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72화 (72/127)

十五장. 마도구를 제작하다. (1)

솔직히 상호는 자신이 바라던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이 나오지 않은 사실에 처음엔 실망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고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흐흐, 그 어떤 전투 스킬보다도 지금의 나한테는 이보다 필요한 스킬은 없지.”

‘마도구 제작’ 스킬은 몬스터의 시체에서 드물게 사라지지 않고 남겨지는 마력이 깃든 부산물을 재료로 삼아 여러 가지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템을 만드는 스킬이다.

이 스킬이 없이는 제조 방법을 어찌어찌 비슷하게 따라한다고 해도 결코 성공작을 만들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상호는 지금까지 꽤 많은 부산물을 획득했지만 전부 다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여러 가지만 제작할 수 있다면 이 시대에 와서 가장 부족했던 것을 채울 수 있다.”

지금 상호가 말한 가장 부족했던 것은 바로 양질의 장비이다.

현대식 무기나 장비가 아닌 아주 질이 떨어지는 옛 시대의 병장기를 써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마도구는 분명 큰 도움이 된다.

몬스터 부산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참 다양하다.

가령 예를 들자면 화염을 내뿜는 도마뱁, 샐러맨더를 처치하면 드물게 얻을 수 있는 ‘샐러맨더의 심장’은 불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긴 해도 불을 뿜을 수 있는 ‘염화의 반지’를 만드는데 쓰인다.

또한, 아주 강력한 몬스터 중 하나인 오우거의 힘줄은 근력을 무려 2단계나 올려주는 ‘오우거의 힘 장갑’을 제작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어디 이뿐일까.

막강한 재생력을 자랑하는 몬스터 트롤의 피는 상처를 치유하는데 쓰이는 ‘힐링 포션’ 제작에 쓰이고 하피의 깃털은 몬스터 유혹 미끼 제작의 재료가 된다.

이렇듯 다양한 몬스터의 부산물은 저마다 요긴한 쓰임새가 있어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상호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제작 방법을 일일이 살폈다.

“재료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이라도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처음부터 100%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제작을 꾸준히 해야만 성공 확률도 높아지고 더 뛰어난 성능의 마도구가 완성된다는 얘기를 원래 시대에 있을 당시에 들은 바 있었다.

“끄응! 이럴 줄 알았다면 전부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는 건데.”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제와 과거의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몬스터를 토벌하고 그 부산물을 얻어내면 될 일이었다.

“곧장 쓸모가 있는 부산물을 제공하는 몬스터부터 잡아보자.”

상호는 어느 때보다 넘치는 의욕을 갖고 곽재우가 남겨준 정보를 토대로 토벌을 준비했다.

상호가 이끄는 몬스터 토벌대가 제일 처음 상대하게 된 몬스터 집단은 옛날 광산이 있던 이름 없는 바위산에 터를 잡은 코볼트 무리였다.

“카우우!”

굴 입구에서 울부짖는 한 마리의 코볼트를 향해 화살이 정확히 날아갔다.

화살은 그대로 가슴 한가운데에 명중했고 코볼트는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미 놈의 경고에 여러 개의 굴에서 수십 마리의 코볼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버렸다.

“쏴라!”

임충의 명령에 수십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갔다.

이어서 상호와 율을 필두로 돌격대가 달려가 코볼트들을 베니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카우우우!”

폐광의 입구에서 큰 울음이 들린다.

코볼트 로드와 그를 따르는 코볼트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2m가 넘는 떡대의 코볼트 로드는 포효하며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함께 나온 수십 마리의 코볼트들이 개떼처럼 토벌대를 향해 돌격하려 했다.

하지만······.

쾅! 콰앙!

불랑기포에서 발사된 조린환들이 날아들면서 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여기에 왜군에게서 노획한 조총까지 가세하니 코볼트들은 모두 시체가 될 따름이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쏘는 것만큼은 잘한다니깐.”

