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79화 (79/127)

十六장. 의주로 압송되다. (4)

상호가 갇힌 옥사에 찾아온 이는 놀랍게도 이항복이었다.

“당신은······.”

“낮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내 얼굴을 기억하나?”

상호는 웃는 얼굴로 말하는 이항복을 보며 살짝 경계의 빛을 내비쳤다.

아직 그는 눈앞에 있는 인물이 그 유명한 이항복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니 이러는 것도 당연했다.

“너무 경계하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 몇 가지 주고받을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뿐인가.”

“···누군지 그것부터 밝혀주시지요.”

“허허, 알겠네. 나는 조정에서 병조판서를 맡고 있는 백사 이항복이라고 하네.”

“······!”

상호는 눈앞의 인물이 그 유명한 이항복이라는 사실을 크게 놀랐다.

어째서 병조판서나 되는 이항복이 이 야심한 밤에 비밀리에 상호를 찾아온 것일까.

이항복은 창살 너머에서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상호를 향해 말했다.

“그대가 스스로 선계에서 온 자라고 밝혔다는 말을 들었네. 정말로 그 말이 사실인가?”

“······.”

상호는 지금 이항복이 진심으로 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수룩한 말은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직감했다.

이쪽의 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만큼 신중히 말해야만 했다.

“세자 저하께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내가 봤을 때, 자네는 우리와 거의 같은 사람으로 보이네만.”

“저 역시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당연히 똑같지 않겠습니까.”

헌터가 되면서 평범한 사람이 아닌 능력자가 되었으니 지금 한 말이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런 상호의 대답에 이항복은 다시 물었다.

“먼저 하나만 묻지. 자네는 왜 이 나라를 위해 이토록 싸우는 것인가?”

“그건······.”

공교롭게도 이항복이 질문한 것은 상호가 요즘 들어 계속 고민하고 있던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 노유명이 비슷한 질문했을 때도 그리고 그 뒤로 혼자 생각을 했을 때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만큼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대답이 없자 이항복이 다시 물었다.

“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떻게든 답변을 줘야 했다.

상호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가지고 대답을 내놓았다.

“요괴들과 그리고 본인은 본래라면 이 땅에 나타나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것을 순리대로 돌리기 위해서 나타난 요괴들을 모두 배제하여야 합니다.”

“으음, 얼핏 들으면 나름 타당한 이유라 생각되는군. 그런데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 나타난 지금, 순리에 따라 다시 세상사를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

상호는 바로 답변하지 못하고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무의식중에 내뱉은 ‘순리’라는 단어가 뒤늦게 ‘역사의 흐름’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출현과 그로 인해 능력자가 나타난 시점에서 역사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대답을 내놓다니. 난 바보다.’

특이점으로 인해 달라진 역사를 되돌린다는 것은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몬스터의 출현과 상호의 시간 이동을 처음 있었던 시간에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로 인해 원래 역사와 큰 차이가 생겨나고 있다.

그 일례로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이 죽지 않고 살아남지 않았던가.

당연히 역사가 바뀐 만큼 설령 미래로 돌아갈 수 있게 되더라고 그곳엔 상호가 아는 그 대한민국이 있지 않을 것이었다.

‘이미 내가 알던 미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사실을 진짜로 인정해버리면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될 것만 같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이것이 상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상호도 따지고 보면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본래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한 인식 때문에 일부러 더 미래에 돌아가는 것을 집착했던 것인지 모른다.

이항복과의 대화 덕분에 답을 알면서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모른 척 해왔던 것을 제대로 마주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완벽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개운해진 느낌이다.’

상호는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창살 너머로 있는 이항복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 답을 내놓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까의 말, 조금 정정하도록 하죠.”

“으음.”

“그것이 당초의 목적이고 지금도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곳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또 동료로 삼았습니다.”

광해군의 배려로 곁에 둔 임충.

몬스터 토벌에 나섰다가 사망한 부친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하자는 일념으로 자신을 따라온 율.

그들은 분명 상호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허어!”

이항복은 무척이나 위험한 발언을 서슴없이 해대는 상호의 태도에 듣는 귀가 있는 좌우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호는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기에 저 또한 그것을 지키는 것을 돕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정도 대답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병조판서 대감.”

“허허! 그 정도로 충분하네.”

이항복은 자칫 무례하다고 볼 수 있는 상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너털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제는 상호가 물을 차례였다.

“어째서 병조판서 쯤 되는 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몰래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후훗, 과연 선인이라 자칭할 만한하군.”

“말을 돌리지 말아주시죠.”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이런 상호를 향해 이항복은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은 다 전하의 복심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세자 저하가 어떤 입장인지 아는가?”

“대충은···압니다.”

광해군은 본래 현 왕후인 의안왕후의 아들이 아닌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난 서자이다.

장자도 아니고 서자이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나라의 존망을 위태롭게 만드는 큰 전쟁이 벌어진 바람에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광해군의 입지엔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명에 지원군을 부탁하게 되면서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

파천을 한 왕 대신 분조를 이끌고 직접 싸우는 세자가 왕이 되면 어떻겠냐는 입장을 명에서 내비친 것이다.

