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78화 (78/127)

十六장. 의주로 압송되다. (3) (수정)

“어서 나와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밤이 되자 나졸들이 옥에 갇혀있던 상호를 끄집어내고는 그를 어딘가로 데리고갔다.

화롯불이 줄지어 켜져 있는 넓은 공터.

그곳엔 무장한 수십 명의 병사들과 군관들이 열을 갖춰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앞쪽의 관청 건물 석단 위에는 조정대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의 마루 위에는 호화로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 누가 앉을 지는 대충 짐작되는 바였다.

“어서 앉아라!”

상호는 각종 형벌 도구가 놓인 마당 한복판으로 가서 죄인용 의자에 강제로 앉혀졌다.

무척이나 살벌한 분위기지만 상호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이제 곧 나도 사극에서 나오던 죄인들처럼 주리를 틀 게 되는 건가.’

상호는 전혀 고문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기회에 조정 대신들의 얼굴을 보고자 고개를 떳떳이 들고 건물 앞에 있는 대신들을 보았다.

'저들 중에 내가 아는 유명한 위인도 있겠지?'

당장 생각나는 이름은 류성룡이나 이항복 같은 유명한 위인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름만 알지 얼굴을 모르기에 막연히 그들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할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엔 상호가 떠올린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자인가?”

“그렇습니다, 대감.”

“겉보기에는 우리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 그래.”

옆에 있는 이항복과 대화를 나눈 인물은 바로 전란 직후 파직된 이산해에 뒤를 이어 영의정에 오른 류성룡이었다.

이순신의 친구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현 영의정으로서 조선의 내정과 군사를 모두 맡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한 류성룡에게 이항복은 말했다.

“바로 저 자가 의병들에게 신통력을 나눠주고 요괴와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가 지나간 지방에서는 놀라운 무력과 신통력을 발휘하는 의병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괴롭히는 요괴나 왜병을 무찌르고 있다고 하구요."

"나도 그 소문은 들었네. 사실 그것 때문에 더 전하께서 심기가 불편해지신 것 아닌가."

"일반 민초들이 너무나 큰 힘을 가진 것이 불안하신 것이겠지요."

은밀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옆의 문이 열리더니 붉은 용포를 입은 선조가 장내에 입장하였다.

“주상 전하 납시오!”

상선의 외침에 자리한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러지 않은 상호만이 들어오는 선조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선조란 말이야?’

40대라는 중년의 나이지만 전란으로 인해 꽤나 심신이 지쳤는지 관 아래로 드러난 머리에서 흰머리를 엿볼 수 있고 얼굴과 체격도 마른 편이었다.

선입견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전체적인 인상이 상당히 편협하게 보인다.

그런데 선조를 보던 상호의 눈이 일순간 크게 커졌다.

‘어째서 광해군 마마가 이런 곳에?’

분조를 이끌고 있어야 할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따르는 것은 상호로서도 예측 못한 일이었다.

마침 광해군도 상호 쪽을 보았다.

말을 주고받지 못했지만 눈빛을 통해 뜻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나로 인해 고초를 겪게 해서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상호는 광해군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눈곱만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관직을 받는다는 선택을 한 것은 바로 자신이기에 누굴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놈, 전하 앞에서 고개를 쳐들다니.”

“어서 숙이지 못할까.”

뒤늦게 상호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을 안 금부도사들이 강제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

결코 힘에 밀린 것은 아니지만 상호는 순순히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윽고 선조가 자리에 앉고 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저 죄인이 바로 너에게 요사스런 말을 한 그 자가 틀림없으렷다, 세자.”

“아바마마, 저 자는 결코 제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사옵니다.”

마루 아래서 광해군은 간절하게 말했다.

허나 그 말을 듣는 선조의 표정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어허! 어찌 일국의 세자라는 자가 혹세무민한 자에게 이렇게 단단히 현혹된다 말이냐!”

“아바마마!”

“에잇! 듣고 싶지 않다!”

역성을 낸 선조는 이내 상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가 바로 세자를 속이고 내 백성들에게 이상한 가르침을 준 자이렷다."

