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장. 홍의장군. (5)
두 배는 큰 리자드맨 로드를 두고 상호는 살짝 떨리는 다리로 서서 검을 들어올렸다.
뒤에서 달려들 때는 몰랐지만 이런 위압감은 좀처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근접전은 내 장기가 아니지만···이곳에 와서 나는 전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해볼 만 해.’
스스로를 설득하며 상호는 ‘매의 눈’으로 리자드맨 로드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이런 그에게 마침내 육중한 참마도가 풍압을 일으키며 쇄도해왔다.
미리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으로 포착해 어떻게 공격이 올 줄 알았던 상호는 그것을 피하면서 허점을 내보인 옆구리를 노렸다.
“크라앗!”
“빌어먹을!”
설마 그 순간에 리자드맨 로드가 몸을 크게 움직일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
상호는 공격에 실패하고 순간 덮쳐온 리자드맨 로드의 몸뚱이와 부딪쳐 뒤로 튕겨졌다.
그나마 쓰러지지 않고 균형을 다시 잡는데 성공해 자세를 다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각각 다른 궤도로 휘둘러오는 참마도를 상대로 검을 마주 휘두르는 상호.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내내 율과 임충에게서 검술을 배웠기에 전보다 훨씬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정갈했다.
‘더럽게 무겁네.’
왜 ‘근력’ 위주로 능력치를 올린 임충이 밀린 것인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고 상호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그러다 지대가 급격히 내려가지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바로 뒤는 늪지의 물가였다.
“이런!”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음을 안 상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지는 참마도를 피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르는 상호.
허공을 가른 참마도는 바닥에 꽂혔다.
‘지금이 찬스다!’
상호는 몸을 던져 리자드맨 로드를 옆에서 힘껏 밀었다.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리자드맨 로드가 물에 빠졌다.
“나리!”
“무사하십니까!”
상호 덕분에 몸을 추스를 수 있었던 두 사람이 황급히 뛰어왔다.
그 둘에게 손을 들어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며 상호는 물가 쪽을 보았다.
푸화하학!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리자드맨 로드.
“큭!”
“물러나십시오.”
“그럴 수는 없지요.”
지금은 세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허공을 날아 땅 위에 착지한 리자드맨 로드는 참마도로 바닥을 긁으며 돌진해왔다.
“우오오옷!”
먼저 임충이 달려 나가 힘으로 위로 쳐올려지는 참마도를 막았다.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검을 누르는 임충.
그 틈에 상호와 율이 빠르게 검을 전방으로 찔렀다.
“크라아앗!”
리자드맨 로드는 물러나면서 참마도의 면으로 찌르기를 막았다.
주춤하는 놈을 보며 상호는 외쳤다.
“놈이 공격하지 못하게 밀어붙여!”
“네!”
“하앗!”
세 사람 모두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쉴 틈 없이 움직여갔다.
삼인의 검은 정신없이 쏟아졌고 참마도로 방어를 하던 리자드맨 로드를 마침내 뒷걸음질 치게 하였다.
조금씩 팔다리에 상처를 입는 리자드맨 로드.
하지만 참마도에 의지해 방어에만 전념하는 놈을 쓰러뜨릴 결정타를 날릴 수 없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쪽이 이쪽이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놈의 방어를 뚫고 치명타를 안겨야만 했다.
이때, 상호의 눈에 리자드맨 로드 가슴에 새겨진 상처 부위가 들어왔다.
저기를 다시 칠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진 리자드맨 로드라도 끝장낼 수 있을 터였다.
“크윽!”
“임 무관님!”
앞서 공격하던 임충이 불시의 반격에 피를 흘렸다.
이를 보고 율이 재빨리 리자드맨 로드의 다음 공격을 끊고자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이미 태세를 바꾼 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름 연계가 이뤄지지만 이것만으론 놈을 꺾을 수 없다.’
쓰러뜨리기 힘든 강적을 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완벽한 연계를 해야 했다.
이 순간, 상호의 뇌리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쓸 수밖에 없나.’
마지막 타개책이지만 쓰기는 망설이는 카드가 눈앞이 놓여 있었다.
결국 상호는 그 카드, 영웅 아르모스에게서 얻은 힘을 실전에서 쓰게 되었다.
= 임무관은 놈의 도를 올려치고 율은 다리를 베서 높이를 낮추도록 해!
강한 힘이 실린 음성이 두 사람에게 닿는 순간.
두 사람 모두 지금 들은 말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행동에 이어지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몸은 자동 반사적으로 언령에 따라 움직여갔다.
가가각!
율은 온 몸의 힘을 다하며 허리를 비틀면서 검을 올려쳐 참마도를 위쪽으로 튕겨지게 했다.
이와 동시에 임충 또한 검으로 허벅지 안쪽을 깊숙이 베어 리자드맨 로드의 몸에 낮아지게 만들었다.
정확하게 0.1초의 오차도 없이 이어진 두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상호도 두 사람의 조력을 통해 완성하려던 연계의 정점을 찍고자 했다.
노리는 곳은 율이 베었던 바로 그 상처였다.
‘가라아앗!’
상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마음속으로 외치며 검을 끝까지 뻗었다.
상호의 검은 정확히 상처 부분에 박혔고 그 안쪽을 후비고 지나갔다.
“크라라앗!”
비명이 귀를 아프게 하고 피가 얼굴로 뿜어져 시야가 가린다.
피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지만 지금 해야만 했다.
상호는 이를 악물고 위로 치켜든 검을 뒤로 당긴 다음 그대로 앞으로 찔러 상처에 한 번 쑤셔 넣었다.
