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97화 (97/127)

二二장. 최강의 괴수 대 왜군. (1)

이틀 날의 전투에서 평양성의 남부, 외성을 빼앗긴 고니시 군은 위축되었다.

게다가 요청한 지원군도 핑계를 들어 도착하지 않으니 사기는 크게 저하되었다.

총공세를 펼친다면 평양성 탈환과 함께 고니시 군을 괴멸시키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여송은 결사 항전을 각오하는 고니시 군을 두고 연합군을 물렸다.

그리고는 며칠 말미를 주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보낸 사람과 협상을 하더니 멋대로 이런 명령을 내렸다.

“평양성에 있는 왜군들은 명나라의 황제께 항복했다. 그러니 그들이 남쪽으로 퇴각할 수 있도록 길을 열라.”

지금껏 국토를 침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죽인 왜군에 대해 이제껏 칼을 갈아온 조선군 측으로선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김응서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 장수들은 그것을 막고자 했다.

“장군! 어찌 왜적들을 살려서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부디 명령을 거둬주십시오!”

이들은 이여송의 막사 바깥에서 엄동설한에 무릎을 꿇고 탄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이여송은 고니시와 한 약속을 지켰다.

여기에는 남의 나라 전쟁에서 병력을 많이 잃거나 패배를 하면 자신의 입지가 좁혀지게 되니 싸우지 않고 왜군을 물러나게 해서 확실한 전공을 세우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결국 조선군 장수들은 총사령관인 이여송의 뜻을 꺾지 못했고 고니시 군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평양성 전투는 원래 역사대로 흘러가는 건가.”

상호는 성을 비우고 떠나가는 고니시 군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이여송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통해 열도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외교 루트를 만들고자 했다.

이게 잘 된다면 좋겠지만 후일  평화 협상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세운 터무니없는 조건을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가 임시변통으로 바꿨다가 들통 나는 바람에 정유재란이 다시 벌어진다는 것을 잘 아는 바였다.

“이 전쟁을 정유재란까지 끌고 갈 수는 없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역사 회귀보단 조선이 일찍 전쟁을 끝마치고 한반도에 나타난 몬스터 토벌에 집중하게 하는 쪽이 상호에게 나은 길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고니시 군이 무사히 한양으로 철수하게 내버려둬선 안 되었다.

“그렇지만 무슨 수로 수천에 달하는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조선군은 이여송의 명령 때문에 왜군을 쫓아가 공격할 수가 없다.

이는 상호와 토벌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소수의 인원이니 명군의 눈을 피해 몰래 왜군을 쫓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인원만 갖고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니, 있다.”

상호는 눈빛을 번뜩였다.

이 땅엔 조명 연합군도 왜군도 아닌 제 삼의 세력, 바로 몬스터 세력이 있지 않은가.

예전에도 몬스터들의 힘을 빌려 왜군을 상대한 바 있고 그 결과도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공격한다고 해서 큰 피해를 줄 수는 없겠지만······.”

상호가 몬스터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니시 군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었다.

그 혼란을 틈타 고니시 유키나가를 처치한다.

이것이 상호의 계획이었다.

다만 걸림돌은 지금 후퇴하는 고니시 군을 맞아 공격해줄 몬스터 무리가 있냐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고니시 군이 철수하는 방향에 Ⅱ단계 이상의 몬스터 게이트가 있는 것인데.”

이런 소망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고니시 군의 퇴로까지 몬스터들을 대거 유도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 고블린의 심장하고 하피의 깃털, 그리고 더스트 크롤러의 담즙 주머니를 합성하면 몬스터 유인제를 만들 수 있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 제작법대로 만든다면 일시적으로 몬스터들에게 강한 충동을 일으켜 냄새가 나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약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재료는 모두 충족되어 있는 상태.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야겠다.”

상호는 자신이 가진 스킬의 능력을 빌어 생각한 것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재료를 가져오고 솥단지 하나를 빌려 제작을 시작했다.

“하피의 깃털 다섯 개를 넣고 5분간 저어준다. 그리고 심장을 넣은 다음에 색깔이 탁한 보라색이 되면 그때 더스트 크롤러의 담즙 주머니를 넣으면 되나?”

일단 머리에 떠오른 대로 해보기로 했다.

솥단지에 물을 반쯤 넣고 끓이기 시작하니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지?”

“우웨엑!”

“어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연기를 따라 지독한 냄새가 막사 밖으로 퍼지자 바깥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상호 본인도 솥단지에서 풍겨오는 지독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하지만 작업에서 손을 놓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후우, 됐다.”

무려 3시간이 팔을 쉬지 않고 솥단지의 내용물을 휘저은 결과, 총 일곱 병 분량의 유인제를 만들 수 있었다.

제작을 완료한 상호는 은밀히 남준을 불렀다.

“자네한테 부탁할 게 있어.”

“갑자기 무슨 부탁을 하실 게 있으신 겁니까?”

“실은 지금부터 혼자 단독 행동을 좀 하려고해.”

상호의 말에 남준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비록 많은 교감을 이루고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준은 상호의 동태를 감시해야 할 감시자였다.

“혼자서 행동할 수 없는 입장이신 것을 잊으신 것은 아니시지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는 뭐하지만 전 전하의 밀명에 따라 토포사 나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어. 내가 행여나 도망을 칠 우려가 있어 혼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말이지.”

“······.”

상호의 말에 남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런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상호.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남준이었다.