“···저는 결코 세자마마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상호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이처럼 답했다.

이에 선조는 의자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며 말했다.

“이런 발칙한 놈을 보았나!”

“주상 저하께서도 지금 이 땅에 각종 요괴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그 존재를 부정했지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장계를 통해 이제는 몬스터의 존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선조였기에 상호의 말을 부정치 않았다.

이에 상호는 미리 생각했던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어디서 왔으며 또 얼마나 위험한 줄 아시는지요? 전 단지 제가 아는 것을 세자 저하께 알려드려 이 나라를 구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발칙한 자를 보았나! 감히 내게도 삿된 말을 내뱉어 현혹시킬 참이냐.”

상호의 말에 선조는 역정을 내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때, 상호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는데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뭘 말해도 믿지를 않네. 이 시기의 선조가 남을 믿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태라고는 알고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 심하잖아.’

대화를 통해 설득을 하고 싶어도 선조는 그 대화의 물꼬조차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상호는 이 순간에 포박을 풀고 선조의 멱살을 잡는 자신을 상상했다.

‘지금 확 그래버릴까.’

솔직히 상호에게 있어 선조의 존재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선조를 제거하고 광해군을 보위에 올린다면 이후로 만사형통,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건 안 되지. 내가 힘으로 선조를 죽인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다.’

선조를 죽인다면 진짜 역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자신을 지지하는 쪽인 광해군이나 의병장들 모두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것쯤은 상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상호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선조의 폭언을 묵묵히 참아냈다.

“어서 저 놈이 바른 말을 고할 때까지 사정 봐두지 말아라.”

마침내 고문 시간이 찾아왔다.

나졸들은 익숙하게 상호의 허벅지 사이로 굵고 단단한 막대기를 엇갈려 끼워 넣었다.

“끄응차!”

“하아압!”

양쪽에서 두 명의 나졸이 용을 쓰며 주리를 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악 소리를 냈겠지만 능력자인 상호에겐 이 정도는 참을 만한 일이었다.

“아니 저럴 수가.”

“어떻게 저런 고신을 받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상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주리 틀기를 받아내는 모습을 본 대신들은 충격에 빠져 말을 내뱉었다.

의자에 앉아 아래를 보던 선조 역시 적잖게 놀라며 상호를 노려보았다.

이러한 상황에 금부도사는 나졸들을 다그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더 힘을 줘서 주리를 틀어라.”

“나, 나리! 저희도 지금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에잇! 시끄럽다.”

변명하는 나졸들에게 화를 낸 금부도사는 곧 나졸 중에서도 가장 힘이 강한 자들을 뽑아 다시 주리를 틀게 했다.

한 덩치 하는 나졸들이 다시 한 번 주리를 강하게 틀기 시작했다.

콰득!

꽤나 섬뜩한 소리가 봉과 허벅지 사이에서 들렸다.

처음엔 정강이뼈가 부러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이구!”

갑자기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것을 들고 있던 나졸들은 그만 몸의 균형을 못 잡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그런 추태를 본 선조는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인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뭐 하는 것이냐!”

“송, 송구합니다.”

호통에 금부도사들은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번에는 압슬이라는 형벌로 상호에게 고통을 주고자 했다.

무릎 꿇은 자세에 있는 상호의 무릎 위로 건장한 사내가 올라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명이었지만 차츰 수가 늘어나 나중에는 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상호의 무릎에 올라탔다.

이러한 무게는 사람으로선 견디기 힘든 것이었지만 4단계까지 체력을 올린 상호의 지구력과 육체의 단단함은 너끈히 그것을 견뎌주었다.

“에잇! 형틀에 죄인을 묶어라!”

“넷!”

그 다음으로 상호가 받은 형벌은 곤장 맞기였다.

단단한 참나무로 만든 치도곤으로 상호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들겨댔다.

“에잇!”

“제발 좀!”

장이 10대에서 20대, 2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도 상호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심지어 물에 젖어 언뜻 비치는 엉덩이의 맨살이 약간 빨갛게 변했을 뿐, 피멍조차 들지 않은 상태였다.

