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77화 (77/127)

十六장. 의주로 압송되다. (2)

금부도사에게 추포되어 의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고된 길이었다.

우선 도처에 깔린 왜군의 눈을 피해 큰 길이 아닌 작은 길로 다녀야 했고 또 죄인의 몸이라 두 다리로 그 먼 길을 걸어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중간에 몇 번이고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쓰러졌겠지만 상호는 달랐다.

“어서 갑시다.”

상호는 잠시 길을 쉰 지 채 일다경(15분)도 되지 않았는데 자리에 벌떡 일어나 말했다.

무려 30리 내내 걷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나졸들은 서로 놀라며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니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었는데 저리 쌩쌩할 수 있지?”

“그러게 말이야.”

“정말로 저 자가 신통력을 가진 선인이 아닐까.”

“예끼,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금부도사 나리 귀에 들어가면 크게 경을 칠거야.”

“나, 나도 알고 있네.”

나졸들은 자신들을 단속하며 서둘러 일어나 길을 출발했다.

육로로 전라남도 광주까지 간 뒤에 그곳에서 미리 준비된 배를 타게 되었다.

금부도사 일행이 타고 온 경기수영의 맹선은 영산강을 따라 서해로 빠져나가 그대로 북상했다.

며칠이나 배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상호에게도 고된 일이었다.

“그나마 민첩 능력이 높아서 뱃멀미를 안 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묶여 있는 몸이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현대에서 헌터로 활동할 때의 지식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 정리하고 향후의 계획을 전반적으로 다시 수정하였다.

그렇게 의주에 당도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여정 중간에 일이 하나 있었다.

“음?”

갑자기 부산스런 소리에 잠들었던 상호는 잠에서 깼다.

선창 아래에만 있지만 갑판의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낮과 밤을 분별할 수 있어 지금이 밤 시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이토록 소란에 빠진 이유는 뭘까?

“서해 바다니 왜군 수군이 나타난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궁금해 미치겠지만 죄인에게 상황을 알려주러 올 사람이 없기에 답답하게 있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갑자기 배의 바깥쪽에서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전해져왔다.

“라아아아.”

감미로운 여성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마치 스며들 듯 귓가로 들려왔다.

순간 상호의 동공은 힘이 풀려 크게 벌어졌다.

“아, 안 돼!”

갑자기 소리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상호는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항했다.

방금 전에 정신 줄을 놓을 뻔 했던 그가 이토록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 목소리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제길, 설마 배가 지나가는 길목에 세이렌이 나타날 줄이야.”

세이렌은 바다 몬스터 중 하나로 사람들이 말하는 인어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인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로 배를 자신의 영역에 유인해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물에 빠지게 한 다음 그들의 피륙을 탐하는 괴물이란 것이다.

“우앗!”

갑자기 배가 급선회를 하는 바람에 기둥에 묶여 있던 상호의 몸도 크게 기우뚱했다.

이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미 배의 선원들은 세이렌의 목소리에 현혹된 게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배가 좌초되거나 유령선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상호는 팔에 힘을 주어 간단히 묶여 있던 포승줄을 끊어내고 서둘러 갑판 위로 올라갔다.

밤하늘 아래에 흔들리는 배의 갑판 위에는 이미 홀려 눈이 풀린 선원들과 금부도사 일행이 있었다.

그들은 죄인인 상호가 뛰쳐나온 사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먼 바다만 바라보았다.

“저긴가.”

상호는 ‘매의 눈’ 능력을 사용해 먼 바다를 보았다.

암초가 파도 사이로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어느 무인도가 보였다.

그리고 무인도의 파도치는 절벽 아래에 자리한 바위에 앉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세이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지만 저기에 속으면 안 되었다.

“이런 곳에서 몬스터와 마주칠 줄이야.”

더 이상 저 섬 가까이에 배가 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화살도 대포도 닿지 않는 먼 거리이기에 공격할 수단이 이 배에는 없었다.

하지만 상호에겐 방법이 존재했다.

“여기가 바다인 이상, 거리는 중요치 않지.”

산호는 ‘매의 눈’ 능력으로 어둠 저 너머에 있는 세이렌을 정확히 포착하고 ‘물의 속성력’을 발동했다.

“수룡창!”

상호의 외침에 따라 섬과 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바다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거대한 창으로 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룡창’은 상호가 뜻한 대로 곧장 절벽 아래 바위에 있는 세이렌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고 정확히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자 들려오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세이렌의 둥지는 나중에 이순신 장군에게 연통을 넣어서라도 찾아서 없애야지. 안 그러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겠어.”

중요한 해로에 저런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것을 썩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나중에라도 이순신의 조력을 얻어 세이렌을 나타나게 만든 바다의 몬스터 게이트를 파괴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한 편, 목소리가 멈추자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워매, 내가 왜 이렇게 있다냐.”

“분명히 난 좀 전까지 선실에 있었는데.”

“이런 큰 일났구먼! 배가 해로를 벗어났어. 어여들 퍼뜩 뱃머리를 돌리지 않고 뭐혀!”

“예에!”

선원들은 본래 뱃길을 벗어난 맹선을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부리나케 흩어져 일을 했다.

나졸들도 어리둥절해 하며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상호를 발견했다.

“아앗! 죄인이 어째서 여기에 있다.”

“뭣이라!”

상호의 존재를 뒤늦게야 인지한 금부도사와 나졸들은 기겁하며 상호를 둘러쌓다.

“이런, 이런.”

“이 놈! 어떻게 선창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긴데···뭐 얘기해봐야 믿지 않으려나.”