“이제까지 나리 밑에서 지내면서 나리의 성품이 어떤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

상호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캐물을 때가 아니라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런 상호를 보며 남준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세간에 퍼진 사기꾼이라는 오명과 다르게 나리는 항상 솔선수범하고 진정 요괴 토벌해서 나라와 백성들을 구하려는 무척이나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가까이서 봤습니다.”

“그리 생각해주었다니 기쁘군.”

약간의 오해가 곁들어져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좋게 봐주는 남준의 말이 내심 싫지 않은 상호였다.

“그런 나리를 믿기에 전 나리의 행동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고맙다.”

“필요하시면 나리의 행적도 제가 따로 다른 군관들에게 잘 설명해 놓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감사하지.”

이곳을 잠시 떠난 사이의 알리바이도 만들어준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상호는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하루 먼저 앞서 간 고니시 군을 뒤쫓게 되었다.

야심한 밤에 보초서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가며 평양성을 나온 상호는 곧장 남쪽으로 달렸다.

말도 없이 맨 다리로 쉬지 않고 달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건 상호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려 반나절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드디어 후퇴하는 고니시 군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휴우, 겨우 따라잡았네.”

땀을 한껏 흘린 상호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후퇴하는 고니시 군을 보았다.

아직 한양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또 언제 약속을 깨고 조명 연합군이 공격해올지 모르기에 고니시 군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퇴주하고 있었다.

오기 전에 남준을 통해 듣기론 신원군 부근에 왜군 부대가 주둔 중이란 얘기를 들었다.

거기까지 가면 고니시 군도 패배에 의한 충격에 벗어나 제대로 부대를 정비하게 될 테고 그리되면 몬스터를 이용한 공격이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그 전에 일을 벌여야 하는데.”

상호는 자신이 가져온 지도를 꺼내 펼쳤다.

현재 위치를 대충 가늠하니 아직 기회는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이쪽에 몬스터 본거지가 있을 것 같은데.”

남동쪽으로 있는 산들이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적절해보였다.

우선 앞서 질러가 일대를 확인해보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가볼까.”

이번 작전을 위해 민첩과 체력에 각각 한 단계씩 능력을 부여했다.

덕분에 반나절을 뛰었음에도 아직 팔팔했고 말을 타고 달릴 때만큼의 속도로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두 다리로 달리니 어지간한 지형 따위는 무시할 수 있었다.

“으쌰! 도착했다!”

그렇게 달려 몇 시간을 걸리는 거리를 겨우 두 시간 만에 주파하는데 성공하였다.

상호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진짜 내가 초인이 되긴 된 것 같다.”

일단 반나절 가까이 고니시 군을 앞질러 온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제부터 몬스터들을 발견해 고니시 군에게로 유도하는 부분이었다.

“제발 있어라.”

간절한 마음으로 산 이곳저곳을 누비며 몬스터의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무리를 찾을 수 있었다.

“빙고!”

상호는 ‘매의 눈’으로 수백 미터 바깥에 있는 홉고블린 무리를 보았다.

고블린보다 체격이 뛰어나고 군대에 가까운 조직력을 자랑하는 홉고블린은 집단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몬스터이다.

지금 보이는 숫자는 어림잡아 200마리 정도.

“이걸로는 부족해.”

상호는 일단 홉고블린 무리의 우치를 기억해두고 다른 곳을 좀 더 수색해봤다.

그 결과, 오크 무리와 코볼트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 합하면 대략 500마리 정도인가. 어차피 길게 대열을 이루고 행군 중이니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는 위치에만 몬스터들이 달려들게 하면 충분할 것 같긴 한데······.”

다만 고니시 유키나가 주변으로 뛰어나 무사들과 정예병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에 그들을 상대할 만한 강한 개체가 필요해보였다.

“상위 개체로 보이는 녀석은 로드 말고 딱히 없어보였는데.”

무리가 다 그다지 큰 무리가 아니라서 로드를 빼면 변변찮은 놈들뿐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계획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았기에 유인제를 사용할 준비를 했다.

쿵.

“응?”

지척에서 들려온 소리가 상호의 고개를 돌리게 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산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상호의 눈엔 빽빽이 자란 나무뿐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우지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긴장하는 상호.

숨조차 죽인 그의 눈에 굵은 나무들이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고개를 위로 들어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머리를 둔 거대한 인간형의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우거······.”

상호는 상대가 인간형 몬스터 중에서도 최강으로 꼽히는 오우거임을 알아보았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오우거와 만날 줄이야.

‘맙소사! 대물 중에 대물이 걸렸잖아.’

일반적으로 수십 마리 씩 쏟아져 나오는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단독 내지 두 마리만 게이트를 통과해 이쪽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오우거는 헌터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대물 저격총도 머리를 맞추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고 대전차 미사일을 들이밀어야 겨우 타격을 줄 수 있는 엄청난 맷집과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의외로 민첩한 몸놀림을 갖고 있어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몬스터 코어로 스펙 업을 한 헌터들도 단독으로 이 괴물을 상대하지 못했다.

특급 헌터 정도가 아니면 보통 팀으로 잘 계획된 작전에 따라 토벌이 가능한 이 괴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호로선 공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이건 행운이기도 하다.’

만약 직접 상대했다면 절대적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저 괴물을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왜군들이 진짜 공포를 제대로 느끼겠네.”

어쩌면 고니시 군은 궤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그리 생각하면서 오우거도 꾀어내기 위한 머릿속으로 계획을 새롭게 구상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