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04화 (104/127)

二三장. 조선의 반격! (4)

상호가 휘두르는 쌍검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왜병들을 베어간다.

이런 무위를 뽐내는 상호를 향해 그래도 왜병들은 창을 앞세우고 덤벼들었다.

“비켜라!"

상호는 자신을 향해 정면에서 창이 찔러오는 것을 보고 동시에 양 손을 움직였다.

우선 오른손의 검으로 창대를 자르고 그 다음 왼손의 검으로 복부를 베었다.

이 모든 동작은 그야말로 찰나에 이뤄졌다.

“덤벼라! 나 우에가의······.”

한 무사가 용맹하게 나섰지만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목이 잘렸다.

그 뒤로도 몇몇 무사가 더 상대해왔지만 결과는 한결 같았다.

이렇게 상호가 앞에서 적을 유린하며 길을 여니 그 뒤를 따라 다른 이들도 산을 올랐다. 물론 그들도 순탄하게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옆쪽에서 오는 왜병을 상대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챙!

군관 김태진은 등에 깃발을 꽂은 무사와 검을 부딪쳤다.

두세 번 합을 주고받으니 명백히 김태진이 불리했다.

캉!

무사가 강한 힘으로 검을 쳐내니 경사면 아래에 자리했던 김태진의 몸이 순간 균형을 잃었다.

“죽어!”

이 허점을 본 무사는 왜도를 들어 김태진의 몸을 베었다.

그런데 몸을 벤 왜도의 칼날이 두 동강 나는 게 아니겠는가.

“아닛?”

무사는 부러진 왜도를 보고 경악했다. 그러다 날아든 칼날에 목숨을 빼앗겼다.

베이기 직전에 무의식중으로 ‘강철화’ 스킬을 발동한 김태진은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베여진 갑주 안을 보았다.

“정말로 베이지 않는구나.”

김태진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능력에 이전보다 더 큰 신뢰를 갖게 되었다.

한 편, 다른 쪽에서도 왜군을 까무러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엇?”

“내 총이 없어졌어!”

“히이익!”

혼비백산하는 왜군들은 하나 같이 맨 손이었다.

철커덩.

“별 볼 일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유용하지 않은가.”

군관 백준수는 방금 전에 뺏은 무기들을 바닥에 떨구면서 중얼거렸다.

상호에게 가르침 받은 대로 가까운 적의 무기를 뺏는 그의 능력 덕에 원거리에서 총탄과 화살에 공격당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으악!”

맨 뒤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가장 뒤에서 적을 막던 병사 하나가 칼에 베인 것이다.

“이런!”

쓰러진 병사를 본 사명대사는 바로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퍽! 퍼벅!

공중에서 펼친 두 발차기에 창을 든 왜병 둘이 나가 떨어졌다.

회색의 승복 자락을 펄럭이며 손바닥으로 주변에 있는 왜병들을 날려 보낸 사명대사는 쓰러진 병사를 부축했다.

“괜찮으신가?”

“으, 으으······.”

부상 입은 병사는 깊게 베여 제대로 말을 못 잇지 못했다.

이에 사명대사는 응급조치로 자신이 가진 회복 능력을 펼쳤다.

“저기다!”

“어서 쫓아라.”

바로 밑에까지 추격한 왜군들이 잔뜩 있었다.

이때! 위쪽에서 빠르게 화살들이 날아와 왜병들을 고꾸라트렸다.

상황을 알고 앞서 산을 오르던 이들이 활로 지켜준 것이다.

“어서 날 두고······.”

“허허, 어찌 불자가 다친 이를 두고 혼자 갈 수 있겠나. 내가 업을 테니 조금만 참으시게.”

사명대사는 부상자를 등에 업고 위로 올랐다.

이런 그를 쫓는 수백 명의 왜병들.

맨 위에서 적을 상대하던 상호의 눈에 그 모습이 보였다.

“하앗!”