상호는 자신이 방금 당신들을 구했다는 말을 해본들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군말 없이 두 손을 들어보였다.

이에 금부도사들은 나졸들을 다그쳐 말했다.

“당장 저 자를 다시 꽁꽁 묶어 아래로 가둬라.”

“하, 하지만 포승줄도 간단히 끊은 자인데 어찌······.”

“에잇! 포승줄이 안 되면 쇠사슬이라도 가져다가 묶으면 될 것 아니냐!”

“알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상호는 다시 한 번 포박된 몸으로 배 아래에 갇히게 되었다.

중간에 위험했던 일도 있었지만 상호가 탄 맹선은 마침내 압록강 하류 어귀에 당도했다.

“어서 내려라!”

상호는 쇠사슬에 칭칭 묶인 채로 배에서 내려졌다.

조선의 최북단인 압록강은 10월이 되면서 벌써 겨울처럼 추웠다.

배에서 내린 상호의 눈은 압록강 반대편을 보았다.

‘명군이 벌써 도착한 건가.’

건너편 강변에 진을 친 군대는 분명 명나라의 군대였다.

이미 조승훈이 이끄는 5천여 명의 병력이 조선 땅에 파병되었지만 그들이 평양성 공략에 실패함에 따라 2차로 이여송이 이끄는 4만 명의 명군이 파병되어진 것이다.

저들은 아직 압록강이 완전히 얼지 않아 강을 넘을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명군도 참전하는구나.’

역사 교육을 통해 명군이 도움도 되었지만 동시에 패악도 많이 부린 사실을 아는 상호로선 저들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우려하는 것은 또 있었다.

‘왜군도 이미 몬스터의 존재를 알고 그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마당에 명군이라고 그것을 그냥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광해군과 몇몇 믿을 수 있는 이들에게만 몬스터 코어에 대한 알렸고 그 휘하의 병사들에게만 그 힘을 전수하고 있어 비밀이 비교적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가 언제까지고 비밀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특히 조선 조정에서는 이미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의병들의 존재를 알아챘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곳까지 끌려온 것도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애초에 광해군을 속이고 관직을 받은 일 갖고 죄인 취급했다면 이곳까지 끌고 올 것도 없이 그냥 금부도사를 통해 죄를 묻고 처형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렇지만 선조는 굳이 직접 문초를 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지금 생각한 가능성이 맞을 확률이 높았다.

‘골치 아프네. 내가 살겠다고 조선 조정에 사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언젠가 명군에게도 그 비밀이 흘러들어갈 텐데.’

그리 된다면 명군이 가만히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상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선 조정을 겁박해 몬스터 코어를 모조리 빼앗아 갈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엔 왜군처럼 침략자가 되어 조선을 아예 집어삼켜 그 뒤에 몬스터 코어의 힘을 독점하고자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되든 조선과 그리고 조선에 사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된다는 것은 확실했다.

‘적어도 명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능력자들을 다수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상호가 명나라 군대를 상대하는 일을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금부도사 일행은 의주 관아에 당도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그저 지방의 볼품없는 관청에 불과했지만 선조가 몽진을 해오면서 그 사이에 대대적으로 개축해 별궁처럼 꾸며진 관아 일대에는 내금위의 병력이 철통같이 수비를 보고 있었다.

상호는 관아에서 쓰던 옥사로 가기 위해 관청 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에는 궁중 옷을 입은 내관과 궁녀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니고 있었고 붉은색과 초록색의 관복을 입은 대신들도 보였다.

이러한 대신들 중에 한 인물이 막 나졸들에 의해 끌려 들어오는 상호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보게.”

“백사 대감님, 아니십니까.”

“지금 추포해오는 이 자가 바로 그 이상호라는 자인가.”

“그러하옵니다.”

눈빛에 얼핏 장난기가 담겨 있는 대신을 고개를 숙인 채로 슥 올려다본 상호는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백사 이항복.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중신이었다.

“잠시 얘기를 나눠봐도 되겠는가.”

“아니 어찌 대감께서 이런 죄인과 말을 나누시려 하십니까.”

“개인적 호기심이라고 해두지.”

“죄인이 그 누구와 함부로 말을 섞지 못하게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이만 소인들은 가보겠습니다.”

웃음기 담은 목소리로 이항복이 말하자 금부도사는 난처함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이항복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는 그저 소문의 인물이 어떤 자인지 궁금해 한 번 말이나 섞어보려 했을 뿐이네.”

“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감.”

“후후, 가보게.”

이항복은 말은 금부도사에게 했지만 눈길은 상호에게 주었다.

마침 고개를 든 상호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또 만나세.”

“······.”

상호는 자신에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항복의 저의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더 대화할 기회도 없이 다시금 나졸들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철컹.

“밤에 문초가 시작될 터이니 그 때까지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라.”

이렇게 말을 전하고는 금부도사는 자리를 떴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상호는 묶인 몸을 꿈틀거렸다.

“쇠사슬로 묶은 것도 모자라 이런 것까지 채우다니. 긴 여정을 한 사람에 대한 처우가 너무 심한데 이거.”

상호는 자신의 목에 채워진 계구인 칼을 두고 한 마디 안할 수 없었다.

이래서는 목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 문제는 이 다음부터인데.”

선조가 직접 한다는 문초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운명이 결정져지게 될 터였다.

상호 본인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지키고 계획한 바에 따라 조선 땅에 나타난 모든 몬스터들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선조를 설득해야 했다.

“내가 아는 이 시간대의 선조는 편협하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자이다. 그런 그를 설득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

상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선조를 설득시킬 방법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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