이것은 가뜩이나 도성을 버리고 쫓겨난 바람에 자신의 입지를 걱정하게 된 선조의 입장에선 그냥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선조는 광해군에 대해 껄끄러운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마당에 상호의 일이 불거진 것이다.

“자네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세자 저하의 장계가 도착하고 조정은 꽤나 시끄러웠네.”

“······.”

정체도 불투명한 자에게 정 5품의 관직에 토포사라는 겸직까지 더해 내렸다는 사실은 조정 대신들에게 큰 빌미가 되었다.

더군다나 사전에 임금인 자신에게 허락도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선조도 이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기까지 했다.

“원래부터 세자 마마의 반대편에 있던 대신들은 이런 것이 벌써부터 국왕이 된 양 행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한 유학의 도리를 벗어나는 삿된 것을 가까이 하니 엄중히 벌해야 한다고 주상 전하가 주장하고 나섰지.”

그런 주장에 대한 다른 편에 있던 대신들은 오해이고 결코 세자인 광해군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얘기하였다.

이렇게 조정은 양쪽으로 나눠져 격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선조가 나서 세자를 불러들이고 모른 일의 원흉인 상호를 붙잡아 오게 한 것이었다.

“사실 전하는 이번 일을 통해 세자 저하를 보위에 올리자는 일부 주장을 막고 조정에 대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실 뿐, 세자 저하를 폐세자로 만들 의향은 없으시네.”

“고작 왕권 강화를 위해 이런 일을 벌이다니······.”

현대인인 상호의 입장에선 기도 안찰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왕권 국가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항복은 다시 말했다.

“당장 분조를 오래 비울 수도 없는 일이니 세자 저하는 곧 용서를 받고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네.”

“그건 다행인 일이군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왜 저한테 들려주시는 겁니까?”

“자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네.”

“기회라니, 내일이면 죽을 죄인한테 무슨 기회를 준단 말씀이십니까?”

“아직 국토 대부분이 왜군의 손아귀에 있고 도처에서 요괴에게 습격 받았다는 비보가 들려오고 있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네가 가진 신통력과 뛰어난 식견을 잃는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깝네.”

이항복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살 길은 탈출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상호지만 이항복의 말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하지만 이미 주상 전하에게 사형 명령을 받은 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 길이 있단 말입니까?”

“전하께서는 이번 일을 적절한 선에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일부러 자네를 바로 내일 처형하라고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나는 추측하고 있지.”

“꼬리자르기군요.”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 다만 전하도 오늘 보인 자네의 능력이나 말에 흥미가 전혀 없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상호는 추국 때 보였던 선조의 태도를 떠올리며 쓴웃음과 함께 대꾸했다.

이에 이항복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마 전하의 입장에선 유교의 도를 벗어난 신통력을 옹호할 수 없으시니 그렇게 굴었던 게 아닌가 싶네.”

광해군이 신통력을 쓰는 자들을 가까이 둔다고 해서 시끄럽게 논쟁을 벌인 조정 대신들이다.

하물며 국왕인 선조가 그것에 관심을 둔다고 하면 얼마나 난리가 나겠는가.

‘유학자들의 나라인 조선의 왕이기에 더욱 배척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지.’

이항복의 말을 통해 선조가 왜 그토록 모질게 굴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가는 상호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상호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 이항복은 자신이 여기에 왜 온 것인지 그 진짜 이유를 들려주었다.

“나는 주상 전하께 이번 일을 재고해줄 것을 간청하기에 앞서 먼저 자네라는 인물이 이 나라를 위해 진정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자인지, 그리고 심성은 올곧은 자인지 알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네.”

“아까의 질문이 바로 그것을 알기 위함이었군요.”

“맞네. 다행이 자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올바른 자인 것을 알았으니 이제 나는 가서 주상 전하를 설득해볼 것이네.”

“설득이 쉽게 되겠습니까?”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 전쟁에서 이기고 도성을 탈환하기 위해서라면 아마 전하도 생각을 바꾸실 수 있을 지도 모르네.”

“······.”

이항복의 말에 상호는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말대로만 되면 굳이 탈출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새로운 전개를 맞이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내일 저잣거리에 잘린 머리가 구경거리로 놓일 게 분명했다.

‘성공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이는데 정말로 믿고 기다려도 될까?’

솔직히 위인이라는 것만 알지 이항복이라는 인물을 직접 만난 것은 이게 처음이지 않은가.

그런데 목숨을 정말로 맡겨도 되는 것일까?

이런 상호의 속마음을 읽은 이항복이 몸을 숙여 상호와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말했다.

“날 믿어주게. 내 반드시 자네를 구해주겠네.”

상호는 다시 한 번 이 말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좋습니다. 한 번 대감을 믿어보죠.”

“날 믿어줘서 고맙네.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겠네.”

이항복은 이리 말하고 상호와의 밀담을 끝내고 돌아갔다.

“과연 그가 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불안했다.

아무리 후대에까지 잘 알려진 위인이라고 해도 이미 사형 결정이 내려진 일을 번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믿어보자.”

상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찾아온 이항복의 용기를 믿어보기로 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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