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一장. 평양성 전투. (2)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반격을 준비하고 평양성 함락을 움직이게 됐다.
그 공격군에 속하게 된 상호와 토벌대는 정해진 날짜까지 집결지로 가야만 했다.
‘후우, 좋게 생각하자.’
분명 상호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결정을 뒤집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상호는 졸지에 몬스터 토벌에서 왜군과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된 것에 대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자 했다.
‘명군이 몬스터 토벌에 무려 1만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하는 바람에 당장 평양성 공략에 필요한 전력이 대폭 줄었잖아. 그 공백이 만약 역사의 뒤틀림을 만든다고 하면 최악의 경우에 평양성을 탈환하는 일이 실패하지 모른다.’
이미 3번이나 실패한 평양성 탈환이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것도 조선에게 아주 안 좋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평양성 전투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마냥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엄청나게 모였군.”
평양성 공략을 위해 이여송이 이끄는 3만의 명군과 8천의 조선군, 그리고 서산대사를 따르는 2천여 명의 승병들이 한 곳에 모였다.
병력의 수로만 본다면 평양성을 지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보다 3배가 더 많았다.
‘공성전이라는 점을 따지면 어느 쪽이 우세라고 보긴 힘들겠군.’
평양성은 원래부터 수비가 튼튼한 성이었다.
그랬기에 무려 세 번에 걸친 조선군의 탈환 작전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떠올린 것을 미뤄본다면······.’
여기까지 오면서 본래 역사에서 어떻게 평양성을 함락했는지 알기 위해 기억을 짜냈다.
다행히 임진왜란 관련된 드라마를 본 터라 거기서 대충 전투의 흐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라면 수일에 걸친 치열한 공방이 오고간 끝에 한계에 봉착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교섭을 통해 평양성을 내주는 조건으로 부대를 안전하게 한성 쪽으로 후퇴시킨다.
하지만 이미 이전의 역사과는 많은 변화가 생겼기에 상호가 기억하는 수순으로 흐름이 흘러갈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없었다.
‘상황이 달라질 수야 있겠지만 최소한 평양성을 이번에 함락한다는 결과만큼은 그대로 이뤄져야 돼. 만약 그리 되지 않을 것 같다면······.’
명군 주도로 치러지는 전투라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할 생각이지만 조명 연합군이 패배한다는 최악의 사태가 된다면 그 때는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이 있었다.
뭐 상호의 입장에선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디에 합류하면 되는 거지?”
갑작스레 전투에 합류한 상호와 그의 토벌대는 소속이 없었다.
이래서는 전장에 나갈 수 없기에 소속될 부대를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상호가 하기 힘든 이 문제는 남준이 대신 처리해주었다.
“김응서 장군께서 저희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래?”
김응서란 장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의 부대에 속하기로 했다.
그렇게 편입이 되었지만 상호와 그 일행은 반쯤 겉도는 집단이 되었다.
“자네들은 적당히 후미에서 부대를 따르기만 하게.”
“······.”
“그럼.”
김응서 장군도 아니고 그의 부관 격인 인물이 전할 말이 상호는 어이가 없었다.
비록 왜군과의 공식 전투를 치른 적은 없다지만 갖은 몬스터의 실전 경험을 가진 자신의 토벌대를 짐짝 취급하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정식 편재에도 없고 요괴 토벌을 하다가 왔다는 상호와 그 휘하의 병력에 대해 조선군 내에서 아는 자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뭐 실전에서 실력을 보여주면 그 때는 대접이 달라지겠지.”
상호는 자신보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능력자가 아님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이곳까지 온 토벌대의 대원들을 강하게 믿었다.
뿌우우우.
출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공성전을 시작했다.
콰쾅!
다종의 무수한 대포가 성벽을 향해 불을 뿜는다.
그 폭발에 성벽 위의 왜병들이 쓰러지는 가운데, 동쪽과 남쪽으로 강을 끼고 있는 평양성을 치기 위해 조명 연합군은 서쪽 외성부터 공격해 들어갔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무수한 병졸들이 성벽을 넘고자 했다.
사다리가 세워지고 그것을 타고 병사들이 용감하게 올랐다.
“한 놈도 올리지 마라!”
“쏴라!”
이에 기존 성벽을 개수해 세운 일본식 시설 위에서 총탄과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커억!”
“아악, 내 다리!”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자들이 늘어났지만 조명 연합군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후방에 배치된 대포들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콰앙!
명군이 본국에서부터 가져온 대장군포에서 쏘아진 포탄이 성벽 위에 세워진 탑에 적중했다.
부서진 잔해와 함께 왜병 시체들이 떨어졌다.
“지금이다! 어서 올라가!”
“에잇!”
“으아악!”
성벽에서 계속해서 병사들이 죽어갔다.
특히 평양성 북쪽에 위치한 모란봉에는 다수의 조총병과 궁병들이 배치되어 있어 위에서 쏟아지는 조총과 화살이 조명 연합군 진형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어서 북벽에 병력을 더 증강시켜 산봉우리를 함락시켜라.”
“네!”
“그리고 너희 조선군은 외성 쪽을 경유해서 남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라.”
