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장. 홍의장군. (4)
방금 전의 굉음은 불랑기포가 낸 것이었다.
포에서 발사된 철환은 리자드맨들이 만든 허술한 움막 중 하나를 그대로 무너뜨렸고 리자드맨들을 자극시켰다.
“놈들이 옵니다.”
“어서 재장전을 서두르게.”
불랑기포의 사용한 자포를 분리하고 새로운 자포를 결합하는 일을 하는 것은 조인환과 떡쇠였다.
고작 며칠 밖에 연습하지 않았지만 이 둘은 그래도 꽤 신속하게 새로운 자포를 본체인 모포에 결합하였다.
포를 준비하는 사이에 곽재우는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리자드맨들의 정면에 분신을 만들어냈다.
“크라라!”
분신을 발견한 선두의 리자드맨이 다짜고짜 창부터 던졌다.
창이 명중되기 직전에 곽재우는 분신을 지우고 재빨리 몇 보 떨어진 위치에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냈다.
이런 분신의 교대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간을 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처럼 여기게 했다.
이에 리자드맨들은 그 분신을 따라 움직였다.
“방포 준비 되었습니다.”
“발사하라.”
곽재우의 명령에 조인환은 떡쇠와 함께 불랑기포를 조준해 포를 쐈다.
굉음과 함께 무리지어 오던 리자드맨들 사이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충격에 나자빠지는 리자드맨 사이로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우악스럽게 돌격하였다.
놈은 바로 일전에 곽재우가 상대했던 리자드맨 투사였다.
“오라!”
놈에 맞서 곽재우는 환도를 빼어들고 마주 달렸다.
이를 쫓아 노유명이 바로 따라 달렸다. 그는 반드시 곽재우의 신변을 지켜내라는 상호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 것이다.
여기에 편승해 다른 의병들도 일제히 무기를 앞으로 내달렸다.
“크라!”
곽재우를 향해 리자드맨 하나가 창을 던진다.
하지만 창에 꿰뚫린 것은 그 짧은 사이에 만든 분신이었고 실체를 그 뒤에 바짝 따르고 있었다.
“죽어라!”
일갈과 함께 곽재우는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좁힌 다음 단숨에 비늘과 함께 살이 뭉텅이로 베어냈다.
이러한 곽재우의 놀라운 모습은 상호를 통해 그간 몬스터 토벌을 하면서 얻은 몬스터 코어의 능력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단숨에 한 마리를 처치한 곽재우는 계속 전진해 리자드맨들을 베어냈다.
이러한 모습에 사기가 고무된 의병들은 기합을 발하며 리자드맨들과 맞서 싸웠다.
“크롸라라!”
“그래, 네 놈이 나올 줄 알았다!”
곽재우의 앞을 가로막은 리자드맨 투사.
놈은 살기를 쏟아내며 곽재우를 노려보았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곽재우는 놈을 향해 내달렸다.
채앵!
검이 창과 부딪치고 둘은 뒤엉켜 싸웠다.
전과 다르게 리자드맨의 완력과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게 곽재우는 전혀 밀리지 않고 응전했다.
“크라아앗!”
하지만 리자드맨 투사 역시 호락호락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폭발적인 힘으로 창을 찔러대니 곽재우는 방어를 하기 급급했다.
이때, 리자드맨 투사의 배후에서 노유명이 소리 없이 공격을 취했다.
“카아앗!”
검이 들어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진 리자드맨 투사라도 귓구멍이 있는 부분은 연약했다.
바로 그 부위를 노리고 단도를 박아 넣은 노유명은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났다.
스스슷.
이 틈에 자신을 셋을 늘린 곽재우는 동시에 움직였다.
전처럼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몰랐지만 학습 효과를 통해 리자드맨 투사는 셋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창이 180도 반경으로 크게 휘둘러지면서 세 명의 곽재우 모두 창날에 베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 허상으로 지워져갔다.
“······!”
“두 번이나 같은 수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분신만을 내보내고 뒤에 남았던 곽재우는 승리의 미소를 그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에 막 불랑기포의 장전을 마친 조인환과 떡쇠는 무방비가 된 리자드맨 투사를 향해 방포했다.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아드는 거대한 철환을 리자드맨 투사는 동공을 확장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크르락! 카르르르!”