조총을 다루는 법을 겨우 한두 번 훈련시킨 것만으로도 꽤 명중률이 나오는 것을 보고 상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남은 것은 이제 코볼트 로드 한 마리뿐.

“슬슬 나설 볼까.”

상호는 우두커니 선 코볼트 로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런 그를 따라 조인환을 뺀 상호를 따르는 일행도 협력을 위해 움직였다.

“수룡시!”

거리를 좁히면서 상호는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코볼트 로드에게 향하고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뚜껑이 열린 호리병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보다 적은 소모로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이제는 항시 일정 양의 물을 갖고 다녔던 것이다.

“카오!”

코볼트 로드는 자신에게 날아든 ‘수룡시’를 손에 든 면이 넓은 외날의 도로 받아쳐냈다.

그렇게 놈이 큰 동작을 취하는 사이에 단번에 거리를 좁힌 상호가 검을 휘둘렀다.

스팟!

벌거벗은 상체를 살짝 베고 지나는 검.

“얕았나.”

상호는 궤도를 바꿔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코볼트 로드의 도를 피해 뒤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말을 내뱉었다.

코볼트 로드는 그런 상호를 쫓아 몸을 돌리려 했다.

슈칵!

“카오오!”

뒤따라 달려온 율과 임충이 날린 일격이 팔과 다리에 깊은 자상을 만들어냈다.

이어 묵직한 철퇴를 든 떡쇠가 달려와 허벅지 쪽을 강타했다.

쾅!

전부터 장사였었지만 몬스터 코어를 통해 한층 더 근력이 강화된 떡쇠의 일격에 코볼트 로드의 다리는 순간 아래로 무너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일 후미에서 온 노유명은 코볼트 로드의 몸을 날다람쥐처럼 타고 어깨에 올라탔다.

그 역시도 몬스터 코어로 ‘민첩’ 능력을 강화했기에 이런 재주가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이다!”

상호는 검을 찔러가며 외쳤다.

이에 좌우에서 율과 임충이 동시에 급소를 노리고 검을 찔렀고 마찬가지로 어깨에 탔던 노유명도 머리 정수리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네 자루의 검이 몸을 관통하게 되자 코볼트 로드는 그 자리서 절명하였다.

“후, 다들 수고했어.”

“이번에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아 다행입니다.”

“저는 전이문을 파괴하고 올 테니 전에 말씀드린 대로 몬스터들의 시체를 수습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상호는 전과 다르게 코어를 가진 로드의 시체 말고도 다른 몬스터의 시체까지 모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폐광 안의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하러 갔다.

임충과 남은 사람들은 죽어 쓰러진 코볼트 시체들을 한 곳에 모았다.

곧 얼마 안가 몬스터의 육체를 유지하던 마력이 사라지면서 육신과 이세계에서부터 걸치고 입던 옷과 무기가 빠르게 재가 되어갔다.

“잿더미를 수색해서 남겨진 것을 찾아라.”

“네, 군관 나리.”

임충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수북하게 쌓인 잿더미 속에서 몬스터 부산물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은 ‘코볼트의 어금니’ 13개였다.

이후 무사히 폐광 깊숙한 곳에 생성된 몬스터 게이트를 화약으로 파괴하고 나온 상호가 습득물을 확인했다.

“좋아, 이거면 충분하겠어.”

상호의 머릿속엔 이미 ‘코볼트의 어금니’로 만들 수 있는 마도구가 떠올라 있었다.

‘코볼트의 부적’.

같은 공격을 받아도 부상을 덜 입게 해주는 가호를 주는 일종의 장신구로 마도구 중에서는 최하품에 속하며 재료인 ‘코볼트의 어금니’가 비교적 구하기 쉬워 만들기 쉬운 물건이다.

딱히 큰 효과가 있지 않고 약간의 운을 가져다주는 정도라 현대에서는 초보 헌터도 안 쓰고 일반인들이 부적으로 소지하는 경우가 전부였다.

뒷수습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

잠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아이고, 다리야.”

“오늘처럼만 순탄하게 가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게. 아, 이 탁주 한 모금 하게.”