“외성 쪽을 공격하란 말입니까? 하지만 외성은 가옥이 많이 길이 복잡할뿐더러 아직 남아있는 백성이 많습니다.”
“지금 명령에 따르지 못하겠단 것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조심스레 뜻을 내비쳤던 김응서는 호통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에게 이여송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 대명 제국의 병사들이 신하국인 조선을 돕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와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죄송합니다. 바로 명에 따라 부대를 움직이겠습니다.”
김응서는 깍듯이 군례를 올린 다음 지휘 막사를 나섰다.
그런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여성에게 수하 무장 중 한 명인 양백경이 말했다.
“장군, 전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특무병을 투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건 안 돼.”
능력자가 된 병사를 일컫는 말인 특무병이 언급되자 이여성이 단칼에 의견을 각하시켰다.
한 번의 실전으로 100명 이상의 병사 몫을 해내는 특무병을 고작 이런 전투에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다.
한편, 이여송의 결정에 따라 김응서의 관군과 서산대사의 승군은 크게 우회해 평양성 남쪽인 외성으로 진입을 시도하게 되었다.
성벽을 넘고 가옥들이 즐비한 외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왜군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타타탕!
“으헉!”
“매복이다!”
초가집 사이로 왜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선두에 있던 조총병들이 조총을 쏘니 선두에 선 승병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장애물이 많고 길이 협소하다는 점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온 조선군을 포위 섬멸한다는 게 고니시 유키나가의 계책이었다.
팅!
상호는 날아든 총탄을 검으로 후려쳐 반 토막을 내 떨어뜨리는 기예를 펼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무사한가?”
“네!”
주변에서 함께 싸우던 토벌대 소속의 군관과 병사들이 대답해왔다.
역시 몬스터를 상대로 갖은 상황은 경험한지라 이 정도 기습에 다친 자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쯧! 완전히 함정에 걸렸군.”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후퇴를 하려고 해도 아군 병사들이 길을 막고 있어 그조차도 어려웠다.
자신들만 살겠다고 그들을 억지로 비키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지.”
남은 방법은 포위한 왜군을 뚫고 다른 길을 만들어 빠져나가는 방법뿐이었다.
그 길을 내기 위해 상호 본인이 직접 움직였다.
휙!
“아니?”
“헉!”
상호는 순식간에 지붕으로 뛰어오른 뒤 빠르게 달려 왜군들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이런 상호의 움직임을 보고 놀란 왜병들이 그를 막고자 조총을 쐈다.
“흥!”
‘매의 눈’을 통해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탄의 궤적을 낱낱이 파악한 상호는 거침없이 지붕에서 뛰어내려 왜병들 사이로 착지했다.
“이 녀석!”
“죽어라!”
사방에서 찔러오는 창을 보고 크게 몸을 회전시키는 상호!
순식간에 창은 창날 없는 막대기로 변해갔다.
“타핫!”
상호는 창이 잘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왜병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우아악!”
가슴팍을 얻어맞은 왜병은 졸지에 뒤에 있던 여러 명과 함께 날아가 길 옆에 있는 집 벽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쓰러졌다.
굳이 검을 휘두를 것도 없이 그냥 손발을 내젓는 것만으로 한 무리의 왜군을 모두 쓰러뜨린 상호의 활약에 본래부터 그를 따르던 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조선군들까지 사기가 올랐다.
“박살내버려!”
“우오오!”
상호에게 자극을 받은 이들은 저돌적으로 왜군들에게 돌격했다.
여기저기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쓰러지는 자들이 늘어났다.
“에이잇!”
“비켜!”
상호는 정면에서 오는 무사를 단칼에 베어 넘겼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자신을 위협하는 이상, 자비를 베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더 이상 못 간다!”
“쳇.”
길을 완전히 봉쇄한 수십 명의 왜병들에 상호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창을 앞으로 겨누고 뒤에선 조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병사들을 생각하면 피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마침 상호의 눈에 빈 수레가 보였다.
“흡!”
상호는 왼손만으로 수레를 붙잡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무겁기 짝이 없는 수레가 위로 들려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사람이 어떻게 저런 힘을!”
경악하는 왜군!
그런 그들을 향해 상호는 상큼한 미소를 한 번 보이고는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수레를 던졌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군집되었던 왜군은 삽시간에 전멸하였다.
상호는 부서진 수레 잔해에 깔린 왜병들을 밟고서 간단히 길을 지났다.
“우, 우리도 가자고.”
“그래!”
상호의 경이적인 힘에 놀랐던 이들도 황급히 뒤를 따랐다.
이렇게 상호가 앞장서서 길을 열며 돌파구를 만드니 자연스레 왜군이 펼친 함정도 와해되어갔다.
“장군! 적의 포위가 느슨해졌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서 성을 탈출한다!”
김응서는 이때가 기회라는 것을 알고 병력을 철수시켰다.
조선군의 이러한 상황에 여전히 모란봉 함락을 못하고 있던 명군도 할 수 없이 철퇴하였다.
첫 날, 조명 연합군은 얻은 것 없이 수많은 사상자만 떠안고 평양성에서 물러나 본래의 주둔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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