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80화 (80/127)

十七장. 왕자를 구하라. (1)

상호는 결과를 기다리며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벌써 아침인가.”

아침밥으로 나졸이 음식을 갖고 왔지만 도저히 먹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과연 이항복이 선조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을까.

만약 실패했다면 좀 있다가 저잣거리에서 오체분시로 처형될 터였다.

“여차하며 나졸들을 때려눕히고 도망쳐야지.”

순순히 죽을 마음은 없기에 미리 탈출 계획을 세우는 상호였다.

이때, 옥사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상호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호를 찾아온 것은 의금부의 금부도사가 아닌 나이를 지긋이 먹은 내시와 이항복이었다.

“대감!”

“반가운 소식을 우선 전해주겠네. 전하께서 자네의 처형은 뒤로 미루셨네."

"정말입니까?"

"사실이네."

설마 설득을 진짜 성공시킬 줄이야.

상호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성사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항복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다만 미리 말해두지만 전하의 어심은 기존하고 바뀌지 않았네."

“네?”

“자네에 대한 이야기와 지닌 능력이 나라를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를 드렸지만 전하께서는 근본도 모르는 자가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내버려둔다면 필경 조정을 겨누는 불온한 칼이 될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시지 않으셨네.”

선조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생각이 바꾸지 않았기에 처형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더불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능력을 받은 의병들도 언젠가 적당한 구실로 제거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에 이항복은 방법을 달리 해 다시금 설득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조의 마음을 돌리게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입니까?”

“실은···지금 전하께서 나라의 일 말고 심중으로 깊이 마음을 쓰시는 일이 하나 있네.”

“걱정거리 말입니까?”

“이곳 의주로 몽진하고 난 뒤에 신성군 마마께서 의미 불명의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우셨네.”

“신성군 마마라 하시면?”

“전하의 두 번째 후궁이신 인빈 마마의 아드님이시네.”

상호는 신성군이 누군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것 왕자가 아픈 것과 자신의 구명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상호로선 그것이 의아스러웠다.

이항복은 먼저 묻기도 전에 그 내막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신성군 마마가 아프기 며칠 전부터 마마의 처소 주변에서 해괴한 일이 있었네.”

“무슨 일이었습니까?”

“나인 중 하나가 밤에 혼자 처소 주변을 다니다 괴상한 것을 보고 혼절하는 일도 있었고 하룻밤 사이에 나뭇가지 위에서 밤을 보내던 새들이 모두 죽어 나무 아래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네.”

“······.”

“그렇지 않아도 나라에 큰 변이 생긴 마당에 이런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는 게 알려지면 자칫 흉흉한 소문이라도 돌까 싶어 다들 함구했기에 세간에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 하군요.”

“그런데 그 일이 있고 갑자기 신성군 마마가 쓰러지셨지.”

그렇지 않아도 몽진을 하던 길에 크게 아팠던 적이 있던 신성군이었다.

겨우 차도를 보이고 호전 기미를 보이던 신성군이 다시 쓰러지자 그렇지 않아도 왕자 중 그를 가장 예뻐하던 선조는 어의까지 보내 상태를 치료코자 했다.

하지만 지극정성으로 치료와 간호를 해도 상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해 선조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마를 진찰한 허준이라는 의원의 말에 따르면 전에 앓았던 병과는 완전 다른 증세이고 여태껏 알려진 적 없는 대단히 특이한 것이라고 하네.”

“허준 의원도 알지 못한다니.”

명의로 후대에까지 알려진 허준조차 파악하지 못한 병이라니 뭔가 미심쩍었다.

괴상한 일들과 수수께끼의 병.

상호는 비로소 이항복이 무엇을 통해 선조를 설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요괴와 관련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군요.”

“전하께 자네라면 그 원인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또 해결책도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네.”

“······.”

“자네에게 미리 의견을 묻지 않고 이렇게 일이 진행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바로 처형되지 않고 일단 기회를 잡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다만 신성군의 병세가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하면 결국 처형을 피하지 못하니 겨우 약간의 시간을 번 셈이었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상호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기회를 가졌는데 포기할 수는 없기에 이렇게 말했다.

“장담은 못하지만···만약 제가 고칠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반드시 고쳐 보이겠습니다.”

“잘 말해주었네. 전하께서도 왕자 마마의 병을 완치시킨다면 자네에 대한 처우도 달리 생각하실 것이네.”

이항복은 그리 말하며 옆에 있는 내시에게 말했다.

“그러면 상선, 전하께 이 이야기를 알려주시게.”

“알겠습니다.”

옆에 말없이 있던 내시는 왕을 지근에서 보필하는 상선이었다.

상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먼저 밖으로 나섰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상호가 입을 뗐다.

“전하가 정말로 마음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한 번 어심이 굳히시면 그것을 쉬이 바꾸시지 않으시는 전하네. 왕자 마마를 구할 방도가 있다는 말에 잠시 처형을 유보했을 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자네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네.”

“그렇군요.”

단 둘이 되니 진짜 사실을 전하는 이항복이었다.

상호와 그리고 능력자들에 대해 강한 의심을 갖고 있는 선조를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걱정 말게. 그 사이에 내가 어떻게든 자네를 살릴 방도를 찾아보겠네.”

“···믿겠습니다, 대감. 그럼 저를 왕자 마마에게 데려가주십시오.”