“그거 좋지.”

다들 편하게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만은 그냥 쉴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상호는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손바닥에 올려진 ‘코볼트의 어금니’를 만지작거렸다.

마침 수량은 제작에 필요한 만큼 되었다.

제작 방법도 간단해서 이빨에 구멍을 내 실로 연결하면 끝이었다.

“송곳이 필요할 것 같은데.”

등에 매고 다니던 봇짐에서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 있는 보따리를 꺼냈다.

스킬을 얻으면서 사용할 것 같은 도구들을 죄다 가져왔는데 그 중에는 구멍을 낼 때 쓰는 송곳도 있었다.

“나리, 무엇을 하시어요?”

“일단 보고 있어봐.”

곁에서 같이 휴식을 취하던 율이 물어왔지만 상호는 제대로 된 답변은 보류하고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그동안 올려놓은 ‘근력’과 ‘민첩’ 덕에 정확한 손놀림과 강한 힘을 갖고 손쉽게 이빨에다가 구멍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코볼트의 어금니’에 구멍을 낸 다음 실로 한데 꿰는 것으로 부적을 만드는 작업은 끝났다.

다만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부산물에 깃든 마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파장을 흘려내야 한다.”

그 특별한 파장은 오직 ‘마도구 제작’ 스킬을 가진 자만이 낼 수 있다.

상호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 파장을 만들어내 손에 든 ‘코볼트의 부적’을 만들고자 했다.

“흡!”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파장을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에 꿰인 어금니들은 갑자기 산산조각 나버렸다.

“칫, 실패했나.”

파장이 제대로 어금니에 깃든 마력과 동조하지 못해 이런 실패를 한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내심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실망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이번에는 꼭 성공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똑같은 작업을 했다.

파아앗!

두 번째 시도는 성공이었다.

상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어금니를 끼워 만든 목걸이가 은은하게 광채를 뿜어내는 것을 보며 쾌재를 속으로 내질렀다.

“나리, 이게 대신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요괴의 몸 일부분을 갖고 신통한 힘을 내는 도구를 만든 거야.”

“예? 그런 것도 만들 수 있는 것인가요?”

“아아, 이번에 얻은 새 능력 덕분이지. 이건 너한테 줄게.”

상호는 막 광채가 사라지는 ‘코볼트의 부적’을 율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이와 같이 말했다.

“목숨을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 당분간만 착용하고 다녀.”

“고맙습니다, 나리.”

“고맙기는. 나중에 더 예쁘고 좋은 것으로 줄 때까지 임시로 쓰도록 해.”

율은 사냥꾼들이나 하고 다닐 법한 흉측해 보이는 물건을 받았지만 전혀 싫은 기색 없이 그것을 목에 걸었다.

이후 재료가 모자라 똑같은 것을 만들 수는 없었다.

“으으, 이것도 은근히 정신력을 잡아먹네.”

오늘 사냥에서는 정신력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제작 두 번만으로 피로가 느껴질 만큼 정신력이 소모되었다.

이래서는 무제한으로 제작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앞으로 일정이 빡빡하니 제작도 상황을 봐서 적당히 하는 게 좋겠네.”

상호는 그리 혼잣말을 하면서 자신의 곁에서 방금 받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율을 보았다.

검사로 싸울 때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평소에도 무사로서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던 율이지만 지금만큼은 순수한 처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저렇게 좋아하다니. 하루 빨리 제대로 된 것을 선물해줘야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상호는 앞에 보이는 산마루와 쾌청한 하늘을 보았다.

문득 이틀 전에 떠난 곽재우의 일이 걱정되었다.

‘진주성 쪽은 괜찮겠지.’

최대한 원래 역사대로 대승을 거두고 전주성을 지키기를 바라지만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역사를 생각하면 내심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따라가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그쪽의 일에 끼어들 수도 없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곽 장군이나 조선군을 믿는 것뿐이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상호는 전주성의 싸움이 잘 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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