이 때, 리자드맨 로드의 가슴에 파고든 검은 한 자루만이 아니었다.
막 상호의 언령에서 벗어난 율과 임충이 자신의 의지로 상호와 같이 검을 상처 부분에 찔러 넣은 것이다.
눈에 튄 피를 손등을 닦으며 상호는 앞을 보았다.
아직 온기가 전해지는 리자드맨 로드.
놈의 손에 들려있는 참마도가 잠시 안 본 사이에 목전까지 와 있었다.
그것을 본 상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이어서 리자드맨 로드를 응시했다.
벌어진 입은 닫히지 않았고 가로로 한껏 좁혀진 동공 또한 상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죽었나?”
미동도 보이지 않는 리자드맨 로드를 보며 상호가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임충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놈의 숨은 이미 끊어졌습니다.”
“휴우!”
그 말을 듣고서야 상호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임충은 할 말이 더 남은 모양이다.
“방금 전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
다른 편에 선 율도 말은 안 하지만 같은 의문을 갖고 있는 눈치였다.
아직 이 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상호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기에 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쿠웅.
바로 이때, 곽재우와 의병들이 싸우는 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당장 저쪽을 도우러 가자고!”
“···알겠습니다.”
납득을 할 수 없었지만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에 임충은 상호의 말을 받아들였다.
아직 격전에 따른 육체의 피로가 다 씻어진 게 아니었지만 삼 인 모두 검을 들고 싸움이 끝나지 않는 그 곳으로 향했다.
상호들이 리자드맨 로드와 사투를 벌이는 사이에 다른 쪽에서도 나름 사투가 벌어졌다.
곽재우의 기지와 화포의 화력에 힘입어 가창 처치하기 힘든 리자드맨 투사를 처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에 싸움은 순탄지 않았다.
다수의 리자드맨들을 감당하기엔 곽재우나 불랑기포만으론 한계가 있었고 능력자가 아닌 의병들 중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창을 방패로 삼고 버텨라!”
흔들리는 부하들을 독려하며 곽재우 본인도 의병들 사이에 긴 장창을 들고 리자드맨의 접근을 막았다.
뒤에는 부상 입은 이들이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기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카앗!”
이때, 방어진을 두들기던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진흙 가득한 지면에 쓰러졌다.
놈의 목엔 깊은 자상이 남겨져 있었다.
“······.”
피가 묻은 검을 들고 말없이 다른 이들과 반대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노유명이 있었다.
그는 방금까지 의병과 리자드맨 시체 밑에 숨어 있고 기회가 되자 기습적으로 암습을 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유명을 향해 살아남은 3마리의 리자드맨이 입을 벌리고 창을 내세워 달려들었다.
피할 수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지만 그럼에도 노유명은 검을 앞으로 내밀고 끝까지 싸우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것을 보고 곽재우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싸우자!”
정신력이 다해 이제는 분신도 만들 수 없었지만 곽재우는 칼 한 자루에 의지해 노유명을 치려는 리자드맨들을 향해 돌격했다.
이를 본 의병들도 입술을 깨물며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려들었다.
“죽어라!”
“카앗!”
뒤엉켜 싸우는 의병과 리자드맨들.
발이 밟힌 지면에서 진흙이 사방으로 뿌려지는 가운데, 창칼이 서로를 향해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칵!”
“아악, 내 다리!”
여기저기 창에 찔린 리자드맨이 쓰러지고 한 쪽에선 다리에 창이 박힌 의병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무기를 잃고 남은 것은 맨 주먹이 되었음에도 의병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이쿠! 이 놈 봐라!”
무작정 리자드맨의 허리를 감싼 떡쇠는 놈을 그대로 엎어 메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리자드맨의 꼬리는 세차게 휘둘러졌고 애꿎은 근처에 있던 의병이 그것에 맞아 땅에 나뒹굴었다.
이렇게 처절하게 싸우던 이 때, 드디어 상호 일행이 합세했다.
“너희가 마지막이다!”
상호는 달려와 그대로 떡쇠와 씨름하던 리자드맨의 목을 날려버렸다.
이어 율과 임충도 가세해 아직까지 살아남은 리자드맨의 목을 치니 싸움은 마침내 종결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드디어 끝났다.”
파김치가 된 모두가 피와 진흙범벅이의 땅에 그대로 주저앉아 가픈 숨을 몰아쉬었다.
능력자인 상호 또한 다른 일반 의병들처럼 한계까지 싸워 지치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강자라는 인식을 다른 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이런 그에게 곽재우가 말을 걸었다.
“때맞춰 잘 와줬네. 저쪽에서의 싸움은 잘 끝난 것인가.”
“한 마리도 빼지 않고 완전히 토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장군께서 말한 괴물은 우려와 다르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리자드맨들과 영역을 같이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것 같으이. 만약 놈까지 가세했다면 우리 모두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야.”
“일단 놈의 토벌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초 리자드맨 토벌을 마치고 놈이 나타날 경우, 바로 이어서 토벌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존재인 놈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상호는 일단 물러날 것을 곽재우에게 제의한 것이다.
“죽은 자도 있고 크게 다친 자들도 있네. 지금은 물러나는 게 상책이겠지.”
“그럼 늪 밖에서 대기하는 인원들에게 연통을······.”
말을 하던 중, 갑자기 상호는 어느 한 방향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이상한 행동에 곽재우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의 눈엔 늪과 그 주변에 자란 갈대와 억새풀 밖에 안 보였다.
“대체 왜 그러나?”
곽재우의 물음에 상호는 앓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상호가 ‘매의 눈’으로 곽재우가 볼 수 없는 더 먼 곳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모리 테루모토의 왜군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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