급기야 100대가 넘어가고 장을 치던 나졸들이 먼저 지쳐 더 이상 때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보던 대신들 사이에선 다시금 웅성거림이 있었다.

“몸이 강철로 된 것 아닐 텐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신통력을 부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애 영감.”

“으음.”

이항복의 말에 류성룡은 침음을 흘리며 추국을 계속 지켜보았다.

도저히 때리거나 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자 이번엔 금부도사는 방법을 바꾸었다.

‘헤에, 이번에는 물고문인가.’

상호는 앞에 놓인 물이 가득 담긴 통을 보며 속으로 이리 생각했다.

곧 머리는 통 안으로 강제로 쑤셔졌다.

‘이 정도야.’

상호는 ‘물의 속성력’을 전개해 자신의 코와 입 주변으로 물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니 물고문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했다.

“어, 시원하다.”

“끄응!”

2분이 넘도록 물속에 머리에 처박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태평스럽게 말하는 상호를 보며 나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상호에게 고문을 하고자 달궈진 인두가 준비되었다.

‘이건 좀 위험할 지도.’

제아무리 튼튼한 몸이라도 뜨거운 것으로 지지면 상처가 남게 될 터였다.

상호는 의자에 앉혀진 상태에서 ‘물의 속성력’을 사용했다.

촤아아!

“어엇?!”

“으아악!”

갑자기 아까 물고문할 때 썼던 물통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습에 나졸들은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뿐만 아니라 문초를 지켜보던 대신들과 선조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상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물줄기는 그대로 달궈진 인두에게서 향했다.

치이이익.

단숨에 열기가 식고 인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실 상 모든 고문이 허사가 되었으니 제대로 된 문초가 될 리 만무했다.

“주상 전하!”

상호는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고 큰 소리로 선조를 불렀다.

갑자기 불리자 선조는 움찔하며 상호를 쳐다보았다.

“이러한 것을 보셨어도 제가 거짓이나 말하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순전히 이 조선을 구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싸우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 이놈이!”

“부디 이 나라를 위해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전혀 흔들림 없이 선조에게 자신의 뜻을 피력하는 상호의 모습은 류성룡이나 이항복 같은 몇몇 대신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선조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전란이 벌어지기 전만 해도 '정여립의 난'ㅇ; 있었고 또 전쟁으로 궁궐을 버리고 이런 의주 땅까지 쫓겨와 명나라로 피신을 갈 뻔 했던 상황까지 경험한 선조로선 약해진 왕권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뭐든 간에 일단 배척하고 보는 경향이 생겼다.

일반 백성들에게 신통력을 주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상호라는 존재는 선조에게 있어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했기에 선조는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저런 사술이나 쓰는 자의 말을 어찌 군왕 된 자로서 믿겠는가! 당장 저 자를 하옥하고 내일 당장 오체분시해서 효수하라!”

이 말에 다시 광해군이 나섰다.

“아바마마! 부디 저 자의 말을 믿어주시옵소서!”

“시끄럽다, 세자!”

“아바마마!”

광해군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아까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상호는 그런 선조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이렇게 됐나.’

예상했던 결과 중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선조 설득에 실패한 상호는 결국 다음 날에 처형되기로 하고 다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탈출할 수밖에 없나.”

칼을 차고 갇힌 채로 상호는 이리 중얼거렸다.

오체분시라는 사형법이 말이나 소에 밧줄을 매달고 각각 팔 다리에 그것을 묶어 잡아당기는 극악한 사형법이다.

제아무리 초월적인 육체를 가졌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몸인 이상, 능력자라도 저런 끔찍한 사형을 받고도 무사할 수 없을 터였다.

고통 받으며 결국 죽게 될 것을 알면서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뭐 반역죄인의 신세가 되겠지만 계획은 계속 진행할 수 있을 테지.”

이렇게 상호는 탈출할 마음을 거의 굳혔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상호는 점차 가까워지는 불빛을 보았다.

이윽고 상호가 갇힌 뇌옥의 창살 맞은편으로 관복을 입은 한 인물이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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