단숨에 앞에 있던 왜병을 벤 상호는 아래를 보며 ‘물의 속성력’을 일으키기 위해 집중했다.

드르르륵.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물이 뿜어져 나온다.

흡사 폭포가 터진 것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아래서 올라오는 왜군들은 그대로 휩쓸렸다.

이렇게 상호와 그 일행이 행동하는 모습은 행주산성에 있는 조선군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갑자기 어디서 물이 나오는겨?”

“그보다 저기 오는 사람들 우리 편인 것 같은데.”

“무슨 수로 구해. 왜놈들이 저렇게 많구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잠시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했다.

이때, 성벽 위로 권율이 당도했다.

“으음!”

권율은 아래에서 물줄기가 뿜어지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난데없이 산 중턱에서 폭포가 터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저들은?”

“믿기지 않지만 적진에서부터 이곳까지 돌파해왔습니다.”

왜군들에 둘러싸여 싸우는 상호 일행을 부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에 권율은 말했다.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원군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우리 편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저들부터 구하고 봐야겠구나.”

“저들의 정체를 모르는데 어찌 그들을 들여보낸다는 말씀입니까?”

다른 부관이 우려를 나타냈다.

지원군이라고 하기엔 빈약한 전력, 게다가 왜군 진영에서부터 온 것이 수상한데 무턱대고 도우러 가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권율의 판단은 확고했다.

“굳이 자기편을 희생시키면서 왜군이 저런 술책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숫자가 적다해도 우리를 돕기 위해 온 이들을 어찌 모른 척 한단 말이냐.”

권율은 만류하는 부관들을 뿌리치고 직접 소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산성을 나섰다.

“이 놈들, 길을 비켜라!”

밖으로 나온 권율과 조선군은 거침없이 아래를 향해 돌격했다.

이러한 그들을 부근의 왜병들이 막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아래에서의 싸움 때문에 전력이 분산되었고 또 성벽 위에서 지원 공격이 맹렬하게 이뤄지니 속수무책으로 길을 열어줄 뿐이었다.

이윽고 아래서 올라온 상호 일행과 위에서 내려온 권율과 조선군이 한 곳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그대들은 어디의 자들인가? 대체 누가 보내서 온 것인가?”

직접 검으로 적을 베며 왔기에 갑옷 곳곳에 피를 묻힌 권율이 상호를 보고 말했다.

과거, 한 차례 마주한 적이 있는 권율을 보며 상호가 말했다.

“저흰 조정에 속해 있는 자들이고 딱히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곳의 싸움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음, 자네는? 전에 봤던 그 자가 아닌가.”

“오랜 만입니다, 장군.”

상호를 알아 본 권율은 더더욱 지금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구구절절 대화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다.

“자세한 얘긴 이 싸움이 끝나고 듣겠네. 우선은 우리를 따라 성으로 오게나.”

“예, 알겠습니다.”

합쳐진 두 집단은 다시 산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몰려오는 왜군을 상대하며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본 우키타 히데이에는 다급히 명령했다.

“지금 성 밖으로 나온 적을 돌려보내지 마라!”

“넷!”

명령에 따라 산성의 다른 방향을 공격하던 왜군 부대가 상호 일행과 권율 부대가 합류하려는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핫!”

쌍검을 휘둘러 왜병을 연달아 쓰러뜨려도 새로운 적이 그 자리를 메꾼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 때문에 성문까지 가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모두가 필사적으로 싸워 길을 열었고 성문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어서 안으로!”

“에잇!”

내부의 조선군은 쫓기다시피 들어오는 아군을 받아들이며 같이 들어오려는 왜병들을 장창으로 찔러 격퇴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왜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성문 안으로 진격해왔다.

여기서 왜군의 침입을 허용하면 상황이 극히 불리해지게 된다.

도우러왔다가 오히려 패배의 단초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숨돌릴 틈도 안 주는구나.”

상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성문 쪽으로 오는 왜군을 상대했다.