“크라아!”
본거지에 남겨진 리자드맨은 모우 여섯이었다.
그 중에는 로드라고 생각되는 다른 리자드맨보다 더 덩치가 크고 악어와도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놈과 유일하게 옷 같은 것을 입고 지팡이를 든 왜소한 체구의 리자드맨이 있었다.
이 둘을 먼저 제압해야 하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상호는 상황을 보고 뒤에 엎드린 채 대기 중인 두 사람에게 말을 전했다.
“내가 능력으로 놈들을 혼란에 빠트릴 테니 두 사람은 단번에 달려가 먼저 저 옷을 입은 놈부터 처치하는 겁니다.”
“네, 나리!”
“확실히 베도록 하겠습니다.”
상호는 두 사람을 확고하게 믿었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까처럼 ‘심해의 투옥’을 써서 리자드맨들을 무력하게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최대 4마리까지가 한도이고 또 상위 개체에게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대신 상호는 ‘수룡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펼치기로 했다.
촤아아아.
물기둥이 위로 빠르게 치솟는다.
순식간에 올라간 대량의 물은 단숨에 수십 발의 ‘수룡시’가 되었다.
본래라면 상호의 능력으론 이렇게 많은 ‘수룡시’를 운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어나 표적 조준 같은 정신력을 많이 요구하는 부분을 아예 배제하고 한정된 지역에 그냥 내리꽂는다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지금과도 같은 공격을 가능케 한 것이다.
떨어지는 무수한 공격에 로드를 포함해 리자드맨들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크라라랏!”
부족 내에서 ‘주술사’의 역할을 하는 상위 개체는 위를 향해 지팡이를 들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용했다.
지팡이 끝에서 엄청난 한기가 뿜어져 떨어지는 ‘수룡시’들을 뒤덮었다.
고드름이 되어가는 ‘수룡시’는 한기를 따라 이어졌고 허공에서 고정되었다.
그렇게 상호의 공격은 리자드맨들에게 닿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대신 율과 임충, 두 사람이 절호의 기회를 잡게 한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서컥!
무방비로 등을 보인 리자드맨들을 단숨에 베어내며 두 사람은 리자드맨 주술사를 향해 돌진했다.
“크랏!”
이를 뒤늦게 발견한 리자드맨 주술사는 부랴부랴 지팡이 끝을 돌려 두 사람을 향해 능력을 쓰려했다.
이보다 먼저 율은 진흙투성이의 바닥을 마치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지금 율이 자신의 양 발바닥에 포스를 덧씌워 진흙에 빠지지 않고 마찰을 최소화해 속도를 한층 빠르게 낸 것이다.
한기가 미처 형성되기도 전에 간격을 좁힌 율이 긴 호선을 그렸다.
푸화학!
검이 지나간 자리로 피가 솟구치고 리자드맨 주술사의 지팡이가 잘리고 가슴에도 큰 상처가 생겼다.
“하아아앗!”
이런 놈을 향해 기합을 내지르며 임충은 뒤이어 달려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근력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는 3단계 근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일격으로 목을 쳐내는데 성공했다.
“가장 성가신 존재를 잡았다.”
상호는 계획대로 된 것에 기뻐하면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직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리자드맨 로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크롸라라라!”
분노한 리자드맨 로드가 포효를 지르자 주변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율과 임충은 검을 멈추지 않고 주변에 있던 네 마리의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
이제 일 대 삼의 상황.
빨리 바깥을 돕기 위해서라도 리자드맨 로드를 꺾어야만 했다.
상호는 두 사람 사이로 서면서 한 가지 사실을 전하였다.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해서 더 이상은 능력을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율도 어느 정도 힘을 남겨두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
“명심하겠어요.”
“그럼 갑시다!”
상호의 말을 신호로 세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리자드맨 로드 역시 거대한 참마도를 들어 보이며 기세를 강하게 뿜어냈다.
“허어어업!”
정면으로 달려든 임충이 검에 힘을 실어 일격을 날린다.
리자드맨 로드는 참마도를 들어 날아든 검을 받아내었다.
