고에 정문부는 진심으로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에게 상호가 넌지시 조언하였다.

“안심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웨어 울프들은 한 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은 그냥 놔주지 않습니다. 자기네 영역 바깥까지 악착같이 무리로서 추격하기 때문에 아마 여기서 도망친 자들도 지금 위험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욱 서둘러야겠군. 국경인 그 자도 잡고 두 왕자님을 무사히 구출해야하지 않겠나.”

상호의 설명에 정문부는 바로 길을 재촉했다.

같은 시간.

“헉헉! 아직도 더 가야 하느냐.”

“조금만 더 가면 왜군이 주둔한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힘을 내십시오.”

초라한 꼴의 무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갈대 숲 사이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상처입고 피를 흘리는 자들 중에는 이번에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이 있고 또 뒤론 봉두난발을 한 임해군과 순화군이 있었다.

두 왕자는 포승줄에 묶인 채로 끌려오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공포가 역력했다.

“아우우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

이곳 함경도에서 그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토박이인 병사들은 그 소리를 두려워했다.

불과 3시진(6시간) 전에 두 발로 서서 달리는 늑대들에게 습격당했기 때문이다.

“서, 서둘러라!”

공포에 가득 찬 국경인은 자꾸 재촉을 했다. 이에 다들 이를 악물고 걸음을 바삐 옮겼다.

하지만 이런 빠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헉, 헉! 조금만 천천히 가자.”

죽는 소리를 하며 임해군이 말하자 포승줄의 끝을 붙잡고 있던 거친 인상의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허튼 소리 말고 빨리 쫓아오기나 해.”

“이보게! 정말로 힘들어서 그러니 숨을 돌리고 가세나.”

“젠장! 궁궐에서 호위호식만 하니 그 모양이지. 그냥 마음 같아서는 여기다 확 버리고 가고 싶구먼.”

“허억! 제발 날 버리지 말게!”

왕족으로서의 품위도 버리고 말하는 임해군을 보며 사내는 혀를 찼다.

그러면서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그 때!

갈대 사이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사내의 턱을 붙잡고 그대로 반대편 갈대숲으로 사라졌다.

“으아아악!”

하필 사내의 손에 걸려있던 포승줄이 당겨지면서 임해군과 순화군이 바닥에 끌리며 갈대숲 사이로 들어갔다.

“뭐하는가! 어서 저들을 데려오지 않고.”

“하, 하오나······.”

“저 왕자들이 없으면 왜놈들이 우리를 그냥 받아줄 것 같으냐. 살고 싶다면 어서 데리고 와!”

국경인의 으름장에 마지못해 병사들은 갈대를 헤치며 두 왕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갈대숲 외곽에서부터 여러 방향으로 갈대를 헤쳐 가며 접근해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이들은 은밀하고 또 서로 떨어져서도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크아악!”

“어이, 이봐!”

가까이서 들린 외마디 비명에 갈대를 꺾으며 이동하던 이들은 제자리에 돌 굳듯 멈춰 섰다.

자신이 지금 노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식은땀을 흘려댔다.

“어디여! 이놈들 당장 튀어나와라!”

월도를 든 한 사내가 돌연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미쳤나, 자네!”

“시방 뭐하는 겨!”

공포심이 극에 달하니 제대로 된 분별력이 발휘하지 못하게 사내들은 서로를 보며 우왕좌왕했다.

이런 사냥감의 약한 모습은 곧 포식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사사삭!

갈대를 헤치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이 소리 없이 끌려가져 버린다.

뒤이어 다른 자들도 끌려가기 시작하니 남은 자들은 왕자고 뭐고 살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였다.

“이 놈들, 어디 가는 게냐!”

국경인은 자신마저 버리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보고 고함을 쳤지만 그 누구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고작해야 열 명 남짓의 측근 뿐, 국경인은 왕자들을 되찾아야한다는 것도 포기하고 자기 목숨을 부지코자 도망쳐야만 했다.

하나, 그의 등 뒤에는 이미 저승사자가 가까워져 있었다.

다다닷!

빠르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그것은 짐승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에이잇!”

한 명이 승자총통을 들고 그것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갈대 사이로 언뜻 보이는 형체를 노리며 그는 총구를 계속해서 돌렸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정신없이 고개가 돌아가고 덩달아 총구도 흔들렸다.

“썩 나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내지른 외침에도 불구하고 근처의 갈대만 살짝 흔들릴 뿐, 상대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싸아아.

이때, 갈대가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거기냐!”

외침과 함께 심지에 불이 붙고 탄환이 발사되었다.

타앙!

총성과 함께 동그란 탄환이 갈대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어떤 표적도 맞추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갈 뿐이다.

“이이익!”

사내는 허겁지겁 다시 장전을 서둘렀다. 허리를 숙인 그는 갈대 사이에 웨어 울프가 도약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검은 그림자가 주변을 가리고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늦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타앙.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시급을 다투며 달리던 이들은 급히 말을 멈췄다.

“방금 그 소리는?”

“총성이군요.”

상호 역시 방금 전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소리의 반향을 볼 때, 위치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서 가지.”

“잠깐, 여기서는 신중히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말을 달리려 하는 정문부를 상호가 제지했다.

지금 주변엔 사람 키보다 높은 갈대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이런 곳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웨어 울프의 습격에 속절없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헌터인 상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으음, 할 수 없지.”

상호의 조언에 정문부는 납득을 하고 다들 말에서 내리게 했다.

그런 다음에 철저하게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수색 대형으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신중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상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인 ‘매의 눈’을 활용하기로 했다.

“저기가 좋겠군.”

갈대숲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거목을 발견한 상호는 곧장 그리로 향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 확대된 시야로 남들이 볼 수 없는 먼 곳을 본 상호는 뭔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음!”

상호가 발견한 것은 도포를 입은 한 남자가 죽자 살자 달리는 모습과 그 뒤를 쫓는 웨어 울프들이었다.

그것을 본 상호는 단걸음에 뛰어내려와 일행에게 알렸다.

“앞에 웨어 울프들에게 쫓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전하기 무섭게 상호는 먼저 앞질러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움직이다가 쫓기던 사람이 그 사이에 살해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3단계에 이른 ‘민첩성’을 가진 상호는 그야말로 날쌘 표범처럼 빨랐다.

빽빽하게 자란 갈대 사이를 지나 무서운 속도로 달린 상호의 앞으로 쓰러진 채 바닥을 기른 사람과 그 주변에 서 있는 웨어 울프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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