그 모습에 사명대사와 네 명의 군관들도 힘을 보탰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능력자들이 성문을 지키니 그 누구도 성문을 넘지 못하였다.

이윽고 시체가 성문을 가릴 정도로 쌓일 쯤, 더 이상 공격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왜군이 먼저 물러났다.

어느새 오후가 훌쩍 지나가고 잠시 양측 간에 암묵적인 휴전 상태가 이뤄졌다.

“으, 으으······.”

미처 수습하지 못한 부상자가 신음하는 소리가 성벽 밖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성내에서도 시체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후송시키는 등 재정비가 이뤄졌다.

이미 거의 모든 화살과 화약을 써버린 탓에 다음 공세를 막는 일이 그만큼 힘들게 되었지만 병사들 누구 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 한 나절 동안 치른 싸움에서 몇 배나 되는 적을 물리쳤다는 성취감 덕분이었다.

한 편, 상호는 성벽 위 성루에서 권율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예전 전주성에서 만나고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군.”

“그렇군요.”

“요괴 토벌을 위해 이 땅에 왔다던 자네가 어찌 관병을 대동하고 이곳에 온 것인지 그 사정을 듣고 싶네.”

권율의 말에 상호는 전주성에서의 만남 이후에 자신이 겪은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나 같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권율은 이 모든 말을 귀담아 들었다.

“···하여 제 직속 부하들과 함께 이곳을 돕기 위해 온 것입니다.”

“뜻은 알겠지만 너무 무모했네. 아무리 신통력을 가졌다지만 고작 이 인원으로 무리해서 돌입을 하다니 말이야.”

“상황이 급박해보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행주산성에 들어오기 위해 그동안 함께 했던 병사 중 다섯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때, 권율이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도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네.”

상호 일행이 제대로 왜군의 주의를 끈 덕에 다른 방면에서의 공격이 약화되었고 덕분에 위기일발이었던 조선군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거기다 성문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하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에 왜군이 재차 공격해올 확률도 줄었다고 볼 수 있었다.

“우선 오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뒷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쉬도록 하게.”

“그럴 수는 없죠. 왜군이 물러날 때까지는 함께 싸우겠습니다.”

사실 상호는 실컷 죽이며 여기까지 오느라 심신이 지쳐 싸우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장차 도원수가 되어 조선군 전체를 통솔한 권율에게 잘 보이고 싶어 이렇게 답한 것이다.

이런 속셈을 모르는 권율은 대견하다는 듯 상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전주성에서 만났을 때, 자네를 곁에 두지 않은 것이 이제와 후회되는군.”

“하하.”

“그럼 왜적이 물러날 때까지 함께 싸워보세.”

“네!”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내려온 상호는 일행의 상황을 살폈다.

먼저 다친 자들이 있는 구호소를 방문하니 치료술로 부상자를 치료하는 사명대사를 볼 수 있었다.

“대사, 부상자를 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힘을 많이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자칫 몸에 큰 무리가 갈 수도 있습니다.”

“하하, 이 정도는 거뜬하네.”

산을 올라오면서 왜군과 싸우느라 이미 상당히 지쳤을 텐데도 사명대사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부상자를 살리기를 주저치 않았다.

상호는 문득 허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허 의원께서는 어디에?”

“침을 놓다가 갑자기 어디 간다고 나갔네.”

“아, 네.”

상호는 그 말에 허준을 찾아 밖으로 향했다.

“음?”

인적 없는 곳에서 뭔가 힘이 느껴진다.

상호는 그쪽으로 가서 자신이 느낀 게 뭔지 확인했다.

“허 의원님?”

나무가 자란 장소엔 허준이 있었다.

그는 손을 소나무의 기둥을 대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에선 붉은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닿은 소나무는 급격히 생명력을 잃어 말라비틀어져갔다.

이는 곧 지금 허준이 ‘생명력 갈취’ 스킬을 사용해 소나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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