“지금이다!”
“네!”
임충의 양쪽으로 돌아 접근한 상호와 율이 동시에 공격했다. 하지만 상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휘익!
느닷없이 채찍처럼 날아든 꼬리에 상호가 그대로 얻어맞고 날아갔다.
여기에 반대편에서 옆구리를 노리고 포스가 실린 검을 날린 율 역시도 상호를 치고 곧장 반대편으로 날아든 꼬리에 급히 물러나야만 했다.
“아으으윽.”
마치 철퇴에 얻어맞은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상호는 진흙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충분히 능력을 올려두지 않았다면 지금 일격으로도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격통만 느낄 뿐,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렇게 쓰러져있을 때가 아니라고.”
상호의 눈앞에서는 치열한 검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투캉!
성인 남성의 몸보다 큰 참마도가 바람을 일으키며 임충을 연신 노렸다.
이러한 공격을 환도를 받아내는 임충의 솜씨는 가히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검술의 기교로 참마도를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고 흘려냈지만 평범한 강철 검이 리자드맨 로드의 일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고작 몇 번의 검합을 주고받은 것만으로 이미 검신의 날은 이가 빠진 상태였다.
“임 무관 나리!”
율이 끼어들어 임충을 대신해 리자드맨 로드의 참마도를 상대했다.
그녀 또한 3단계 완력을 지녔지만 기본적인 신체 조건에서는 임충을 따라갈 수 없었고 리자드맨 로드의 근력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질 수 없는 괴력이었기에 여지없이 밀렸다.
포스가 깃든 검은 임충의 검과 다르게 전혀 상하지 않고 예기를 뿜어냈다.
“크라라!”
괴성과 함께 사선으로 연거푸 참마도를 휘두르는 리자드맨 로드.
이를 피하며 율은 전에 와이번을 쓰러뜨렸던 수법인 나는 참격을 날렸다.
수직으로 뻗어나간 무형의 참격이 리자드맨 로드의 몸을 가로질렀다.
그렇지만 워낙 단단한 몸뚱이를 가진 리자드맨 로드는 가죽이 찢기고 피가 배어져 나오는 수준의 상처만 받았을 뿐이었다.
“크라라라!”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에 분노한 리자드맨 로드가 앞에 선 율을 향해 지금까지 냈던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참마도를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려치려 했다.
피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운 상황.
율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받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이야아압!”
기합과 함께 상호가 내지른 일격이 등 뒤의 꼬리 중간 부분에 작렬했다.
두꺼운 꼬리를 완전히 벤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꼬리를 절단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그것을 쓰지 못하게 할 만큼 큰 상처를 주는 데는 성공했다.
율은 고통으로 자세가 일순간 자세가 흐트러진 리자드맨 로드의 목젖을 향해 포스를 담은 검을 찔러 넣었다.
“커, 커억!”
목에 구멍이 뚫린 리자드맨 로드에게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뒤에서 대기하던 임충이 몸을 날려 안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콧잔등의 비늘이 찢어지고 피가 튄다.
“조심해!”
상호는 뒤에서 리자드맨 로드의 움직임을 보고 소리쳤다.
고통과 별개로 본능에 따라 휘두른 참마도가 같이 있는 율과 임충을 동시에 노렸다.
카가가각!
이를 막기 위해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은 참마도를 검으로 막았다.
“으윽!”
“이이익!”
두 사람이 힘을 합했지만 그럼에도 둘 다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튕겨졌다.
이에 리자드맨 로드는 다시 팔을 들며 쓰러진 둘을 쫓고자 했다.
“넌 내가 상대한다!”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상호는 리자드맨 로드의 등을 검으로 후려쳤다.
단단한 비늘 때문에 거의 효과가 없었지만 놈을 뒤돌게 할 수는 있었다.
“크르르르.”
“그래 이쪽에 내가 있다.”
두 사람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상호는 리자드맨 로드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도록 했다.
이런 도발에 걸려든 리자드맨 로드는 상호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질수록 리자드맨 로드의 그림자가 몸을 가린다.
이에 침을 삼키며 상호는 검을 앞으로 내밀고 정면 승부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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