“한 가지 말해두지만 자네의 처형은 잠시 미뤄졌을 뿐, 아직까지는 죄인의 신분이네. 그래서 지금 당장 풀어줄 수는 없고 남들 눈에 띄지 않을 밤에 은밀히 데리러 오겠네.”

“후, 알겠습니다.”

당장 나갈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상호는 대신 이항복에게 이러한 부탁을 했다.

“지금 저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실 수 없으신지요.”

“그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저 때문에 무리한 짓을 저지를 지도 모릅니다.”

임충은 몰라도 율이라면 진짜 뭔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이러한 상호의 말에 이항복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빠른 시일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바로 사람을 보내겠네.”

“감사합니다.”

비로소 마음 한구석에 있던 걱정을 덜 수 있는 상호였다.

야심한 밤이 되고 상호는 은밀히 풀려나 옥사를 나오게 되었다.

‘이 만큼이나 경비를 붙이다니.’

내금위의 무관들과 정예병 스무 말이 상호의 주변을 빈틈없이 지켰다.

그들은 만에 하나 상호가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였다.

이렇게 삼엄한 분위기 속에 신성군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앞에는 나인과 치료를 위해 불려온 내의원의 의녀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녹색 관복에 하얀 색 천을 덧입은 중년의 의원도 있었는데 그가 바로 현재 신성군의 치료를 맡은 의원 허준이었다.

“잠시만!”

허준은 포승줄에 묶어 오는 상호를 보고는 단걸음에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내금위의 무관이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키시게.”

“왕자 마마의 병환을 저 자에게 보이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으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래부터 신성군의 병환을 살피던 허준이었기에 무관은 더는 막지 못하고 잠시 말할 시간을 내어주었다.

허준은 상호의 면모를 두루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녕 자네가 왕자 마마의 병을 고칠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모릅니다.”

아무리 현대인이라도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없기에 진짜 병이라면 손쓸 방도가 없었다.

다만 만약 이 병이 몬스터와 연관되어 있다면 헌터로서 알고 있는 지식으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만 있을 뿐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허준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의원도 아닌 자에게 내 환자를 맡길 수는 없네.”

“······.”

허준의 태도에 상호는 잠시 그를 보았다.

단순히 의원으로서 자기 환자를 빼앗기는 것이 싫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를 걱정해 이렇게 말한 것임을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성품 그대로네.’

이 사실을 알았기에 허준이 막는 것에 대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상호는 허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일단 환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 상태만 살피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처치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먼저 의원 나리께 그것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구하겠습니다.”

“정녕 그리 하겠는가?”

“네.”

상호의 제안에 허준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을 내놨다.

“믿음은 가지 않지만 일단 그리한다면 보는 것만은 허락하지. 단, 나와 함께 환자를 본다는 조건에 따라준다는 전제 하에서 허락하는 것이네."

“전 상관없습니다.”

상호는 안 그래도 허준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허준의 허가를 받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포승줄에 꽁꽁 묶이고 뒤에 두 명의 무관을 두며 방에 들어가니 고운 비단 이불을 덮고 누운 아직 어린 신성군과 그의 모친인 인빈 김씨를 볼 수 있었다.

인빈 김씨는 다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상호를 보며 말했다.

“정말로 네가 왕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느냐.”

“일단 상태를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인을 왕자의 곁에 둘 수 있겠느냐. 네 놈은 거기에 서 있도록 해라.”

인빈 김씨는 상호가 왕자에게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말에 할 수 없이 상호는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매의 눈’을 써서 누워있는 신성군의 얼굴을 살폈다.

‘혈색이 안 좋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얼굴이 매우 파랗군.’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덜덜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분명 겨울에 접어들었고 북방의 땅에 날씨가 매우 차갑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은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할 만큼 불을 떼고 있는 상태였다.

“이불을 잠시 거둬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겠네.”

움직일 수 없는 상호를 대신해 허준이 이불을 벗겼다.

흰 비단 옷을 입은 신성군의 손과 발도 무척이나 파랬다.

만약 조금씩 쉬는 숨이 아니라면 이미 죽은 송장이라 믿을 정도였로 상태는 중했다.

상호는 그러한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허준에게 질문했다.

“의원 나리께서는 저 증세에 대해 뭔가 알아내신 게 없으십니까?”

“몸이 급격히 차가워지는 질병이 몇 가지 있으나 전부 맞지가 않았네. 더욱이 맥도 비정상이라 그 흐름을 가늠할 수도 없고 냉증이 좋다는 약재도 모두 소용이 없었네.”

“그렇겠지요.”

허준의 말을 들은 상호는 뭔가를 안다는 듯 대꾸했다.

이에 인빈 김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뭔가 아는 것이냐.”

“병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이렇게 되는 경우가 딱 하나 있습니다.”

상호의 대답에 인빈 김씨와 허준은 크게 놀랐다.

특히 좀 전까지의 태도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인빈 김씨가 자식을 걱정하는 모친의 모습으로 말했다.

“어서! 어서 그게 뭔지 말해 보거라!”

“이것은 병이 아닙니다.”

“병이 아니라니?”

이번에는 허준이 놀라며 반문해왔다.

상호는 그런 두 사람을 담담히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쉐이드라고 불리는 존재의 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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